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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이하 지) - 한국 현대사 산책 80년대편을 집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쯤 출간됩니까? 강준만(이하 강) - 앞으로 2개월 정도 더 작업을 해야할 것 같아요. 총 스무권을 계획하고 있는데, 80년대편도 70년대편과 같이 세권으로 펴낼 생각입니다. 지 - 인적 네트워크에 관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혜신 박사의 '남자 VS 남자'에 보면 이수성 전 총리와 비교해서 이수성에 대해서는 '마당발의 닫힌 연대'로 표현했고, 강교수에 대해서는 '단독자의 열린고립'이라고 표현했는데요.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 - 멋진 말이었죠.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지 - 정혜신 박사가 강 교수를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 "강준만은 '내향적 사고형'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사고와 언어 방면에 가장 정밀감을 보이는데, 매우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객관적 비평을 잘한다. 일의 원리와 인과관계에 관심이 많으며, 실체보다는 실체가 안고 있는 가능성에 관심이 많다. 개인적인 인간관계나 파티 혹은 잡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대인관계에도 적용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가끔씩 자기 아이들이나 자기 부모와의 관계도 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히 따져볼 정도로 객관적인 사람이다"였는데요. 그 분석에 동의하십니까? 강 - 전형적인 모델이 그렇다는 얘기 아니예요? 근데 제가 보면 사람들이 그런 면을 조금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일부 맞는 분석이 있는 거고, 차라리 철저하게 그런 쪽으로 가면 그 방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낼 수도 있겠죠. 근데 전 그 수준까지는 안되는 것 같아요. 지 - 정혜신 박사는 또 "공정성을 가능케하는 거리두기를 위해 그는 자신을 고립무원의 처지로 몰아넣었다. 그렇다면 이 '책임을 위한 고독'을 버티게 해주는 힘은 무엇일까? 단지 그의 '독립군적 기절' 탓일까?"라고 했는데, 스스로는 그 힘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강 - 그렇게 표현하는 것보다는, 저같은 경우에는 일단 무슨 일이든지 하면 집중적으로 파고들기를 좋아하거든요. 좋아하는 그것이 저를 이렇게 만들어간 것이죠. 그렇게 말씀하시면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어떤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글쎄 그것도 영향이 있긴 있겠네요,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제가 하는 일을 거기에 빠져서 집중하고 싶으니까 다른 것들을 비교적 소홀하게 하는 그런 성향이 있죠. 저한테는 일에 빠져서 깊이 몰두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지 - 노무현 정권이 정권 차원에서 언론개혁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까지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거부해왔고, 어떤 분들은 '지금까진 몰라도 대통령이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강 - 근데, 그 인터뷰 거부에 대해서 '대통령이 그래선 안된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조선일보 기자들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안되겠죠. 하지만 왜 단독 인터뷰를 거기하고 일부러 해줘야 하냐는 거예요. 김대중 정권하에서는 김대중 정권의 실세들, 여권 정치인들, 고위 공직자들이 조선일보에 기고하고, 인터뷰하고 그랬다구요. 노정권에서는 그짓하면 절대 안됩니다. 확실하게 선을 긋고 가줘야 된다는 거죠. 독일에서 헬무트 콜이 15년간 슈피겔지하고 전혀 인터뷰를 안했는데, 그게 무슨 언론 탄압이고, 통제예요? 조선일보도 수많은 신문 가운데 하나일뿐인데, 어차피 선택을 해야 할 거 아니예요. 모든 신문들하고 다 인터뷰를 해주고, 모든 신문에 다 기고할 건 아니잖아요. 그럼 비교적 자기의 뜻을 왜곡하지 않고, 잘 전달해주는 신문하고 인터뷰를 하고, 기고를 해주는게 뭐가 문제냐는 거예요. 그런 발상자체가 오만한 발상이라는 거죠. 대통령이 되었으니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통령 기자회견때 조선일보를 내쫓으면 좋겠지만, 그건 좀 심한 것 같고, 하지만 인터뷰나 기고는 다르다는 것이죠. 그것을 언론개혁 관련해 가지고 보니까, 이번달 말지에 언노련의 정책전문위원 양운석씨가 그렇게 썼더라구요. 큰 흐름이 두가지인 것 같아요. '노무현 정권 니가 뭘 해라. 뭘 해줘야 한다'는 최소한의 여건조성을 강조하는 쪽이 있고, 거기에 기대를 걸면서도 무게 중심을 결국은 시민사회가 맡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 가지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노정권에 기대하는 것은 일단 언론개혁에 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게 해줘야 하구요. 그동안 제대로 못해왔잖아요. 또 과감하게 공적자금 투입해서 가칭 신문배급공사도 해줬으면 합니다. 정간법 개정 속에 언론개혁 속에서 요구했던 내용들 그런거, 그리고 지역 차원의 공공커뮤니케이션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예산 지원하는 문제, 또 지방언론 육성법, 지방언론을 육성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지방언론의 개혁도 동시에 이루는 것도 좋겠죠. 기준과 잣대로 어떠 어떠한 기준에 합당할 경우에 지원을 해주면 개혁을 끌어낼 수도 있겠죠. 그렇게 하면 개혁과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하고, 그런 몇가지는 노 정권이 해줘야 되죠. 근데 그건 기본이고, 그것만으로는 안되요. 제가 기대거는 것은 시민운동단체들인데, 그 단체들의 조중동 의존도를 낮춰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방송 쪽이 좌, 우,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시민단체들에게 고정된 시간을 할애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자는 거죠. 그럼 조중동에 목을 매달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지 - 방송국이 그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강 - 답답한게 시민단체가 그것을 요구하지 않아요. 저도 시민단체 회원이지만, 집행부에서 그걸 요구해야하는데, 하지 않는다는 말이예요. 그러니 방송사들이 시청률 위험부담이 있는 건데, 무엇 때문에 알아서 하겠습니까? 막 악악대도 걔네들이 할까 말까 한 일인데. 그 성공 사례가 '책, 책, 책' 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만들면 시민운동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단 말이예요. 그러면서 연예인들도 시민단체에 참여하고, 가입하게끔 고무시키는 쪽으로 해줄 수 있죠. 얼마든지. 또 모르겠어요. 시민운동 단체들 가운데 경건주의자들이 있어 가지고, '시민운동을 연예인들과 더불어서 희화화하느냐?'고 할 수도 있고, 느낌표에 관해서도 고대 김화연 교수 같은 경우 얼마나 발끈합니까? 그런 분들도 있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보거든요. 시민운동단체들이 여태까지 조중동의 막강한 홍보력을 염두에 두고 그쪽과 취해왔던 평화공존노선, 이거 이제는 더 이상 안된다는 거죠. 근데 밑도 끝도 없이 걔네들하고 끊고 살아라 하면 무리한 요구니까 방송쪽에 시민운동의 저변을 넓혀달라고 요청하자는 거죠. 방송사에서 캠페인들 많이 하던데, 왜 그런 캠페인은 안해요?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고 욕하지만 말고, 가입을 해서 회비를 내줘야 시민운동 돌아갈 거 아닙니까? 그럼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도 아니니까 방송쪽에서 캠페인을 할 수도 있고, 드라마에 집어넣을 수도 있잖아요. 간접 광고 막 해대면서 그런 메시지 좀 집어넣는 거 왜 안 되느냐는 말이예요. 방송이 해줘야할 역할이 있는건데. 저는 오락을 자꾸 이용하자는 쪽이예요. 오락을 적대시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것 같구요. 노 정권이 해야 할 일, 시민 사회가 해야 할 일 동시에 같이 가자 이 말이죠. 언론 개혁 내부쪽에서 논쟁 좋아하시는 분들은 '우선 순위가 이거다, 저거다' 해서 싸우고 계신데, 싸울 필요가 뭐가 있냐는 거예요. 둘 다 해가면 되는 거죠. 