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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8

정치는 더럽고 믿을 수 없다? [정치의 발견] 박상훈 지음, 폴리테이아 펴냄- 장일호, 시사인 176호, 2011-01-24

정치는 더럽고 믿을 수 없다?
[정치의 발견] 박상훈 지음, 폴리테이아 펴냄
[176호] 2011년 01월 24일 (월) 11:43:01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지난해 ‘정의’가 화두였다면, 총선과 대선을 앞둔 2011년은 정치가 화두로 될 법하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쉬운 정치학 입문서가 나왔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사진)가 쓴 <정치의 발견>은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은 실제 박 대표가 2010년 11월13일부터 12월11일까지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정치인·정치인 지망생을 대상으로 3시간씩 연 작은 강의를 엮은 것이다. 

이 강의를 통해 박 대표는 거대 이념에 이끌리는 정치, 이념을 위한 정치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 정치를 바탕으로 정치학을 강의할 수 있어 흥분됐다고 말했다.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정치학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논문을 쓰면서는 느낄 수 없었던 기분이었다.”

   
ⓒ시사IN 윤무영

그는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2008년 ‘촛불의 에너지’에 있다고 본다. 어떤 후보를 당선시키느냐에 따라 잘못된 정부 정책을 막을 수도, 못 막을 수도 있다는 점을 국민들이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좋은 정치인에 대한 욕망이 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정치를 운동(movement)이나 도덕, 선의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며, 현실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를 독자와 함께 나눈다. 박 대표는 정치는 더럽고 믿을 수 없다는 ‘편견’을 망치로 두들겨 부수기 위해 노력한다. “정치·정당·정치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나 대책 없는 야유가 사실은 민주주의를 향한 공격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동업자들의 선택, 돌베개- 출판 편집자가 꼽은 올해의 출판사, 변진경, 시사인 119호, 2009-12-17.

동업자들의 선택, 돌베개
출판 편집자가 꼽은 올해의 출판사
[119호] 2009년 12월 17일 (목) 11:35:29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출판 편집자들에게 올해 가장 왕성하게 ‘유익한 서적’을 펴낸 출판사를 물었다. 동업자들이 꼽은 영광의 1위는 올해 30주년을 맞은 출판사 돌베개. 2007년 <시사IN> 조사에서 ‘출판 편집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출판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돌베개는 올해 <민중에서 시민으로>(최장집 지음)와 <우리 한시를 읽다>(이종묵 지음),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지음) 같은 사회과학·인문·예술 서적 30여 권을 세상에 내보였다. 출판 편집자들이 ‘주목할 국내 서적’으로 뽑은 <후불제 민주주의>(유시민 지음)와 <예수전>(김규항 지음)도 돌베개가 펴냈다. 

돌베개의 강점은 ‘우리 것’에 대한 진득한 관심과 탐구 정신이다. <한국 주거의 미시사>(전남일 지음)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지음) <열하일기 1·2·3>(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불화: 찬란한 불교 미술의 세계>(김정희 지음) <한국의 차 문화 1·2>(송재조 지음) <열녀의 탄생>(강명관 지음) <석학인문강좌 시리즈>(임형택 외 지음) <우리 한시를 읽다>(이종묵 지음) 같은 목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돌베개가 올해 출간한 책 대부분이 한국의 역사와 인문을 톺아보는 것들이다. 

  
돌베개의 강점은 ‘우리 것’에 대한 진득한 탐구이다. 위는 올해 펴낸 책을 들고 있는 돌베개 직원들.
2007년 <시사IN> 조사와 비교해 보면, 2년 새 출판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출판 편집자들은 가장 두각을 나타낸 출판사로 웅진지식하우스를 가장 많이 꼽았다. 김영사와 쌤앤파커스도 순위권에 올랐다. 모든 분야에서 두루 책을 내기는 하지만 주로 실용·자기계발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출판사들이다. 

올해는 달랐다. 에세이·청소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푸른숲도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와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등을 내며 많은 표를 받았지만, 돌베개를 비롯해 한겨레출판·창비·개마고원·후마니타스·휴머니스트처럼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내는 출판사들이 출판 편집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문학동네 ‘불황 때는 문학이 강세’ 입증


또 출판 편집자들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출판사 문학동네가 건재를 과시했다는 점이다. 출판 편집자들은 올해 돌베개 다음으로 가장 왕성하게 ‘유익한 서적’을 많이 펴낸 출판사로 문학동네를 뽑았다. 문학동네는 알마, 글항아리를 비롯한 11개 계열사와 임프린트를 거느리고 300여 권을 펴냈다. 특히 ‘불황 때는 문학이 강세’라는 속설을 입증하듯 김훈의 <공무도하>와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따위 문학서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꼭 ‘문학의 부활’이 문학동네의 약진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웅진지식하우스 김보경 편집장은 “한국에서 대형 출판사가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 기세를 높이 살 만하다”라고 문학동네를 평가했다. 문학뿐만 아니라 에세이·인문서 분야에서도 독자들의 욕구를 건드리려 시도한 책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이다. 



아깝다, 이 책!

출판 편집자들에게 저자나 내용은 좋은데 독자들로부터 많이 주목받지 못한 작품, ‘2009 아까운 걸작’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 결과 겹치는 책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저자의 무게감과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감을 다는 마음의 추가 다르다는 뜻이리라. 이들이 추천한 ‘아까운 걸작’ 목록에서 당신만의 걸작을 찾아낼 수도 있다. 

사회과학:<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이삼성) <뉴캐피털리즘>(리처드 세넷) <레볼루션 시리즈>(마오쩌둥 외) <법을 보는 법>(김욱) <비타 악티바 시리즈>(최현 외) <사회란 무엇인가>(김성은)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엄기호) <여기 사람이 있다>(강곤 외) <편집에는 정답이 없다>(변정수)
자연과학:<다윈 평전>(에이드리언 데스먼드 외) 

문학:<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사샤 스타니시치) <내 심장을 쏴라>(정유정) <러브크래프트 전집>(러브크래프트) <밀레니엄 1·2·3>(스티그 라르손) <잭 런던 걸작선>(잭 런던) <소년 H 1·2>(세노오 갓파)

인문:<교착된 사상의 현대사>(윤건차) <녹색평론 선집 2>(김종철) <과학과 사회 시리즈>(피에르 주아네 외) <루이 14세는 없다>(이영림) <몸, 욕망을 말하다>(키머러 라모스) <상처받지 않을 권리>(강신주) <석학인문강좌 시리즈>(임형택 외) <완역 이옥 전집>(이옥) <역지사지 미국사>(대너 린더만 외) <열녀의 탄생)(강명관) <이슬람의 세계사 1·2>(아이라 M. 라피두스) <인문으로 읽는 주역>(신원봉) <종교전쟁>(신재식 외) <짜장면뎐>(양세욱) <트래픽>(톰 밴더빌트)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1·2>(라울 힐베르크)

에세이/여행:<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김현아)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김순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장영희) <섬을 걷다>(강제윤)

경제/경영/자기계발:<대공황 이후의 세계>(하마다 가즈유키) <사고 정리학>(도야마 시게히코) <성장 친화형 진보>(진 스펄링) <스노볼 1·2>(앨리스 슈뢰더)

거울에 비친 우리 시대 작업복 청춘- 손낙구, 시사인 50호, 2008-08-02.

