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확신은 형이상학의 영역 | ||||||
칼 포퍼는 자연·사회 과학에 ‘절대 진실’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박선영 의원이 천안함 폭침에 가진 ‘확신’은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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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례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다. 2002년 9월6일 당시 체니 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우방·동맹을 대상으로 이를 증강시키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우리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라고 공언할 만큼 확신을 보였다. 가장 극적인 것은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의 퍼포먼스였다. 파월 장관은 유엔 안보리에서 하얀색 분말이 든 유리병을 내보이며 “사담 후세인은 생물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추가 생산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는 확신도 한몫했다. 2002년 9월27일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후세인이 오사마 빈라덴의 긴밀한 동맹 세력이라는 확고한(bulletproof) 증거를 가지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이 모든 ‘확신’은 결국 허위로 판명되고 말았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 점령 이후 연인원 8000여 명의 조사관을 동원하고 2000만 달러 상당 현상금을 내걸었지만 대량살상무기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라크가 국제 테러리스트의 거점이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확신의 언술은 이렇듯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이라크 전쟁이 전부일까. 미어샤이머 교수가 드는 또 다른 사례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통킹만 사건이다. 미국 정부는 1964년 8월2일 북베트남 경비정 세 척이 통킹만에서 경비 업무를 수행하던 미국 구축함 매독스 호에 선제공격을 가해와 이에 즉각 대응, 한 척을 격침시키고 두 척에는 타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닷새 뒤 미국 의회는 만장일치로 ‘통킹만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존슨 행정부는 이를 베트남전 확전의 계기로 삼았다. 소련 정부가 이러한 움직임에 항의하자 미국 정부는 북베트남의 공격에 ‘확실하고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응수했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도 미 상원에서 “북베트남은 통상적인 경비 활동을 하던 매독스 함에 계획적으로 일방 공격을 감행했고, 이에 대한 절대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1995년 맥나마라 장관 스스로 이는 미국의 자작극이었음을 시인한 바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1941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일 잠수함이 북대서양의 미국 방어 해역에서 사전 경고 없이 미국 구축함에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했다고 발표하고, 나치 독일에 대한 미국 국민의 경각심을 촉구한 바 있다. 이 역시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처럼 성숙한 선진 민주국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런 일은 실제로 벌어졌다. 이것이 바로 ‘확신’의 한계다. 미국처럼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도 이럴진대… 얘기를 길게 인용한 것은, 얼마 전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느낀 점 때문이다. 천안함 폭침에 대해 사실상 ‘확신’을 강요하는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과 “정부 발표를 신뢰하긴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라는 조용환 후보 간의 공방은 미어샤이머의 비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미어샤이머는 이른바 ‘공세적 현실주의자’라 불리는 보수파 학자다. 그런 그도 외교안보 사안에서 확신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마르크시즘과 독재에 대한 비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철학자 칼 포퍼의 경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저서 <억측과 반박>에서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는 ‘절대 진실’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절대 진실을 확신하는 자는 과학자가 아니라 형이상학(종교)의 추종자에 불과하다는 논지다. 과학적 진실은 검증(verification)이 아니라 오로지 반증(falsification)이 가능할 때만 진실로서 의미가 있다는 역설이다. 포퍼의 시각에 따르면, 박선영 의원의 확신은 분명히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해 보이는 반면, 조용환 후보는 비판적 반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겠다. 우리 현실에서 어느 시각이 바람직할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보수가 한국적 분류상 보수보다 진보에 더 가까워 보이는 현실은 분명 아이러니가 아닌가. |
2011-08-08
천안함 폭침 확신은 형이상학의 영역- 문정인, 시사인 201호, 201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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