지 - 김대중 정권의 언론개혁 성과에 대해 논란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강 - 김 정권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가 그거라고 보는데(웃음), 세무사찰이 어떠어떠한 기획에 의해 나오고 이런 얘기들이 지금 나오지 않습니까? 사실은 노무현 승리의 이면 중에 이런게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김대중 정권과 조중동이 피튀기면서 싸운 거 아닙니까? 그래서 누구에게 유리했고, 불리했고를 떠나서 그 싸움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중동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건 분명하다는 이 말이예요. 조중동을 열심히 지지하는 당파성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더 조중동, 조중동 하고 응원을 했겠지만,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사회적으로는 조중동에 타격이 갔죠. 정권은 어차피 그런 거라고 사람들이 접고 들어간다는 말이예요. 조중동의 영향력이 약화된데, 인터넷도 엄청난 역할을 했지만, 그 싸움 자체도 인터넷에서의 여러 가지 담론생산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하나의 이슈를 제기해준 거 아니냐는 말이예요. 지금 권언유착 얘기 나오지만, 초기에는 어땠는지 모를지언정 세무조사 들어가면서 그거 하나 확실히 끊은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당장은 실감이 안가겠지만, 먼 훗날 돌아다보면 권언 유착이 결정적으로 끝난 것은 김대중 정권하에서였구나 하는 것을 인정해줘야 할겁니다. 근데 그런 건 계량화도 안되고, 누가 좀 살펴가지고 파악해주지 않으면 업적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실정으로 넣는단 말이예요. 지 - 노무현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수구신문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무현은 오히려 포퓰리즘과는 상관없는 행동을 많이 한 것 같은데요. 하다못해 촛불시위때 보여줬던 행동을 보면 이회창이 훨씬 더 포퓰리즘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 -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무엇을 반증해주냐 하는 것이 '얘들이 당황하고 있구나' 하는 거예요. 공격할 메뉴가 없으니까 조금 영어 단어 비슷한 걸로 얘기하면 '뭔가 있을 것 아닌가'하고 사람들이 생각할 거라고 착각하는 거죠.(웃음) 대항할 뭐가 없는거예요. 그러니까 갖다대는 것이 포퓰리즘이죠. 요즘 조중동에 글쓰는 사람들은 개나 소나 포퓰리즘하던데, 지들이 포퓰리즘을 알기나 하나, 말도 안되는 수작이죠.(웃음) 단어가 멋있나보죠?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거 보면. 지 - 조중동은 포퓰리즘이라는 단어 안에 아르헨티나를 연상시키면서 '무책임한 선동'이라는 코드를 집어넣는 것 같은데요. 강 - 포퓰리즘 얘기하는 사람들보면 이 사람들이 예전부터 일관되게 그걸 주장해왔다면 사안별로 들어가서 비판을 할 지언정 동의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이 사람들이 바로 얼마전까지 썼던 글을 보면 '정치는 썩었다'고 정치권 욕하면서 '국민이 무섭지 않느냐'고 하면서 국민의 심판이나 참여를 엄청나게 부르짖었던 사람들이란 말이예요. 그러니까 사기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죠. 자기들이 정략적으로 정치권 공격할때에는 실체도 없는 국민의 이름을 앞세워서, 국민의 이름으로 비판해 놓고, 이제 제대로 된 참여를 실시해보자고 하니까 이제 참여를 막으려고 한단 말이예요. 앞뒤가 맞지 않는거죠. 우리가 참여라는 말을 좋은 뜻으로 써왔겠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신용 그 이외에 이런 것들도 있다고 봐요. 소위 보수적인 엘리트들이 느끼는 생리적인 거부감 같은 것이 있다는 거죠. 정략같은 것을 떠나서 일개 네티즌들이 뭔데 떠드냐는 거예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그들이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어요. 내가 신문에 칼럼 한 줄 쓸 수 있을때까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자기들이 볼 때 박사 학위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애들이 인터넷에서 능력과 실력을 검증받아 명논객으로 등장하는데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이것은 자기들이 의식못할 수도 있어요. 강한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 언론인들이 정략적인 것을 떠나서 가지고 있는 거부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참여로 인해 자기들이 위협받게 되는, 과거에는 교수, 언론인이 한마디를 하면, 사실은 군림했던 것도 아니지만, 거기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채널이 없었던 것 아닙니까? 인터넷이 그걸 가능케해준 것 아니예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줬잖아요. 그럼 인터넷 참여만으로 문제가 있다면 보완할 수 있는게 많이 있어요. 근데 참여를 인터넷으로만 몰고 가서 인터넷 포퓰리즘이 어떻고 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위기감, 철학의 빈곤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꽤 똑똑한 것 같은 사람들도 단어가 멋있어서 그러는지 포퓰리즘, 포퓰리즘 하는데 왜그런지 모르겠어요.(웃음) 지 - 중앙일보 기자로도 계셨죠? 기자 생활을 해본 것이 실용적인 글쓰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셨다고 보십니까?
강 - 근데, 그거는요. 수습도 안 끝내고 그만뒀기 때문에 아예 언급을 안해주는 것이 제가 쪽이 좀 덜 팔릴 수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웃음) 제가 일을 했어야 '제가 있었을때와 비교해보면' 이런 얘기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웃음) 지 -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을 민주당 이데올로그로 의심하는 시각도 꽤 있는 것 같은데요. 강 - 일부 사람들이 그런다고 보고, 꽤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참 어제 당파성 얘기를 한 것하고 연결이 될 것 같은데, 아닌게 아니라 세분화를 한번 시켜봐야 되겠어요. 당파성이라는 말 한마디로 담기에는 너무 다양한 입지들이 그 안에 혼재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제가 초당파성이라는 건 믿지 않는데요. 어느 선까지가 정당한거냐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가령 대북문제에 대해서 이 정권, 이 정치세력, 이 정당은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저랑 생각이 같아요. 그럼 그 정당을 옹호하고 지지해주는 건 필요한 거고, 근데 사안별로 분석 들어가면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당파성의 문제가 당파성과 균형의 문제인데, 예를 들어서 조선일보가 못된 짓을 했고, 한겨레도 못된 짓을 했어요. 그럼 한겨레가 못된 짓을 한 것에 대해 저도 비판을 하겠지만,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것에 비해 강도도 약할뿐더러 빈도도 줄어들 수 밖에 없겠죠. 자 그러면 팔이 안으로 굽느냐고 비판할텐데, 저는 그게 뭐가 나쁘냐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가 한겨레나 조선일보나 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제3자로서 한번 심판을, 판정을 내려 보겠다는 건데, '한겨레 니들 나쁘네' 하면서 조선일보 때리듯이 똑같은 매를 때린다, 이런 것에는 찬성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게 아름다운 초당파성으로 통용되는 것 같은데, 저는 그걸 넌센스라고 보는거예요. 그럴려면 저기 '산에 가서 혼자 살라는 거죠'.(웃음) 물론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예요. 그런 사람도 필요하죠.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금 제가 옹호하는 당파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거죠. 자기가 그런 입장이라면 다른 입장도 다양성의 차원에서 인정해줘야죠. 다른 분도 '뭐 어때'라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주장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러면 '아 이 사람은 이런 지식인, 그 사람은 그런 지식인' 이렇게 보면 되는 거지, '너는 내 기준에 아니니까 넌 지식인이 아냐' 이런 식의 이야기는 좀 웃기지 않느냐는 겁니다. 