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08

일본의 선택, ‘경제 성장 없는 사회 발전’- 시사인 채명석, 199호, 2011-07-01.

일본의 선택, ‘경제 성장 없는 사회 발전’
최근 일본에서는 경제성장 지상주의가 원자력발전에 의존하는 체질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며 ‘경제성장 없는 사회 발전’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199호] 2011년 07월 01일 (금) 21:51:35도쿄·채명석 편집위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은 2022년까지 원자로 17기를, 스위스는 2034년까지 원자로 5기를 완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 국민은 2020년까지 원자로 4기를 새로 건설한다는 베를루스코니 정권의 원전 재추진 계획을 94%의 반대로 백지화했다.

그렇다면 넉 달 전 최악의 원전 사고를 일으킨 일본의 사정은 어떠한가. 경제산업성은 6월26일 사가 현 겐카이(玄界) 시에서 규슈 전력의 겐카이 원전 2, 3호기 재가동을 위한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예상을 초월한 쓰나미(지진해일)가 밀려올 경우에 대비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 “원자로 건물의 수소 폭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두었는가” “후쿠시마 원전처럼 노심용융(멜트다운)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따위 질문을 경제산업성 관료에게 퍼부었다.


  
ⓒAP Photo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이 도쿄전력주식회사 시미즈 회장의 사진을 들고 원전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 가능성


경제산업성은 정기 점검을 마친 원자로의 재가동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될 경우 올해 연말까지 원자로 54기 가동을 전부 정지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고 원전 주변 주민과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설득 작업에 나섰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원자로 54기 가운데 35기가 운전을 정지한 상태이다. 그러나 원자로의 재가동뿐 아니라 원전 건설 계획을 아예 백지화하려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어서 경제산업성이 추진하는 주민 설명회는 별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예컨대 야마구치 현의 니이 세키나리 지사는 최근 주고쿠(中國) 전력이 추진하는 가미노세키(上關) 원전의 매립 허가 기한을 연장해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주고쿠 전력은 가미노세키 해안을 매립해 2018년까지 원자로 2기를 건설할 예정이었지만, 니이 지사의 ‘매립기한 연장불허 방침’으로 원전 건설 계획이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원전’으로 알려진, 시즈오카 현 오마에자키 시에 있는 하마오카 원전의 재가동 문제도 큰 논란거리이다. 간 나오토 정권은 지난 4월 하마오카 원전의 원자로 3기의 가동을 중단하도록 주부(中部) 전력에 요청하면서 쓰나미 대책이 완료되는 대로 재가동을 허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에 따라 간 정권은 쓰나미 대책이 완료되는 2~3년 뒤 하마오카 원전의 재가동을 인정해줄 방침이다. 그러나 오마에자키 주민과 원전 반대 단체는 재가동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어서 ‘원전 추진파’ 세력과 ‘탈(脫)원전파’ 세력 간에 큰 충돌이 예상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간 정권은 원전 주변 주민의 ‘방사능 공포증’을 불식하기 위해 하마오카 원전의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2030년까지 원자로 14기 이상을 건설해 원자력발전 비율을 현행 29%에서 50%로 끌어올린다는 ‘에너지 기본 정책’을 백지화했다.

특히 간 나오토 총리는 “즉각 사임하라”는 주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재생가능 에너지 법안’의 국회 통과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법안은 태양광·풍력·소규모 수력·지열·바이오매스(동식물 열 자원)로 만든 전기를 10개 전력회사가 정부 지정 가격에 전량 구입하도록 하는 이른바 ‘전량 고정가격 매입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다. 매입 가격은 태양광발전을 제외한 신재생 에너지의 경우 1㎾당 15~20엔이고, 매입 기간은 15~20년이다.

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현재 1% 정도에 불과한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율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원자로 재가동 중단으로 생긴 전력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다고 전망한다. 다만 발전 비용이 매우 비싼 태양광의 경우 정부가 정책적으로 매입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 해도 가정용이나 사업용 태양광발전 사업이 채산성을 맞추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뉴시스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위)은 태양광발전 사업에 뛰어들 예정이다.


간 총리, ‘탈원전’에 정치 생명 걸었다?


그럼에도 ‘소프트뱅크’와 ‘샤프’ 같은 회사가 태양광발전 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재일동포 손정의 사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최근 회사 정관을 고쳐 신재생 에너지 발전과 전기의 공급·판매를 사업 내용에 추가했다.

손 사장은 그 일환으로 7월 중순께 35개 지방자치단체가 참가하는 ‘신재생 에너지 협의회’를 발족해 태양광발전 사업을 펼칠 방침이다. 손 사장은 현재 54만ha에 달하는 휴경지나 경작을 포기한 논밭의 20%만 태양광발전에 활용한다 해도 도쿄전력의 총공급 능력과 맞먹는 5000만㎾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샤프도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LCD 사업과 태양광발전을 양대 주종 사업으로 육성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샤프 경영진은 태양광발전 비용이 현재는 원자력발전(7엔)의 5배 이상인  1㎾당 35~39엔이지만, 관련 기술이 대폭 진보하고 대규모 생산에 성공할 경우 태양광발전 사업에서 충분히 채산성을 맞출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일본 정부는 또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전력의 발전 부문과 송전 부문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의 전력 공급체제는 10개 전력회사가 각 지역의 발전 부문과 송전 부문을 독점하는 지역 독점체제이다. 일본 정부는 이것을 유럽처럼 송전망을 따로 떼어내 별도 회사에 맡기거나 국유화하게 되면 민간 기업이나 개인이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해 송전회사에 판매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탈원전’에 이어 일본의 또 다른 화두는 ‘탈성장’이다. 일본의 탈성장론자들은 열 자원의 대량 소비를 전제로 한 전후의 경제성장 지상주의가 원자력발전에 의존하는 체질을 심화시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교토에서 최근 열린 ‘탈성장의 길’ 심포지엄에서는 ‘경제성장 없는 사회 발전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한 참석자는 “일본의 원전 문제는 일본이 추구해온 경제 발전 양식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지속 불가능한 성장 우선 정책을 이대로 밀고 나갈 경우 일본의 미래는 암담하다”라고 경고했다.

탈원전이나 탈성장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국 안정이 긴요하다. 그러나 간 총리는 자신의 사임 시기에 대해 말을 자주 바꾸면서, 여차하면 탈원전을 테마로 한 중의원 총선거를 실시할 태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치적 혼란 때문에 후쿠시마 이후를 겨냥한 ‘일본 재생’ 작업이 크게 늦추어진다고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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