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나의 서재 동아 연재 ☞
03/10/24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을 만든 봉준호 감독(34)은 요즘 세 번째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 작업에 푹 빠져 있다. 2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그의 시나리오 작업실을 찾았다.
“최근 무슨 책을 읽고 있나요?”
“앗, 그걸 밝히면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노출될 텐데…. (잠시 고민) 원서로 ‘Stanley Kubrick:A Visual Analysis’를 보고 있어요. 큐브릭 감독은 테크놀로지의 거장이죠. 세 번째 영화는 기술적으로 도전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자꾸 이 책을 들춰보게 돼요.”
봉 감독은 “아무래도 시나리오를 쓸 때 책을 집중적으로 읽게 된다”며 “평소에 전혀 생각지 않던 책들을 읽게 돼서 오히려 재미있다”고 말했다.
작업실 한쪽 벽면의 절반은 영화 비디오테이프 600여개가 차지하고 있다. 책장에는 ‘참혹한 죽음’ ‘잔혹’ 같은 제목의 책들이 꽂혀 있다. ‘살인의 추억’이 남긴 흔적이다. 촬영 당시의 메모와 각종 음식 국물들로 얼룩진 콘티북도 있었는데, 봉 감독이 모든 콘티를 직접 그렸다고 했다. 일본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浦澤直樹)의 만화 ‘20세기 소년’ ‘몬스터’와 각종 영화잡지 및 수집한 자료들이 책장의 칸칸을 메우고 있는 모습.
그는 일본에서 출간된 빈센트 반 고흐의 화집을 책장에서 뽑아 들더니 ‘까마귀가 있는 보리밭’을 펼쳐 보였다. ‘살인의 추억’에서 처음과 끝, 노란색 너른 벌판의 이미지는 고흐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실 이 화집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슬쩍’한 것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셨던 아버지 덕분에 그는 어린시절부터 ‘아빠 방’에서 영어 일본어 원서로 된 그림책을 마음껏 보며 자랐다고 했다.
화가 임옥상의 책 ‘벽없는 미술관’에는 ‘웅덩이 Ⅰ’이라는 그림에 표시를 해두었다. 황토에 핏물이 고인 웅덩이가 덩그러니 있는 그림 한 장은 ‘한국적 비주얼’이 어떤 느낌인지를 감독에게 일깨워주었다.
1988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중 임철우의 ‘붉은 방’에는 곳곳에 파란색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 놓았다. “군사독재 시절, 형사가 취조하던 방식의 디테일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설명. 19세기 영국의 살인마 ‘칼잡이 잭(Jack The Ripper)’을 그린 만화 ‘프롬 헬(From Hell)’에서는 살인사건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봤다.
만화광으로 잘 알려진 봉 감독은 최근 문화관광부가 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으러간 자리에서 보관문화훈장 서훈대상자인 만화가 길창덕씨를 봤다면서 “지팡이 짚고 시상대에 오르시는 모습에 눈물이 날 뻔했다”고 말했다. “‘꺼벙이’ ‘꺼실이’…. 길 선생님 작품 중에 ‘신판 보물섬’을 제일 좋아해요. 만화는 제게 밥이나 김치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예요.” 조이영기자
03/10/10차병직변호사, 책은 '지식의 옹달샘'
“그리고…이건 제가 훔친 책입니다.”
법무법인 한결의 차병직 변호사(44)는 서가에 꽂혀 있던 누렇게 바랜 책 한 권을 빼내 보였다. 경문사에서 단기 4292년에 펴낸 피천득 선생의 ‘금아시선집’이었다.
“77년 재수 시절 세 들어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집주인이 부려놓은 이삿짐 속에서 이 책을 발견했죠. 그냥 달라고 하면 줄 것 같지 않아서….”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차 변호사는 책 욕심이 많다. 8일 서울 관악구 신림10동 차 변호사 자택의 공부방에 들어서니 책으로 사방을 꽉 채운 것으로도 모자라 방바닥이 온통 책으로 어질러져 있다. 변호사 사무실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래야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나.
차 변호사의 단골 책방은 밤 12시가 넘도록 문을 열어두는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변호사 일로,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일로 귀가가 늦는 차 변호사는 매주 1, 2회 습관적으로 책방에 들러 책을 산다. 책은 주말에 서재에 틀어박혀 집중적으로 보는 편이다. 볼펜 없이는 책을 못 읽는 체질이어서 반드시 책상 앞에 앉아서 본다. 밑줄을 긋고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하기도 한다.
