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06
2011-08-04
[사설] 기초노령연금 대상자 섣부른 축소 안 된다
정부가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하위 70%'로 돼 있는 기초노령연금 수령 대상자를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보건복지부는 그제 국회 연금제도개선특위에 이런 방침을 보고하고 '최저생계비 150% 이하 노인'을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현재 70% 수준인 수령 대상자가 2030년엔 51% 정도로 줄 것으로 예측돼, 노인층의 대량 빈곤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현행 기초노령연금이 저소득층 노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앞으로 국민연금 수령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 등을 제도 개편이 필요한 이유로 꼽는다. 기초노령연금액은 국민연금 가입자 월평균 소득액의 5%로 산정하는데, 올해의 경우 1인 가구가 9만1200원으로 1인당 최저생계비 53만원의 17%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정도론 노인층의 경제적 어려움 해소에 도움이 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2028년까지 국민연금 평균소득액의 10%로 높일 예정이라지만, 더 일찍 지원 규모를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복지부는 기초노령연금 수령 대상자를 줄인다는 방침만 밝혔을 뿐, 지원액을 늘릴지 여부에 대해선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국민연금의 경우 2007년 국민연금법이 개정돼 당시 60%(중간소득자 기준)였던 소득대체율이 해마다 낮아져 2028년엔 40%로 떨어지게 돼 있다. 노후빈곤 예방 기능에 상당한 구멍이 뚫려 있는 셈이다.
기초노령연금은 한국 사회의 오늘을 일궈낸 60~70대들이 빈곤에 신음하지 않도록 2007년 도입됐다. '세대간 부의 재분배'라는 철학이 상당히 배어 있는 제도다. 이들은 죽어라 일했지만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2000년대 중반 우리나라 노년층의 상대적 빈곤율(중위가구소득 절반 미만의 소득자 비율)은 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13.3%보다 월등히 높다. 지난해 536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1%였던 노인 인구는 2030년엔 1181만명으로 늘어나 전체 인구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게 된다.
재정 부담 등의 문제가 있지만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를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정부는 노인층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 대상과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옳다.
2011-08-03
진보진영이 보는 ‘강남좌파’ 진보의 확대냐 중도의 다른 이름이냐
우석훈 소장자기 생활·지역 기반삼아스스로 '좌파' 선언 첫 세력
이택광 교수서구식 '정상국가' 열망해체제 확립 요구…보수주의
신진욱 교수중간계급의 정치적 주체화이를 수용할 보편적 이름 필요
강준만 교수발언권·참여욕구 강해과잉대표될 가능성 높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쓴 책 가 지난달 말 출간된 뒤 '강남좌파' 논란이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강 교수는 2006년 강남좌파를 "생각은 좌파적이지만 생활수준은 강남 사람 못지않은 이들"이라고 규정하면서 본격적인 논의의 물꼬를 튼 바 있다.
2006년과 2011년, 논란의 외관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강 교수는 최근 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강남좌파는 주로 정치 엘리트를 겨냥한 딱지로 부정적 의미가 강했던 반면,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강남에 사는 진보파를 중심으로 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긍정적인 의미의 딱지로 바뀐 게 아닌가 한다"며 "이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가 늘어나고 있는 인구사회학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강남좌파 논쟁은 보수세력이건 진보세력이건 '기득권 세력이 과연 좌파·진보가 될 수 있냐'와 같이 엘리트에 대한 비판과 언행일치 검증 등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강남 사람이라도 좌파적 가치를 지지할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강남좌파다'는 등 강남좌파를 적극 인정하거나 스스로를 강남좌파로 부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진보세력을 중심으로 이들을 일정한 경향성을 갖는 사회 세력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 강남좌파, 새로운 정치적 주체? 10월께 강남좌파를 본격 분석하는 책을 낼 계획인 우석훈 2.1연구소장은 "강남좌파는 우리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스스로 '좌파'라고 선언한 첫 세력"이라며 "자기 생활과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새로운 좌파 세력의 출현"이라고 봤다. 강남좌파에서 '강남'은 사회 부유층이라는 규정에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문화적으로 세련되고 부드럽다'는 지역과 생활공간의 특성과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 역시 "강남좌파는 현재 '생활정치'를 바탕으로 삼아 두드러진 활동을 벌이고, 실제로도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의 유일한 세력"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긍정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강남좌파의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의 의미다. 기존 정당체제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독서모임'이나 '커피모임' 등을 조직해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는 등 기존 정치세력들과 다른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기존 정당 및 기성 정치체제에 대한 혐오와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이 있다고 본다. 촛불집회 때 전통적 지지층이 아닌 새로운 당원들을 많이 받아들인 진보신당은 실제 강남 쪽 당원 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의미 부여가 아니더라도, 강남좌파는 기본적으로 '진보의 외연 확대'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강남좌파라 하면 지식인층이나 중산층에 속한 이들이 한국 사회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반정부적 형태로 표현하는 것 아니겠냐"며 "진보진영이 풍부하게 확장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진보의 외연 확대냐, 왜곡된 대표 효과냐 반면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더라도, 이를 '강남좌파'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강남좌파의 정체성을 두고 교육받은 중간계층, 미국식 자유주의, 유럽식 중도파로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이택광 교수도 "강남좌파가 요구하는 내용들을 보면, 대체로 민주주의·복지국가 등 서구식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라며 "체제를 넘어선 변화가 아니라 체제의 정상적인 확립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라고 본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결국 '폭넓은 중간계급'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주체로 새로 등장한 현상인데, '강남좌파'라는 말은 이 현상을 폭넓게 수용하기엔 너무 협소하다"고 비판했다. 