거울에 비친 우리 시대 작업복 청춘
<소금꽃나무>·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50호] 2008년 08월 22일 (금) 17:33:15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소금꽃나무>·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드디어 김진숙이라는 ‘임자’를 만나 ‘노동’이 ‘날것 그대로’ 제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게 됐구나. 작업복이 젖었다 말랐다 하면서 허옇게 등판에 드러나는 땀자국을 뜻하는 <소금꽃나무>를 읽고 든 생각이다. 책은 가난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 노동자의 권리를 찾으며 겪어야 하는 그들의 시련을 다루는 점에서는 여느 노동 관련 수기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김진숙이라는 ‘맑은 영혼’을 통해 형상화한 글은 사뭇 다르다. 

내 생각에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한마디로 슬픔이다. ‘노예가 인간의 꿈을 품고 사는’ 노동운동의 길은 더 슬프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삶일지라도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면 사실이 아니다. 이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함께 나눌 때야 비로소 인간의 꿈을 가꿔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노라면 저자는 ‘순도 100%의 감수성’으로 이 슬픔을 빨아들여 다시 독자에게 돌려준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를 보면서 나이 든 주부가 느끼는 것보다 더 실감나게 말이다. 

그래서 그냥 눈물이 난다. 노동자 인생이 너무 슬프고, 김진숙이 너무 슬프고, 노동열사들이 불쌍하고, 그들의 자식과 아내와 부모는 더 안쓰럽고, 내 인생도 너무 슬퍼진다. 김진숙은 이미 여러 해 동안 같은 내용으로 연설이나 글을 통해 늙은 노동자·간호사·교사·대학생·주부 할 것 없이 수십만명을 울려왔다. 그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또 운다. 다 아는 얘기인데도 그렇다. 슬프고 화가 난다. 고문했던 자들에게, 노동자를 탄압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자들에게, 자본의 천국이 된 이 세상에.

  
ⓒ시사IN 윤무영
비정규직 싸움을 하는 이랜드그룹 해고 노동자.
책의 어느 대목에서인가는 ‘더 읽을 수도, 그렇다고 더 읽지 않을 수도 없는’ 참 어려운 심정이 된다. 어린 조카를 집에서는 책상다리에, 중학교 등교해서는 철봉에 기저귀로 묶어 키워야 했고, (내 스스로 가해자가 된 듯한) 10대 여성 노동자들의 공장 기숙사 생활을 했고, 버스 차장과 해운대 아이스크림 장사를 거쳐 운명의 그곳, 노동운동에 다다르는 대한조선공사 처녀 용접공 김진숙의 ‘기억하기 싫은 청춘’을 들여다보는 일은 힘들고 괴롭다. 해고와 출근 투쟁, 고문과 투옥, 그리고 야만의 끝을 보이는 저들. 소설은 분명히 아닌데, 그렇다면 현실인데… ‘불편한 진실’ 앞에서의 머뭇거림… ‘대학생 친구’의 손도 빌리지 않았다. 시인 흉내도 내지 않았다. 시보다 더 몸서리치게 펄떡이는 단어들… 버릴 게 없어 요약을 위해 인용할 단어를 고를 수가 없다. 

뒤로 갈수록 책은 어느덧 거울이 되어 독자인 나를 비춘다. 참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뒤돌아보니 우리가 떠나온 자리에 비정규직이 노예의 사슬을 대물림하고 있다. 나는 20년 동안 뭘 한 걸까. 20년 가까이 초지일관 불굴의 신념으로만 버텼겠는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지 않는 것, 그것만큼 소중한 게 또 있을까. 그리고 가신 임들 영전에서, 전교조 탈퇴자 옥이의 열패감에서, 20년 만에 복직하는 두 동료에게서, 노숙 끝에 변사체로 돌아온 동생의 죽음에서 20년을 묻어둔 ‘부채감’을 꺼내들고 자책하는 김진숙…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쉬이 넘어가지 못하는 책장을 ‘힘내시라… 김진숙’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책장을 덮는다. 

  
<소금꽃나무> 저자 김진숙씨(위).

'노무현 시대’를 되짚는 시선들- 고동우, 시사인 62호, 2008-11-19

'노무현 시대’를 되짚는 시선들
'대통령 노무현’ 또는 ‘노무현 시대’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당사자의 귀환으로 흥미까지 더한다. 참여정부는 과연 현재의 경제위기와 사회 양극화에 별 책임이 없을까.
[62호] 2008년 11월 19일 (수) 10:34:44고동우 기자  intereds@sisain.co.kr
   
ⓒ뉴시스
지난해 7월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제2차 금융허브회의.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의 과도한 금융 자유화 정책이 현 경제위기의 근간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어쨌든 그가 돌아왔다. 책임 전가용이나 향수의 대상으로 ‘본의 아니게’ 종종 불려지다가, 마침내 그 자신이 직접 세상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했을 때, 최고 권력자를 역임한 정치인으로서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서든 ‘대통령 노무현’이 그냥 이대로 잊혀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귀환과 함께 그간 잠복되어온 논점 또한 다시 기지개를 켠다. 세월이 세월이라 화두는 역시 ‘경제’다. 흥미로운 것은,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주변 인사들이 꽤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노 전 대통령이 지난 9월 말 한국정치학회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목을 보자.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개방과 민영화, 노동의 유연화를 추진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권과 다를 것이 없었다고 비판하는데 저는 조금 생각을 달리합니다. 오히려 관치경제를 종식시켰고, 개방을 강조했을 뿐 진보적 측면에서의 후퇴는 없었다고 봅니다. 이는 참여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개방을 강조한다는 것이 곧 신자유주의 정책은 아니라고 봅니다. 소득 격차를 확대시키고 경제 양극화를 결과하는 정책은 김대중 정부나 참여정부에서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점잖게 했지만, 이는 진보·개혁진영 내에서 통용되는 ‘일반 상식’에 대한 전면 부정이나 다름없었다. 요약하면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와 무관하고, ‘경제 민주화’를 충실히 이행해왔으며, 사회 양극화에 별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된 “최근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까지 더하면, 사안은 더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 국민이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은 대부분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힘이나 현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인식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 무관하고 양극화에 책임 없다?


근래 학계나 관련 전문가를 중심으로 ‘노무현 시대’를 다룬 책과 논문이 잇따라 발표되는 것은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좀체 가라앉지 않으면서 “아, 그리운 옛날이여” 류의 ‘복권’ 시도가 마침 한창이었다. 여기에 ‘문제의 당사자’(?)까지 논쟁에 뛰어들었으니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댓거리판은 없다.

가장 전면적으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다룬 책은 <양극화 시대의 한국경제>(후마니타스)다. 부제 자체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이다. 이 책은 지난 5년을 “과감하게 ‘양극화 시대’로 정의”하면서 대외 통상정책, 금융정책, 노동정책, 연금정책이 어떻게 “소득 격차를 확대시키고 경제적 양극화를 결과”했는지 파헤친다. 유태환 교수(경희대 국제대학원), 박종현 교수(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등이 필자로 참여한 이 책의 결론은 “노무현 정부는 복지와 평등을 명시적으로 강조했지만, 시장 논리에 대한 지나친 낙관적 믿음 때문에 집권 기간 양극화의 심화를 겪었다”라는 것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위기의 한국경제>(휴먼앤북스)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노무현 정부가 5년 동안 위기를 알게 모르게 키워왔고, 이명박 정부는 한 단계 더 증폭시키고 있다”라고 ‘경제위기 책임론’을 직접 거론한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정책이다. 저자는 “한국은 지난 2000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비생산적인 부동산 투기에 몰입해온 나라이다. 그 결과 성장 잠재력이 크게 훼손되었다”라며 노무현 정부는 시급히 부동산 투기 버블을 깨뜨려야 했으나 ‘해결할 기회와 해법을 손에 쥐어줘도’ 문제 해결을 못했다고 비판했다.

