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9
청문회를 앞두고 김진숙씨로부터 온 편지-정동영- 2011-08-18 03:17
2011-08-18
[신동호가 만난 사람]30일 희망단식 끝낸 심상정 “김진숙은 나의 20년 벗”- 주간경향 939호, 2011-08-23.
- [신동호가 만난 사람]30일 희망단식 끝낸 심상정 “김진숙은 나의 20년 벗”
- 2011 08/23ㅣ주간경향 939호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옆 돌담 밑이 아니라 녹색병원 응급실에 있었다. 인터뷰 장소가 하루 만에 바뀐 것은 심 고문이 당의 결정과 사회 각계 인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지난 8월 11일 단식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같은 당의 노회찬 상임고문과 함께 농성에 들어간 지 딱 30일 만이다.
세 가지 질문을 준비했다. 대답할 위치에 있고 대답해야 할 책무가 있는 정치인이다. 국민적 관심사가 된 한진중공업 사태, 난항을 겪고 있는 진보통합 문제, 그리고 위기에 빠진 시장경제를 구원할 진보적 대안과 비전. 링거를 꽂고 응급실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는 다소 무리한 요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는 쾌히 승낙했다.
놀랍게도 그는 환자복만 벗으면 한 달 단식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처녀처럼 살결이 고왔고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데 말 속에 힘이 느껴졌다. 한 가지 단면만 보고도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30일 동안 장기 단식은 처음입니까.“저는 25년간 노동운동 하면서도 단식이나 삭발 같은 건 절대 반대였어요. 자학적인 투쟁이잖아요. 그런데 정치를 하면서 세 번 했고, 길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첫 번째는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두 번째는 2009년 울산 현대미포조선 굴뚝농성 사태 때였다. 둘 다 민주노동당 의원단, 진보신당 대표단 등의 일원으로 조직의 결정에 따라 참여한 것이었다. 스스로 단식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인이 마땅한 저항 수단이 없는 약자도 아닌데, 단식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을 국민이 납득할지 의문인데요.“저희가 원내에 있었으면 정치적인 수단을 통해서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했을 거예요. 워낙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원외에 있는 데다 당도 왜소해서 (이 문제를 정치권으로 가져올) 방법이 없었어요.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거죠.”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을 잘 압니까.“그럼요. 한 22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분이 해고자 신분일 때 만나서 노동운동을 죽 함께 해왔어요. 금속노조에 있을 때는 사업장에 교육을 거의 같이 다니다시피 했어요. 늘 저랑 앞뒤로 나가서 (프로그램 진행을) 했는데, 김진숙씨 앞에서는 저는 항상 가짜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웃음) 그분의 삶 자체를 존경하니까….”
사업장의 내막과 김 위원을 잘 알고 있어서 이번 사태를 남다른 눈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김진숙씨는 관록 있는 활동가이고, 말씀을 들어서 아시겠지만 거친 분이 아니거든요. 그런 분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갔다는 것은 (한진중공업 사태가) 개별 노사관계에서는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거든요. 정치적인 문제제기로 봤기 때문에 제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심 고문이 파악하는 고공농성의 메시지는 8월 18일 국회 청문회 개최로 일단 정치권에 전달된 셈이다. 그는 2003년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시절 한진중공업과 교섭을 담당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제가 한진중공업의 교섭대표였는데, 교섭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9월 말에 임기를 마쳤습니다. 그러고 7일 만에 김주익 노조위원장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죽었어요. 김 위원장은 저랑 대의원 시절부터 오랫동안 알던 사이이고 아주 선한 분이었죠. 목매기 이틀 전까지도 전화 통화를 하면서 ‘사무처장 그만두셨지만 계속 신경을 써 달라’고 부탁했어요. 1991년 박창수 위원장이 돌아가셨을 때도 대책회의나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그 일을 담당했고요. 누구보다 한진 자본에 대해 제가 잘 압니다. 노사합의서를 작성해도 조남호 회장이 ‘노’ 해버리면 원점으로 돌아가거든요. 금속(산별노조)에서 ‘악질 사업장’ 1순위를 항상 차지했던 데였죠.”
