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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8

지역주의는 없다…'만들어진 현실'일뿐- 레디앙 박상훈 인터뷰, 정리 정상근- 2009-08-01.


지역주의는 없다…'만들어진 현실'일뿐
71년 이후 동원, 87년 이후 본격 이슈화
[인터뷰-박상훈] "정치적 발명품…유권자 합리적 행동준비 돼"
2009년 08월 01일 (토) 정리=정상근 기자

이 책의 출판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것은 일종의 '충격'이다. 책 제목 '만들어진 현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지역주의가 누군가에 의해 발명되고, 정치적으로 동원된 일종의 '유령'이라는 저자의 생각을 함축한 것이다. 

출판사 후마니타스 대표인 박상훈 박사(정치학)가 최근 『만들어진 현실』(후마니타스. 15,000원)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정치적으로 동원된 발명품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실재하는 현실로, 또는 너무도 명백한 당대의 현실로 대한민국 '공적' 1호로, 망국적 현상으로 규탄되는 지역주의-지역감정, 지역정서, 지역정치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이 책의 내용이다.

정말, 과연 그럴까? 박상훈은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해석들'을 하나하나 도마 위에 올려놓은 뒤, 그것들을 모두 뒤집어 놓는다.

지역주의가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뿌리 깊은 것이라는 설, 대부분의 유권자는 지역주의에 이끌리며, 때문에 정치인은 이를 이용하는 지역당으로 나누어 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건 대연정처럼, 위로부터의 결단이 내려지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망국적 고질병이란 시각 등 지역주의에 관한 지배적 담론에 대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박 대표는 이 책을 통해 "지역주의는 지배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성한 담론"이라고 정의한다. '지역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지역주의 때문에 큰 일' 이라는 해석이 어떻게 한국정치를 지배하게 되었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기회와 조건만 주어진다면 한국 시민들은 항상 합리적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대안의 구조가 늘 협소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29일 정오 그를 만나봤다. 인터뷰는 1시간 30분 동안 <레디앙> 사무실에서 이광호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 * 

- 지역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과 책으로까지 펴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박상훈 <후마니타스>대표(사진=정상근 기자) 

=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을 때는 '민주화운동 시대'였고 87년 선거가 치러졌을 때였다. 당시 개인적으로 현실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생각대로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논문 주제로 지역주의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지역주의를 다루다 보니 이것이 생각보다 중요한 주제란 생각이 들었고, 내가 고민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을 이 주제로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95년에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기로 결정했다.

이후 나 스스로의 혼란을 정리한 것을 2000년 학위논문으로 제출했고, 그러고도 잘 몰라서 10년 동안 관련 주제 살펴왔다. 

-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충격을 경험했다. 지금까지 '은폐'됐던 새로운 내용도 많다. 책에서 '내가 전라도 출신이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하면서 호남 소외를 그 내용으로 하는 지역주의 문제에 '나 스스로 공범'이라는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언급이 있다. 이런 생각이 연구에 영향을 끼쳤나? 

= 대학에서 운동을 할 때, 3학년은 앞에 나서서 책임을 지거나, 노동현장에 투신하거나 하는 '존재 이전'을 해야 하는데 내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운동은 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했다. 다만 운동은 '계급혁명' 등의 거대담론보다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쫓기듯 대학원에 가서 '왜 학생운동 했는지?' 생각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는데 잘 안보이더라. 그러다 주변을 보니 호남 출신들이 갖는 소외의식을 보게 됐고, 그들의 소외의식을 논문 형식을 통해서라도 대변하고 싶었다.

지역주의와 지역주의 해석담론 구분해야

- 책의 앞부분에 지역주의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배적 담론을 모두 부정한다.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 지역주의 문제는 '지역주의'라는 현상과, 지역주의를 해석하는 담론이 있는데 이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산업, 고용 등에 대한 지역 차별이나, 편견에 따른 지역 감정 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오랜 기간 노력을 통해서 개선해야 된다.

하지만 이것과 지역주의 떄문에 큰일났다는 식의 담론을 생산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비판을 해야 한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문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사태를 개선하기보다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데에는, 지역주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기여한 바 크고, 그렇게 보도록 만드는 작위적인 힘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자는 "렌즈는 바꾸고, 이데올로기화 된 해석으로 영향력을 조직하려는 진짜 '지역주의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자"고 말한다.)