근데 제가 당파성 강조한 것은 신문 칼럼에 교수들 글쓰잖아요. 전 당분간 그랬으면 좋겠어요. 끝에다가 '이 칼럼은 본지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고, '이 필자의 정치적 색깔은 무슨 당을 지지하고 있고, 대선때는 누구에게 표를 던졌는지를 알고 이 칼럼을 읽으십시오'라고 써줬으면 좋겠어요.(웃음) 근데 교수들이 절대 안그러거든요. 자기가 모든 정치세력을 아울러서 심판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선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대망상인거고, 숨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위선적인 플레이인거죠. 드러내자 이거예요. 드러내서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지, 당파성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고서는 절대적인 잣대, 절대적인 진리가 있는 것처럼 말하면 안된다는 거죠. 사람사는 세상에서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다 이익가지고 싸우는 건데,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그건 똑똑한 중학생 수준에서나 고민해볼 그런 이야기 아닌가요?(웃음) 머리가 다 큰 사람들이 말이 안되는 거죠. 그런게 논쟁이 된다는 것도 웃기는 것이고. 지 - 문부식씨가 조선일보 연재를 시작했고, 앞으로도 조선일보도 최소한 겉으로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일 것 같은데요. 이런 시점에서 지식인과 시민단체의 조선일보 활용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터뷰나 기고에 대해 기존과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강 - 조선일보가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을 벌일 정도의 그것만 보여달라는 말이예요. 하나만 얘기합시다. 방씨 일가 건드리는 건 안그러고, 봐준다고 하더라도 조선일보가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 같은 것만 벌여준다면, 뭐가 문제예요. 활용해야죠. 다 뛰어 들어갑시다. 근데 그거 할 수 있느냐 말이예요. 지금 문부식씨의 활용이라는게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어떻게 나타나고 있냐는 말이예요. 자신들의 평소 주장을 문부식씨의 입을 통해 하고 있는거잖아요. 거기에 무슨 진보적인 담론이 있냐는 말이예요. 뭘 활용하자는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뒤늦게 두산 건에 대해서 보도를 했다고 하는데, 아니 그동안 보도를 안하는 태도가 미친 행태고, 언론이 아닌거지, 그럼 그 큰 사건을 보도 조차도 안해줘요? 지들이 얼마만큼 치졸했던 신문임을 보여주는 거지, 그게 왜 그들이 변화하는 증거냐 이 말이예요. 그러니까 조선일보 활용론에 대해서는 딱 하나 국가보안법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잘못 생각했다'면서 조선일보가 앞장서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하면 박수치죠. 조선일보에 성금 보낼 뜻도 있어요. 그런 정도의 변화는 보여줘야할 것 아니예요. 또 그건 자기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도 맞는 거잖아요. 그런 정도는 해야 얘네들이 달라지는구나 하지, 지금 달라진게 뭐가 있어요? 잔머리만 계속 굴리고 있지. . 지 - 어떤 분들은 과거의 말을 일일이 추적해서 비판하는 방식에 대해서 '원형감옥'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기를 들춰봐도 어제와 오늘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데요. 비판받는 쪽의 입장에서는 공정성을 의심할 여지도 있을 것 같습니다. '딴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왜 나만 표적이 되느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강 - 세금떼먹는 놈 대한민국에 수백만명인데, 그럼 아무도 못 건드리죠. 부패사범들 다 억울하다고 하지. 지금 SK 최태원 회장이 반성하고 있겠어요. 왜 삼성은 안건드리고 나만 건드리냐고 생각하겠죠? 그렇다고 해서 법이 개입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럼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니가 얘를 모르고 있나본데, 얘도 해줘라' 그러면 되죠.(웃음) 그렇게 하는데, 제가 비판 안하면, 제가 욕먹어야 되겠죠. 근데 그게 도움이 되요. 저도 당하잖아요. '아, 전에 내가 이런 말을 했는데, 잘못된 거구나' 하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공부가 됩니다.
지 - 문학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300만원 어치의 책을 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강 - 그런 말은 쓰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식의 표현이 거부감을 주는 것 같아요.(웃음) 그런 점은 반성하고 있어요. 근데 사실은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그때 당시의 정서는 이거 같아요. 나는 여태까지 문학권력을 비판했지만, 문학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거의 경외감을 표현했다고 보는게, 절대 소위 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을 제가 들어가본 적이 없어요.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문제이고, 언로의 문제니까 내가 다룰 수도 있는 주제다, 그래서 나는 잘모르는 문외한이면서도 할 수 있겠다, 내딴에는 그걸 좀 강조하는 거였죠. 예를 들어 문학평론을 어떤 사람들이 한다, 극소수일 망정 나도 이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도 제가 문학비평을 한 적 있어요? 없잖아요. 저의 일종의 겸손의 표현이었는데, 좀 상스러운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지 - 개인이 소화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데이터는 한정이 되어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많은 데이터에서 자신이 필요한 자료를 취사선택을 잘하시는 것 같은데요. 비결 같은 것은 있으신가요? 강 - 잘하고 있다기 보다는 이런 것 같아요. 제가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수준에 이른 것도 아닌데, 남들이 안하던 짓을 한거죠. 제가 그걸 해보니까 문제가 있는 것이 뭐냐하면 일단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되요. 근데 그 자료를 가지려면, 자료를 담아둘 공간도 필요하고, 자료비도 필요하잖아요. 그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 저는 글쓰기를 해서 벌어들이잖아요. 그러니까 몇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하려고 해도 그런 것 때문에 못하겠더라구요. 다만 저는 제가 했던 그 작업을 특화시키고, 전문화시킨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고,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했다는 것 뿐이지 대단한 수준에는 전혀 못갔죠. 원래 일이 잘됐더라면 제가 꿈꿨던 것은 그야말로, 아까 원형감옥 얘기도 하셨지만, 적어도 공적인 언로에 참여하는 사람들, 국회의원서부터 시군구 의원까지의 발언을 전부 체크해서 '너 지난번에 무슨 얘기했잖아' 하고 딱 나올 수 있게 만드는 거였어요.(웃음) 그게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원형감옥이예요? 지 - 그런 데이터들이 데이터베이스화해두면 훨씬 찾기 쉬울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겠지만, 그렇게 할 계획은 없으십니까? 강 - 그게 사실은 일간지들이 해줘야되는 것인데, 일간지들이 기존에 쓰는 인력을 조금만 활용하면 될 것 같은데. 지 - 그걸 일간지들은 일부러라도 안할 것 아닙니까? 자기들은 정치에 대해 적당히 혐오감을 심어주면서 필요한 놈만 공격하는게 유리하다고 생각할텐데요. 강 - 그렇게 해봐야 수지타산이 안맞으니까 그러겠죠. 거기에 엄청난 인력이 투입될텐데, 판매하는 용도로는 적절치 않다는 말이죠. 제가 그렇게 말하는 기본 취지는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자는 거예요. 우린 지금 너무 안그런다는 말이예요. 말 무서운 걸 알아야 되는데, 저는 좀 알거든요. 제가 뱉었던 말 때문에 제 인생 나머지가 규정 당한거 아닙니까? 사실은 제가 다른 것을 하고 싶어도, 제가 뱉었던 말 때문에 못하는데, 그게 효과가 있거든요. 