김진숙 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크레인 아래서 그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어떻게든 이 싸움을 받아 안아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가 뭔가를 분명히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년 지방선거 이후 복지 화두가 전면에 제기된 것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 달라지고 분명해졌다는 것이죠. 변화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요구의 중심에는 뭐가 있을까요. 바로 노동문제라는 게 제가 갖고 있는 평소 생각이었어요. 제가 17대 국회에 있을 때 정치권에서 소통이 안 됐던 점은 노동문제를 아주 주변적인 문제로 취급하는 거였어요. 민주노총이 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이 잘못해서 생긴 문제, 노조를 지원하는 정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 참 답답했습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이 ‘희망버스는 진보의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이 ‘노동간 재분배’ 문제에 눈을 감으면서 대중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개혁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각자 감당해야 할 몫이 매우 크고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이 책임져야 할 일, 노동조직이 스스로 혁신해야 할 일, 시민이나 국민이 시민사회에서 주력해야 할 일, 국민의 의식 변화,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맞물려야 한다고 봅니다. 노동의 모든 격차 문제가 어떻게 노동단체만의 문제입니까. 민주노총이나 대중조직이 정규직 중심의 이익집단에서 사회적 책임을 받아 안아야 될 핵심의 과제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정치에 있다고 봅니다. 정치권에서 하지 않으니까 시민이 제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가 제기해야 할 아주 중요한 불균형 과제들을 시민이 희망버스를 통해 제기하는 거예요.”
민노당과 진보신당 통합의 또 하나 걸림돌은 국민참여당이다. 심 고문은 양 당사자인 이정희 민노당 대표, 유시민 참여당 대표와도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유 대표는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이었고, 심 고문은 총여학생회장이었다. 이 대표는 심 고문이 주도해서 만든 총여학생회의 마지막 회장 출신이다.
“진보 양당의 통합문제는 진보 주체를 형성하는 과제이고, 국민참여당은 외연을 확대하는 과제입니다. 유시민 대표도 진보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의 연합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지금 순서가 뒤바뀌어서 어려움을 겪는 겁니다. 저는 먼저 진보통합에 주력하고 통합 이후에 국민참여당을 포함해서 외연 확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하자, 이렇게 제안하고 있는 중입니다.”
민주당은 통합 대상으로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는 겁니까.“검증되지 않은 정체성을 뒤섞는 것은 당장 총선에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대선에서는 별로 유익하지 않다고 봅니다.”
대통합을 주장하는 사람은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이나 정책 면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정파등록제 등을 통해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말하잖습니까.“민주당을 포함해서 정당들이 여러 진보적 의제에 다가오는 것은 사실 진보정당과의 연대 필요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민주당이 노선 변화를 했다기보다 진보정치 세력의 조력을 구하기 위해서 정책적인 좌표를 이동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한다면 진보정치 세력은 소수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국민 열망을 다 받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지역주의 정당이잖아요. 과거로 통합하는 것은 국민을 위해서도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을 보수정당으로 보는 겁니까.“많은 변화의 노력을 하고 있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국민은 정권을 주었을 때 어떤 정치를 했느냐를 가지고 그 정당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죠. 남북관계나 정치개혁의 측면에서는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보는데, 지금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개혁의 측면에서는 거리가 매우 큽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그 어느 정권보다도 재벌 영합적인 수출 위주의 개방화에 의존하는 경제를 지향했고,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이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잖습니까. 지금 경제민생 과제가 엄청나게 제기되고 있지만 민주당이 과감하게 나서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현재 발생하고 있는 민생경제 사안의 선행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한·미 FTA, 뉴타운, 양극화 등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대형마트규제법, 무상급식법, 반값등록금 문제 등 현재 제기되고 있는 모든 정책 현안들은 17대 국회 때 저희가 다 법안으로 제시했던 것인데,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반대해서 좌절됐던 거거든요.”
