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01

[한겨레 프리즘] 힉스 사냥의 풍경화, 세밀화 / 오철우

우리는 그것을 '신의 입자'라는 멋진 별명으로 불러주었다. 질량을 지닌 우주 만물의 입자들, 그러니까 쿼크·전자·중성미자 같은 것들에 질량이란 걸 부여하는 신묘한 입자이니, 그런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었다. 엄청난 고에너지가 지배하던 우주 태초에 어떻게 질량의 탄생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데에도 등장하는 '힉스' 입자다. 힉스가 지구촌 뉴스의 관심사에 들어온 건 아마도 대형 가속기 덕분이었다. 스위스 국경 지대의 27㎞ 길이 지하터널에 건설돼 지상 최대의 기계로도 불리는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에서 힉스를 발견하려는 국제 공동실험이 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힉스를 잠깐 더 소개하자. 힉스는 아직 실체가 확인된 입자는 아니다. 질량도 모른다. 그래도 지위는 대단하다. 우주 만물의 원리를 가장 정교하게 설명하는 지금 과학이 물리학의 표준모형인데, 표준모형 전체를 매끄럽게 다듬는 데 힉스는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없다면 표준모형은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다. 1960년대 힉스 가설이 제시된 이래, 이제 반세기 만에 초대형 가속기에 수천명 연구자가 몰려 그 실체를 찾는 중이다.

최근 힉스 검출 실험의 중간 결과를 취재하며 조금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지난해 시작된 힉스 실험 전에 힉스는 그저 '신의 입자' '우주 수수께끼를 풀 단서' 정도로 불렸는데 실험이 진행되는 지금, 연구 현장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건 너무도 복잡한 실체가 됐다.

'발견'도 그렇다. 힉스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단박에 포착되는 입자가 아니었다. 어떤 크기의 고에너지 물리량으로, 에너지 스펙트럼에 나타날 어떤 신호로 발견된다. 힉스 개념은 또 어떤가? 여러 도움말을 얻다 보니, 고에너지에서 찰나에 존재하다 붕괴하는 힉스는 양자역학의 이론 상자에 꽁꽁 숨어 있었다. 만물의 대칭성과 자발적 대칭성 깨짐, 그걸 설명하는 게이지 이론, 게다가 힉스장…, 이론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이들한테는 그 실체를 좀체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하니, 발견은 천재 과학자 개인이 아니라 수천명 집단지성에 의해 이뤄진다. 한국인 80명이 참여한 이 실험(CMS)엔 6000명 안팎의 세계 연구자들이 몰렸다. 양성자 무리를 거의 빛 속도로 충돌시킬 때 쪼개져 튀어나오는 갖가지 소립자와 복잡한 에너지 신호를 잡아내고 가려내고 계산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이 거듭된다. 오류 확률을 0에 가깝게 줄이려면 데이터의 양을 엄청 축적해야 한다. 연구협력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멀리서 보이는 힉스 사냥의 풍경화는 단정하고 낙관적이다. 그러나 세밀화를 그리는 현장 연구는 역동적이고 복잡하다. 실험에 참여중인 손동철 교수는 "지금 데이터로는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박인규 교수는 "지금은 야구 경기의 2회 말이라 3 대 0으로 이기고 있다 해도 우승했다고 말할 수 없으니 더 많은 데이터가 모이는 9회 말의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스마트폰의 디자인은 간결하지만 부품 원리는 사실 더 복잡해졌다. 현대 과학은 난해한 이론과 과정이지만 대중은 과학을 간편하게 소비한다. 대중이 난해한 과학을 다 알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과학 지식이 오해돼선 안 된다. 과학 기사를 쓸 때마다 느끼는 딜레마이지만 힉스 때문에 다시 잡념은 꼬리를 문다. 어디 힉스뿐이랴. 사태의 안과 밖엔 들리는, 들리지 않았을 목소리들이 있다. 그래도 마감을 위해 어느 순간 잡념의 꼬리를 끊고 '과감하고 무모하게' 글을 쓴다. 풍경화와 세밀화가 무척 다름이 글 어딘가에 드러나고, 또 두 그림이 될수록 화평하길 바라며.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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