지 - 방대한 자료를 들춰보다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에 대한 충분한 평가를 할 수도 있지만, 직접 만나게 되면 그것에 대해 확인을 할 수도 있고, 더 심도있게 다룰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안만나시는건 일의 효율성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아니면 만나게 되면 객관적으로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십니까? 노무현 대통령도 예전에 책이 나온 걸 보고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안 만나줘서 처음에는 무시당한 것 같아 상당히 불쾌했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요. 강 - 그건 두가지 측면이죠. 그런 식의 작업이 전부라는 게 아니고, 이 사람이 공적으로 발표한 것에 한한 비평이고, 비판이라고 선을 그어 놓은 것이었구요. 그것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직접취재를 통해 보완하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갖는 위험부담도 있다는 거죠. 솔직히 말해서 지식인들이 쓴 글을 보다보면 그 안에 친분 관계가 읽혀요. 만나서 친하게 지내는데, 이 사람을 비판할 건수가 생기면 아무래도 약해지죠. 글쎄 그걸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늘 고민하는데, 답은 잘 안나오더라구요. 뭐냐하면 이 사람이 공식적인 행위를 통해서는 보수적인 것을 해온 사람이예요. 관료도 좋고, 정치인도 좋고 그런데, 이 사람의 사적인 삶은 성인군자예요. 이웃사람들에게 겸손하고, 남모르는 선행도 베풀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근데 이 사람이 정책이라든가 이런데서는 빈곤층에게 아주 야박한 정책을 집행하는 등 정책면에서는 '보수꼴통'이예요. 근데 개인적인 면에서는 더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예요. 반대로 한번 상정해보자구요. 그야말로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 약자를 배려하는 진보적 지식인이예요. 근데 사적 생활은 개판이야, 돈 꿔가지고 잘 갚지도 않고, 약속도 잘 안지키고, 아주 권위주의적이고, 오야붕·꼬붕 관계 만들어서 대학원생들을 종처럼 부린다든가, 학생들 시켜서 돈 한 푼 안주고, 자기 업적인양 한다든가 하는 극단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자구요. 그러면 참 어려워요. 어떤 지식인들의 사적인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면 그것 때문에 공개적으로, 공적으로 했던 것들이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확답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거죠. 사람 됨됨이 문제인데, 공적인 발언이라든가 언행 같은 것은 취재가 필요없거든요. 그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직접 만나서 인간적인 모든 것을 알아봐야 하겠다는 건 공과 사의 균형을 취해야된다는 건지, 저 자신도 교통정리가 아직 안된 문제라는 거예요. 이건 저 자신도 두고두고 고민해야할 지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에서 보통 인간성 그러잖아요. '저 자식 인간성이 나빠'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요. 보통 '저 자식 인간이 안돼 있어'라고 말하는게 '선배를 몰라봐, 위 아래를 몰라봐, 자식이 예의가 없어, 잘난 척해' 이런 식으로 안좋은 기존의 위계질서, 연고, 정실 등 바람직하지 않은 기존의 관행을 지키지 않을 때 인간이 안됐다고 한다는 말이예요. 저는 그런 식으로 쓰이는 표현에 대해서 대단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원래 의미대로 인간 됨됨이가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면 저는 중요하다고 보는 거예요. 아주 야비하게, 자기 말만 앞세우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남 뒤통수 치는 짓을 한다든지, 남이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여기저기 퍼뜨린다든지 하는 것은 인간이 안된거잖아요.(웃음) 사람이 공개적으로 한 행동과 그런 인간성과의 관계 이런게 참 어렵더라구요. 우리가 한번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말하는 개혁이라는 것도 사실은, 사회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공식적 부분에만 관심을 쏟아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시민단체건 개혁국민정당이건간에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데, 그 사람이 내세우는 공개적인 아젠다, 주의, 주장 그것보다는 그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조직의 성패가 달려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것에 따라 조직이 잘되기도 하고, 내분을 일삼다가 끝나버릴 수도 있거든요. 우리가 여태까지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그 조직이 내걸었던 목표가 무엇이었을까, 공식적인 발언이 무엇이었고, 행동이 무엇이었나 하는 것이었거든요. 나머지 중요한 것은 술좌석에서 씹는 그런 정도만 해왔거든요. 그런데 정말 조직의 성패나 사회기여도는 공식적인 부분보다 비공식적인 부분에서 결정되는 것이 많더라는 말이예요. 그럼 우리가 조심스럽게 의제로 삼아야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전 그런 책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운동권 과거의 회고담 비슷하게 하는 그런 것 말고, 예를 들어 MBC 김중배 사장이 조직원들을 폄하하란 뜻이 아니라 '내가 MBC에 시민운동을 쭉 해오고, 언론운동을 쭉 해온 사람으로서 들어가 봤더니 조직이 이러이러한게 있고, 누가 방송사나 유사한 조직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 같더라. 그럴땐 이렇게 해보자' 하는 식으로 책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여태까지 그런 책을 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사람들이 나빠서 그렇다기 보다는 그런 것을 진지하고 공개적인 논의대상으로 삼는 문화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죠. 이런 것을 어떻게 조심스럽게 공적 논의 주제로 끌어들일까, 술좌석에서만 소모하지 말고 말입니다. 사실은 아깝잖아요. 사실은 그런게 가장 중요한 건데, 그런데 그 경우에는 실명으로 하기에는 인신공격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 어렵고, 실명비판보다는 하나의 유형을 제시하면서 사례를 익명처리해서 '이러이러한 문제가 나타났다. 그러면 바로잡아가고 고쳐야 할텐데, 이렇게 해보자'는 식으로 해야할 것 같아요.
지 - 대단한 독서가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에 책을 평균 몇권 정도 읽으십니까? 강 - 뭘 쓸때 몰아서 많이 읽고, 일단 책 사오면 목차를 한번 훑어보구요. 그때 그때 이용해야될 책에 대한 집중도가 다르니까 몇권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지 - 지금까지 수십권의 책을 내셨는데, 언젠가 보니까 '내는 책을 세지 않는다'고 하시던데요. 강 - 다작이 좋은 소리를 못듣잖아요. 못들을 걸 왜 세겠어요? 안세죠.(웃음) 지 - 그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어떤 책입니까? 강 - 애착이 갈 책을 지금 쓰고 있죠. '한국현대사 산책' 70년대편은 사실 제 기준으로는 실패작이예요. 80년대편은 조금 더 제 이야기로서 접근하려고 합니다. 저는 좀 그게 원칙적으로 보면 그런 책을 쓰는데, 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거든요. 제가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제가 깊이 개입하는게 바람직하지 않겠다 싶어서 '나는 인용 인용해서 퍼즐 맞추기로 제시만 할테니 알아서 감상해주십시오' 하는건데, 독자 입장은 안그렇잖아요? 그래서 전문가도 아닌데 하는 저어감은 있지만, 때로는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무슨 전문가인가 싶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이번에 이문열씨가 한 역사와 관련된 발언, 만약에 전문가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도 전문가가 아니어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니예요? 그래서 현대사를 쭉 전분야에 걸쳐 보면 전 분명히 박정희 신드롬이 문제가 있다고 보니까, 오늘 우리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 그때부터 비롯된 것이 많다고 보니까, 거기에 국한시켜서 보자면 저도 전문가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갖게 됐어요. 