외국의 지역주의와는 다르다

- 지역주의가 시기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있어왔으며, 공간적으로는 외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주장들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한국의 지역주의가 스페인, 미국 등 국가의 지역주의와는 다른 내용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 비교정치학에서 말하는 지역주의의 일반적인 현상은 오랜 역사를 갖는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 차이로 생긴, 특정 지역을 경계로 하는 문화적 공동체의 존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스페인을 예로 들면 까딸루냐, 안달루시아. 바스크가 있는데 이 세 지역의 경우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 약한 지역성을 갖는 지역은 분리독립이나 자치를 요구하고 역사의 면면에 흐르는 원초성을 회복하려 하는 것이다. 즉 중앙을 향하는 것이 아닌 중앙을 벗어나려 한다. 

또 미국처럼 지역이 동질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동부는 서부개척시대에 채권단 지역이었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뚜렷했다. 채무자로서의 서부도 마찬가지였으며, 남부도 인종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런 경제적인 지역으로 분리되는 게 미국의 경우이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정책과 정치운동을 하고 있다. 

하지는 우리의 경우 이와 다르다. 우리는 오랫동안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발전시켰고, 식민지를 경험하며서 근대화 과정에서 피해 집단이 나눠지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은 약한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민족주의가 등장하며 수많은 내전을 겪었는데, 우린 오랜 중앙집권 경험과 식민지 경험 때문에 지역성을 드러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적으로 지역주의가 불러들여지면서 짧은 순간에 한국사회가 지역주의가 심한 사회로 만들어 진 것이다. 길게 봐도 한 30~40년 수준이다. 외국의 경우 지역주의 문제가 역사적-문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한국의 지역주의는 상당 부분은 이데올로기적이다. 

71년 대선, DJ 부산득표율 42.6%

   
  ▲이광호 편집국장. 

-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장점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거 같다. 각종 사례들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새롭다. 정치적으로 동원된 일종의 '유령'으로서의 지역주의를 깨뜨릴 만한 사례를 몇 가지만 소개해달라.  

= 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자신의 고향인 경북에서 61%를 득표했으며, 전남과 전북에서도 각각 62%, 54%를 득표했다. 비율로 보면 전남이 경북보다 표를 더 준 것이다.

71년 선거 분석하면서도 놀랐다. 정치학자들은 영호남 대결이라고 했는데 지역별로 지지를 확인하니 부산에서 DJ 득표율은 42.6%였다. 이는 이전 대선에서 야당 윤보선 후보가 받았던 지지율보다 10%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대구도 8%, 경남도 2% 정도 늘었다.

대구에서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 증가는 서울의 증가율보다 높았다. 경북의 경우 박정희 후보의 득표 비중은 4.7% 증가했지만, 대구에서는 반대로 7.4% 감소했다. 

당시 박정희는 지역주의를 조장해 DJ를 공격했었다. 이 같은 현상을 보면서 권위주의 세력들은 영향력 있는 도전자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도전자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하고 비껴 때리기 위해 지역주의를 이용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조선일보>다. 87년, 김대중 주필의 몇 편 안되는 칼럼이 너무 놀랍다. 역시 지배세력의 본능은 대단했다. 권위주의 지배블록이 민주화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사람들에게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것을 <조선일보>가 개발하는 식이다.

놀라운 조선일보

그해 11월엔 프로야구장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이것이 유세장 폭력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섬뜩한 것은 <조선일보>는 이미 10월 사설에 '프로야구 경기에서 영호남간의 화합 장면을 보고 싶다'고 쓰고 있다. 그들은 화합하는 장면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화합되지 않는 지역감정을 보라고 말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돼있다. '지역주의'가 '삼국시대'로부터 이어온 뿌리깊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상식에도 부정한다. "'백제=호남'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으며 백제가 존립했던 기간에는 '서울-경기-충청'권이 중심이었으며, 호남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후백제 지역 출신과 신라 지역 출신이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왕비의 배출지역 역시 지역적으로 고르게 편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조선시대에도 "민란의 발생 빈도는 호남보다 영남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중앙관료의 출신지도 호남이 차별받았다는 증거는 없다"고 강조한다)
 

- 호남지역의 몰표현상은 어떻게 설명 할 수 있겠는가? 