“법률 지식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이 모른다 뿐이지 그다지 심오한 것은 아니지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려면 인문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등 두루두루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분쟁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책상 위에는 요즘 펼쳐보는 책들이 쌓여 있다. ‘인듀어런스’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뜬세상의 아름다움’ 등 베스트셀러와 함께 ‘국제인권법’ ‘인권과 국제정치’ ‘과학기술과 인권’ 등 차 변호사의 전공 영역을 다룬 책들까지 한 무더기다.
서가엔 고려대 법학과 재학시절 영문과 강의실을 기웃거리며 사 모은 ‘노턴 앤솔로지’ ‘16세기 영시’와 ‘원자폭탄 만들기’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김우창 전집’ 등이 뒤죽박죽 꽂힌 채 위 아래로 서로를 베고 누워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찾는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찾기가 힘들어 똑같은 책을 2, 3권씩 사기도 한다.
“저는 양반이에요. 안경환 서울대 법대 학장은 이미 읽은 책인 줄도 모르고 새로 사서 줄쳐가며 읽다 보니 전에 읽던 책과 줄친 부분까지 같았대요.”
차 변호사가 일독을 권하는 책은 덴마크 작가 페테르 회의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과 스위스 국민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 뒤렌마트의 소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정에서는 유죄를 증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결과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는 ‘과연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라고 회의하게 됐다고.
요즘엔 대학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온 인권에 관한 쉬운 개론서를 준비 중이다. 얼마 전에는 청소년이 읽을 만한 인권 교과서인 ‘사람답게 아름답게’(바다출판사)를 펴내기도 했다. ‘홍당무’ ‘라퐁텐 우화’ ‘메리 포핀스’ ‘말괄량이 삐삐’ 등 50여편의 동화와 우화를 인용해 간접적으로 인권과 법을 이야기한 소박하고 맑은 책이다.
03/09/26북디자이너 정병규씨
북디자이너 정병규씨(57·정병규디자인 대표)에겐 마음씨뿐만 아니라 맵시도 중요하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의 존재 가치를 마무리하는’ 일인 제본이나 디자인이 허투루 된 책을 보면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것은 “정보화 시대의 격랑 속에 CD롬에 맞서 한 권의 종이책이 살아남기 위해 벌여온 노력을 외면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그가 책상 가까이 둔 서가에는 일본의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중후한 비평서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과 자메이카 태생의 미술사가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의 알록달록한 ‘동물원’이 이웃해 있다.
정 대표가 8년째 쓰고 있는 작업실에 들어서자 고서점 특유의 향이 풍겼다. 40평 규모의 작업실은 모두 4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박스형 MDF 책꽂이를 블록처럼 쌓아 만든 서가가 공간을 나누는 파티션 기능을 한다. 어른이 까치발을 딛고 책을 빼낼 수 있을 정도의 높이. 73년 출판사 직원으로 책과 인연을 맺은 후 30여년간 모아온 책들이 40평 공간의 벽면을 두 번 두를 수 있을 정도로 쌓였다.
“여기엔 제가 가끔이라도 빼 보는 책들만 둔 거예요. 이 건물의 1층과 지하에 60평 규모의 서고가 있지요.”
안내 표시 없는 서재에서 길을 잃은 기자를 위해 정 대표가 관람의 하이라이트를 짚어주었다.
“이건 제가 20년간 정기구독 중인 일본의 디자인 전문지 ‘아이디어’를 모아둔 것이고 여기서부터는 스위스의 디자인 전문지 ‘그래피스(Graphis)’가 시작됩니다. 제게 북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스승이지요.”
“이건 일본의 현대사상잡지 ‘에피스테메’인데 창간 준비호라서 ‘0’호라고 돼 있어요. 70년대 초반에 푸코의 철학을 다루고 있지요. 80년대 중반에야 국내 학계에 푸코가 소개된 점을 감안하면 10년 정도의 시차를 확인할 수 있어요.”
“이 책을 보세요. 100쪽이 넘는 책장이 한 장으로 부채처럼 접혀 있어 펼치면 이탈리아 베니스의 산마르코 성당이 이어져 나온답니다. 350부 한정본의 몇 번째 책이더라….”
잘 만든 책은 지혜의 보고인 동시에 작업실의 멋과 품격을 높여 주는 훌륭한 ‘오브제’이다.