다작과 관련해서는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안에서 중립은 없다'를 읽다가 그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사람이 베트남 전쟁때 그 타이밍에 맞춰 급박하게 책을 하나 써냈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저 같은 경우 타이밍을 맞춰서 급박하게 써낸 책이 많거든요. 폐기처분했지만, 예를 들어 노무현과 관련해서 '정치는 3류, 국민은 4류' 이런 걸 썼는데, 저는 그게 필요하다고 봐요. 다작에 대한 일부 안좋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 대해서는 항변을 하고 싶어요. 한국에는 어떤 문화가 있냐 하면, 차라리 철저한 상업작가를 저는 존중을 해줘요. 또 교수가 글쓰기를 사회개혁적 목적에서 당장의 시급한 목적을 위해서 쓸 수도 있지만, 우리는 사회와 거리를 두고 순수한 학술적 목적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저랑 생각은 다르지만 그 분들의 입장을 저는 존중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다작 같은 것을 싫어하죠. 한권을 위해서 몇 년을 바쳐도 될까 말까한데, 일년에 몇권씩 내는게 우스울 수도 있어요. 저는 생각은 다르지만 그분들의 입장을 존중해요. 다만 제가 짜증이 나는 대목이 뭐냐하면 열심히 사회참여를 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이분들이 시민단체에 가입하고, 여기 저기 글도 쓰고 그러면서 이중 플레이를 한다는 말이예요. 그러면서도 학술적인 대접도 받고 싶어하죠. 그런 분들조차 어떤 타이밍에 맞춰서 글을 쓰고, 대중적인 취향의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어요. 전 대부분이 그렇다고 봅니다. 이건 문제 아니냐는 거예요. 자기가 신문에 글쓰고, 대중적인 시민운동의 참여 등 사회참여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학계 내부에서의 인정 투쟁을 위해서 또 다른 학술성의 잣대로 자기의 작업을 그렇게 몰고가는 것은 불만이죠. 그런 이중성 때문에 다작에 대한 저의 컴플렉스가 강화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 - 특별히 좋아하는 사상가나 책은 있습니까? 강 - 전 한두명이라기보다 수십명.... 지 - 웬만한 분들은 한번씩은 다 칭찬해주신 것 같은데요. 김규항, 박노해씨 등등 강 - 근데 칭찬 못하겠대요. 칭찬이 비판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아요. 비판은 제가 비판했던 사람이 나중에 좋은 일하면 제가 비판했기 때문에 사람이 좋아졌구나 하는 그 말을 들을 수 있어요. 근데 칭찬했던 사람이 개판치면 정말 곤란해집니다. 근데 그 시점에 괜찮은 일 했던 사람이 달라진 걸 절더러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웃음) 근데 그걸 끊임없이 시비를 걸고 문제를 삼으니까 왜 사람들이 칭찬을 안하는지 알 것 같아요. 김대중, 노무현 관련된 책들도 계속 시비를 거는게 그거잖아요. 어떤 분은 '김대중 정권의 실패에 대해 책임지고 손가락을 잘라라'라고 하시는 분들까지 계신데, 제가 왜 잘라야 되죠?(웃음) 지 - 선거때도 이 시점에서 내가 이 사람을 지지하는 게 우리를 위해 바람직할 것 같다가 생각하다가 다른 시점이 되면 바뀔 수도 있는데, 그걸 배신이나 변절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요. 언제는 민노당찍고 대선땐 노무현 찍냐고 하시는 분들도 일부 계신 것 같구요. 강 - 대중적 글쓰기 관련해서, 다작과 관련해서 민노당 얘기를 안하더라도 그것 한마디는 하고 싶네요. 민노당을 지지하는 진보적 교수들이 많이 있잖아요. 민노당을 선전해주는 대중적인 책이 한권이라도 나왔습니까? 권영길을 지지하는 책을 한권이라도 썼습니까? 그런 책을 쓰면 불경한 짓이냐는 겁니다. 그게 진보에 대한 모독이예요? 저는 그런 의문이 든다는 거예요. 이게 그 분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 풍토가 그렇다는 거예요. 한국 지식인들이 대중적 글쓰기에 대해서 갖고 있는 아주 강한 편견이 있어요. 지 - "처자식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소시민일뿐"이라고도 하셨는데요.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적이었으면 그렇게 힘든 작업을 택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물론 즐거워서 하시는 일이겠지만, 때로는 고통스러울 경우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강 - 아뇨, 아뇨. 없어요. 재밌어서 하는 일인데. 지 - 힘들다고 생각하신 적이 한번도 없으신가요? 강 - 우리가 좋아서 산에 갈때도 막바지에는 숨이 차잖아요. 그런거지 뭐. 벗어나고 나면 재미있고, 전 제 작업을 즐기는 거죠. 지 - 언젠가 본 글인데, 대한민국 역사에서 언론개혁에 관해 큰 일을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강 - 그런 말을 했었어요? 되게 촌스럽네.(웃음)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나? 지 - 표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월간 인물과 사상에서 그런 뉘앙스의 표현을 하신적은 있으시거든요. 강 - 제 문제점을 제가 지적하면요. 제가 가끔 신파를 잘해요. 그 버릇은 고쳐야돼. 가끔 몰입되어 글을 쓰다보면 신파조로 자주 가요. 근데 다시 원상 복귀를 자주 하니까, 제가 예전에 신파했던 것을 모아놓으면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웃음) 지 -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에서 마리오 쿠오모에 대한 일화를 인용하시지 않았습니까? "쿠오모는 좋은 사람이었다. 대중에게 봉사하는 정신이 투철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는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도 공격하고, 변호하고, 공격하고, 변호하는 일을 계속하다보면, 그렇게 영혼까지 놓치게 되는 것일까?" 이 얘기를 보면 서준식 선생이 말한 "외롭지 않은 자가 온화하기는 쉽다. 그러나 속절없는 고독속에서 괴팍해지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라는 얘기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이 얘기는 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것 같습니다. 강교수에게도 해당될 것 같은데요. 제 판단으로는 지금까지는 영혼을 잃지 놓치지 않고, 균형을 잡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전에도 신파로 갔다가도 원상 복귀를 자주 하신다고 하셨는데요.(웃음) 어떻게 그렇게 해오셨으며, 앞으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강 - 스테파노 플러스가 쓴 마리오 쿠오모 지사에 관한 이야기요? 쿠오모 얘기는 말이 되는게 막 싸움에 몰입하고, 싸움을 전업으로 하다보면 심성이 피폐해져요. 그거 위험하다구요. 저 같은 경우도 초기에 그런 시선을 많이 의식했던 것 같아요. 밤낮 남이나 비판하고, 싸움이나 하려고 들고 이런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이것 역시 신파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역지사지를 잘하는 편인 것 같아요.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기를 잘 하니까 제가 사과도 많이 했잖아요. 사과도 오버해서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무슨 말이냐하면 제가 대단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확인시켜주면서 늘 제가 논쟁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 같아요. 논쟁 자체에서는 예전에는 일종의 컴플렉스 수준이었는데, 나만큼은 반드시 겸손하게 모든 비판과 질문에 답변하겠다는 거의 '성실강박증'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반경환씨 얘기에 거의 반론을 하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죠.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성실하는 것은 이미 입증되었고,(웃음) 나중에 성실하지 않다고 욕먹을 때 다시 살펴보더라도 지금은 논쟁을 좀 피하고 싶어요. 저도 좀 서운하죠. 제가 하던 것이 결실을 맺었으면 좋았을텐데요. 묘하게 지식인들 글 읽어보면 논쟁을 폄하하더라구요. 이번엔 나온 레비스트로스 회고록을 읽어보면 '논쟁할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하고, 촘스키 같은 경우에도 '무시해야 옳을 사람은 무시하고 나가야지,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 이런 식의 이야기들을 하거든요. 