= 투표의 지역적 편차는 어느 나라나 있다. 영국은 전형적인 계급정당 체제 모델이지만 그런데 영국조차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다. 지역편차가 크다는 것 자체로 우리사회를 지역적 대립체제를 만들 수 없다. 보편적 관점과 지역적 관점이 병행해 통일적으로 얘기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유권자 투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역주의가 강고하면 정당이 안 바뀌어야 하는데 한국사회는 너무 잘 바뀐다. 정치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바뀌지 않나? 사람들이 이를 지역주의로 회귀해 설명하는 것은 누군가 '그렇게 설명했으면' 하는 바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 아닌가?

쟁점이 분명할수록 지역 요인 줄어들어

(그는 책에서 후보자 사이나 정당 간의 "쟁점 위치의 차이가 클 수록 표의 지역적 분절성은 약화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예컨데 "5공화국 핵심세력 출신인 이세기 후보와, 대표적인 학생운동 출신 임종석 후보가 경합한 서울의 성동 지역구의 경우, 지역이라는 요인은 유권자의 투표 결정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산-경남 출신 유권자의 최다 지지를 받은 후보는 이세기 후보가 아니라 임종석 후보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또 "이념 이슈의 효과는 지역성이라는 변인과 무관하게 유권자의 투표 결정을 이념적 정향에 따라 분화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슈의 효과에 비례하여 출신 지역이 투표 결정에 미치는 효과는 축소된다."고 분석한다.)

- 1995년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의 투표현황을 설명한 부분이 있다. JP의 '토사구팽'에도 불구하고 충청권에서 표는 고르게 나왔었다. 

= 95년이 중요한 시기다. 권위주의 세력은 민주화 이후 첫 번째 대선에서 승리하고 일본처럼 보수 안정체제로 가기 위해 (3당 합당이라는)보수대연합을 했지만, 92년 뚜껑을 열어보니 과반수가 안 됐다. 그 이후에 YS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만약 YS가 '3당 합당 정신'으로 정치를 했으면 무서웠을 텐데 욕심을 부렸다. DJ를 망명시키지 않았나? 만약 DJ가 국내에 있었다면,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94년에는 JP까지 쫓아냈다.

만두 먹을래? 라면 먹을래?

그런데 95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의 투표 결과는 지역주의적 해석을 깼다. 민자당에서 쫓겨났던 JP가 핫바지론으로 지역주의를 선동했지만, 결과는 '지역주의'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기준에 맞게 행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회와 조건만 주어진다면 한국 시민들은 항상 합리적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대안의 구조가 늘 협소하다. 마치 다양한 선호의 사람들에게 '만두 먹을래? 라면 먹을래?'하며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수준이다.
 

- 지역주의 담론이 등장한 것이 71년 선거 직후이며, 87년 민주화 이후 본격적 이슈로 등장하게 됐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전엔 없었다는 거냐? 

= 지역감정 같은 것은 그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작위적으로 조직한 것이 71년 이후이다. 

- 87년 대선에서 양김 분열의 원인을 분석해놓았다. 이들이 독자출마 배경과 지역주의는 무관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 내가 분석한 목적은 (양김의 분열을)지역주의로 환원되는 설명이 아니더라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향후 이와 유사한 생겼을 때 당사자들이 여론에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하는 제도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자 했다.

- 지역주의를 들고 나오는 것은 현실의 당면한 문제를 피하기 위한 알리바이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대연정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나? 

= 물론이다. 지역주의 문제는 늘 정치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의 서론과 본론에서도 대연정을 비판했던 문제의식을 이어왔다. 노 전 대통령이야말로 전형적인 '3김 청산론자'였기 때문에 언젠가 이런 문제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사실 지역주의는 잘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지배집단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지역주의, 현실 문제 피하기 위한 알리바이

- 이명박 정부 들어 지역주의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 있나? 