  
학계에서는 ‘노무현 시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위기의 한국경제> <양극화 시대의 한국경제>, 계간 <비평>.
금융경제연구소는 지난 10월 한 내부 보고서에서 “노무현 정부의 금융정책은 최근 몰락한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고, 이명박 정부 역시 이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라며 단기외채, 가계부채 증가와 은행 부실은 ‘미국 모델 벤치마킹’의 필연적 결과라고 밝히기도 했다. 동북아 금융허브,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한국투자공사 설립, 초대형 금융복합체 창출 등을 통해 금융산업을 ‘실물경제 지원사업’을 넘어 그 자체로 ‘고부가가치 창출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노무현 정부의 시도가 현재 위기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 ‘공동책임론’ 제기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경제 민주화’ 관점에서 노무현 시대를 짚는다. 노 정권 출범에 관여했던 유 교수는 계간지 <비평> 가을호에 기고한 글에서 “노무현 정부는 경제 민주화의 철학을 갖지 못했다. 좌파적 경제정책은 별로 없었고 오히려 우파적 정책이 더 많았다”라고 당사자의 항변(?)과는 사뭇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사조가 시대착오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경제 민주화를 저해했다. 개혁의 강조점은 신자유주의 쪽으로 옮아갔다. 그 정점에 한·미 FTA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간 좌파적 경제정책으로 성장이 정체된 것이 한국 경제의 핵심 문제라고 진단하지만, ‘잃어버린 10년’ 동안 정말로 잃어버린 것은 성장이 아니라 경제 민주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진영은 이런 류의 비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이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10월 초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노무현 알리바이론 1편-진보·개혁 세력에게’라는 글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진보·개혁 진영은 ‘신자유주의에 물든 민주정부’라는 입론까지 덧붙여서 민주정부 10년과 참여정부 5년을 실패로 규정하는 일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결과론적으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경제 양극화의 과제가 심화되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이런 주장의 명백한 증거처럼 제시된다. 그래서 진보·개혁 진영은 서슴지 않고 노무현 정부는 실패한 정부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응답은 앞서 잠깐 언급했듯 상당히 공세적이다. 노 대통령처럼 ‘전복적’이기까지 한 것은 아니나, ‘진보·개혁 진영 전체의 공동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혹시, 아무런 밑천도 들이지 않았으면서 고스톱 한 판 치고 나면 모두가 다 잃었다고 주장하는 형국은 아닌가. 참교육만을 말하지 어떻게 국민 대다수가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극복시킬 것인지 대안을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집권 세력이 될 수 없다. 비정규직 철폐만을 주장하지 어떻게 비정규직의 고통을 줄이면서 노동시장에서 노동과 기업의 대안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 답을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집권 세력이 아니다. 대한민국 진보·개혁 진영은 자기 혁신을 해왔는가. 그것을 게을리 한 채, 김대중, 노무현 두 사람에게 모든 알리바이를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뉴시스
진보·개혁 진영에서는 사회 양극화 해소와 경제 민주화에 반하는 대표 정책으로 한·미 FTA를 꼽는다.
안 최고위원뿐만이 아니다. 참여정부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정해구 교수(성공회대 정치학과)도 최근 한 토론회에서 “노무현 정부가 정치적으로 진보를 표방하는 듯했지만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에 기울게 된 것은 원래 성격이 그랬다기보다 진보 학계가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정 교수는 또 이 자리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광풍은 20세기의 진보적 성과들을 무력화하면서 새로운 시장지상주의적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심지어 반독재 민주화투쟁, 민중투쟁, 시민운동을 통해서 성립한 ‘민주정부’들마저 신자유주의 정책의 포로가 되게 만들었다”라며 ‘외부 요인’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때문에’론을 경계한다

박상훈 박사(정치학·후마니타스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측의 이같은 논리에 대해 “액면으로는 사실에 가까울 수 있지만 참여정부에 관련된 사람들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라고 지적한다. “학계 또는 사회운동 쪽에서 ‘우리도 대안이 없었다’고 스스로 반성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난 정권 쪽에서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민주주의에서 어떤 사안에 대한 기본 책임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기를 요청한 사람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에게 있다. 또한 정부는 어마어마한 예산과 권력을 지니지 않았는가. 학계나 사회운동 진영은 조건도 다르지만, 본디 자기 이해에 충실한 집단이다. ‘희망’을 전할 수는 있지만 책임을 물을 대상은 아니다.”

그는 이른바 외부요인론, 즉 ‘신자유주의 때문에’론에 대해서도 경계를 보낸다. “‘다른 나라도 다 세계화에 영향받고 있다’는 식으로 민주파의 실패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가 되거나, 혹은 외적 변수에 원인과 책임을 귀속시키는 소극적 접근으로 끝날 수 있다”라는 염려에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면밀한 분석과 실증이다. 이를테면 박상훈 박사가 강조하듯 “다수 진보 인사의 존재나 역할은 독립 변수가 되지 못했고 IMF·미국·경제 관료·재벌의 요구가 그대로 정책이 되었다는 설명은 얼마나 현실성이 있나? 분명히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선택하고 결정했는데 정작 이들은 어떤 경제정책을 하고자 했는지, 아니면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비전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비전이 있기는 했으나 구체적이지 못해서 안팎의 외생적 요구에 굴복한 것인지, 굴복했다면 그 과정에서 이들의 비전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등등에 대한 규명” 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노무현 시대 5년은 이제 일방적인 증오나 향수의 대상에서 자유로워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탄생한 이명박 정부도 결국 몇 달이 채 안 돼 바닥을 헤매는 중이다. 이는 노무현 정권의 몰락을 즐기기만 했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공부를 안 한 탓인지도 모른다.

인문 출판의 위기? 우리는 돌파한다- 노순동, 차형석, 시사인 19호, 2008-01-21

인문 출판의 위기? 우리는 돌파한다
좀더 고민이 필요할 뿐, 널리 유포되고 있는 출판의 위기에 관한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열정적인 출판인들을 만났다. 소신 있는 기획으로 유명한 이들이 내놓은 해법은 무엇일까.
[19호] 2008년 01월 21일 (월) 13:02:20노순동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출판계 불황’이라는 말은 해마다 반복된다. 상투적 뉴스에 가깝다. 그 중에서도 ‘출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인문·학술 출판은 역설적으로 위기라는 말이 더 자주 들려온다. 해마다 꾸준히 인문·학술 서적 20여 종 안팎을 출판하는 4개 출판사 대표와 기획자가 모였다. <인물과 사상> 시리즈를 펴낸 바 있는 개마고원은 그동안 고종석·손석춘·강준만 등 비판적 지식인의 책을 펴냈다. 그린비는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인문·철학 서적을 주로 출간한다. 도서출판 길은 묵직한 학술서적을 주로 펴내왔고, 이매진은 정치학자 손호철 교수의 책과 젊은 연구자들의 ‘젊은 인문서’를 출간하고 있다. 각 출판사의 올해 출간 방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출판사별로 올해 출간 방향이나 계획이 어떻습니까?