완전하게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약간 위험성도 있고, 한계도 있기는 있지만, 제가 어디다가 썼던 표현이지만, '3.8선 혼자 막겠느냐'는 것처럼 결국은 알게 되고,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걸 비교적 믿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는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한다, 두 사람에게 생산적인 논쟁이 될 것 같다고 하면 계속 논쟁하죠. 근데 이것도 아니구나 생각되면 이제 논쟁을 안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논쟁을 하면서 참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 것 같아요. 논쟁을 하면서 논쟁하려는 원래 이슈는 없어져버리고 아집싸움이 되잖아요. 동네 애들 싸우는 식으로 '내가 더 잘났다, 니가 더 잘났냐?' 이런 식의 싸움이 되는거죠.(웃음) 지 - 공창논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 - 언론개혁에 관한 문제에 집중하죠. 왜냐하면 제가 과대평가되는 것에 대해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이 되어 있으니까 말할 수 있겠다고 할 수는 있지만,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전공이 아닌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가 좀 꺼려져서 그렇거든요. 지 - 노당선자가 한겨레 방문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특정신문 방문에 대해 비난하는 분들도 있고, 당선자로서의 첫 번째 인터뷰를 오마이뉴스와 한 것에 대해 '자기를 도와준 매체만 상대하냐?'고 비난하기도 하는데요. 강 - 되게 과민하게 반응하는데,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앞으로 계속 노무현 정권이 감당해야될 문제도 그런 것에서부터, 장관 조각하는 문제서부터 앞으로 보일 모든 것이 시비거리가 되는 것 같아요. 노무현의 등장이 기존의 고정관념, 기존의 행태에 대한 자극이 계속 될거라는 거죠. 그게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은 거기다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면서 비판해대고 그러겠지만, 제발 좀 여유, 신축성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야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건 자기들이 생각하는 관례였겠죠. 거꾸로 가면 좀 어때요? 그들이 얼마만큼 굳어있고, 밴댕이 속인걸 보여주는 거죠.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온 거잖아요. 지 - 대북지원금에 대해 한나라당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통치행위라고 말하고 있고, 야권과 언론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진상을 밝혀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얼마전 특검법이 통과되었고, 오연호 대표도 특검제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이던데요. 강 - 사실은 그 문제도 제 전공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아니 그러면 니가 전공이라서 김대중 옹호하고, 노무현 옹호했냐고 할지 모르겠는데요.(웃음) 그것은 언론을 중심으로 한 부당한 차별과 조작에 대항을 한 것이구요. 제가 일개 시민으로서의 특검에 대한 생각은 있죠. 제가 이야기하는 게 그것도 온당치 않은 것 같아요.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 이런 거면 모르겠습니다.(웃음) 노무현이 그렇게까지 갈 수 밖에 없을거라고 사석에서 말한 건 구경꾼으로 말한 것이지, 거기에 대해 제 입장을 밝히긴 그러네요. 그것도 그냥 넘어가면 안될까요? 우리 언론개혁에 집중합시다.(웃음) 지 - '김대중 죽이기'에서 "김대중은 논리의 일관성보다 더 중요하고 무서운게 이미지의 일관성이란 걸 깨달았어야 옳았다. '논리'라는 추상적 무기로 분명한 실체를 갖는 '이미지'라는 방패를 깨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는 것이다"고 하셨는데, 노 대통령에게도 여전히 해당될 것 같습니다. 김대중에게 지적하신 부분을 노무현은 적극적으로 잘 대처해나가는 것 같기는 한데요. 여전히 조중동의 이미지 조작을 통해 나이드신 분들은 '불안하다. 경솔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은데요. 수구신문의 이미지 조작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강 - 저는 그게 걱정이 되는게 인터넷 격차가 거기서 문제가 될텐데, 조중동이 그런 쪽으로 몰고 가버리면 그 신문만 보고서 노무현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데요. 그럼 그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건데, 자꾸 갈등의 골만 깊어지게 할 것 같아요. 조중동은 그것만 물고 늘어질 수 밖에 없을거라구요. 이게 조중동 개혁의 이유와도 연결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처음에는 스타일에 대한 거부감인데요. 이게 스타일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스타일이 알맹이 못지 않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거든요. 그 스타일이 상징적인 것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그것이 결부될 수 밖에 없는 알맹이로의 연결이 있을 수 있는거죠. 자, 그럼보세요. 노무현이 소탈한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하면 그게 스타일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탈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의 행태가 미칠 파급효과, 그것을 그들이 원하겠느냐는 거예요. 그들에게는 그게 실질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결사 거부하는 것 아니겠어요? 리더십 개념 자체도 바뀌어야죠. 자꾸 계몽 어쩌고 하는데, 계몽 더 해야죠. 왜 계몽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자꾸 얘기하는거지만, 계몽을 서로 주고 받으면 되잖아요. 네티즌들도 서로 계몽하고 그러잖아요. 리더십에 대한 고정관념, 대통령은 어떠어떠해야한다는 생각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 지 -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에서 "개혁을 발목을 잡는 건 수구기득권 세력일 뿐만 아니라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들의 지배 체제하에서 '길들여진' 대중의 의식구조와 관행도 포함된다. '스톡홀름 신드롬'의 경우 '인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범인에게 동조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감 때문에 범인들에게 동조적이고, 협조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것인데, 우리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그런 불안과 공포로 10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그것을 '코리아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대중에게 적당히 아부하는 다른 지식인과 달리 이런 지적을 하다보니 대중들에게 '지식인 나부랑이가 우리를 가르칠려고 든다'는 반발 역시 많이 당하시는데요. 결국 이렇게 대중과 각을 세우면서 대중을 설득해야하는 딜레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에 서울댁의 의견에 대해 반론한 적도 있으신데요. 강 - 그것을 조금 떨어져서 보면, 지식인들이 감히 계몽의 역할을 자임했잖아요. 네티즌들이 거기에 대해 반발하죠. 그럼 그쪽도 계몽을 시도하는거죠. '계몽하지 말라'는 주장도 계몽이라는 겁니다. 그럼 피장파장 아니냐는 거예요. 그럼 글을 썼던 사람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되는 거죠. 다만 극렬하게 반발을 했던 사람도 그 비판 속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줬을 거라는 겁니다. 그럼 소임을 다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반감, 거부감, 맹렬한 비판 그런 것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고, 날조된 것을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면 감당하면서 넘어가고 그래야죠. 