=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엘리트 집단 안에서는 아마도 그런 얘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반이명박 움직임은 모든 문제를 '이명박'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지역주의 환원론과 문법은 똑같다. 이는 매우 위험하다. 그런 방식으로 현 정권을 몰아붙이면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통치를 더 쉽게 만들어주는 측면이 있다.

만약 이명박 정권이 작은 업적하나만 내면, '만사 오케이'아닌가?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정권을 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반대 세력을 (반이명박 전선이라는)한 곳으로 몰아넣으니 화물노동자의 죽음도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광범위한 연대는 요구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킬 수밖에 없다.

- '지역주의 망국론'이라는 담론이 처음 만든 주체가 권위주의 세력인데, 개혁세력-민주화세력-진보까지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로 합류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 책에서는 정계 은퇴를 번복한 DJ에게 주도권을 다시 넘겨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DJ를 효과적으로 비판하는 방법으로 지역주의를 가져온 것을 설명한다.

그들이 선의에 의한 비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은 <조선일보>가 만든 지역주의 담론을 철저히 따랐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본인들이 자신도 지키지 못하고, 신한국당이나 한나라당으로 가버렸다. 

이는 대한민국의 '진보의 단점'이라고도 생각된다. 본인들이 정치를 어떻게, 왜 해야 하겠다는 비전과 내용을 갖고 행동을 했었다면, 다른 부분에 편승해 본인들의 이익을 추구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편승해도 자신들의 입지를 없애는 이상한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치는 스스로 독립변수가 되려는 노력을 늘 게을리 했다.

2.5당 체제 생각했었는데...

- 책에서 보면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이 지역을 가로지른 요구와 선호에 부응하는 정당이 부재하가 떄문에 지역정당체제가 형성됐다고 말하고 있다. 대안으로서 지역을 넘어서는 정당이 나와야 할 것이다. 지역정당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과, 진보나 좌파를 표방하는 정당의 역할은 무엇이라 보나?

= 원론과 현실을 같이 말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후자는 정치 활동가, 리더의 몫일 것이다. 나와 최장집 선생은 DJ집권 이후 (지역주의를 넘어서 정책과 이념차로 형성된)2.5당 체제를 생각했었다. 진보정당이 당장 1이라는 숫자는 안 되겠지만 한국정치의 한 추가 되었으면 했다.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실험을 주의 깊게 지켜봤고, 지켜보면서 실망하고, 자신도 떨어졌다. 

그렇다면 미국식으로 민주당을 내부에 진보블록도 기능하게 만드는 대안밖에 없는지, 아니면 독자적 정당의 길은 추천해야 하는 것인지, 나도 고민되고 그 기로에 있다. 진보적 독자정치 세력화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세력이나 리더들에게 바라건데, 그 길을 개척해 주어서 지식인들이 발언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 민주주의 역진 불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었는데, 최근 정권의 미디어법 통과 등을 보면서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현재 이명박 정권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퇴진투쟁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 퇴진 대상으로 성립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 이 문제를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눠서 봐야 한다. 우선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 운영원리이며 역사상 그나마 나은 대안일 뿐, 그 자체로 다 해결해주는 만능은 아니다. 때문에 사회주의 같은 다른 운영 원리의 접합하고, 그것만으로 부족해 공동체, 시민성 등 문화적 조건도 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하나의 '최종적 구원자'로서 말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런데 너무 민주주의가 의인화 되고 물신화되었다. 진보가 매력적인 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를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개선할 수 있다고 보는 점 때문이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평가와 엘리트의 조바심

두 번째, 이명박 정부는 현재 민주주의 정치체제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정치체제라면 야당, 시민운동, 유권자, 저항세력이 있는 것이고 이 전체가 모두 민주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벗어났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론을 행태주의적으로 퇴행시키는 이해 방법이다. 