또 강남좌파란 말 자체가 "진보적인 정치성향과 사상을 이념적·문화적 성향으로만 고정시켜, 먹고살기 힘든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의도로 보수세력이 구사하는 부정적인 표현이란 점도 지적했다. 때문에 새로운 정치 세력에는 '강남좌파'처럼 주류에서 멀어질 수 있는 급진적인 이름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누구나 받아들이기 쉬운 새 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는 '보수 아니면 진보'라는 단순한 이분법 때문에, 강남좌파의 모호하고 분열적인 성격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채 '외연 확대'라며 진보를 부풀리거나 혹은 '가짜 좌파'라며 진보를 협소하게 만드는 현상을 비판한다. 이렇게 왜곡된 대표 효과를 해소하려면 '중도세력'의 재발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준만 교수는 "강남좌파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들의 정치혐오, 정치저주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취지로 책을 냈다"며 "진보를 이야기하면서도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 있는 진보'는, 집권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적에 대한 증오'보다 소통을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리무진 좌파의 발언권이 세서 '좌클릭'이 어려운 미국 민주당의 사례를 들어, "사회적 지위에 따른 발언권이 강하고 참여욕구가 강한 강남좌파가 과잉대표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정동칼럼]한나라당의 ‘반복지’ 전쟁
경향신문 :
[정동칼럼]한나라당의 '반복지' 전쟁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032106215&code=990308
[야! 한국사회] 오세훈과 106조원 / 선대인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면 의무급식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2011년 서울시 예산의 약 0.35%에 불과한 의무급식 예산 700억원이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어서 반대한다면 그는 서울시 다른 예산도 알뜰히 쓰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오세훈 시장이 임기 5년 동안 쓴 예산은 약 106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오 시장은 이 돈의 상당 부분을 서울시 외관 치장 사업에 썼다. 오 시장이 당선 직후부터 추진해온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사업이 대표적이다. 완공 시기를 앞당긴다는 명목으로 설계비를 거푸 올려줘 애초 79억원 정도로 잡혔던 설계비는 155억원을 넘겼다. 이런 식으로 애초 2274억원으로 잡혔던 사업비는 두 배가량인 4200억원까지 늘었다. 이 건물 홍보관을 짓는 데만 30억원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디자인 인력과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은 쥐꼬리만해 디자인 인력들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동대문 의류상가들은 시들어가고 있다.
이뿐 아니다. 그는 한강르네상스 사업에는 5400억원, 남산르네상스 사업에는 1800억원, 디자인서울거리 조성 사업에 870억원, 서울 디자인올림픽에 834억원을 쓰고 있다. 이들 사업의 진행 과정에서도 낭비 요소가 적지 않았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핵심사업인 서해뱃길 사업의 사업성이 부풀려졌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민간사업자의 예측으로도 사업성이 없어 국제선 운항으로 매년 25억원의 적자가 난다고 한다.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객터미널을 만든다는 핑계로 수백억원을 들여 양화대교를 ㄷ자 형태로 만들고 있다. 이런 예산 낭비에 비하면 애물단지로 전락한 수상택시는 차라리 애교스럽다.
오 시장은 홍보에도 필사적이어서 2010년 홍보 예산은 500억원에 육박했다. 이런 혈세를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물 쓰듯 쓰고 있다. 4억원을 들여 '벌거벗은 아이'까지 등장시키며 의무급식 비판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하고, 광고예산 집행을 미끼로 거의 전 언론과 돌아가며 인터뷰를 하는 게 그 예다.
또 겉으로는 '클린 시장'을 내세우지만 건설 부패와 그로 인한 예산 낭비 근절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다. 재벌 건설업체들이 가격을 짬짜미(담합)해서 공사비를 부풀리는 턴키사업이 서울시에서 매년 1조원 넘게 발주되고 있다. 필자가 2008년 서울시 재직 때 건설업체간 짬짜미를 분쇄해 지하철 9호선 2단계 사업에서 1000억원 가까이 아낀 사실을 오 시장에게 보고했기에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그 뒤 과거로 회귀했다. 매년 아낄 수도 있는 예산 수천억원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그는 정작 돈이 필요한 곳에는 자린고비처럼 아꼈다. 서울시가 억지 변명을 하지만 서울시 수해방지 예산은 서울환경연합의 주장대로 5년 만에 10분의 1 수준으로 격감했다. 또한 올해 소방공무원 개인보호장비 보강 및 유지관리 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반 토막 났다.
이처럼 잠시만 훑어봐도 오 시장이 치적 과시를 위해 106조원을 엉뚱하게 쓴 흔적은 역력하다. 자신은 시민의 요구와 무관하게 막대한 세금을 입맛대로 쓰고 현 정부가 400조원의 공공부채를 쌓아올린 눈앞의 사실은 외면하면서도 의무급식 예산 700억원 때문에 나라가 거덜날 것처럼 혹세무민하는 시장은 반드시 시민들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사욕을 위해 제도를 악용해 관제 주민투표를 밀어붙이는 오 시장의 세금 흥청망청쇼에 대한 심판이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세금혁명당은 106조원을 어떻게 썼는지 대중적으로 검증하고, 오 시장 주민소환운동도 불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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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칼럼] 나랏돈으로 개인 정치 하지 말라
일본 자민당 의원 3명이 김포공항에 도착해 농성하던 시간, 서울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발의를 공표했다. 신도 요시타카 외 2명(이하 신도 외 2인)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며 소란을 떨 때부터 겹쳤던 게 이들과 오세훈 서울시장이었지만,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로웠다.
겹쳐 보인 이유는 하는 짓이 정치적 쇼라는 점 말고도, 두 나라의 외눈박이 우익들이 열렬히 환영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양쪽 모두 흑안(혹은 철면피)이었다. 신도 외 2인은 서울이 100년 빈도의 폭우로 재난을 당한 상황에서, 9시간이나 농성하며, 우리 국민을 농락했다. 적어도 후쿠오카 사태 때 한국민이 보낸 우정을 생각했다면, 자제할 일이었다. 오 시장 역시 재난으로 난리 북새통인데도 오로지 대권을 향한 제 정치일정 관리에 전념했다.
사실 울릉도 방문 쇼는 얼치기였다. 관객도 별로 없었다. 문제는 한국 정부였다. 신도 외 2인의 서투른 혹은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특임장관이 나서서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바람에 판이 국제적으로 커졌다. 얼치기 쇼는 흥행 대박의 쇼가 되어버렸다.
