재수를 준비하는 여학생입니다. 고교 시절 '베프'(베스트 프렌드)에게 얼마 전 절교를 당했어요. 이 친구가 변한 건 대학 입학 한달 만에 첫 남자친구가 생기면서부터예요. 그전까지만 해도 메일도 자주 보내고, 저한테 싫은 소리 하나도 안 하고 고민거리도 잔뜩 말해서 제가 들어주고 그랬거든요. 그 남자친구와 셋이 만난 적도 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남친이 제 말투 때문에 "뭐 이런 애를 사귀냐"고 했다네요.
저는 사람을 정말 어렵게 좋아하는 편이라 친구를 한두명씩 깊이 사귀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 친구는 여러 명의 친구, 그중에서도 대단해 보이고 잘나가는 애들을 사귀고 싶어했거든요. 제 성격이 좀 이기적이고 매사에 부정적인 건 맞아요. 이메일로 그동안 미안한 일에 대해 사과도 했어요. 하지만 "너한테 질린다"며 그냥 끝내자네요. 마지막에는 욕설 담긴 답장까지 왔는데, 아마도 친구 남친이 보낸 것 같아요. 지금은 저와 연락도 끊고 미니홈피 글도 지우고 메일까지 수신 차단 했네요. 대학에 들어가서도 친구가 없어서 항상 남친과 다닌대요. 그래서 남친이 더 소중하고 사랑이 우정보다 더 크대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잘 지내던 친구가 남친 사귀고부터 변하니까 조금 이상하네요.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제가 혹시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잘못한 게 있는지 말해주셨으면 해요. 고치고 싶어요. 제 잘못과, 친구가 왜 이러는지 알고 싶어요.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친구를 소유물로 여기는 건 아닌지… >
의미있는 타인과 단절되는 경험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픈 경험이죠. 정서적 여파로 반대병존의 감정들이 마음 안을 헤엄칠 거예요. 모든 대인관계는 나를 비추어주고 내게 교훈을 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지금 이 시기에 그 관계가 그렇게 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 차근히 생각해본다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자, 같이 생각해보죠. 첫째, 우정도 시절과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겁니다. 20대가 되면 애인관계 탓에 기존의 우정 구도에 변동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건 '애인이냐 친구냐' 누가 더 중요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고 시절이 흘러감에 따라 맞이하게 되는 심리적 발달과업에 대한 거지요. 우정도 사람과 사람의 일이라 굴곡이 있을 수 있고 마찰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지나치게 잘잘못을 따지거나 억지화해를 시도하기보다는 한발 물러나 관망하면서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게 지혜로운 태도랍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면 그때 새로이 마음을 열고 다가가고 받아주세요.
둘째, 친구와 소원해지면 섭섭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섭섭함이 정도 이상으로 크다면 친구를 소유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안에 심리적 결핍감이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요. 상대가 내 뜻에 맞게 행동하길 바란다거나 상대방으로 인해 너무 많은 부분이 채워지고 있다면 건강한 관계라 보기 어렵습니다.
셋째, 마음에 잘 맞는 한두명과의 깊은 관계도 필요하지만 성장기와 20대에는 폭넓게 다양한 사람을 접하고 사귀면서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동시에 내게 잘 맞는 사람을 알아가는 심리적 실험, 그 속에서 나에 대해 새로이 깨닫는 자기탐색도 중요합니다. 일단 공부에 집중하면서 시험을 마무리한 뒤 새로운 마음으로 친구관계를 재정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여겨집니다. 자신의 현재 삶을 소중히 가꾸고 당면과제에 좀더 집중해 보세요. 잘 가꾸어진 삶 속에서 비로소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도 한껏 피어나는 것이니까요.
김선희 임상심리전문가, 김선희부부클리닉 대표
건강한 '나'가 다독여주게 하세요 >
님이 잘못한 건 없어요. 하지만 바뀌고 싶다면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해요. 이미 태어난 자기 중에 가장 훌륭한 자신이 되는 것이 최선이죠. 그러니까 이미 자기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나 자신 중에 내 마음에 드는 훌륭한 자기 자신을 찾아서, 그걸 밀어주고 키워주는 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님 안에는 스스로 어떤 건강하고 마음에 드는 면이 있나요? 당장 스스로를 구할 그 부분에 대해 5개만 적어볼까요? 대표적인 것, 중요한 것 5개만 크게 적어보세요. 적는 중에 시비 거는 내면의 비평자 목소리는 잠시 접어두시고, 적는 데에만 마음을 쏟아보세요. 그리고 진심으로 동의하는지 확인하면서, 소리 내서 여러번 스스로에게 들려주세요. 아무리 훌륭한 심리상담가나 친구가 옆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자기 안에 건강하고 훌륭한 자신의 협조가 없으면 그건 일시적인 수혈에 불과하답니다. 친구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현재의 상처를 잘 견디고 다독여줄 건강한 또다른 자기 자신이 방법이에요.
이렇게 발견한 건강한 자신을 어떻게 스스로에게 연습시키고 유지시킬 수 있을까요? 지금 거울을 한번 보거나 고개 숙여서 자기 몸 전체를 한번 보세요. 거기에는 분명 열등감, 친구에 기대고 상처받은 마음,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태도 등을 닮은 표정이나 자세가 있을 거예요. 친구와의 관계를 매번 틀어지게 하고, 안 좋은 평가들에 위축되지만 어쩔 줄 몰라 괴로워하는 현재 상태를 담은 표정, 그리고 몸의 자세인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그 표정과 자세를 다른 사람들도 보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이런 점들은 대화와 관계 양상을 매번 같은 패턴으로 만들어가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어요.
자, 위에서 썼던 5개의 장점으로 이루어진 본인을 생생하게 한번 상상해보세요. 5개의 장점으로 구성된 상상 속의 그 아이가 되어서 걷고 말하고 움직여 보세요. 여러 번 몸에 익을 때까지 연습해보기를 권해요. 현재의 인간관계들이 괴롭고, 성격을 바꿔보고 싶은데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땐 이런 방법으로 그 '마음'을 담아둔 '몸'을 바꾸시고, 그 달라진 몸에 새로운 마음이 담기도록 유도해보세요. 달라진 몸에 예전과 같은 마음이 담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답니다.
한지영 무용심리치료사·힐링모션 대표
그 우정의 중심엔 누가 있나요?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만 사람은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님께서 인생의 오점으로, 약점으로, 그리고 열등감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사실 님으로 하여금 더욱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원천일 수 있습니다.
우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에로스적 우정이고 또 하나는 아가페적 우정입니다. 여기에서 에로스적 우정은 성적인 것을 떠나 사랑의 대상을 소유함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아가페적 우정은 우정의 대상이 행복해지는 것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물론 우리의 우정이 다 아가페적이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에로스적 우정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만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우정을 확인하려 자신의 친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관계의 중심이 자신의 느낌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 주위에 있으면 매우 피곤합니다.
반대로 아가페적 우정을 유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친구가 잘되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서 상대방의 행복과 꿈을 이루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쉽지는 않을 수 있지요. 에서 프로도의 친구 샘과 같다고 할까요. 다행인 것은, 우리 모두의 우정이 전적으로 에로스적 우정이나 혹은 아가페적 우정은 아니라는 점일 겁니다. 그 둘 사이의 어떤 지점을 왔다갔다하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아가페적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거지요. 따라서 우리 모두 다 이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서로를 응원하고, 더욱 나은 삶을 이루어 가시길 응원합니다.
전용관 연세대 교수(스포츠레저학)· 저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