  
 
ⓒ시사IN 한향란
유재건 (그린비 대표)  “출판이 만약 어렵다면, 돌파할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출판도 오디오북이나, e-러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 자체의 쇄신도 필요하지만 미디어적 관점에서 고민을 병행해야 한다.”
 
 
유재건 (그린비 대표) : 인문 출판이 힘을 발휘하려면 종수가 늘어야 한다. 인문서의 판매 부수가 2000~3000부 수준이라고 볼 때, 매출을 높이려면 종수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린비는 올해 34종을 출간하고, 향후 2~3년 안에 한 해 50종 정도 내는 출판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주마다 한 권씩 책을 펴내 단행본의 깊이를 갖되 현실 문제에 답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고 싶다. 올해 출간의 주요 방향은 ‘근대’이다. 근대는 어떻게 생겨났고, 근대를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근대의 원점부터 비판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인문 출판이 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대신 저변에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 우리 출판사가 생긴 지 5년 정도 되었다. 지난해 19종을 냈고, 올해 40~50종 정도 출간할 계획이다. 현재 기획된 책이 200종쯤 되는데, 올해부터 본격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낼 책들을 내고 싶다. 중역을 하지 않고, 전공자에 의한, 주해가 충실한 엄밀한 결정판본을 내자는 생각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독일어 원전 번역본이나 동서양 고전을 집중해서 번역 출판할 계획이다.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 : 두 출판사는 모색기를 거쳐 자기 색깔을 확실히 잡은 것 같다. 개마고원은 <인물과 사상> 이후 몇 년 동안 방향을 잃었다. 그동안 국내 기획서 중심으로, 학술서보다는 사회과학적 문제의식을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쉽지 않았다. 독자 대상에 관한 고민이 크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이제 대학생은 독자층에서 사라진 것 아닌가’ 걱정한다. 대학생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인문적 소양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사회가 강요하는 형국이다. 개마고원의 주 독자층은 386세대(30대 후반, 40대 초반)이다. 그런데 눈높이를 386으로만 잡아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이제는 ‘10대 좌파’를 발굴하는 기획을 중심에 두고 있다(좌파가 별건가?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말하는 거다). 10대들이 사회에 대해 진취적이고, 진보적 의식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준비 중이다. 20종 내외를 펴낼 계획이다. 

정철수 (이매진 대표) : 2004년부터 시작한 젊은 출판사로 그동안 60종을 냈다. 작은 출판사가 생존을 해야 하니까, 종수는 20~25종으로 늘릴 것이다. 학술출판 종수를 늘리거나 동서양 고전에 천착하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그런 책을 내는 출판사가 있기 때문에.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틈새를 찾아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게 목표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 연구자들을 신진 필자로 키우는 전략을 택했다. 석사 학위자를 포함해 필자를 발굴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유재건 : 4개 출판사가 차이가 많다. 경쟁하지 않아서 좋다(일동 웃음). 

- 각 출판사가 종수를 늘리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유재건 :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힘들다고 하는데…아니다, 저는 어렵지 않다. 다만 위기론 같은 담론이 유포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일동 웃음). 판매 부수 때문인지, 종수가 적어서 어려운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린비에서는 인문학 서적이 1000부 정도 팔려도 출판사 운영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출판이 만약 어렵다면, 돌파할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출판도 오디오북이나, e-러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 자체의 쇄신도 필요하지만 전달 방식 등 미디어적 관점에서 고민을 병행해야 한다. 미디어적 실험이 함께 가야, 인문학 출판의 희망을 말할 수 있다. 
그린비에서는 연구자를 모시고 내부 강의를 많이 한다. 그거를 전부 녹음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4~5년 후에 ‘원 소스 멀티 유스’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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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인문서는 그 책의 주제를 전공한 전공자가 번역하는 출판 문화가 필요하다. 비전공자가 번역을 하는 경우, 번역이 엄밀하지 못하고 황당한 오역이 생긴다. 출판 편집자나 기획자가 번역자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승우
 : 13년째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데, 우리 출판사는 완전히 복고주의다(일동 웃음). 한국 출판이 100년이 되었는데도, 정통·정도·중심을 잡아주는 출판사가 없다. 별처럼 빛나는 출판사들이 경영 세습 등 변화를 겪으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 출판사는 책 출간 여부를 결정할 때 몇 부 팔릴까 생각 안 한다. 품질이 보장된다면 출간한다. 400~500부만 팔려도 낸다. 책만 잘 만들면, 진정한 독자는 본다. 

장의덕 : 두 사람과 조금 의견이 다르다. ‘좋은 책을 내면 독자는 본다’는 말은 말문을 막아버리게 만든다. 책이 안 나갔을 경우에 할 말이 없게 되는 거다. 개마고원처럼 인문 대중서를 펴는 출판사로서는 부수에 대한 고민 없이 책을 출간할 수 없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인문·사회과학 책 가운데 재판을 찍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이다. 게다가 초판 부수도 적다. 이전에 3000부 초판을 찍다가 지금은 1500~2000부 발간한다.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 기획력의 부족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답답함이 있다. 책 읽는 풍토의 문제인지, 교육제도의 문제까지 거론해야 할지… 해답이 잘 안 보여 답답하다. 

정철수 : 이매진의 주 독자층도 개마고원과 비슷하다. 인문 출판의 위기가 매출의 감소도 있지만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도 있다. 젊은 층이 독자층에서 사라지고, 더불어 편집자도 그 세대에서 배출되지 않고 있다. 현재 외국에서 나오는 최신 이론을 소화할 만한 젊은 편집자가 없다. 그렇게 되면 교정이나 교열도 불가능하다. 30대 중반인 우리 세대가 50대까지 현역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출판 동료들과 말을 나눈 적이 있다(웃음). 이렇게 되면 ‘1인 출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스러울 지경이다. 

유재건 : 한국에서 인문·사회과학 출판은 새로움과 독창성으로 발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자본론>을 독일어 원전 번역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에 그런 새로움이 필요한 시기다. 
독자를 키워내야 한다. 인문 출판이 살아남으려면 판을 키워야 한다. 고용을 창출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인문 출판을 하겠다고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경영을 합리화하고, 규모를 일정 정도 늘려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는 초판 2000부만 팔리는 것을 전제로 사업 모델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일관성을 가지고 시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 보이지도 않는 시장성을 생각하면 답이 없다. 우리 출판계의 실력이라면 독자 2000명은 포착할 수 있다. 충성 독자를 500명, 확산 독자를 3000명 잡고서 사업모델을 잡는 것을 고민한다. 

- 2007년 인문·사회과학 출판에서 주목할 만한 화두나 출판사가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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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덕 (개마고원 대표)  “인문·사회과학 책 가운데 재판을 찍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이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하는 것이 기획력의 부족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답답함이 있다.”
 
 
장의덕
 : 지난해 한국의 사회과학 출판사 체면은 후마니타스가 다 세웠다고 본다. 후마니타스가 없었다면, 한국 사회과학 출판은 정말 ‘쪽팔렸겠다’. <법률사무소 김앤장> 같은 책은 현실 밀착적이다. 이런 책이 나온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또 <88만원 세대>는 중학생,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쉽게 쓰였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내용의 함의가 깊다. 