이들이 애국심에 불타 그런 실수를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나치게 촌스럽고 돌출적이어서 그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재오 장관의 경우 의혹은 금방 해소됐다. 그가 독도에서 초병 복장을 한 채 찍은 사진을 전국으로 날리면서 '나 꼼수!'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의 경우는 아리송하긴 하다. 다만 일본과의 독도 문제에 대해 그렇게 유화적이었던 그가 그렇게 완강한 태도로 돌변한 것 자체가 미심쩍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2008년 후쿠다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일본의 영유권을 인정했다는 일본 보도를 기억한다. 그래서 이런 인식을 불식하려던 터에 이번에 한 방 날렸다고 보는 이도 있다. 그게 맞다면 꼼수 쓰려다 호구에 머리를 디민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독도 꼼수는 주민투표 꼼수에 비하면 약과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밥 한 끼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 포퓰리즘과의 전쟁이라고 호언한다. 그러면 정부 여당이 추진해온 무상보육은 무엇인가. 거기에 대해선 왜 침묵하는 걸까. 재벌·족벌언론의 찬사 속에 기고만장하는 모습도 가관이다. 한나라당이 거듭 말렸지만 그의 돌진을 막지 못했다. 홍준표 대표가 중앙당 차원의 공식 지원 결의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그 역시 뒤로는 야당과 타협을 거듭 재촉했다.
밑져봐야 본전이란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다. 신도 외 2인이 판을 벌이는 데는 비행기 삯이라도 들었다. 그러나 오 시장은 나랏돈 182억원으로 독상을 차렸다. 그는 이미 박근혜 독점 무대인 보수세력 안에서 대항마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니 신도 외 2인이 공짜 비빔밥 먹고, 김까지 사들고 거들먹거리며 귀국한 것처럼, 그 역시 '포퓰리즘이 나라 망친다'고 옹알이하듯이 떠벌리기만 하면 된다. 땅 짚고 헤엄치기다. 지난 2007년, 예산 20조원인 서울시가 애들 급식 지원비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호언했다는 오 시장이다. 그도 잘 알겠지만, 무상복지의 테이프를 끊은 건 바로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이다. 2007년 대선 때 이 후보는 무상보육 공약을 제시했고, 한나라당은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세웠다. 지난 1월14일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보육은 이미 무상보육에 가까이 왔다'고 선언했다.
사실 무상급식 재원은 무상보육의 절반도 안 된다. 0~5살 소득 하위 70%에게만 한다 해도 최소 4조원이 필요한 데 반해, 무상급식은 고교생까지 확대해도 2조원을 밑돈다. 그걸 두고 그 주변에선 무상급식에 수십조원이 든다느니 나라 망친다느니 떠든다. 풍차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거인이고, 양떼는 교전중인 적들이라며 좌충우돌하고, 포도주 통과 격투를 벌이는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꿈도 이상도 뭉개버리는 그런 인간과는 다르다. 그의 묘비명은 꼼수 신동 오 시장에게 좋은 약이 될 것 같다. "여기 광인으로 살다가 제정신으로 죽은 이여." 오 시장에겐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 논설위원 chankb@hani.co.kr
[편집국에서] 우리 안의 ‘다케시마’ / 백기철
일본 야당 의원들의 한국행으로 촉발된 '독도 파동'은 대체로 진부한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다. 몇몇 정치인의 돌출행동, 이를 둘러싼 한-일 대립, 언론의 확대재생산, 그리고 또다른 강경대응이라는 종전의 악순환 구조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에는 일본 의원들이 '적진'인 한국으로 뛰어든 점이 색다를 뿐이다.
일본의 영토문제 이슈화는 민주당 정권 들어서도 그 기세가 꺾이질 않고 있다. 틈만 나면 '독도 해코지'에 열중하는 모양새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중국에 역전당하고 한국이 쫓아오는 탓일까. 지도자다운 지도자, 큰 리더십을 찾기 어려운 초라한 일본의 현실을 보는 듯해 안타깝다.
이번 소동은 사실 한국 정치권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들의 방한은 지난 5월 한국 의원 3명이 일본과 영토분쟁 중인 러시아령 쿠릴열도를 찾아 러시아 손을 들어준 데 대한 일종의 '보복'이었다. 야당 의원들이 러시아 땅까지 찾아가 대한인의 기개를 높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한번 낸 것치고는 '후과'가 크다.
이재오 특임장관의 경우는 할 말을 잃게 한다. 일본 의원들의 방한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한 일등공신이 바로 그다. 독도에서 초병 근무를 하는 퍼포먼스는 선거용으론 압권이었다. 일본인들이 이를 보고 우리 정치 수준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낯이 다 뜨겁다. 품격과 절제를 보여야 할 일국의 장관으로는 낙제점이다.
언젠가 집에서 아이와 함께 일본과 다른 나라가 맞붙은 운동경기를 본 적이 있다. 어디를 응원하느냐고 묻자 아이는 주저없이 일본이 졌으면 좋겠다, 일본은 싫다고 했다.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내심 놀랐다. 우리 학교와 사회가 순진한 아이들에게까지 반일감정을 체계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이 독도 문제 등에 비합리적으로 몰두하듯, 우리도 일본에 대해 어딘가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강제병합 이후 100년 세월이 흘렀지만, 일제가 우리에게 저지른 민족 말살의 죄과는 씻을 길이 없다. 한-일 악순환의 뿌리는 일본 우익의 고질적인 침략주의 근성이다. 신도 요시타카 의원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날 아침 "울릉도 오징어가 맛있다고 들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걸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독도가 일본 땅이듯, 울릉도 오징어도 자기네들 것이란 말로 들렸다.
