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0

[한겨레 프리즘] 검찰인사 전야 / 여현호

사실을 알고 나면 '괜히 헛다리만 짚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사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제 인사청문회까지 다 마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후보자 발표를 앞두고선 온갖 논란과 하마평이 무성했다. 검찰총장을 두고는, 대통령이 자신의 고려대 후배 대신 그래도 다른 사람을 지명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었고, 실제 그쪽으로 기울었다는 말까지 한때 파다했다. 선거를 앞둔 법무장관에 청와대 민정수석을 기용하는 데 대해선 여당 안에서도 반대론이 무성했다. 하지만 웬걸, 나중에 전해지기로 한상대 검찰총장과 권재진 법무장관을 기용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은 오래전부터 확고했고 흔들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물색 모르는 사람들만 요란을 떤 꼴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누구의 눈치도 안 본다는 말이다. 이번 청문회 뒤에도 청와대는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에 구애되지 않고 서둘러 총장과 장관 임명을 강행할 것이라고 한다. 검찰 주변에선 이를 전제로, 이르면 다음 주말께 검찰 간부 인사, 그다음 주엔 평검사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시간표까지 나돈다. 이미 법무장관 후보자와 검찰총장 후보자가 시내 호텔에 방을 잡아두고 인사 협의에 착수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진행될 검찰 인사에서도 많은 이들이 헛다리를 짚거나 헛물을 켤 수 있다. 대통령이 눈 딱 감고 자기 사람을 챙기는데, 총장이나 장관이 고향 사람이나 대학 후배를 요직에 기용하는 데 주저할 이유는 딱히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조짐이 있다. 검찰의 대표적 요직으로 직접 수사의 칼을 쥔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는 장관과 같은 대구·경북 출신이고 총장의 고려대 후배이기도 한 이들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다른 크고 작은 요직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전망도 있지만, 왜 안 되느냐는 반박도 이번엔 사뭇 당당하다. 실제 그런 '독식'은 몇년 전에도 있었다.

검찰 인사에 왜 이렇게까지 관심을 두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어느 조직이건 인사는 지난 성과에 대한 평가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수사와 기소를 통해 국민 개개인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검찰의 인사는 그 의미가 더하다. 검찰 인사의 왜곡은 그 영향이 더 크고 깊다.

예컨대, 무리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정치권력의 뜻에 부합하는 수사와 기소를 감행한 이를 요직에 기용한다면, 이는 검찰 조직의 권력 순응과 검찰권 왜곡을 재촉하는 메시지가 된다. 권력의 주인은 달라질지라도 때맞춰 그 뜻을 따르는 풍토가 당연시된다. 그런 위험을 초래할 인사를 하면서 능력이니 선두주자니 따위 핑계를 대선 안 된다.

당장 수사가 비틀어질 수도 있다. 거액의 탈세 의혹을 받았던 한 사업가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 사정 관련 고위직에 대거 진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검찰 수사를 최대한 지연시키려 한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에스케이 그룹과의 밀착 의혹을 추궁받은 한상대 총장의 취임을 앞두고선, 이 그룹 관련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걱정이 벌써 나온다. 검찰 인사 하나하나를 의미 있게 바라보는 이들은 의외로 많다.

승진과 보직은 당근이면서 채찍이다. 경쟁이 치열한 검찰에서 인사는 다른 어느 조직보다 민감한 문제다. 그 때문에 인사는 오랫동안 검찰 조직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이제는 대놓고 자기 사람을 챙긴다는 눈총까지 받게 됐다. 검찰 인사가 준사법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책이 됐으면 하는 기대는 아직도 섣부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론의 눈치라도 좀 봤으면 좋겠다는 주문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너무 뻔뻔해지지 말기 바란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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