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31

[고종석 칼럼] 전향(轉向)

지난달 초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얼마 앞둔 시점에 한 보수논객은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대권보다는 차라리 당권을 노리라고 조언하며, 그에게는 전향(轉向)의 이미지를 씻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지도위원과 민중당 노동위원장 등을 지낸 김 지사의 이력을 두고 한 말이리라.

'전향'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방향을 바꿈'이다. 그러나 실제 언어생활에서 이 한국어 단어가 그렇게 넓은 뜻으로 쓰이진 않는다. 예컨대 한겨레신문사에서 효창공원 쪽으로 산책을 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공덕동 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향'이 아니다. 취미를 꽃꽂이에서 소목(小木) 일로 바꾸는 것도 '전향'이 아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젊은 시절 펼쳤던 '말의 그림(寫像)론'을 만년에 폐기하고 이와 상반된 '말의 쓰임(用)론'을 주장했지만,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이 '전향'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개신교도 아무개가 제 종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인다거나 무신론자 아무개가 깊은 성찰 끝에 가톨릭신자가 됐다고 해서 그가 '전향'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 경우에 우리는 '개종'(改宗)이나 '회심'(回心)이라는 말을 쓴다.

한국어 '전향'은 오로지 정치와 관련해서만 쓰인다. 이것은 영어 conversion이 종교를 비롯한 거의 모든 맥락의 '방향 바꿈'을 뜻하는 것과도 다르고, 한국어 '전향'의 원판임이 분명한 일본어 '덴코'(轉向)가 더러 정치 영역 바깥에서 쓰이는 것과도 다르다. 한국어 '전향'은 오직 정치사상을 바꿀 경우에만 쓰고, 일본어 '덴코'와 마찬가지로 좌익 사상을 버렸을 때 쓴다. 논리적으로는 우익에서 좌익으로 전향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실제 쓰임에서 '전향'은 대개 좌익에서 우익으로 변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좌익 테두리 안에서의 변심에 대해서는 어떨까? 예컨대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의회주의 좌파가 됐을 때, '전향'이라는 말을 쓸까?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금 한국 진보정당들의 연령적 상층부에는 한때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포함돼 있지만, 우리는 이들이 '전향'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어 '전향'은 모든 부류 좌익 사상과의 완전한 결별을 뜻하는 것 같다. 그렇게 된 사정은 '전향'이라는 말의 원판인 일본어 '덴코'가 신문지면에 흩날렸던 천황제 파시즘 시기나, 이 말을 특정한 맥락 속에 가두었던 해방 뒤 반공독재체제에 그 연원이 있을 것이다. 1980년대의 소위 '주사파' 일부가 새 세기 들어 '뉴라이트'라는 반동적 흐름을 만들었을 때, 이것은 분명히 '전향'이었다. 비록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과연 좌익 이념인지는 미심쩍지만. 김문수씨의 전향도, 그가 한때 혁명적 사회주의자였고 지금은 좌익 사상을 완전히 버렸다는 점에서, 한국어 '전향'에 딱 들어맞는다.

한국어 '전향'에 해당하는 집단적 흐름을 외국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대뜸 떠오르는 것이 학창 시절의 극좌 노선을 버리고 '마르크스의 죽음'을 선언하며 우경화한 프랑스 '신철학자들'(Nouveaux philosophes)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일부가 사회당 지지자로 남았다는 점에서, 이 극적 장면이 한국어 '전향'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한국어 '전향'을 곧이곧대로 실천한 사람은 앙드레 말로다. 그는 젊은 시절 지녔던 좌익적 신념을 1939년 독소(獨蘇)불가침조약 이후 말끔히 씻어내고 드골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신철학자들을 한국의 뉴라이트와 포갤 수 없듯, 앙드레 말로 역시 김문수씨와 포갤 수 없다. 그것은 박정희와 드골을 포갤 수 없기 때문이다. 드골은 권위주의적 인물이었지만, 민주주의의 파괴자는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그야말로 우익답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끌었다.

'김문수의 전향'이라는 말에서 박정희를 떠올린 것은 최근 김 지사의 낯뜨거운 박정희 찬양 탓이다. 좌익 사상을 버리면 우익 독재의 지지자가 될 수밖에 없는가? 좌익에서 민주주의적 우익으로의 전향은 불가능한가? 천황제 파시즘에서 공산주의로, 공산주의에서 종속 파시즘으로 옮아갔다는 점에서 박정희야말로 전향 인생이었다. '전향'이라는 말이 씁쓸함을 남기는 이유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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