진보진영의 유력한 대권주자 가운데 한 분으로 꼽히는데, 내년 대권에 도전할 의향이 있습니까.“글쎄요. 나서겠다. 안 나서겠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이면 좋겠는데, 아직 진보진영 자체가 그 문제를 판단하는 데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저는 진보정치에 무한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저에게 요구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죠.”
같은 여성정치인으로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여성적인 장점을 든다면….“여성정치인이 조직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 점에서 아주 인정할 만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성으로서 어떤 정치적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하는 건 제 기억으로는 없습니다. 전형적인 ‘명예 남성형’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 대중이 느끼는 여러 희로애락과 고민, 정서, 감수성을 가지고 정책과 리더십을 발휘하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여성을 많이 봤습니다.”
야권 후보의 경우 유력하게 거론되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유시민 참여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가운데 진보적 가치를 가장 근접하게 실현할 수 있는 분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민주세력 내에서 후보 경쟁이기 때문에 노선과 정책에서의 큰 차이를 구별하기가 좀 어렵지 않겠나란 생각이 들고요. 다만 진보정치 세력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연대·협력의 의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세계 경제위기와 국내 정치의 ‘좌클릭’ 등을 보면 가히 진보의 시대가 왔다고도 할 수 있는데, 진보정당은 여전히 소수이고 비주류입니다. 진보세력에 뭔가 근본적인 한계라든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지난 10여년간 진보정치가 뿌려놓은 씨앗이 결코 적지 않다고 봅니다. 이것을 어떻게 묶어 세워서 내년 선거에서 최소한 교섭단체 이상을 확보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보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적 진보정당 노선에 충실해야 한다, 말하자면 나의 신념보다 진보정치에 의지하고자 하는 대중에게 어떻게 책임을 다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진보정치가 도약하는 데 있어서 자기혁신의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통합은 진보세력을 결집시킴과 동시에 성찰과 혁신을 이뤄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내년에 교섭단체 확보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299석 중에 20석 가지고 뭘 할 수 있냐 반문하시겠지만, 진보정당이 교섭단체가 된다는 것은 진보적 개혁에 이니셔티브를 준다는 것이고, 정치가 이제는 진보·중도·보수로 삼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향후에 보수와 진보 노선과 정책 중심으로 정당 구조가 개편되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 이후부터는 진보정치가 급성장할 수 있습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정리/이혜련 인턴기자 gerrie@naver.com>
2011-08-16
[세상 읽기] 조남호 개인의 문제일까 / 금태섭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존경받을 만한 경영자였다면 어땠을까. 정리해고를 하기 전에 자신을 비롯한 경영진의 보수를 먼저 삭감했다면. 해고 대상자를 찾아가 회사의 상황이 너무나 어려워 정리해고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형편이 나아지는 대로 반드시 일터로 돌아올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면. 김진숙이 올라간 크레인 아래 텐트를 치고서라도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고 설명을 하려는 진정성을 보였다면. 그랬다면 한진중공업 경영진이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희망버스도 없었을지 모른다.
