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우리 시대 작업복 청춘 | ||||||||||||||||||
<소금꽃나무>·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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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한마디로 슬픔이다. ‘노예가 인간의 꿈을 품고 사는’ 노동운동의 길은 더 슬프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삶일지라도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면 사실이 아니다. 이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함께 나눌 때야 비로소 인간의 꿈을 가꿔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노라면 저자는 ‘순도 100%의 감수성’으로 이 슬픔을 빨아들여 다시 독자에게 돌려준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를 보면서 나이 든 주부가 느끼는 것보다 더 실감나게 말이다. 그래서 그냥 눈물이 난다. 노동자 인생이 너무 슬프고, 김진숙이 너무 슬프고, 노동열사들이 불쌍하고, 그들의 자식과 아내와 부모는 더 안쓰럽고, 내 인생도 너무 슬퍼진다. 김진숙은 이미 여러 해 동안 같은 내용으로 연설이나 글을 통해 늙은 노동자·간호사·교사·대학생·주부 할 것 없이 수십만명을 울려왔다. 그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또 운다. 다 아는 얘기인데도 그렇다. 슬프고 화가 난다. 고문했던 자들에게, 노동자를 탄압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자들에게, 자본의 천국이 된 이 세상에.
뒤로 갈수록 책은 어느덧 거울이 되어 독자인 나를 비춘다. 참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뒤돌아보니 우리가 떠나온 자리에 비정규직이 노예의 사슬을 대물림하고 있다. 나는 20년 동안 뭘 한 걸까. 20년 가까이 초지일관 불굴의 신념으로만 버텼겠는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지 않는 것, 그것만큼 소중한 게 또 있을까. 그리고 가신 임들 영전에서, 전교조 탈퇴자 옥이의 열패감에서, 20년 만에 복직하는 두 동료에게서, 노숙 끝에 변사체로 돌아온 동생의 죽음에서 20년을 묻어둔 ‘부채감’을 꺼내들고 자책하는 김진숙…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쉬이 넘어가지 못하는 책장을 ‘힘내시라… 김진숙’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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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8
거울에 비친 우리 시대 작업복 청춘- 손낙구, 시사인 50호, 200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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