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경제신문의 기자 칼럼을 봤다. 내용인즉 한나라당에서 당직자나 기자들에게 제공하는 김밥이 맛없다고 하자 더 좋은 김밥으로 바꾸었는데, 예산은 그대로이고 김밥 값이 비싸져 수량을 줄이는 바람에 김밥을 먹지 못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당직자의 말을 빌려, 한나라당에까지 불고 있는 정치권의 복지 바람이 이 김밥 사태 꼴이 날까 걱정이란다. "결국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등 각종 복지수요를 충족하려면 누군가는 세금을 더 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샐러리맨이 될 거"라고 지적하면서 끝을 맺었다. 포털사이트에 올리는 메인기사로 선택한 것을 보니 이 신문사에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글인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이 칼럼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논리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복지 수준을 크게 높이려면 세수도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기존 세금 낭비를 줄이고 전용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터. 그러므로 "누군가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그런데 여기서 왜 갑자기 "그게 바로 샐러리맨"으로 비약하는 것인지? 이 사이에 아무런 설명이 없는 걸 보니 필자에게는 뭔가 자명한 듯한데,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샐러리맨, 즉 임금노동자도 세금을 더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바로"라는 말로 지칭하듯 가장 우선적인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는 이미 사회적 생산과 발전을 위해 육체와 정신을 소모하고 있다. 그러니 세금으로 기여하는 데에는 그렇게 스스로를 소모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우선대상이 되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법인세와 자산소득세 같은 게 일차적일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와 더불어 종부세와 양도세 등 자산소득에 대한 세금을 크게 내렸을 뿐 아니라 또 최고세율을 더 감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대기업과 부자들의 세금을 더 낮추자는 거다. 요즘은 시민사회와 여야 정치권의 반대에 부닥쳐 주춤한 모양새이니, 8월 말 발표될 세제개편안을 기다려볼 일이다. 하지만 사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부자 감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자 증세와 복지 확충이 경제발전을 저해한다고 한다. 정말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되는 증거가 매우 많다. 이에 대한 논쟁은 제쳐두더라도 더 근본적으로 '경제발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대기업과 부자들의 이익만 늘어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더라도 순수 경제지표는 좋아질 수가 있다. 하지만 이처럼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한 곳이 결코 '좋은 나라'라 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경제발전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임이 아닌가.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경제발전을 위해 불평등을 방치하고 복지를 포기하자고 말하지는 말자. 게다가 한국에서 세금과 복지 이전에 의한 지니계수(불평등지수) 감소 효과는 겨우 9%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인 31%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아직 멀었다.
얼마 전 오세훈 서울시장이 마침내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하기로 결행하였다. 소득수준 하위 50% 가정의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시민의 권리로서의 보편복지냐 시혜적인 선별복지냐라는 논쟁은 제쳐두자. 차별받고 상처받을 아이들 생각도 일단 하지 말자. 살림살이 빠듯한 우리가 삼성 이건희 회장 손자의 점심값까지 내야 하냐는 말, 설득력 있다. 그러니 그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면 된다. 손자와 더 많은 아이들의 밥값을 내도록. 참으로 간단한 셈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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