유재건 : 강명관 교수가 쓴 <조선의 책벌레들>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 생산과 수용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지난해 학술서 4권을 냈는데, 그 책을 다 읽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좋은 책은 찾아 읽게 하고, 독자가 지식의 세계에 한껏 욕심을 내게 만드는 책이다. <88만원 세대>에 대한 평가에 동의한다. 

이승우 : 강명관 교수의 다른 연구들이 인상적이었다. 실학 담론에 대한 본격 문제 제기였는데, 학계에서 반응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김동춘 교수가 쓴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은 ‘기업 사회’ 문제를 다루었다. 그로부터 10개월 만에 삼성 문제가 터졌다. 한국 사회가 기업사회화하는 것을 예리하게 짚었다. 
정철수 : 꼽는 책들이 겹친다. 저도 <88만원세대>이다. 

- 꼽는 책들이 주로 국내 필자가 쓴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출간 예정작 리스트를 보면 국내 필자가 쓴 책의 비중이 크지 않다. 개마고원이 참석한 다른 출판사에 비해 국내서 비중이 높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의덕 : 국내 기획서는 초안을 잡아서 청탁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품이 많이 든다. 지난해 낸 책 가운데 한 권은 기획하고, 필자 찾고, 청탁하고, 출간까지 5년이 걸렸다. 청탁하고 나서 원고 펑크나고, 또다시 청탁하고. 필자가 서너 번 바뀌었다. 그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교수들은 자기 논문을 묶어내면 폼도 나고 실적도 쌓인다. 전공서는 낸다. 그런데 인문 대중서는 기피한다. 쓰는 데 품이 많이 들어서다. 전공서를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렇게 힘들게 써도 기껏 2000~3000부 나가는 상황이다. 그러니 책을 쓰려고 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필자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지난해 국내 필자가 집필하는 시리즈 12권을 내기로 했는데, 딱 한 권 나왔다. 필자가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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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수 (이매진 대표)  “인문 출판의 위기가 매출의 감소도 있지만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도 있다. 젊은 층이 독자층에서 사라지고, 더불어 편집자도 그 세대에서 배출되지 않고 있다. 최신 이론을 소화할 만한 젊은 편집자가 없다.”
 
 
정철수
 : 올해 젊은 연구자들을 필자로 발굴하려는 것을 주요 방향으로 잡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교수나 박사 이상 필자를 고집할 게 아니라 다양하게 찾아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시민사회의 활동가들. 이게 잘되면, 국내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살 수 있는 활로가 되지 않을까. 

장의덕 : 현장 활동가들, 워낙 바빠서… 출판사로서는 아주 괴롭다(일동 웃음). 

유재건 : 국내서 비중이 낮은 것이 걱정할 문제일까 싶다.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칠 만한 책이면 굳이 국내서인지 번역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외국은 작가 인프라가 두터운 것이 사실이다. 한 사회가 갖는 힘이다. 

- 올 한 해 인문·사회과학 출판계가 해결했으면 하는 과제가 있다면? 

이승우 : 인문서는 그 책의 주제를 전공한 전공자가 번역하는 출판 문화가 필요하다. 이전에 비해 우리 사회에 인재 풀이 생겼다. 비전공자가 번역을 하는 경우, 번역이 엄밀하지 못하고 황당한 오역이 생긴다. 출판 편집자나 기획자가 번역자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장의덕 : 인력 구조 문제가 염려스럽다. 메이저 출판사가 인력을 키워서, 그들이 작은 출판사로 유입되어 활력이 되면 좋은데. 지금은 오히려 작은 출판사가 사람을 키우면 메이저 출판사들이 쏙쏙 빼간다. 임프린트 제도가 시행되면서 인력을 빨아들이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어 걱정스럽다. 

유재건 : 시장에 휘둘리면 방향이 흔들리고, 그러면 독자가 떨어져나간다. 자기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기획 예고제를 했으면 좋겠다. 독자들이 새 책을 기다리고, 출판사들도 서로 참조할 수도 있다. 큰 틀에서 독자와 저자를 더불어 키우지 않고, 자기만 살려고 하면 결국 그게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진행·정리/노순동·차형석 기자 

삼성은 참여정부 두뇌이자 스승이었다- 장영희, 시사인 11호, 2007-11-26

삼성은 참여정부 두뇌이자 스승이었다
삼성과 노무현 정부가 부적절한 유착 관계를 맺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삼성은 현 정부와 인재를 공유했고, 정부 정책을 ‘견인’해왔다. 삼성은 여당 정치인과 관료의 ‘교육자’ 노릇도 했다. 삼성과 참여정부의
[11호] 2007년 11월 26일 (월) 16:38:30장영희 전문기자  coo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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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는 ‘삼성 정부’다. 그렇게 불러도 좋을 만큼 삼성이 현 정부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가 삼성 특검법안 자체를 재검토할 것이며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특검법안을 연계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을 사실상 특검 반대 견해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권 후보의) 인식이 일면적이고 편협하고 한심하다’고 몰아붙였지만, 삼성 특검 이전부터 이미 노무현 정부와 삼성 간의 관계를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권 후보만은 아니다. 이즈음 터져나온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폭로는 청와대마저 삼성에 포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노무현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삼성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지적은 사실 정권 초기부터 나돌았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가 삼성과 가까워지는 데는 이광재 의원이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속한다. 한동안 항간에는 ‘대통령의 최측근인 ㅇ의원이 후보 시절부터 삼성과 다리를 놓았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그가 바로 그 최측근 인사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통해 비로소 삼성의 머리를 빌리고 사람을 빌리게 되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만 달러 국가 비전에서 한·미 FTA에 이르기까지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연구보고서(위)는 노무현 정부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쳤다.  
 
추론은 노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 동남지역발전특위 위원장 시절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계의 최대 관심사는 삼성자동차 처리 문제였다. 문을 닫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지만, 노 대통령은 부산이 자신의 정치 텃밭이었기 때문인지 삼성차 살리기 운동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 노력은 무위로 끝났지만, 노 대통령은 2000년 매각 작업을 중재했다. 이때의 상황을 잘 아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은 삼성자동차 관련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부산상고 1년 선배인 이학수 부회장과 친분을 쌓았다. 노 대통령은 이학수 부회장을 존경하는 경영인으로 평했고 ‘학수 선배’라 부르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삼성과 대통령을 이 의원이 매개했다고 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삼성을 적극 활용한 흔적이 적지 않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2003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활동을 마치고 11개 분과별로 5년 동안의 국정과제를 제시했는데, 노 대통령은 삼성경제연구소에도 똑같은 작업을 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삼성경제연구소는 70여 명의 연구원을 동원해 인수위의 11개 분과처럼 11개 팀을 짜고 같은 주제로 국정 어젠다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400여 쪽 분량의 보고서이다. 이 인사는 당시 인수위원 가운데 “당선자가 인수위와 삼성을 경쟁시킨 꼴이 되었다”라는 비판이 일었으며 재벌정책과 금융정책 등 몇 가지 사안에서는 큰 충돌을 빚을 만큼 기조가 달랐다고 전했다. 이 일은 노 대통령이 균형 감각을 중시해 이루어진 일로 포장되었지만, 삼성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노 대통령, 삼성 적극 활용