지 - '이 나라 개혁의 요체는 주류 콤플렉스와의 전쟁'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조중동을 보지 않으면 비주류가 될 것 같고, 남들이 다 보는 영화나 책을 보지 않으면 소외되는 것 같아 한쪽으로 몰려가는 정서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노대통령 당선으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강 - 조금 기여도 했고, 앞으로 조금 달라질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거죠. 군대에서도 가끔, 또 대학 동아리에서도 가끔 후배들에게 군기세우면서 '야자타임'을 갖거든요. 근데 야자타임의 효과라는게 어떻게 보면 위계의식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그것이 해소된 것으로 착각하고, 다시 자기도 모르게 주류 콤플렉스에 빠질 수 있는거죠. 그리고 선거는 축제적인 성격이잖아요. 이걸 보면 될 것 같아요. 투표행위를 통해서는 호남인들이 진보적이거든요. 근데 투표는 비밀투표라 내가 잃을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내 본심대로 투표를 한다고 해서 잃을 것은 없죠. 그런데 투표만 그렇다는 거예요. 하다못해 신문 구독만 해도 이야기가 달라요. 다른 문제가 된다는 거죠. 주류컴플렉스 극복에 대해 노무현이 기여한 점도 있고, 기여할 점도 있고, 긍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게,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역사적인, 지정학적인, 지리적인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좁은 나라에서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인구밀도 높지, 미국처럼 넓은 나라에서는 이곳 아니면 저쪽 서부로 가서 먹고 살 수 있는데, 여기는 여기서 밀리면 나갈데가 없어요. 바다로 빠져야 되는거야, 주류를 잡아야지, 그게 안되면 그 근처에 가서 동정이라도 살펴야 살 수 있잖아요. 인터넷에 호남 독자가 그런 말을 썼더라구요. 호남인들의 아픔을 알만한 놈이 왜 호남 비판을 하냐고.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주류에 민감하고, 그걸 극복하는게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인내심을 갖고 해야 될 것 같은데, 완전히 없애기는 어려울 것 같고, 중심의 눈치를 안 보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게끔 해야 되는데, 우리가 당장 봐도 내부고발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지려는 얼마나 걸리겠어요? 오래 걸릴 거 아니예요.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자꾸 머리를 짜내서 그것을 진작시킬 수 있는 제도, 법을 바꿔나가는 노력도 하면서, 계몽도 필요한 것 아니냐는 거예요. 구조와 문화 두 사이에서 동시에 다 같이 가자는 거죠. 구조와 문화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거잖아요. 문화가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확대재생산시키는 효과도 있으니까 계몽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겁니다. 다만 계몽의 방식에 대해서 반감을 가질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할리우드 영화는 계몽 아닙니까? 노골적인 선전, 세뇌에 대해서는 항변하지 않잖아요. 걔네들은 교묘하게 은밀하게 주는 거고, 계몽담론은 벌써 시작하는 사람들이 우월적 위치를 가진 것 같은 것이 거부감을 주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계몽을 주장하는 저같은 사람도 고쳐야죠. 다양한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저는 제 방식이 있고, 다른 사람은 다르게 접근하면 되는 거고.
지 - 상대방이 미리 '저 사람은 지식인이니까 내 위에서 훈계하는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갖고 보게되면 설득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강 - 그런 사람들도 있구요. 아직까지도 권위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대로의 접근 방식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방식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거죠. 글쟁이들도 이 사람은 이런 장점과 한계가 있고, 저 사람은 저런 장점과 한계가 있을 수 있거든요. 총체적인 효과를 기대해야지,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지 -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에서 "한국인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개인적인 공간에서만 투사일 뿐이다. 그들은 다른 영역에선 보수주의자가 되며, 극우 파시스트의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왜? 그들은 그것이 생존과 성공의 법칙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면서 우리 사회가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과 응징이 없었다고 지적하셨는데요. 아직 친일파도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청산하기엔 너무 늦었거나, 사안이 복잡해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청산하려면 극렬하게 저항하는 세력들이 있을 것이고, 안하자니 사람들의 그런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구요. 강 - 그런 점에서 인터넷이 기여를 한다고 보는데요. 신문에 쓰는 칼럼만 보더라도 대중들을 향해 글을 어떻게 써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 왔잖아요. 말을 가급적 우회적으로 돌려서 거부감을 주지 않게끔 지식과시를 하는 수준의 글쓰기, 그게 하나의 전범으로 통용되어 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 과감하게 문제를 드러내고, 자기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조금씩 조금씩 더 지평을 넓혀가면서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거든요. 자기 드러내기 훈련 아니예요? 자기 드러내기 훈련이라는 것도 문화적 변화니까, 가령 내부 고발자 보호하는 법 그거 해줘야 되고, 예를 들어 서울대 김민수 교수 부당하게 해고된거 단호하게 대응해서 싸워야 되고, 그 모든 걸 바꿔나가면서 의식도 그렇게 바꿔나가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도 보복이 강하잖아요. 그러니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를 드러낼 수 있겠어요? 인터넷 실명제 100인 토론할 때 보니까 갑갑하더라구요. 옹호하는 쪽에 교수하고, 변호사 나왔잖아요. 자기들이야 교수고, 변호사니까 그렇지, 보통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왜 반론에서 그걸 지적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김재범 교수도 '자기도 동네에서' 그러는데, 자기는 교순데, 보통 사람의 입장과는 또 다르죠. 그러니까 저같은 사람이 잘되는 것도 기여하겠네요.(웃음) 지 - '김대중 죽이기'에서 죠지 워싱턴의 예를 들어 "모든 공인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공인을 평가할때는 적절한 잣대가 필요하다. 그가 공적 영역에서 행한 일일지라도 그 일의 무게와 의미와 맥락을 감안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옳다. 망원경으로 보아야 할 일을 현미경으로 보면서, 그게 그 사람의 전부라고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고 하셨는데, 이 말이 지금 시점에서도 일부 적용이 된다고 보십니까? 강 - 그 문제가 그거거든요. 한나라당에 들어가 있는 재야 운동권 출신들 이신범, 박계동, 제정구, 이철 이 사람들이 김대중에 갖게 된 원한을 개인차원에서는 이해가 간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김대중 때문에 정치적으로 수난을 겪었던 것 아닙니까? 명분이나 도덕성, 과거의 투쟁 경력 등 자기들이 되어야 하는데도, 김대중 바람에 밀려서 다 낙선당하고, 정치 실업자 되고, 얼마나 고통을 겪었어요? 이 사람들이 김대중에 대해서 원한을 가지는 것은 이해가 간다 이 말이예요. 그런데 그러면 김대중을 지지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뭐하는 인간이였냐는 겁니다. 다 또라이였느냐, 다 미친놈들이었냐는 거예요. 그 수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을 지지했을때는 김대중 개인의 문제를 알고 있었음에도 그 사람이 점하고 있었던 위치, 역사에서의, 시대적 상황에서의 그 위치를 평가한 것 아닌가요? 그 사람들이 모자라서 그랬을까요? 