정 대표는 매년 한 차례 일본 도쿄와 오사카의 외국책 전문서점과 고서점으로 쇼핑을 간다. 원서들은 주로 책의 외양을 보고 사들이는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한다. 정기 구독하는 5종의 디자인 잡지를 포함해 매년 사들이는 책은 연간 500∼600권.
“버리는 책은 한 권도 없어요. 책들마다 다 의미가 있고 또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더해가기 때문이지요. 책들과 함께 늙어가는 기분입니다. 한동안 책 만드는 일이 좋더니 지금은 보는 것이 좋아요.”
정 대표는 요즘 서재에서 기능주의적인 디자인 세계를 시각문화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문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북디자이너 정 대표에게는 맵시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중요하다.
03/09/19영문학자 안동림 교수
원로 영문학자 안동림씨(71·전 청주대 교수)에게 “서재를 구경시켜 달라”고 전화했다. 안 된다며 손을 휘휘 젓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이름난 장서가로 알고 있었기에 다소 의외였다.
“아파트로 이사 온 지 1년 되었는데, 아직 책 정리를 못했어요. 당장 들춰봐야 할 책도 한참 걸려 찾는 지경이야. 그냥 책 얘기 음악 얘기 하려면 와요.”
추석 연휴가 끝나는 일요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공기 좋은 산자락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았다.
책 두고 책 읽는 곳을 서재라고 한다면, 그의 서재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각 3, 4평 남짓. 책이 ‘사는’ 방에는 양 편의 긴 벽이 책으로 빼곡했다. 주문 제작한 서가는 앞뒤 두 줄. 미닫이문처럼 책장에 바퀴를 달아 공간을 두 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방문 바로 옆 공간에는 클래식 음악 CD가 천장까지 꽉 차 있었다.
“책이고 음반이고 이사 올 때 반 이상 버렸는데도 이 지경이에요.”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서가의 반 이상은 클래식 음악 또는 중국 고전을 다룬 영어 일어 서적이 차지하고 있다. ‘Musical Anecdotes(음악일화집)’ ‘觀音經講話’ 등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가 클래식 명반 탐구가들에게 필독서로 꼽히는 ‘이 한 장의 명반’(현암사) 저자이며, 93년 ‘장자’를 완역했고, 중국 고승들의 일화가 담긴 ‘벽암록’을 번역해 내놓은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어색하지 않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그의 왕성한 호기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책이 그를 ‘만나는’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국제 앰프 옆에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LP(검은 옛 레코드판) 플레이어, 그 옆의 ‘검은 물건’이 눈에 익었다. “아 그거, 플레이 스테이션이야. 요새 게임에 빠져서.”
젊은이들 하는 첨단 게임은 못하고 ‘손가락 운동’ 차원의 게임이나 한다고 그는 말했다. LP 플레이어 위에는 클래식 DVD가 수북하다. 얼핏 보기에도 발매된 지 며칠 안 되는 신보들이었다. 모니터에서는 경호원을 소재로 한 TV 연속극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드라마 보십니까?”
“응, 보고 있지. 그런데 왜 저런 데까지 정치 얘기가 나와야 하나?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면서.”
문득 그가 어깨를 툭 치며 “이것 봐” 했다. 이어폰이 달린, 우표만 한 크기의 최신 ‘오디오’였다. MP3 플레이어와도 다르다고 했다. 옆에 켜놓은 노트북 모니터에는 인터넷 서점 ‘반즈 앤 노블’ 사이트를 띄워놓고 있었다. 매달 30∼40권씩 해외 신간을 주문하는 데 사용한다.
요즘 읽는 책은? 주역에 빠져 있다. 중국인 학자 알프레드 후앙의 ‘완본 역경’(The Complete I Ching·1998)을 주 텍스트로, 일본인 오다 렌타로의 ‘역경강화’(易經講話) 등을 참조해 읽고 있다. ‘노자’ ‘벽암록’에 빠졌을 때 그랬듯이, 아무 속셈 없이 읽고 있으니 어떤 산물이 나올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나? ‘잡놈’이오. 깊이 파지는 못해도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게 내 체질이야. 이런 기막힌 재미들이 책에, 음반에, 인터넷에, 어디나 있는데, 신나지 않아요?”
분명 그의 말은 뻔한 위장을 담고 있었다. 연속극이나 게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손대는 분야마다 일정한 ‘깊이’를 획득하고 인정받고 있는 노학자가 부러웠다.