특히 진보진영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60년대 수준의 행태적으로 퇴행하고 있다. 상당히 우려스럽다. 이 차원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있고 한 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집권정부-지배블록이 보이는 민주적 가치의 훼손에 대한 것은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 정치체제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혼동시켜 놓으니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체제가 'MB'라는 말 자체로 환원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 이틀만에 민주주의적 성과가 역전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엘리트들의 조바심이다. 그동안 누린 것이 크기 때문에 느끼는 상실감 이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왜냐면 지금 선거가 2년 동안 없었던 93~95년 국면과 똑같은데, 만약 내년 선거에서 정치적으로 성과를 못 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성과를 무조건 내야 한다. 다만 MB에게 최대 타격을 주기 위해 모든 세력을 다 묶는다면 주장의 수준이 낮아지고, 최소주의적 욕구들로 평준화된다. 이렇게 되면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가난한 보통사람들에게 무었을 가져다 줄 것인가?

   
  ▲사진=정상근 기자 

비판진영도 각자 칼라가 다르다. 그런데 이를 유지하지 않으니 <한겨레>와 <경향>이 똑같아지고,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똑같아진다. '제목만 보고, 기사를 안보는', 전체 미디어에 대해 재미가 안 느껴진다. 작은 세력 하나라도 자기 목소리 유지하는 것이 민주주의 유지에 더욱 도움이 된다.

권력을 향한 가장 강력한 저항은 농담

지금 비판진영은 권위주의와 싸우는 모습인데, 이 정도 정부가지고 그 정도로 대응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밀란 쿤데라는 '사람이 권력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은 농담'이라고 했다. YS정부 때는 농담 많이 했지 않나? 

그런데 비판진영에서 지금 정부를 너무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허약한 정부를 센 정부로 만들어놓고 본인들은 싸우지도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일러바치는 형태다. 그야말로 벌려만 놓고, 정부는 상대하지 않은 채 뒤로 돌아서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는 식이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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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진정성의 정치가 과잉될 때 / 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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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
좋은 정치란 권력적이지 않을 때 가능하다거나, 혹은 권력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일할 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내 생각에 진정성에 의존하는 정치는 문제가 있다. 공허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무책임성을 모면하려는 알리바이가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정치란 권력 행사가 아니라 "봉사하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진정성을 보이라"는 요구로 일관하면서 사실상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정치란 "원칙과 진정성을 갖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라는 말만 계속할 뿐 현실의 권력관계와 무관한 존재처럼 행동한다. 야당인 민주당 역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할 때마다 "진정성을 갖는 정치"를 앞세운다. 이번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국민에 대한 봉사"와 그 "진정성"을 출마 이유로 내건 후보가 많았다. 물론 이들의 진정성 담론은 진짜가 아닌 상투적 정치담론일 뿐, 중요한 것은 진정한 진정성에 있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 또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알고 지내는 후배가 하나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하자 진보정치의 꿈을 같이 일궈가고 싶다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중앙당 상근 활동가를 자원했다. 그런데 그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당의 결정이 가끔 있었단다. 그래서 당 지도부 가운데 한 분을 만났을 때 그 이유를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그분은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신, 따끔한 훈계를 했단다. 후배의 문제제기가 무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분의 말이었다. 핵심은 "우리 당의 지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평생 개인 삶을 희생해가면서 운동에 헌신했고 지금도 사심이나 권력욕 없이 다들 그렇게 일하고 있는데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태도는 잘못이다"라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그분의 말에는 분명 진정성이 실려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분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민주화도 되고 진보정치의 힘든 길이 개척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바람에 지도부란 당내 위계구조 위에 서 있고 권한과 영향력을 더 많이 갖는 권력자라는 사실이 인식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결정에 대한 설명의 책임이라는 민주정치의 원리가 소홀히 여겨지고 말았다. 권력이 아니라 진정성이라는 그분의 윤리적 태도는 결과적으로는 이견을 억압하는 기능을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후배의 태도였다. 그런 경험이 있은 뒤 그는 웬만해서는 자기 생각을 표출하지 않았다는데, 뭔가 이견이 있다가도 그걸 말하기에는 자신이 살아온 평범한 회사원의 삶이 부끄럽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상황에서 적극성과 자발성을 갖기는 어려웠고 결국 삶의 보람을 찾지 못한 후배는 당직을 그만두었다.