가해자가 정신 못 차리고 있는데 피해자의 관용이나 합리적 접근을 얘기하는 것이 섣부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일의 길은 우리가 더 넓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끝모를 피해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과거의 한국이 이젠 아니지 않은가. 베트남이 나라를 온통 짓밟은 미국과 한국에 아무런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끌어안는 것을 보며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중국과의 국경분쟁 때는 일전을 불사해 사실상 중국을 무릎 꿇렸다. 관용이든 분노든 중심이 제대로 잡혀 있어야 한다. 국제외교에선 때로 강수가 필요하지만, 강수가 하수인 경우도 많다. 보초를 서고 독도에서 회의를 하는 것은 외견상 그럴듯할 뿐 제대로 된 강수도 아니다.
민족주의가 진보적이던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민족해방운동의 전통 속에서 반일은 진보요 친일은 보수이던 시대가 있었다. 요즘은 뒤죽박죽이어서 무엇이 진보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숙명적인 라이벌일 수밖에 없다. 대결과 반목, 비난의 길은 쉽지만 일본과 함께 손잡고 서로 역지사지하며 나아가는 길은 훨씬 어렵고 험난하다.
[아침 햇발] 야권통합,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김이택
야권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논의 테이블은 많으나 가닥이 잡히는 건 없다. 야당판에 세 부류의 목소리가 있다. 대통합을 하지 않으면 총선·대선에서 진다는 쪽, 굳이 합칠 필요 없이 '연대'만 하면 된다는 쪽, 통합이고 연대고 아무 관심 없는 쪽이다.
'진보통합' 협상중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연대'에 무게를 싣는다. 두 당 모두 대체로 내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보수-자유주의-진보 정당의 3자 구도를 형성하는 게 1차 목표다. 이를 위해 두 당이 합치자는 게 대세지만 국민참여당 참가 여부 등 몇 가지 쟁점이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다.
민주당은 일단 '대통합'을 주장한다. 그러나 두 당이 거들떠보지도 않자 국민참여당 등과의 선도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쨌든 선거에서 '연대'는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이 대세다. 하지만 "굳이 연대 안 해도 문제없다"는 무관심파도 상당히 숨어 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논의는 시한을 코앞에 두고도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 앞에 공개약속한 진보통합도 해내지 못하면 "역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비아냥 속에 양쪽 모두 내홍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극심한 양극화로 대중의 불만이 최고조로 치닫는 지금이 '노동자·농민 등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진보정당에는 대약진의 호기다. 이런 때일수록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과감하게 '대중성'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괜찮은 인사들이 민주당보다 진보정당을 먼저 찾도록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 합의문'에 동의하는 누구든 받아들이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만일 제대로 된 '비민주 온건진보당'이라도 뜨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정치'와 '운동' 논리를 갈라내는 결단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 가지 덧붙이면 정책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과거 전매특허였던 무상복지를, 민주당 거쳐 이제 한나라당에서까지 들고나오기 시작했다. 불판을 다시 갈 때가 됐다.
민주당 한쪽에서 "단일화로 대폭 양보하는 것보다 안 하고 각 당이 따로 뛰는 게 우리한텐 더 남는 장사"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착각도 유분수다. 민주당 그리 매력적인 당 아니다. 1년여 전만 해도 지지도가 한나라당에 더블스코어 차로 지던 탓에, 조금만 올라도 엄청 좋아한다. 하지만 당 지지도고 대선 후보 지지도고 한 번도 한나라당에 제대로 이겨보지 못했다.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호조건에서도 그 정도밖에 지지를 얻지 못했으면 내부에 문제가 있는 거다.
한나라당에서 박근혜가 나서면 총선도 녹록지 않다. 당내에서 유력 대선 후보 하나 키우지 못했고, 면면을 보면 한나라당에 더 어울리는 의원들이 수두룩하다. 물갈이도 한나라당보다 더 해야 한다. 혹시 시민사회 중심으로 '문재인당'이라도 띄운다면 훅 갈 수 있다. 이인영 혼자 외치는 '대통합' 주장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당내에서부터 진지하고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원탁회의에도 당부하고 싶다. 우선 백낙청 교수가 제안한 '2013년 체제'를 위한 정책을 다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총선·대선용이지만 장기적으로 진보진영 싱크탱크의 모태가 될 수도 있다. 또 하나, 대통합이 불발되면 시민세력이 민주당에 합류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것보다는 진보통합 성공을 전제로 진보정당 쪽에 힘을 실어주는 건 어떨지. 힘이 한쪽으로 기울면 대통합도 연대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민주당에도 그게 더 자극이 될 수 있다. 나는 "민주당의 선거환경이 너무 좋기 때문에 총선 야권연대는 훨씬 어려울 것"이라는 유시민의 예측이 맞다고 본다. rikim@hani.co.kr
[세상 읽기] 성공의 재해석 / 윤정숙
며칠 전 안철수 교수가 출연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높은 시청률은 화제였다. 청소년의 최고 멘토, 대학생 롤모델 부동의 1위인 그의 '어록'은 블로그를 통해 회자된다. 강의 요청만 한해 2000건이 훨씬 넘는 인기 절정의 강사이다. '안철수 현상'이다.
그가 성취한 탁월한 경력과 성공은 남다른 것이니, 성공 비결에 대한 관심과 선망은 누구에게나 당연하다. 그것뿐일까. 어쩜, 사람들은 그의 성공보다 성공에 대한 해석에 더 주목한 건 아닐까. "성공을 100% 개인화하는 것은 문제이다. 성공의 절반은 개인의 노력이고, 절반은 사회가 준 기회와 여건이다. 사회 자산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가 성공한 것이다"라고. 성공에 관한 다른 상식, 성공한 이에게 '함께 사는 길'로 걸어가라고 독려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절반은 사회의 덕이라는 '성공의 재해석'은 개인 능력과 노력에만 주목했던 낡고 오래된 성공신화의 정설을 바꾸라 재촉한다. 따지고 보면 혼자 힘으로 재산을 모은다는 '자수성가'라는 말도 그리 딱 맞는 말은 아닌 듯하다.