물론 조남호씨가 보인 행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감원 계획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주주들을 대상으로 174억원에 이르는 주식배당을 하고, 조선소 크레인에서 농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자기 봉급을 50% 인상했다. 2007년도에 노사 간에 정리해고를 하지 않기로 합의서까지 썼는데, 왜 17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게 되었는지 한마디 설명도 없이 국외에서 도피성 체류를 했다. 마저 "한진중 조 회장 빨리 귀국 않고 뭘 꾸물거리는가"라는 원색적 제목의 사설로 그를 비난했다. 보수진영의 입장에서는 "무책임한 오너 경영인 한 사람이 '신속한 의사 결정과 위험을 무릅쓴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한국적 오너 경영의 옹호 논리를 산산조각으로" 만드는 상황이 못내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조남호 개인의 부도덕에 기인한 것일까. 경영자가 양심적으로 대처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노동문제는 큰 진통 없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평소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던 일부 학자들마저 주장하듯이 '기업 총수의 책임 있는 자세와 결단'이 문제의 해답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영상 필요에 따른 정리해고는 불가피한 일이고 노동유연성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들을 한다. 예외 없이 정년보장을 해야 한다고 고집하면 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해고를 당하더라도 인간적인 생활을 부정당하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럽 복지국가들이나 영미 국가들에 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임금의 격차가 여러 배에 이르러 비교가 힘들 지경이고 기타 대우에서도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정도다. 비정규직 근로자 69%의 월평균 임금이 100만원에 못 미치고 10명 중 7명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저임금 계층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 대한 구조적인 해결 노력은 외면한 채 정리해고 문제를 경영자 개인의 양심에만 맡기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없을 때 정리해고를 해서는 안 된다고만 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증인 채택을 두고 여야 간에 공방을 벌이던 국회가 결국 한진중공업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조남호씨도 증인으로 출석한다고 한다. 제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빈다. 부도덕한 경영자 한 사람의 해외도피 의혹을 추궁하는 것만으로 국회의원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이 책임 있게 행동했더라도 남는 문제, 우리 사회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제발 제3자 개입이니, 노사 자율이니 하는 케케묵은 얘기는 꺼내지 말았으면 한다.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씨나 전국에서 모여든 희망버스 탑승자들이 없었다면, 과연 국회의원들 스스로 이런 청문회를 열었겠는가.
2011-08-10
조남호 “정리해고 불가피”-김진숙 “철회해야 내려가”
"3년안 경영정상화 위해 최대한 노력…성장 발판이 마련되면 다시 모셔올것"
출국 50여일 만에 귀국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10일 부산시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호소문을 발표해 정리해고 철회 요구에 "기업과 임직원들이 다 같이 생존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일축했다.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고공농성과 '희망버스' 방문을 두고는 "불법적 압력"이라고 비난했다.
조 회장은 "법원의 결정을 무시한 채 크레인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행위는 사태 해결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는 위험하고도 불법적인 행위로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거듭 드러냈다.
그는 '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할 대책'을 묻자 "장기간 올라가 계신 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건강이 우려된다. 올라가 계신 것이 한진중공업과 협력업체를 위해 도움이 되느냐고 묻고 싶다. 내려온 뒤 한진 정상화 후에 뜻을 펼쳐도 되는 일이 아니냐. 조속히 내려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재계 압력으로 정리해고 철회를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에는 "영도조선소의 생존이 가장 시급하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경영상 구조조정에 대한 원인과 법적 정당성을 근거로 아무 책임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다시 한번 사죄드리면서 그동안 각계와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지 못한 점 또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청문회 출석은 국회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3년 이내에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 회사를 떠나야 했던 가족을 다시 모셔올 것"이라며 희망 퇴직자 자녀 2명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 학자금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영정상화와 관련해선 "영도조선소는 8만평이라는 작은 부지여서, 특수선박 건조로 특성화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필리핀 수비크조선소로 수주 물량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경쟁력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며 "영도조선소를 포기하거나 부산 영도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행적을 묻는 질문에는 "선주가 있으면 전세계 어디든 간다. 영업상 비밀이다"라고만 답했다.
부산/이수윤 기자 syy@hani.co.kr
크레인 농성 김진숙씨 전화통화
"적당히 무마하고 넘어가려 해…정리해고 철회해야 내려갈 것"
"53일만에 돌아와서 불법농성·시위탓에…경영활동 힘들다고 하는 건 국민 모독"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 선박크레인에서 217일째 농성중인 김진숙(5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10일 와의 통화에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기자회견은 정리해고 문제를 둘러싼 국민적 관심을 희석시키고 갈등을 적당히 무마하려는 것"이라며 "정리해고가 즉시 철회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노조와 구조조정 중단을 합의한 뒤 직원들을 무더기 희망퇴직시키고 정리해고를 했고, 지난 3년 동안 고의로 수주를 회피한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3년 뒤 정리해고자들을 재입사시킨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김 지도위원은 "공장을 정상화하려면 정리해고자를 먼저 복귀시켜야 한다"며 "조 회장은 적당히 넘어가려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내려갈 수 있는 실질적인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조 회장이 '외부세력이 불법 고공농성과 시위를 벌여 합법적인 경영활동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한 것을 두고는 "교섭도 제대로 하지 않고 국회 청문회를 피해서 외국으로 나갔다가 53일 만에 돌아와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되받았다. 또 '회사가 정상화된 뒤 (김 지도위원이) 자신의 주장을 펼쳐도 된다'는 조 회장의 발언에는, "회사가 정상화되면 내가 주장할 것이 없다"며 "정리해고를 철회하는 것이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조 회장이 오는 17일 국회 청문회에 나갈 뜻을 밝힌 것에는 "국회에 가서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했다.