2004년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에 이 자료를 요청했으나 폐기되었다는 답을 들었다. 보고서를 생산한 삼성경제연구소도 당선자에게 국정 어젠다를 건넨 즉시 70여 명 연구진 모두에게 출력된 보고서와 파일을 모두 파기토록 지시해 연구진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연구소 차원에서 원본을 보관하고 있을 수 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에서도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그는 구조본 핵심 인사로부터 “팀장 회의에서 ‘이 사람들 참여민주주의 좋아하니까 참여정부라고 부르면 좋겠네’ 하는 의견이 나와 이를 전달했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했다. 이런 작명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인지는 불불명하지만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라고 이름 붙인 것은 사실이다. 삼성에 각료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해 팀장 회의에서 논의하기도 했다고도 한다. 그 첫 사례가 노무현 정부 첫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임명된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주미 대사 기용도 ‘인재 공유’ 사례로 꼽힌다. 언론노조와 시민단체가 조세 포탈범을 주미 대사라는 요직 중의 요직에 기용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거세게 비판했지만 노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게다가 홍 대사가 ‘삼성 X파일 사건’에 휘말리자 “정·경·언 유착과 도청 문제 가운데 도청이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이라며 그를 엄호했다. 하지만 대통령도 홍 대사의 낙마를 끝내 막지는 못했다. 그만큼 여론의 역풍이 거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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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시사포럼이 창립 1주년을 맞아 삼성경제연구소에 발제를 맡긴 ‘매력있는 한국 만들기’ 심포지엄.
 
 
한 삼성 인사에 따르면, 삼성의 각료 추천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 처음 한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때도 비공식으로 삼성과의 사이에 누가 좋겠느냐는 얘기가 오갔다. 이때는 삼성맨을 직접 천거하지 않고, 주로 경제 관료 가운데 삼성에 우호적 인사를 추천했다. 실제로 각료로 입각한 사례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도 시쳇말로 ‘삼성 장학생’으로 불리는 인사가 요직에 등용되었다.”

반면 삼성은 삼성에 불리한 정책을 추진하거나 밉보인 이른바 노무현 정부의 개혁파 인사들을 하나 둘씩 옷을 벗겼다. 가령 삼성생명이 계약자 몫인 3조원 가까운 돈을 주주 몫으로 변칙 회계 처리한 것을 들추어낸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은 삼성의 '성감대'를 건드린 삼성으로서는 위험천만한 인물이었다.  이정우 전 정책기획위원장도 국무회의  석상에서 금산법 개정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재경부와 금감위, 삼성에게는 매우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결국 개혁파의 좌장 격인 이정우 위원장을 끝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개혁파 인사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 '삼성과 관료세력'이 결탁한 개혁파 제거 작전은 삼성의 완승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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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국회 의정연구센터와 삼성경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 제언 심포지엄’.
 
 
이 삼성 인사는 이런 말도 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라는 두 정권에 삼성이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했던 것은 맞지만, 무게중심은 많이 달랐다. 김대중 정부 때 ‘사람’에 주력했다면, 노무현 정부 때는 ‘시스템’ 구축에 역점을 두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우호적 인사를 정부 요직에 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정 운용과 정책 발굴에 직접 개입하고, 공직 사회를 바꾸는 정부 혁신에도 깊숙이 간여했다는 것이다.

국정 어젠다에서 일종의 팀플레이를 해본 까닭일까.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협력은 그 후로도 계속된다. 노무현 정부는 부인하지만, 삼성이 정책 혹은 국가 경영전략을 제시하면 노무현 정부가 이를 차용한 듯한 인상이 짙다. 좋은 예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국가 비전이다. 삼성 신경영 10주년을 기념하는 사장단 회의가 열렸던 2003년 6월5일 저녁, 회의장인 신라호텔로 들어선 이건희 회장에게 기자들이 ‘한 말씀 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대뜸 “마의 1만 달러가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이 회장은 10년 내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가야 하며 (그렇게 못하면) 1만 달러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달이 안 된 6월30일 노대통령은 ‘참여정부 경제 비전 국제회의’ 개막 연설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위한 다섯 가지 성장 전략을 제시했다. 이때부터 한국은 삼성이 ‘저작권’을 가진 2만 달러 비전에 온통 포로가 되어 반론이 허용되지 않은 사회로 변했다. 

"삼성과 관료 세력이 개혁파 제거"

그 후로도 삼성경제연구소는 동북아 중심 국가론, 신성장 동력 개발론, 혁신 주도형 성장론, 산업 클러스터론, 그리고 가장 최근 사례인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이르기까지 기업 단위를 넘어선 국가 차원의 과제를 선점하며 노무현 정부에 영향을 미쳐왔다. 국가 정책을 ‘추수’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 정책을 ‘견인’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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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직접 수혈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일반인에게 ‘세리(SERI)’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삼성경제연구소는 1986년 삼성생명 부설 연구기관으로 출범해 1991년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삼성그룹에서 삼성경제연구소는 그들이 원하는 정책 의제를 제기하고 사회 담론을 유포하는 이른바 ‘삼성 이데올로기’를 공식·비공식 경로로 퍼뜨리는 전위부대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100명 가까운 ‘이데올로그’와 ‘테크노크랫’의 활약상은 가히 눈부실 정도라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삼성경제연구소는 보수 담론 생산의 핵심 공장이 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국가 운영의 규칙을 짜고 이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뛰어든다. 지금이야 많이 퇴색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그 어느 정부보다 정부 혁신을 강조했다. 정권이 요청해 삼성이 도움을 준 것인지, 삼성이 유도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부 혁신 담당 관료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노하우를 제공했으며 급기야 ‘교육자’로도 나섰다. 

‘간부 혁신 워크숍’으로 이름 붙여진 이 일은 2004년 9월 국무총리실 과장급 이상 105명이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같은 해 12월에는 통일부 과장급 이상 간부 88명이, 이듬해 1월에는 기획예산처 4급 이상 간부 70명이, 2월에는 외교통상부 혁신기획관 15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 삼성경제연구소는 윤순봉 부사장을 비롯한 핵심 인재들이 총출동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영향력, 정부 뺨쳐

2005년 4월 들어서는 삼성과 직접 관련성이 높은 부처가 교육에 참여해 파장을 낳았다. 4월에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5월에는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재정경제부 간부들이 인력개발원에 입소했다. 이들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연수 매뉴얼에 따라 자기 부처 밖의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었고,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 자아 비판했으며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주제로 브레인스토밍을 하기도 했다. 재경부나 기획예산처는 교육에서 도출된 혁신 방안을 구체화하고 적극 도입하겠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연합뉴스
홍석현 전 주미 대사는 X파일 사건으로 낙마했다.
 
 
오지랖 넓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정치권을 지나칠 리 없었다. 아니 정치권이 세리를 끌어들였다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2004년 9월 이광재 의원 등 이른바 친노 그룹이 주도하는 의정연구센터는 삼성경제연구소와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 제언’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심포지엄 직후 이광재·서갑원 의원 등은 정책 자료집을 발표하면서 2만 달러 시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 등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를 신속하게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이 먼저 주장한 것을 노 대통령 추종 세력이라는 이들이 받았고,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미국과의 FTA를 밀어붙였다. ‘국내의 취약한 개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FTA라는 외부 충격 혹은 압력을 이용해야 한다’는 따위의 표현도 흡사했다. 