03/09/05소설가 이윤기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하며 그의 서재도 훔쳐보고 싶어 한다. 개성 있는 서재들을 찾아 서재 주인으로부터 책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소설가이자 신화연구가인 이윤기씨의 경기 과천시 과천동 2층 자택에는 스물세 평짜리 서재가 있다. 지난해 옛 집의 골조만 남기고 집을 다시 짓다시피 하는 보수공사를 해 새로 꾸민 서재는 흰 벽에 마룻바닥을 깔아 수수하고 자연스럽다. 그가 주말에 머무는 경기 남양주시 집에도 서재가 있지만 주로 집필하는 공간은 과천 집의 서재.
●첫사랑처럼 눈에 어리는 책들
3면 벽을 채운 나무빛깔의 책장들은 그가 ‘반쪽이’를 그린 만화가 최정현씨와 함께 직접 디자인했다. 얼핏 보아 세트로 만들어진 책장 같지만 사실은 MDF 박스 100여개를 차곡차곡 쌓은 것이다. 하나하나 분리가 가능해 필요에 따라 위치나 모양을 바꾸기도 쉽다.
책 배열에는 규칙이 있다. 의자 뒤로 손이 가까이 닿는 곳에는 ‘Encyclopedia Britannica’ ‘Great Books’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의 사전류, 90도로 꺾인 지점에는 중국 관련 책부터 시작해 몽골 관련 자료, 한국학 책들이 차례로 한 면을 채웠다. 책상 맞은편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 옥스퍼드출판사에서 나온 ‘그리스 로마 Who's Who?’ 같은 그리스 로마 신화관련 책과 자료들을 두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나한테 대학교나 다름없는 사전입니다. 74년 월급 4만원 받던 시절에 매달 월부금 2만원씩 내고 처음 전질을 사서 밤마다 여기 읽다가 또 저기 찾아 읽다가…. 최근 새 에디션으로 바꾸었죠. 머지않아 서재를 2층까지 확장해야 할 것 같아요. 자꾸 책은 쌓이고, 버릴 수는 없고…. 지금도 옛날에 어디 꽂아둘 데가 없어 버린 책들이 꼭 ‘죽은 첫사랑’처럼 눈에 어른어른합니다.”
●서재에서 길을 묻다
그는 이번 주 신간 ‘이윤기, 그리스에 길을 묻다’(해냄)를 냈다. 이 책에서 그는 영화 ‘슈퍼맨’이 메두사를 물리친 영웅 페르세우스의 전술(戰術)을 원용한 것을 밝히고 몽골 울란바토르의 식당 상호에서도 그리스어의 흔적을 찾아낸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맞닥뜨린 그리스 로마문화의 도도한 현존을 독자들에게 해독해주어 ‘문화 깊이 읽기’가 가능하도록 도와주려 한 것이다.
여행은 그에게 방대한 저술의 원천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서재 복도 한쪽 끝에는 가죽으로 된 밤색 여행가방이 놓여 있다. 윤이 나게 닦여 언제라도 길을 떠날 수 있을 것처럼 준비된 이가방은 그의 서재에서 ‘출구’ 같은 것이다. 서재 마룻바닥에 책과 그림, 사진자료들을 발 디딜 틈 없이 늘어놓고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다음 목적지에 대한 도상(圖上)훈련을 하다가 어느 날 그는 또 훌쩍 길을 떠날 것이다.
요즘 그가 서재 책상 위에 두고 자주 뒤적이는 책은 ‘한몽(韓蒙)사전’. 7월에는 몽골, 8월에는 중국을 다녀왔다.
“몽골에 깊이 빠져드는 이유는 유목의 정서, 그 기동성의 근본을 알고 싶어서입니다. 오늘날은 유목의 시대입니다. 어느 누구도 한 곳에 정주(定住)해 살 수 없어요. 마음과 혀가 다 바깥으로 열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에게 서재는 ‘정신적 유목의 베이스캠프’다.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안동 대구 서울을 거쳐 미국 프랑스 로마 그리스 이집트 몽골과 중국까지 삶의 반경을 확장하는 동안 그는 언제나 책에 먼저 길을 물었다.
“‘칼이 짧은 자는 한 발 더 들어가서 찌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저 자신을 칼이 짧은 자, 이류로 규정했어요. 이류가 일류가 되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죠. 그래서 지금도 이곳에서 매일 자기강화(强化)를 위해 공부합니다.”
출처: http://www.peacejeju.com.ne.kr/introbook/donga/dreamstud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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