김 지도위원은 한나라당이 "김 지도위원도 조 회장과 함께 국회 청문회에 출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일 뿐이며 청문회에는 조직의 대표가 가는 것이 맞다"고 거부 뜻을 밝혔다.
이어 "(한나라당과 회사 쪽은) 내가 내려가면 정리해고 문제가 무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정리해고 중단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2011-08-08
거울에 비친 우리 시대 작업복 청춘- 손낙구, 시사인 50호, 2008-08-02.
| 거울에 비친 우리 시대 작업복 청춘 | ||||||||||||||||||
| <소금꽃나무>·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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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한마디로 슬픔이다. ‘노예가 인간의 꿈을 품고 사는’ 노동운동의 길은 더 슬프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삶일지라도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면 사실이 아니다. 이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함께 나눌 때야 비로소 인간의 꿈을 가꿔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노라면 저자는 ‘순도 100%의 감수성’으로 이 슬픔을 빨아들여 다시 독자에게 돌려준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를 보면서 나이 든 주부가 느끼는 것보다 더 실감나게 말이다. 그래서 그냥 눈물이 난다. 노동자 인생이 너무 슬프고, 김진숙이 너무 슬프고, 노동열사들이 불쌍하고, 그들의 자식과 아내와 부모는 더 안쓰럽고, 내 인생도 너무 슬퍼진다. 김진숙은 이미 여러 해 동안 같은 내용으로 연설이나 글을 통해 늙은 노동자·간호사·교사·대학생·주부 할 것 없이 수십만명을 울려왔다. 그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또 운다. 다 아는 얘기인데도 그렇다. 슬프고 화가 난다. 고문했던 자들에게, 노동자를 탄압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자들에게, 자본의 천국이 된 이 세상에.
뒤로 갈수록 책은 어느덧 거울이 되어 독자인 나를 비춘다. 참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뒤돌아보니 우리가 떠나온 자리에 비정규직이 노예의 사슬을 대물림하고 있다. 나는 20년 동안 뭘 한 걸까. 20년 가까이 초지일관 불굴의 신념으로만 버텼겠는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지 않는 것, 그것만큼 소중한 게 또 있을까. 그리고 가신 임들 영전에서, 전교조 탈퇴자 옥이의 열패감에서, 20년 만에 복직하는 두 동료에게서, 노숙 끝에 변사체로 돌아온 동생의 죽음에서 20년을 묻어둔 ‘부채감’을 꺼내들고 자책하는 김진숙…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쉬이 넘어가지 못하는 책장을 ‘힘내시라… 김진숙’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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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1
단식 16일째 노·심 “한진중, 대통령이 나서야”
"어제 새벽 폭우에 천막이 무너졌는데, 더 강하고 튼튼하게 다시 쳤다."
노회찬·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은 한진중공업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이렇게 다졌다. 28일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단식농성 16일째다. 부쩍 수척해 보였다.
두 사람은 이날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한진중 문제는 개별 노사 갈등이 아닌 '전 사회적·국가적 사안'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요구했다. 야4당의 노동특위 구성도 제안했다.
