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08

왜 지자체는 ‘경전철’ 유혹에 빠지는가?- 시사인, 유해정, 202호, 2011-07-22.

왜 지자체는 ‘경전철’ 유혹에 빠지는가?
전국 36개 시·군·구에서 경전철 건설을 검토하고 있단다. 자연재해만 재난이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경전철도 이쯤 되면 ‘재난’이다.
[202호] 2011년 07월 22일 (금) 22:08:14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지방선거에 출마할까?” 답답한 마음에 내가 종종 남편에게 내뱉는 말이다. 인권활동가로 살았을 때는 여의도 국회 정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니 동네가 보인다. 

아이와 다니면 불편한 점이 많다. 보도블록의 턱이 높거나 경사가 심하거나 보도가 좁아 유모차를 밀고 다니기가 어렵다. 버스를 탈 수도 없다. 턱이 높아서 유모차를 갖고 탈 수도 없고, 10kg이 훌쩍 넘은 아이를 매달고만 다니자니 등이 휜다.  

아이를 맡기고 일을 나가는 건 더욱 어렵다. 내가 사는 경기도 용인 수지구 인구는 30만이 훌쩍 넘건만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딱 한 곳. 대기표 끊고 초등학교까지 기다려도 차례가 안 온다. 사립 어린이집에 보내자니 마음이 안 놓인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 어린이집 아닌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립에 대한 지원이나 감독이 충분하면 그나마 마음이 놓일 텐데 현실은 그와 다르다. 공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모두 개인에게 맡겨놓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모두 다른 일로 바쁘다. 


운행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애물단지


   
중앙정부가 4대강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면, 내가 사는 용인시는 경전철 해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다. 용인시가 경전철 사업을 추진한 것은 무려 10년 전인 2001년이다. 당시 경전철은 건설비가 지하철보다 40% 정도 싸고 친환경적이라는 이유로 각광을 받았다. 민간 자본을 유치해서 일정 기간 시설관리권을 준 뒤 회수하는 방식을 택했기에 시의 재정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 예상되었다. 

용인시는 경전철이 쾌적한 환경과 효율적인 대중교통 시스템, 지역의 균형 발전을 이룰 거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지역 언론사나 단체들도 이를 환영했다. 10년이 지나 경전철이 완공됐지만 전철은 달리지 못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할 때는 하루 평균 14만명 이상이 경전철을 이용할 거라 예상했는데, 지금은 5만명도 안 된단다. 민간 자본을 투자받은 사업이라 운영 손실이 날 경우 용인시가 적자를 메워야 한다. 그러니 1조원 이상을 들인 사업이 실행과 동시에 용인시에 매년 700억원이라는 부담을 안기게 되었다. 

1년에 700억원이면 엄청난 액수다. 이 돈만 있다면, 유모차는 물론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전동 휠체어도 다닐 수 있는 보도 만들기, 교통 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도입하기, 장애나 질병이 있는 아이도 맘 놓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만들기, 개발에서 밀려난 원주민과 그 아이들을 위한 교육·문화 시설 만들기, 홀로 사는 노인 등을 위한 복지 서비스 늘리기, ‘독서실’이 아닌 독서와 휴식이 가능한 도서관 운영하기 따위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만 해도 속 시원한 일이 너무나 많다.

이게 용인시만의 특별한 사례라면 용인시민이 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해야 되겠지만, 지금 인천·용인·김해·의정부 등 전국 17곳에서 경전철이 운행될 예정이고 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다. 운행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울 때에는 온갖 장밋빛 환상을 떠들었지만 막상 운행되고 나면 주민의 빚으로 떠넘겨진다. 우리 삶을 개선하기 위해 쓰여야 할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줄줄 새고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전철을 만들겠다는 공약이 지난 지방선거 때에도 나왔고, 현재 36개 시·군·구에서 경전철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이쯤 되면 이건 엄연한 부정부패다.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만 재난이 아니라, 경전철도 이쯤 되면 ‘재난’이다. 

지역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권리를 지키고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지방정부는 예산 부족이라는 핑계를 댄다. 하지만 그 많은 예산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 나일까? 당신일까? 아님 그들일까? 이제 우리가 현명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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