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치주의란, 정치가 좋아졌으면 하는 건설적 비판과는 달리, 정치를 경멸하고 조롱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기대를 걸지 못하게 하거나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냉소주의를 강화시키는 태도나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주주의를 싫어한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바로 공격하지는 못한다. 대신 반정치주의를 동원하고 정당 가입과 투표 참여 등을 무가치한 일로 치부하고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거 없다고 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을 수는 있다. 이로부터 이득을 보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확산된다는 점에서 반정치주의는 분명한 권력효과를 갖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은 정치인들에게 나라를 맡겼더니 사회 혼란만 낳았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들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려 했다. 1980년 '민주화의 봄' 시기 김대중 고문은 한 칼럼에서 민주화해 봐야 정치인들의 사욕에 나라가 분열될 뿐이니 기존 정치인이나 정당이 아닌 "새 정치세력"에게 나라를 맡겨야 한다는 논리로 전두환 세력의 집권을 긍정했다. 민주화 이후 반정치주의의 중심 세력은 재벌로 바뀌었는데, 삼성의 이건희 대표는 한국 정치를 3류도 아닌 4류로 야유해 유명해졌다. 정치를 낭비나 비효율의 원천으로 보는 재벌들이 민주주의를 긍정한다면, 아마도 그건 자신들의 영향력을 견제할 정치의 능력이 최소화된 민주주의일 것이다. 정치를 권력 비리와 부정부패의 세계로 보면서 자신들이 강력한 수사 권한을 가져야 함을 늘 강변하는 검찰도 다르지 않다. 민주정치의 요체라 할 의회에서 국정감사가 있을 때마다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정치인들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관료체제의 대응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도 다르지 않은데, 이들에 의해 기술되는 현실의 민주정치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당리당략을 둘러싼 싸움 이상이 아니고, 정확히 그 지점에서 모든 분석은 멈춘다. 그렇다면 이들이 바람직한 것으로 전제하는 정치란 갈등적이지 않고 정략도 계산도 작용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유기체주의 혹은 전체주의적 정치관에 가까워 보인다. 안타깝게도 반정치주의의 경향이 보수파 내지 기성체제의 수혜자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진보파들의 세계에서도 정치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강한데, 심지어 진보정치의 길을 열겠다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스스로를 정치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직업 정치인이란 말이 거의 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물론 진보파의 반정치주의는 지배의 욕구를 갖지 않는 도덕적 순수성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반정치주의가 더 강한 설득력과 정당성을 갖게 되는, 전도된 권력 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같은 지역에서 함께 자란 친구가 진보정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자기 일처럼 도와준 사람이 있다.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자기 친구와 그 당 사람들의 주장을 지지했고 선거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막상 투표는 다른 정당에 했단다. 그 이유를 묻자, "그 친구는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시민운동을 위해 나온 거니까, 정치인이 되어서 욕먹을 필요까지는 없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치가 부정당하면 정치를 좋게 만들려는 노력도 부정당하기 쉽고 당연히 진보적인 정치의 길을 넓히기도 어렵다. 민주정치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진보적 대의와 사회 약자들의 권익을 위한 정치를 생각한다면, 먼저 반정치주의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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