지난해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억만장자들에게 재산의 절반 기부를 권유하며 '기부약속운동'(기빙 플레지)을 시작했다. 일년간 70여명이 약속한 기부액은 우리 정부 예산의 절반을 훨씬 넘는다. 그러나 놀랄 것은 따로 있다. 공개된 개인 서약서에서 밝힌 그들의 성공관이다. 읽힐 것을 예상한 글이라 쳐도 신선했다. 부는 축복이자 선물이며, 사회에 돌려주는 건 기쁜 의무요 특권이라 한다. 빌 게이츠는 복을 받았으니 이를 잘 써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베이 벤처사업을 떠나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재단을 세운 제프 스콜은 좋은 교육과 선택이 가능한 나라에서 성장한 것을 성공의 큰 이유로 꼽는다. 페이스북을 공동창업한 마크 저커버그와 더스틴 모스코비츠도 절반 기부를 약속했다. 27살 '어린 부자' 모스코비츠의 "나는 상상도 못할 큰돈을 벌었다. 이런 보상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대목은 가장 극적인 선언이었다.
30대에 동료들과 아이티 기업을 창립해 성공한 권혁일씨. "내가 가진 자산을 의미있게 쓰고 싶다"며 청소년의 경제자립 사업에 큰 기부를 했다. 스펙 쌓기는 고사하고 학교와 집 주변을 맴돌아야 했던 여섯명의 아이들은 몇달 전 마포의 작은 도시락가게의 공동사장이 되었다. 그들 스스로 '소풍가는 고양이'라는 가게 이름도 지었고, 앞치마 두르고 만든 '청년활력도시락'을 배달한다. 그는 이 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하며 경험과 열의로 아이들과 함께한다. 곧 또다른 청소년 창업 그룹이 생긴다. 정답도 선례도 없지만, 시행착오 속에서도 이 실험은 조용히 진화해 간다.
새로운 자선의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전문지식과 혁신적 기업운영으로 일찍 부자가 된 그들은 부의 대물림을 미덕으로 삼던 부모세대와 다르다. 성공의 사회적 책임에 당연 공감하며, 노년기 유산 기부보다 생전 기부에 더 관심을 둔다. 청년시절 사회의 격변을 지켜본 그들에게 '함께 사는' 것의 가치는 낯설지 않다. 여전히 더 큰 성취를 향해 왕성하게 일하지만, 한편 세상에 의미있는 일도 구상한다. 관심은 시혜복지를 넘어 사회적 기업, 이주자, 청년고용과 풀뿌리 단체로 넓혀진다. 아직은 극소수이고, 시작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촉진할 공익투자자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벤처기부' 1세대가 될 그들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커질 때 기부문화의 생태계도 바뀔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성공이 재해석될 때 우리에게 다가올 변화는 참 많다.
2011-08-01
[야! 한국사회] 두어 가지 함정 / 김규항
'어떻게 하면 아이와 잘 소통할 수 있는가?' 부모들(이라고 적지만 엄마들. 한국의 아빠들은 교육의 실제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을 대상으로 한 교육 강연을 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다. 내 교육 강연이라는 게 '성적 올리기 비법' 따위와는 동떨어진, 아이를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교육 현실을 넘어서는 일과 관련한 이야기들이라 청중들도 교육 문제에 대해 시류를 거스르는 고민을 하는 부모들이 많다. 질문은 대개 내 글에 적힌 아이와의 소통 이야기를 근거로 한다. 물론 사실을 가감 없이 적은 것이지만 나 역시 아이와의 소통에서 실수할 때가 있고 '망설이지 않고 사과하기'를 나름의 보완책으로 삼는 처지다. 어쨌거나 그간의 내 체험과 이런저런 사례들을 보며 느낀 걸 적어본다. 이른바 '민주적인 부모가 아이와 소통에서 빠지기 쉬운 두어 가지 함정'.
첫째 함정은 이른바 민주주의의 절차와 내용의 괴리다. 민주적인 부모들은 당연히 아이와 소통도 민주적으로 하려 애쓰는 편이다. 문제는 이 민주적인 소통이 절차만 민주적인 경우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바람직한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는 그 결론으로 대화를 몰고 가는 것이다. 소통의 권위와 논리적 능력에서 부모는 아이를 압도하기 때문에 전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아니, 부러 제어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그렇게 가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게 좀더 정확할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우리 사회, 즉 민주주의의 절차는 회복했으되 여전히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빼앗기고 억압받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것과 닮은 데가 있다.
둘째 함정은 아이가 판단하고 선택할 만한 정보나 식견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의 의견을 무작정 존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은 아이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제 교양이나 사회의식을 아이에게 대상화하는 자기애적 행동인데 생각보다 해악이 크다. 이를테면 내 친구 녀석은 교육 현실에 관한 신문 칼럼에 엄청 감흥을 받은 어느 날 밤 제 초등학교 오학년 아들을 앉혀놓고는 '피시방 가는 시간 자율적으로 할 수 있지?'라고 물었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라면 또 모를까 남자아이가 '할 수 있다'고 하지 '하기 어렵다' 하겠는가. '아이가 이상해졌어!' 석 달 후 녀석의 집에선 소란이 벌어졌다. 석 달 동안 피시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센 게임만 해댄 아이가 결국 사고와 인지 능력의 위기를 맞았던 것.
두 함정은 언뜻 서로 모순되어 보인다. 첫째를 피하려면 둘째로 빠질 것 같고 둘째를 피하자니 첫째로 흐를 것 같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향하거나 시도하되 정작 민주주의의 주인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결국 둘은 하나다. 민주적인 부모 노릇은 권위적인 부모 노릇보다 훨씬 어렵다. 권위적인 부모를 둔 아이들은 (어버이연합 수준의 패악 질을 일삼는 경우만 아니라면) 자연스레 부모와의 차이에 적응하게 되지만, 민주적인 부모를 둔 아이들은 워낙 가르치고 설파한 게 있어놔서 '남들 앞에선 훌륭한 체하면서 실제론' 하며 크게 상처받기 십상이다. 상처는 진보적인 어른들 일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아이의 사회의식 형성에 장애를 일으킨다.