2005년 6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주축인 ‘시장경제와 사회 안전망 포럼(시사포럼)’이 주최한 창립 1주년 기념 정책 발표회에서는 소장과 부소장이 발제를 맡았다. ‘매력 있는 한국’이라는 제목 아래 ‘G10 in Y10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렸다. 이때는 2만 달러를 앞세우지 않고 목표를 10년 안에 세계 10대 선진국에 드는 것으로 바꾸었으며, 시장 친화적 개혁 없이 결코 G10에 들어갈 수 없음을 강조했다.

세리가 내놓은 정책 제언은 정부뿐 아니라 언론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빠른 속도로 유포된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분석에 따르면, 10월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 동안 18개 주요 일간지(종합지·경제지)의 삼성경제연구소 인용 보도는 무려 251건에 이른다. 한 신문당 14건,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이 연구소를 인용 보도했다는 이야기다. 정부 부처를 제외한 뉴스원으로는 단연 1위다. 이쯤 되면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 사회의 의제 설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봐도 손색이 없다.

민간의 여러 두뇌 집단이 제시하는 정책 아이디어를 정부가 참고하는 것이야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세리 독주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데다 과연 여과 장치가 작동하고 있느냐로 모아진다. 세리가 한국 사회의 현안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이를 세련되게 포장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음을 인정하더라도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일 때의 위험성은 자못 크다. 정희용 새사연 미디어센터장은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외국 자본에 맞서기 위해 경영권 보호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따위 자기 그룹의 이해를 반영한 주장을 언론이 여과 없이 보도하는 일은 기업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일반인에게 알게 모르게 특정 그룹의 이해가 받아들여지는 것도 문제지만, 삼성 논리가 여과 없이 정부나 정치권에 통용되는 일은 법과 제도의 파괴, 즉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가공할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검찰보다 한 단위가 큰 뇌물을 경제 관료들에게 제공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미 삼성에 법 적용이 공정하게 집행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전성인 교수(홍익대·경제학)는 삼성과 노무현 정부 간의 부적절한 밀월 관계가 그동안 이른바 삼성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지적했다. 삼성 에버랜드나 삼성생명, 삼성카드가 금융지주회사법이나 금산법을 위반해도 즉각 감독에 나서야 할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는 일이 2004년 빚어졌다.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소신 있게’ 금산 분리를 완화해야 한다고 발언해 거센 반발을 자초했다. 차명 계좌의 발견으로 금융실명제법 위반임이 명백하게 드러나도 금융감독원은 법 위반자인 우리은행의 자체 조사를 보고 판단하겠다며 꼬리를 뺐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격이다.

정부의 '삼성 봐주기' 의혹 끊이지 않아

재경부 (금융정책국) 금융정책과가 2004년 10월 작성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 내용’이라는 비공개 문건은 흥미롭다. 재경부는 ‘현행 승인 기준(시행령 6조)이 은행법이나 공정거래법 같은 다른 법령에 비해 과도하게 엄격하다며 승인 기준을 변경해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에 대한 지배를 실질적으로 금지한다는 금산법 24조의 입법 취지를 사실상 무력화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현행 승인 기준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는 금감위의 승인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부칙 신설뿐 아니라 승인 기준 자체를 완화하려고 기도한 것이다. 위법 행위를 합법화해 주는 삼성 봐주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난했다. 

2004년과 2005년 공정거래법과 금산법 개정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격렬한 공방을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2005년 정부 여당은 이른바 ‘분리 대응안’이라는 꼼수로 금산법 개정 취지를 무위로 돌렸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만 5년 내 매각 처분하고 법 제정 이전에 지분을 취득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처분하지 않고 의결권만 제한한 것이다. 이것은 삼성의 현행 지배구조를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삼성의 힘이 작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는 이미 X파일 사건이 터지기 전인 2005년 초 “집권 엘리트-경제 관료-삼성그룹 간의 결합이 만들어지면서 개혁적 정책의 공간이 크게 축소되었다. 결국 스타일은 정서적 급진주의라고 부를 수 있지만, 실제 내용에서는 보수적 경제 정책의 기묘한 결합에 불과하다”라고 노무현 정권을 평가한 바 있다.

최근 최장집·박찬표(목포대) 교수와 <어떤 민주주의인가>를 펴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보수 세력의 발언권이 한층 커진 이른바 보수 민주주의의 결정체로 ‘삼성 공화국론’을 제시했다. 제대로 된 정당의 매개 없이 국가를 운영하고자 했을 때 언론의 매개 기능과 재벌의 정책 로비 기능은 극대화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전형적 사례가 삼성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삼성 이건희 일가와 ‘선출된 권력’ 노무현 정부의 부적절한 유착 관계인 셈이다.

2011-07-29

한겨레 올해의 책 2008 국내서- '어둡고 험한 시대' 격랑 건너는 법

‘어둡고 험한 시대’ 격랑 건너는 법
올해의 책(국내서)
한겨레 김일주 기자 메일보내기 이세영 기자 메일보내기 한승동 기자기자블로그
지난 1년 출판계는 10년 전 외환위기 시절보다 더 험한 최악의 불황을 겪었다. 불황의 골이 내년에 더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사람들 가슴은 더욱 시리다. 그런 역경 중에도 출판인들은 양서로써 ‘어둡고 힘겨운 시대를 건너는 법’을 이야기하려 했고, 독자들은 이 책들과 더불어 궁핍한 시기를 견디고 용기를 얻었다.
시대를 진단하는 책, 희망을 찾아가는 책, 마음을 덥혀주는 책들이 있었다. 지난 1년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또 우리 사회에 빛과 힘을 준 책들을 선별해 국내서 10종과 번역서 10종으로 나누어 싣는다. 종수를 한정하고 장르를 안배하다보니 양서인데도 어쩔 수 없이 빠진 책들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한겨레> ‘책과생각’에 칼럼을 쓰는 과학책 번역가 김명남씨, 도서평론가 이권우씨, 출판평론가 최성일씨,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그리고 <한겨레> 책·지성팀 한승동·최재봉·고명섭·이세영·김일주 기자가 ‘올해의 책’ 선정에 함께했다.

■ 자기 객관화, 행복하자는 수작이야
〈건투를 빈다〉
김어준 지음·현태준 일러스트/푸른숲·1만5800원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가 <한겨레> ‘esc’ 등 매체에 연재한 상담 기록을 묶고 중간중간 상담 주제와 관련해 쓴 에세이를 섞어 엮었다. 주제 불문, 장르 불문 고민에 ‘따뜻한 직설법’ 또는 ‘따뜻한 독설법’으로 답하며 상담자의 심리를 냉혹하게 파헤쳐, ‘찌질한’ 자신까지 객관화해 온전한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주름처럼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근육처럼 운동해야 생기는 자기 객관화 능력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행복할 수 있는 힘은 애초부터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거, 그러니 행복하자면 먼저 자신에 대한 공부부터 필요하다는 거, 이거 꼭 언급해두고 싶다. 세상사 결국 다 행복하자는 수작 아니더냐.” 김일주 기자
■ 유머와 위트로 읽는 진화생물학