노회찬 상임고문은 전날 "김진숙을 크레인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한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을 '망언'이라고 비판하며, 1979년 '와이에이치(YH) 사건'을 언급했다. 회사 쪽의 부당한 폐업공고에 반대해 당시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던 가발제조업체 와이에이치무역 여성노동자들을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여성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다. 노 상임고문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올라가 있는 85호 크레인에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진압한다면, 와이에이치를 강제진압하면서 정권의 몰락을 자초했던 유신정권의 말로를 이 정부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잘못된 정리해고를 철회해야 사태가 해결된다"며 "청와대가 나서면 24시간 이내에 해결될 것이고, 이를 촉구하기 위한 단식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심상정 상임고문도 "김무성 의원의 발언은 섬뜩하기까지 하다"며 "김진숙과 희망버스에 대해 강제진압 시도를 한다면, 전 국민이 청와대를 향한 '절망버스'에 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민주당을 향해서도 한진중 문제에 대한 당론을 정하고 더 적극 나서라고 요구했다. 심상정 상임고문은 특히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균형 있는 투쟁론'에 대해 "소극적이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심 상임고문은 "85호 크레인은 극도의 불균형 상태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를 웅변하고 있고, 이를 균형 있게 만들려면 사회적 약자에게 확실한 정치적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2011-07-31
[사설]3차 희망버스, 김진숙과 김무성의 시각
경향신문 :
[사설]3차 희망버스, 김진숙과 김무성의 시각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292156015&code=990101
2011-07-30
[진중권의 아이콘] 혼합현실에 살다- 씨네21, 2011-07-29.
[진중권의 아이콘] 혼합현실에 살다
씨네21, 2011-07-29.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 독설 닷컴의 고재열 기자가 언젠가 자신의 트윗 계정에 내걸었던 모토다. 당시 이 모토가 몇 사람의 심기를 거슬렀던 모양이다. 인터넷에는 금방 '트위터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반론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얼마 뒤 중동에는 이른바 'SNS 혁명'이 일어나 수십년 동안 장기집권했던 독재자들이 줄줄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물론 그 혁명을 SNS가 일으켰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SNS가 기존의 통치에 균열을 내 중동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시민과 노동자들이 이른바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6월10일의 1차 희망버스 행사는 비교적 작은 규모였지만 배우 김여진씨의 참여로 전국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의 상황은 현장에 있던 이들의 트윗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고, 그렇게 올라온 트윗을 시민들은 역시 실시간으로 리트윗하여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한진중공업 사태를 이슈의 초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7월10일에 실시된 2차 '희망버스' 프로젝트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195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부산에 도착한 1만여명의 시민들은 부산역에서 집회를 마치고 영도까지 행진을 한 뒤 조선소로 진입을 시도했다. 보수언론과 보수정치는 이 상황에 상당히 위협을 느낀 모양이다. 한나라당의 김형오 의원은 "정권의 위기가 부산에서 오고 있다"고 경고했고, 부산시와 영도구 의회는 3차 희망버스에 반대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했으며, 보수언론에서는 연일 희망버스로 인한 영도구 주민의 피해를 강조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다른 기업들과 달리 한진중공업은 조선업의 미래를 고작 필리핀의 싼 노동력에서 찾았다. 그러다보니 사실상 형해화한 영도조선소를 그저 '한국'의 기업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위해 껍데기로 유지하게 된 것이다. 영도 주민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해외 이탈이 반가울 리 없다. 지역경제의 공동화를 낳기 때문이다. 반면, 대폭 축소된 규모로나마 조선소가 빨리 정상화되는 게 낫다는 바람도 있다. 한진중공업을 비난하면서도 희망버스에도 반대하는 김형오 의원의 애매한 태도는 지역구민의 이 엇갈리는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희망버스 기획의 미디어론적 특성
희망버스의 아이디어는 송경동 시인에게서 나왔다. 삶과 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그의 문학이라면 희망버스야말로 그가 쓴 여느 작품 못지않게 '시적인 사건'이다. 흥미로운 것은 희망버스 기획의 미디어론적 특성이다. 똑같은 85호 크레인에 올랐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에게는 8년 전 김주익 지회장에게는 없었던 게 있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김주익씨가 그곳에 고립되어 철저한 고독 속에서 결국 목을 매야 했다면 김진숙씨는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바깥세상과 소통하며 대중의 지지를 끌어낼 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김여진이라는 '트친'이 있었다.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배우의 트위터를 통해 85호 크레인 위의 상황은 트위터리언들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미디어 이론가 귄터 안더스가 냉소적으로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원본만으로는 사건이 되지 못한다. 원본은 매체를 통해 복제가 될 때 비로소 사건이 된다. 그 때문에 김주익의 농성은 '사건'이 되지 못했다. 그가 목숨을 끊었을 때에야 고작 1단짜리 짤막한 기사 속에 존재할 수 있었다. 대중매체의 시대에 사건을 '사건'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복제(가령 리트윗)다.