두 번의 민주정권이 기대와는 달리 인민들을 배제하는 정치로 일관하여 결국 인민들로 하여금 이명박 정권을 불러들이게 만든 상황은 민주적인 부모들이 아이들 앞에 직면한 상황이기도 한 셈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사회적 소통이든 아이와의 소통이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존경이 살아 숨쉬려면 민주주의의 주인이 누구인가가 늘 되새겨져야 한다. 다짐의 마음으로 모질게 말하자면, 주인이 빠진 민주주의는 좀더 교활한 방식의 독재일 뿐이다. 지금 여기, 민주주의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겨레 프리즘] 힉스 사냥의 풍경화, 세밀화 / 오철우
우리는 그것을 '신의 입자'라는 멋진 별명으로 불러주었다. 질량을 지닌 우주 만물의 입자들, 그러니까 쿼크·전자·중성미자 같은 것들에 질량이란 걸 부여하는 신묘한 입자이니, 그런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었다. 엄청난 고에너지가 지배하던 우주 태초에 어떻게 질량의 탄생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데에도 등장하는 '힉스' 입자다. 힉스가 지구촌 뉴스의 관심사에 들어온 건 아마도 대형 가속기 덕분이었다. 스위스 국경 지대의 27㎞ 길이 지하터널에 건설돼 지상 최대의 기계로도 불리는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에서 힉스를 발견하려는 국제 공동실험이 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힉스를 잠깐 더 소개하자. 힉스는 아직 실체가 확인된 입자는 아니다. 질량도 모른다. 그래도 지위는 대단하다. 우주 만물의 원리를 가장 정교하게 설명하는 지금 과학이 물리학의 표준모형인데, 표준모형 전체를 매끄럽게 다듬는 데 힉스는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없다면 표준모형은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다. 1960년대 힉스 가설이 제시된 이래, 이제 반세기 만에 초대형 가속기에 수천명 연구자가 몰려 그 실체를 찾는 중이다.
최근 힉스 검출 실험의 중간 결과를 취재하며 조금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지난해 시작된 힉스 실험 전에 힉스는 그저 '신의 입자' '우주 수수께끼를 풀 단서' 정도로 불렸는데 실험이 진행되는 지금, 연구 현장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건 너무도 복잡한 실체가 됐다.
'발견'도 그렇다. 힉스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단박에 포착되는 입자가 아니었다. 어떤 크기의 고에너지 물리량으로, 에너지 스펙트럼에 나타날 어떤 신호로 발견된다. 힉스 개념은 또 어떤가? 여러 도움말을 얻다 보니, 고에너지에서 찰나에 존재하다 붕괴하는 힉스는 양자역학의 이론 상자에 꽁꽁 숨어 있었다. 만물의 대칭성과 자발적 대칭성 깨짐, 그걸 설명하는 게이지 이론, 게다가 힉스장…, 이론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이들한테는 그 실체를 좀체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하니, 발견은 천재 과학자 개인이 아니라 수천명 집단지성에 의해 이뤄진다. 한국인 80명이 참여한 이 실험(CMS)엔 6000명 안팎의 세계 연구자들이 몰렸다. 양성자 무리를 거의 빛 속도로 충돌시킬 때 쪼개져 튀어나오는 갖가지 소립자와 복잡한 에너지 신호를 잡아내고 가려내고 계산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이 거듭된다. 오류 확률을 0에 가깝게 줄이려면 데이터의 양을 엄청 축적해야 한다. 연구협력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멀리서 보이는 힉스 사냥의 풍경화는 단정하고 낙관적이다. 그러나 세밀화를 그리는 현장 연구는 역동적이고 복잡하다. 실험에 참여중인 손동철 교수는 "지금 데이터로는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박인규 교수는 "지금은 야구 경기의 2회 말이라 3 대 0으로 이기고 있다 해도 우승했다고 말할 수 없으니 더 많은 데이터가 모이는 9회 말의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의 디자인은 간결하지만 부품 원리는 사실 더 복잡해졌다. 현대 과학은 난해한 이론과 과정이지만 대중은 과학을 간편하게 소비한다. 대중이 난해한 과학을 다 알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과학 지식이 오해돼선 안 된다. 과학 기사를 쓸 때마다 느끼는 딜레마이지만 힉스 때문에 다시 잡념은 꼬리를 문다. 어디 힉스뿐이랴. 사태의 안과 밖엔 들리는, 들리지 않았을 목소리들이 있다. 그래도 마감을 위해 어느 순간 잡념의 꼬리를 끊고 '과감하고 무모하게' 글을 쓴다. 풍경화와 세밀화가 무척 다름이 글 어딘가에 드러나고, 또 두 그림이 될수록 화평하길 바라며. cheolwoo@hani.co.kr
“무상급식 주민투표 오세훈 스스로 무덤 판 꼴”
경향신문 :
"무상급식 주민투표 오세훈 스스로 무덤 판 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011706031&code=910100
[경향의 눈]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함정
경향신문 :
[경향의 눈]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함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012034305&code=990503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22) 경찰국가, 이제는 그만하자
경향신문 :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22) 경찰국가, 이제는 그만하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011959382&code=990000
미국 디폴트 사태 빠지면 공무원·군인 급여 끊기고 금리 상승
미국을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뜨리지 말라는 여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당의 '치킨게임'이 파국 직전까지 왔다. 가 30일 기사 제목으로 "미국인들은 워싱턴이 미쳤다고 한다"고까지 한 것은 부채 한도 증액 협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얼마나 다급하고 절망적인지 웅변해주고 있다.
