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소장자기 생활·지역 기반삼아스스로 '좌파' 선언 첫 세력
이택광 교수서구식 '정상국가' 열망해체제 확립 요구…보수주의
신진욱 교수중간계급의 정치적 주체화이를 수용할 보편적 이름 필요
강준만 교수발언권·참여욕구 강해과잉대표될 가능성 높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쓴 책 가 지난달 말 출간된 뒤 '강남좌파' 논란이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강 교수는 2006년 강남좌파를 "생각은 좌파적이지만 생활수준은 강남 사람 못지않은 이들"이라고 규정하면서 본격적인 논의의 물꼬를 튼 바 있다.
2006년과 2011년, 논란의 외관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강 교수는 최근 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강남좌파는 주로 정치 엘리트를 겨냥한 딱지로 부정적 의미가 강했던 반면,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강남에 사는 진보파를 중심으로 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긍정적인 의미의 딱지로 바뀐 게 아닌가 한다"며 "이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가 늘어나고 있는 인구사회학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강남좌파 논쟁은 보수세력이건 진보세력이건 '기득권 세력이 과연 좌파·진보가 될 수 있냐'와 같이 엘리트에 대한 비판과 언행일치 검증 등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강남 사람이라도 좌파적 가치를 지지할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강남좌파다'는 등 강남좌파를 적극 인정하거나 스스로를 강남좌파로 부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진보세력을 중심으로 이들을 일정한 경향성을 갖는 사회 세력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 강남좌파, 새로운 정치적 주체? 10월께 강남좌파를 본격 분석하는 책을 낼 계획인 우석훈 2.1연구소장은 "강남좌파는 우리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스스로 '좌파'라고 선언한 첫 세력"이라며 "자기 생활과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새로운 좌파 세력의 출현"이라고 봤다. 강남좌파에서 '강남'은 사회 부유층이라는 규정에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문화적으로 세련되고 부드럽다'는 지역과 생활공간의 특성과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 역시 "강남좌파는 현재 '생활정치'를 바탕으로 삼아 두드러진 활동을 벌이고, 실제로도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의 유일한 세력"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긍정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강남좌파의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의 의미다. 기존 정당체제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독서모임'이나 '커피모임' 등을 조직해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는 등 기존 정치세력들과 다른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기존 정당 및 기성 정치체제에 대한 혐오와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이 있다고 본다. 촛불집회 때 전통적 지지층이 아닌 새로운 당원들을 많이 받아들인 진보신당은 실제 강남 쪽 당원 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의미 부여가 아니더라도, 강남좌파는 기본적으로 '진보의 외연 확대'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강남좌파라 하면 지식인층이나 중산층에 속한 이들이 한국 사회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반정부적 형태로 표현하는 것 아니겠냐"며 "진보진영이 풍부하게 확장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진보의 외연 확대냐, 왜곡된 대표 효과냐 반면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더라도, 이를 '강남좌파'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강남좌파의 정체성을 두고 교육받은 중간계층, 미국식 자유주의, 유럽식 중도파로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이택광 교수도 "강남좌파가 요구하는 내용들을 보면, 대체로 민주주의·복지국가 등 서구식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라며 "체제를 넘어선 변화가 아니라 체제의 정상적인 확립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라고 본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결국 '폭넓은 중간계급'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주체로 새로 등장한 현상인데, '강남좌파'라는 말은 이 현상을 폭넓게 수용하기엔 너무 협소하다"고 비판했다. 또 강남좌파란 말 자체가 "진보적인 정치성향과 사상을 이념적·문화적 성향으로만 고정시켜, 먹고살기 힘든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의도로 보수세력이 구사하는 부정적인 표현이란 점도 지적했다. 때문에 새로운 정치 세력에는 '강남좌파'처럼 주류에서 멀어질 수 있는 급진적인 이름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누구나 받아들이기 쉬운 새 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는 '보수 아니면 진보'라는 단순한 이분법 때문에, 강남좌파의 모호하고 분열적인 성격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채 '외연 확대'라며 진보를 부풀리거나 혹은 '가짜 좌파'라며 진보를 협소하게 만드는 현상을 비판한다. 이렇게 왜곡된 대표 효과를 해소하려면 '중도세력'의 재발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준만 교수는 "강남좌파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들의 정치혐오, 정치저주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취지로 책을 냈다"며 "진보를 이야기하면서도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 있는 진보'는, 집권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적에 대한 증오'보다 소통을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리무진 좌파의 발언권이 세서 '좌클릭'이 어려운 미국 민주당의 사례를 들어, "사회적 지위에 따른 발언권이 강하고 참여욕구가 강한 강남좌파가 과잉대표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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