언론의 침묵 속에서도 적어도 트위터에서는만은 김진숙의 크레인 투쟁이 뜨거운 이슈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SNS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어디까지나 가상현실에 속한다. 현실에 나오지 않는 이상 그것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SNS 속의 여론을 어떻게 현실의 물리력으로 바꾸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희망버스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떨어진 대중을 영도조선소 앞으로 결집시켜냈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버스는 온라인 SNS의 네트워크를 전통적인 오프라인의 투쟁방식으로 전화한 최초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 이론에 '재매개'(remediation)라는 개념이 있다.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전략을 차용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령 뉴미디어는 처음에는 올드 미디어의 전략을 차용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뉴미디어는 모방에서 벗어나 자기 고유의 전략을 갖게 된다. 그때쯤이면 거꾸로 올드 미디어가 외려 뉴미디어의 전략을 차용하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가령 사진이 처음에 등장했을 때, 그것은 회화의 전략을 차용했다. 하지만 사진이 자신의 전략을 갖게 되자 그때부터 회화가 외려 사진의 전략을 베끼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의 전통적 노동운동은 '희망버스'라는 아날로그 운송수단을 통해 디지털의 네트워크로 묶인 대중을 현실의 공간 속으로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전통적인 노동운동은 조직(organization)의 운동, 즉 한 작업장에서(장소의 일치) 같은 작업라인(시간의 일치)에 따라 일하는 노동자들의 조직력과 단결력을 바탕으로 한 운동이었다. 반면, SNS의 운동(?)은 각각 장소와 시간을 달리하는 대중의 느슨한 망(network)이다. 희망버스는 이 디지털의 전략을 재매개함으로써 가상현실에 갇혀 있던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물질화해낸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희망버스는 SNS(뉴미디어)의 운동이 현장지원이라는 조직(올드 미디어)의 투쟁을 재매개했다고 할 수도 있을 거다. 김진숙과 김여진이 트친이 된 것은 조직과 네트워크의 이 행복한 결합을 상징한다. SNS는 85호 크레인을 방문한 김여진을 통해 육중한 현실로 나아가는 통로를 마련한 반면, 노동운동은 스마트폰을 손에 든 김진숙을 통해 SNS라는 가상세계의 수많은 거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김여진이 현장에 오지 않았거나 김진숙이 스마트폰을 활용하지 않았다면 한진중공업 사태는 '사건'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현실의 존재론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디지털 대중의 자발성이다. 과거에 대중은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의 수용자에 불과했으나, 오늘날 대중은 외려 매체에 정보를 제공하는 송신자로 변했다. 매체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오늘날, 기사는 그 자체만으로 기사가 될 수 없다. 대중이 링크를 걸어 리트윗을 해줘야 비로소 기사는 '사회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오늘날 대중은 댓글과 멘션과 리트윗을 통해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믿는 사건을 기꺼이 '사건'으로 등록시키려 한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한진중공업 사태를 '사건'으로 만들어냈다.
희망버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미 현실(reality)의 개념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가상이 현실로 나아가고, 현실이 가상으로 들어와 복잡하게 뒤엉키는 혼합현실(mixed reality).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들어 사는 새로운 현실의 정체다. 귄터 안더스는 "사건이 원본보다 복제된 형태로 더 큰 사회적 중요성을 띠는 것"을 빌어먹을 현실이라 성토했으나, 그의 푸념에 아랑곳없이 오늘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결합된 혼합현실은 이미 우리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바로 그 새로운 현실의 존재론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