미국이 경험해본 적 없는 디폴트는 다방면에서 부작용을 수반할 것이 확실하다. 우선 상당 부분을 차입금으로 해결하던 공무원·군인 급여, 사회보장 급여 등이 끊기거나 축소될 수 있다. 정부 사업 중단이야 미국인들에게 직접적 고통을 주지는 않겠지만 월급이 끊긴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미국 채권이 최고 신용도를 뜻하는 트리플 에이(AAA) 등급에서 강등을 당한다면 현재 10년 만기 채권 기준으로 2%대인 국채 수익률은 올라갈 게 뻔하다. 이는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말로, 차입 의존도가 높은 미국의 나라 살림은 더 팍팍해진다. 미국 정부는 연간 이자만 2500억달러(약 263조원)를 치르고 있다. 또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면 주택 담보대출, 자동차 할부, 학자금 대출 등 다른 쪽 금리에도 상승 압박을 주게 된다.
세계 경제에서의 미국의 위상도 도전받게 된다. 신용도 면에서 철옹성 같던 미국 국채의 '신화'가 깨진다는 것은 미국 국채나 달러의 매력을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 국채의 절반가량은 외국이 보유하고 있지만 안전성이 떨어지는 자산에 예전처럼 투자자가 몰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달러 가치는 더 떨어지고 '달러 패권'의 추락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런 크고 작은 문제들을 떠나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대목은 신용경색의 재발 가능성이다. 불안해진 경제 주체들이 채권 회수에 열을 올리고 대출을 조이는 현상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때와 같은 신용경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12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들이 지난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공동 서한을 보내 "심각한 우려"를 전달한 것도 이런 기억 때문이다.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 금융시장에도 자연스럽게 먹구름이 드리워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채권의 원금이나 이자를 제때 지급하지 못하면 신용등급을 '선택적 디폴트'로 강등하겠다고 경고한 신용평가회사 에스앤피(S&P)는 "일단 '선택적 디폴트' 상황에 빠지면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융 시스템을 계속 기능하게 만들더라도 세계 금융시장은 전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신용경색은 곧 수요 감소와 기업 활동 위축으로 이어져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2차 세계대전 후 140차례나 채무 한도를 늘린 미국 의회가 이번에는 이전투구로 날을 새우는 것에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국가신용 최상위 등급 ‘트리플A 국가’ 없어진다?
최고의 국가신용등급 '트리플A'(Aaa) 국가가 모두 사라진다?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현재 21~24개 국가신용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인 트리플A 국가는 모두 16개국.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3개국 외에 영국,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룩셈부르크, 핀란드 등 유럽 11개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2개국이다. 3대 국제신용평가회사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무디스와 피치가 다섯번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스앤피)의 경우 여섯번째 등급이다.( 참조)
국가신용등급(장기외화채권에 대한 소버린 크레디트 레이팅)은 한 나라가 채무를 이행할 '능력과 의사'가 얼마나 있는지를 등급으로 표시한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그 정부의 미래 채무상환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채무상환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로 다양한 변수들이 고려되어 등급이 결정된다. 재정건전성과 경제적 성과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 여부 및 채무상환 의지 등 계량화가 어려운 지표들도 고려 대상에 포함된다. 계량화가 가능한 지표들일지라도 지표들의 상대적인 가중치를 신용평가회사들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다, 미래의 채무상환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므로 신용등급의 결정에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외부에서 국가신용등급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국가신용등급 결정의 주요 경제변수들이 악화되면서 투자부적격 수준까지 떨어졌으나, 무디스는 지난해 4월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다섯번째(A1) 등급으로 올렸다. 무디스의 등급은 12년 만에 복귀했지만 에스앤피의 경우는 외환위기 이전보다 여전히 2등급 낮은 단계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는 세계 국가신용등급의 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선진국과 신흥개도국의 국가신용등급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과 충격의 여파가 직접적으로 나타난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급격히 하향조정되는 반면 일부 아시아와 중남미 신흥개도국의 등급은 상향조정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 중 세계 국가신용등급 변동을 살펴보면 의외로 상향조정 건수가 하향조정 건수보다 많았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쏠림현상이 뚜렷했다. 상향조정된 18개 국가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양호한 재정건전성을 바탕으로 금융위기의 충격을 벗어난 아시아 및 중남미 신흥개도국들이었다. 반면에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키프로스 등 10개 선진국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었다.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 주요 선진국은 아직 등급이 조정되지는 않았지만 '부정적 관찰대상(Watch)'이 부여되었다. 선진경제의 3대 축인 미국-일본-유럽이 국가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높은 불안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경우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키프로스 신용등급이 크게 하향조정된 가운데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도 재정악화와 성장률 저하뿐 아니라 애초 예상을 뛰어넘는 지진과 원전 피해 등으로 지난 2분기 3대 신용평가사 모두 신용전망을 하향조정했다. 미국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부채한도 증액 합의에 성공하더라도 장기적 재정적자 감축 계획이 마련되지 못할 경우 중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이 트리플A 국가에서 제외될 위험에 처해 있다.
미국이 트리플A 국가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현시점에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국제경제사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규모와 기축통화국이라는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이점을 바탕으로 수십년간 세계 국가신용등급의 표준으로 군림해 왔다. 이런 미국의 위상이 허물어지는 것을 국가신용등급의 하락이 웅변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세계 국가신용등급의 표준인 미국의 등급 하락은 현재 트리플A 국가들의 연쇄 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축통화국인 미국보다 채무상환능력이 우월한 국가가 존재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국가신용등급은 '해당 경제 내에서 외화표시 채권 발행에 대해 어떤 경제주체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신용등급'을 의미한다. 개별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신용평가도 해당 국가의 신용등급을 토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우량기업도 결국엔 좋은 신용평가를 받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신용등급의 하락은 국가의 신인도 하락뿐 아니라 민간의 국외 차입비용 증가와 투자여건 악화로 이어진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몰락과 중국의 부상을 이야기해 왔던 일부 전문가들의 전망이 현실화할 시점이 멀지 않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우리나라도 다방면의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송태정/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
단식 16일째 노·심 “한진중, 대통령이 나서야”
"어제 새벽 폭우에 천막이 무너졌는데, 더 강하고 튼튼하게 다시 쳤다."
노회찬·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은 한진중공업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이렇게 다졌다. 28일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단식농성 16일째다. 부쩍 수척해 보였다.