» 〈다윈의 식탁〉
〈다윈의 식탁〉
장대익 지음/김영사·1만3000원

찰스 다윈에게서 기원하는 진화생물학의 흐름과 쟁점을 ‘가상논쟁’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냈다.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르원틴, 에드워드 윌슨 등 진화생물학의 고수들이, 급서한 20세기 최고의 진화론자 윌리엄 해밀턴을 기리기 위해 영국 옥스퍼드대 뉴컬리지 예배당에 모인다는 상황 설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굴드팀·도킨스팀으로 패를 나눠 벌이는 엿새간의 가상 논쟁은 진화생물학의 핵심 주제를 유머와 위트가 담긴 살아 있는 이야기로 전달한다. 논리와 설득력을 무기로 벌이는 학자 집단의 치열한 논전 속에서 과학적 지식 또한 끊임없이 진화해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세영 기자


■ 신자유주의 질환 ‘대중용 처방전’

»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부키·1만3000원

국방부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불온도서 딱지를 붙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삽시에 그 책 판매량을 수만부나 늘려준 독서대중의 폭발적인 호응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무언의 저항처럼 읽혔다.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는 민영화 등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내세우는 갖가지 신자유주의의 장점들이 얼마나 허구인지 좀더 쉽게, 더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장하준표 신자유주의 비판의 ‘대중용 버전’이다. 쟁점 항목별로 조목조목 정리한 신자유주의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대안 제시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건재한, 역사적 사실들에서 뽑아올린 명쾌한 실증력. 장하준의 진단이 옳았다는 건 미국발 금융공황으로도 이미 입증된 셈이 아닌가. 한승동 선임기자



■ ‘민족사적 자멸극’ 바닥 치고 비상하기

» 〈밤은 노래한다〉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문학과지성사·1만원

작가 김연수는 실재와 허구, 진실과 거짓, 안과 밖의 경계를 끊임없이 물고늘어진다. 오랫동안 붙들고 만져 온 끝에 책으로 내놓은 장편 <밤은 노래한다>에서 그는 낮과 밤의 경계를 문제삼는다. 주인공 김해연은 사랑했던 여인이 죽음을 앞두고 보내온 편지를 보면서 익숙하고 편안한 낮의 세계에서 낯설고 불편한 밤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그것은 김해연 개인의 밤이자 민족사의 밤이기도 했다. 1930년대 만주의 조선인 독립투쟁가 사회를 강타한 ‘민생단 사건’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자멸극이 그 밤의 이름. 그 밤의 이야기는 해연에게나 민족에게나 몰락과 환멸의 서사이지만, 그렇게 바닥을 치고서야 비로소 비상과 희망의 꿈 역시 가능한 법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 이동파·예술세계파 등 러시아 미술 1천년사

» 〈러시아 미술사〉
〈러시아 미술사〉
이진숙 지음/민음in·2만2000원

현지 유학파가 쓴 국내 첫 러시아 미술사 책이다. 12세기 이콘화에서 발원해 이동파, 아방가르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는 러시아 미술 1000년사를 ‘예술의 사회사’라는 형식으로 풀어냈다. 작품 구석구석을 살피는 시선의 치밀함과 러시아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삼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누락시킨 러시아 거장들의 역작들을 21세기 한국의 독자 앞에 호출했다. 이동파·예술세계파 등 러시아 근대 미술의 정수를 풍부한 도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학적 글쓰기를 통해 다져진 글쓴이의 필력이 책에 대한 몰입도를 배가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 북녘 토박이말 아우른 어린이 말 사전

» 〈보리국어사전〉
〈보리국어사전〉
윤구병 감수·토박이 사전 편찬실 엮음/보리·4만5000원

초등 교과서·좋은 어린이책·학급문고에서 모은 말과 북녘 토박이말 800여개 등을 총망라해 4만개가 넘는 방대한 낱말을 두툼한 1500쪽 사전에 실었다. 책을 감수한 윤구병 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는 1983년 이오덕 선생이 이끌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국어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사전은 2001년부터 꼬박 7년에 걸친 작업 끝에 완성됐다. 조붓하다(조금 좁은 듯하다), 희붐하다(날이 새려고 빛이 희미하게 돌아 조금 밝다) 등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붙잡아 모았고, 남북이 다르게 쓰는 말도 2500개나 실어 남과 북의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사전을 만들었다. 김일주 기자


■ 단 한줄 글쓰기도 나를 치유한다

» 〈치유하는 글쓰기〉
〈치유하는 글쓰기〉박미라 지음/한겨레출판·1만2000원
“단 한 문장으로도, 서툰 글솜씨로도, 아무렇게나 끼적인 낙서로도 치유의 효과가 나타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첫 편집장을 지내고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감정치유 에세이 <천만번 괜찮아> 등의 책을 쓴 지은이가 ‘치유하는 글쓰기’ 강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글쓰기가 지닌 치유의 힘을 들려주고 글쓰기로 치유에 이르는 길을 안내한다. ‘치유’는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히 용서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미친년 글쓰기’, ‘셀프 인터뷰’, ‘무의식적 글쓰기’ 등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들의 글이 “온몸으로”, “심장으로” 글을 쓰라는 지은이의 조언과 함께 실렸다. 김일주 기자


■ 사회 파행 낳는 ‘신흥 법률귀족’ 고발

» 〈법률사무소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앤장〉
임종인·장화식 지음/후마니타스·1만2000원

이른바 ‘1987년 체제’ 20여년간 진행된 민주화·자유화, 신자유주의 정책 최대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다수 국민의 삶을 끝없는 불안과 곤궁으로 몰아가고 있는 구조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잘나가는 법률사무소의 유별난 행태를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가장 인상적으로 고발한 책. 정부 고관들과 사법 수장들, 그리고 동창과 연수원 동기들과 직장 선후배들까지 총동원해 론스타·소버린·칼라일·골드먼삭스 등의 외국 투기자본과 삼성 등 국내 부자들의 이해를 ‘합법적으로’ 대변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21세기 신흥귀족’들의 특권적 철옹성 쌓기와 그로 인한 우리 사회의 파행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묻는다. 그들은 시민의 벗인가 적인가, 국가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한승동 선임기자


■ 역사에서 퍼올린 아날학파적 희망

» 〈대항해 시대〉
〈대항해 시대〉
주경철 지음/서울대학교출판부·2만3000원

1492년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이후 유럽 문명이 전지구적 지배력을 장악한 것은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팽창은 대부분 전쟁과 폭력, 충돌과 갈등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였다. 그럼에도 유럽의 절대 우위가 확정되는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대항해 시대>가 뛰어난 점은 그것을 추상적 언설이 아니라 방대한 사료와 이론을 구사하며 매우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은 일방적이었지만 역사의 진행은 일방적으로 흘러간 적이 없으며, 피해자들의 주체적 대응이야말로 세계사를 재창출한 동력이었다. 아날학파의 세례를 받은 지은이가 역사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지점이 바로 거기다. 한승동 선임기자


■ 다문화 가정 다룬 청소년판 난쏘공

» 〈완득이〉
〈완득이〉
김려령 지음/창비·9500원(양장)·8500원(반양장)

올해 출판계에 분 청소년문학 돌풍을 선두에서 이끈 화제의 성장소설이다. ‘난쏘공’의 난쟁이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카바레 ‘삐끼’ 난쟁이 아버지, 어릴 때 집을 나가 얼굴도 모르는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혼자 라면을 끓여 먹으며 자란 완득이가 괴짜 담임 똥주를 만나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장애인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다문화 가정 문제 등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행동은 괴짜여도 속 깊고 유머 넘치는 담임 똥주 캐릭터와 열일곱 살 완득이의 꾸밈없는 서술이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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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8-12-19 오후 09:15:17  기사수정 : 2008-12-19 오후 09: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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