진정성은 인간의 윤리적 삶을 이끄는 매우 중요한 내면적 가치가 아닐 수 없다. 그것 없이 개인의 참된 삶은 유지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대부분 권력관계로 움직여지는 정치의 세계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내면적 가치를 자신의 외양으로 삼을 때 혹은 자신이 옳기 위해 그런 윤리성을 동원해 타인의 행위를 제약할 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권력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정치해라!" 해서 정치가 좋아지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정치의 세계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권력 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의 긍정성을 선용하는 동시에 권력이 자의적이 되지 않도록 책임성을 부과하는 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 게 훨씬 좋은 일이라고 본다. 우리 정치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진정성으로 일을 한다는 정치가가 아니라, 권력을 알고 이해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바람직한 가치를 위해 권력을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치가이자, 그러기 위해 내적으로 단단한 신념과 외적으로 탄탄한 실력을 갖추려 노력하는 정치가가 아닌가 싶다.

박상훈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




기사등록 : 2011-05-15 오후 07: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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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손낙구의 선택 / 박상훈- 한겨레 2011.6.27일자.

[세상 읽기] 손낙구의 선택 / 박상훈
진보 안에서 개인 삶의 문제가 
좀더 나은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겨레
»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손낙구, 진보 안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이다. 1986년부터 19년 동안 노동운동을 했다. 민주노총의 전성기 시절 대변인을 지낸 걸 끝으로 노동운동 경력을 접고 2004년부터는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책도 여러 권 냈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가난한 서민의 관점에서 다뤘는데, 적어도 이 분야에서 그보다 더 잘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그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정책보좌관으로 발탁했다. 최근 민주당의 결정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양극화·비정규직·민생을 백번 말하는 것보다 훨씬 신뢰를 준다. 물론 다른 면도 있다.

‘수동혁명’(passive revolution)이라는 말이 있다. 간단히 말해 체제 밖 도전세력들의 요구와 인물을 체제 내 세력이 수용함으로써 기존 질서가 유지되는 현상을 말한다. ‘위로부터의 개혁’도 수동혁명의 하위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을 대표적인 사례로 하는 수동혁명적 변화와 개혁은, 해방 이후 한국 현대 정치를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1987년 민주화가 되고 2004년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입하면서 필자는 한국 정치의 수동혁명적 패턴이 단절되길 바랐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중대 이익과 열정들이 기성 정당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만든 정당에 의해 대표되고 나아가서는 서유럽 나라들처럼 정부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로 발전하길 바랐다. 꼭 내가 진보적이어서 그런 바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이 경쟁력을 갖고 노동의 이익이 폭넓게 대표되는 나라들일수록 빈곤의 정도가 덜하고 불평등과 양극화 정도도 덜하기 때문이다. 강력범죄율과 재소자 비율, 저체중아 출산율도 낮고 투표율과 여성 장관의 비율은 높다. 인권 및 자유화 지표도 좋고 소수자나 이주민에 대한 권리 부여 정도도 높다. 우리도 이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진보가 체제 밖에서 압력집단이나 사회운동으로만 존재하고 그들이 제기하는 의제나 요구는 기성 정치세력들에 의해 선별적으로 수용되는 그런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난주 내내 자신의 거취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다니던 손낙구, 그리고 그의 처지를 잘 아는 그의 오랜 동료·선후배들의 반응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누구도 왜 그래야 했는지 따져 묻진 않았지만 안타까운 분위기는 피할 수 없었다. 분명 그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고 의지도 굳고 전문성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진보의 세계 안에서 삶을 유지할 방법을 찾긴 쉽지 않았다. 그를 향해 변절이니 권력에 눈이 먼 선택이니 하면서 비난을 하는 일부 진보파의 반응을 보게 된다. 그 심사야 이해할 수 있으나, 정작 중요한 건 진보가 활동가들을 지키고 먹여 살리는 문제에 있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실력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느냐에 있지 않나 싶다. 생활의 압박과 고통 속에서도 진보정치의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여전히 경의를 표하게 되지만, 그런 희생이 계속 방치된다면 유사 사례는 또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보의 세계 안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포함한 개인 삶의 문제가 좀더 나은 전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진보정당이 잘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기여할 뿐만 아니라, 손낙구와 같은 인재들이 진보 안에서 삶의 활력을 잃지 않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획연재 : [사외] 세상읽기
기사등록 : 2011-06-26 오후 07:01:24  기사수정 : 2011-06-27 오전 09:4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