두 사람은 이날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한진중 문제는 개별 노사 갈등이 아닌 '전 사회적·국가적 사안'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요구했다. 야4당의 노동특위 구성도 제안했다.
노회찬 상임고문은 전날 "김진숙을 크레인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한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을 '망언'이라고 비판하며, 1979년 '와이에이치(YH) 사건'을 언급했다. 회사 쪽의 부당한 폐업공고에 반대해 당시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던 가발제조업체 와이에이치무역 여성노동자들을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여성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다. 노 상임고문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올라가 있는 85호 크레인에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진압한다면, 와이에이치를 강제진압하면서 정권의 몰락을 자초했던 유신정권의 말로를 이 정부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잘못된 정리해고를 철회해야 사태가 해결된다"며 "청와대가 나서면 24시간 이내에 해결될 것이고, 이를 촉구하기 위한 단식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심상정 상임고문도 "김무성 의원의 발언은 섬뜩하기까지 하다"며 "김진숙과 희망버스에 대해 강제진압 시도를 한다면, 전 국민이 청와대를 향한 '절망버스'에 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민주당을 향해서도 한진중 문제에 대한 당론을 정하고 더 적극 나서라고 요구했다. 심상정 상임고문은 특히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균형 있는 투쟁론'에 대해 "소극적이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심 상임고문은 "85호 크레인은 극도의 불균형 상태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를 웅변하고 있고, 이를 균형 있게 만들려면 사회적 약자에게 확실한 정치적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2011-07-31
[고종석 칼럼] 전향(轉向)
지난달 초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얼마 앞둔 시점에 한 보수논객은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대권보다는 차라리 당권을 노리라고 조언하며, 그에게는 전향(轉向)의 이미지를 씻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지도위원과 민중당 노동위원장 등을 지낸 김 지사의 이력을 두고 한 말이리라.
'전향'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방향을 바꿈'이다. 그러나 실제 언어생활에서 이 한국어 단어가 그렇게 넓은 뜻으로 쓰이진 않는다. 예컨대 한겨레신문사에서 효창공원 쪽으로 산책을 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공덕동 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향'이 아니다. 취미를 꽃꽂이에서 소목(小木) 일로 바꾸는 것도 '전향'이 아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젊은 시절 펼쳤던 '말의 그림(寫像)론'을 만년에 폐기하고 이와 상반된 '말의 쓰임(用)론'을 주장했지만,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이 '전향'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개신교도 아무개가 제 종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인다거나 무신론자 아무개가 깊은 성찰 끝에 가톨릭신자가 됐다고 해서 그가 '전향'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 경우에 우리는 '개종'(改宗)이나 '회심'(回心)이라는 말을 쓴다.
한국어 '전향'은 오로지 정치와 관련해서만 쓰인다. 이것은 영어 conversion이 종교를 비롯한 거의 모든 맥락의 '방향 바꿈'을 뜻하는 것과도 다르고, 한국어 '전향'의 원판임이 분명한 일본어 '덴코'(轉向)가 더러 정치 영역 바깥에서 쓰이는 것과도 다르다. 한국어 '전향'은 오직 정치사상을 바꿀 경우에만 쓰고, 일본어 '덴코'와 마찬가지로 좌익 사상을 버렸을 때 쓴다. 논리적으로는 우익에서 좌익으로 전향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실제 쓰임에서 '전향'은 대개 좌익에서 우익으로 변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좌익 테두리 안에서의 변심에 대해서는 어떨까? 예컨대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의회주의 좌파가 됐을 때, '전향'이라는 말을 쓸까?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금 한국 진보정당들의 연령적 상층부에는 한때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포함돼 있지만, 우리는 이들이 '전향'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어 '전향'은 모든 부류 좌익 사상과의 완전한 결별을 뜻하는 것 같다. 그렇게 된 사정은 '전향'이라는 말의 원판인 일본어 '덴코'가 신문지면에 흩날렸던 천황제 파시즘 시기나, 이 말을 특정한 맥락 속에 가두었던 해방 뒤 반공독재체제에 그 연원이 있을 것이다. 1980년대의 소위 '주사파' 일부가 새 세기 들어 '뉴라이트'라는 반동적 흐름을 만들었을 때, 이것은 분명히 '전향'이었다. 비록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과연 좌익 이념인지는 미심쩍지만. 김문수씨의 전향도, 그가 한때 혁명적 사회주의자였고 지금은 좌익 사상을 완전히 버렸다는 점에서, 한국어 '전향'에 딱 들어맞는다.
한국어 '전향'에 해당하는 집단적 흐름을 외국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대뜸 떠오르는 것이 학창 시절의 극좌 노선을 버리고 '마르크스의 죽음'을 선언하며 우경화한 프랑스 '신철학자들'(Nouveaux philosophes)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일부가 사회당 지지자로 남았다는 점에서, 이 극적 장면이 한국어 '전향'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한국어 '전향'을 곧이곧대로 실천한 사람은 앙드레 말로다. 그는 젊은 시절 지녔던 좌익적 신념을 1939년 독소(獨蘇)불가침조약 이후 말끔히 씻어내고 드골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신철학자들을 한국의 뉴라이트와 포갤 수 없듯, 앙드레 말로 역시 김문수씨와 포갤 수 없다. 그것은 박정희와 드골을 포갤 수 없기 때문이다. 드골은 권위주의적 인물이었지만, 민주주의의 파괴자는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그야말로 우익답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끌었다.
'김문수의 전향'이라는 말에서 박정희를 떠올린 것은 최근 김 지사의 낯뜨거운 박정희 찬양 탓이다. 좌익 사상을 버리면 우익 독재의 지지자가 될 수밖에 없는가? 좌익에서 민주주의적 우익으로의 전향은 불가능한가? 천황제 파시즘에서 공산주의로, 공산주의에서 종속 파시즘으로 옮아갔다는 점에서 박정희야말로 전향 인생이었다. '전향'이라는 말이 씁쓸함을 남기는 이유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