상황이 그러면 김대중 때문에 개인적으로 뜻이 관철되지 못하고,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김대중에 대해 그 양면의 평가를 다 해줘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 분들이 그렇게 하냐는 말이예요? 나중에는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김대중을 죽이려고 했잖아요. 김대중을 죽여야만 자기들의 입지가 더 굳어지니까 그런거죠. 얼마전 제정구씨 추모식때 박계동씨가 했다는 이야기, '제정구가 옳았다. 노무현보다', 근데 전 제정구보다 노무현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한나라당을 원래 지지하는 사람들이야 한나라당 지지가 옳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그러나 과거에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이 절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정당화만 하려고 합니다. 이제 자기들이 살아야 되니까, 김대중을 완전히 구렁텅이로 밀어넣어야 자기들이 옳고, 자기들이 정당화된다는 말이예요. 그게 과연 제대로된 평가냐는 거예요. 저는 지금 김대중에 대해 이중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친인척 비리하며, 가신 그룹 비리, 그리고 사람이 모자라지 않은 다음에야 호남 사람들을 여기저기 앉혔을 때 빚어질 수 있는 부작용 그거 하나 신경쓰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대통령이예요? 화를 치밀죠. 그게 개인의 정권이예요? 김대중 잘되게 하기 위해 우리가 정권교체하자고 그랬습니까? 그점에 대해서는 화가 치밀죠. 그러나 동시에 개인을 떠나서 김대중을 이용해 정권교체를 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지금 당장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진보가 앞으로 가능하겠느냐는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 당선도 정권교체의 과실을 상당부분 바탕에 깔고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김대중을 평가할때도 김대중이 그런 점에서 보였던 실망스러웠던 점들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그 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역사적, 시대적인 상황에서 그 사람이 점하고 있던 위치로 인해 정권교체를 이루게 했던 그건 또 평가를 해줘야 할게 아니냐는 겁니다. 지 - 이창동 감독이 문화부 장관이 되는 걸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문성근, 명계남씨가 물론 자신들이 안한다고 했지만, 사회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속적인 참여를 하신 분들인데, 그 분들도 그런 열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자기들의 개혁에 관한 꿈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일에 대한 욕심도 있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이니까 안된다는 생각을 깔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그 분들도 지레 포기할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던데요.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그 분들이 하고 싶다고 했더라도 비난을 의식해 발탁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적극적인 지지를 하지 않았던 이창동 감독을 택한 것 같은데요. 저는 그것 역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이중성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던데요. 강 - 문성근, 명계남은 정말 순수했다고 봐요. 어디서 그 증거가 드러나느냐 하면 '뭔가 내가 정말 한자리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 절대 조선일보와 대놓고 안싸웁니다. 어떻게 신문을 상대로 그렇게 싸우고, 최근에도 또 무슨 모임을 만들었잖아요. 뭐랄까 정말 순수하게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를 꿈꾸기 때문에 이런 저런 고려를 안하는 거죠. 저는 그분들의 그런 뜻을 존중하면서도 이 분들이 역할이 있어서 공직을 맡게 된다면, 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구요. 그게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맡아야죠. 근데 바깥의 시선은 '정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밀었는데, 뒤에 있는 것이 멋있다. 아름답다'고 하더라구요. 놀지 말자는 거죠.(웃음) 우리가 멋있는 모습 만들려고, 정치하고, 개혁하자는 것도 아니고, 도움이 되냐, 안되냐 그 관점에서 봐야 되는 거죠. 그게 제가 늘 말하는 정치 혐오증이라니까요. 그 양반도 그 얘기 합디다. TV에서 집 고쳐주는 양반 있잖아요. 노무현 찬조연설 해주신 분. 그 분도 텔레비젼 나와서 좌담하는걸 들었더니, 찬조연설 하고 나서 엄청난 네티즌들의 반발을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너 그럴 줄 몰랐다'는 건데, 그건 노무현을 지지해서 실망했다는 것이 아니라, 너 깨끗한 놈인 줄 알았는데, 왜 특정 후보 지지하는 드러운 정치판에 발을 담그냐는 발상이거든요. 요즘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그런 의식이 강해요. 그거 깨야죠. 그게 무슨 짓이예? 보니까 명계남씨가 '나 안한다'고 선을 그으니까 멋있게 쓴 칼럼들도 나오더라구요. '명배우, 배우로 돌아가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마음에 안들더라구요. 정치하면 좀 어때요? 지 - 그것이 능력이 없는데, 논공행상식으로 나눠주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실력을 검증해서 실력이 있다면, 사회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 정치를 하는게 훨씬 더 바람직한게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에게 오히려 '정치를 해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해야 될 것 같은데요.(웃음) 강 - 저는 그런 정서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면에서 보면 수구기득권 세력의 음모라고 봐요. 그렇게 몰아가는 거야, 정치·관료 등 높은 자리는 때묻은 놈이 해야 한다는 식으로 자기들이 독식할려고 하는 거죠. 맛있는 과자 침 뱉어 가지고 못먹게 하는 이런게 심리적인, 문화적인 바이러스가 되가지고, 순진한 사람들까지 물들게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 - '측근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은 없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선생님은 화장실로 안가는 줄 알았다'고 하다가 자기의 환상이 깨지면 적으로 변하는 수도 있는데요. 그런 점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을 기피하시는 건 아닙니까? 강 -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고, 제 체질이예요. 테이블 놓고서 서서 칵테일 파티 비슷한 거 할 때가 있는데, 잔들고 돌아다니면서 먹잖아요. 저는 그게 불편해서 그런 자리 가면 저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어요.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고, 그리고 일 자체에 집중하는 게 재미있으니까 그런 것도 있고, 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인사모 같은 경우도 어떤 분들이 물어봐요. 그럼 제가 뭐라고 뭐라고 하거든요. 제가 '안만나려고 그런다'고 말하면 '아 잘한다, 잘한다' 이런 소리들을 하세요. 좋은 뜻으로 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죠. '아니 뭐가 잘한다는 거야. 만나면 안돼?'라는 반발심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면에는 그전에 진중권류의 사람들이 폄하하는 말을 하는거, 그것도 염려가 되고, 예전에 김규항씨도 어디다가 글을 썼다든가 했더라구요. 그런 식의 표현들을 써가면서 얘기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그걸 모르는 사람들도 그런 쪽의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이거 그거 아닌데' 하고, 기분은 흡족하지 않지만, 안 만나는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있죠. 지 - 아까 개인의 문제하고, 공적인 문제하고 복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물론 명계남씨가 농담으로 한 얘기지만, '인사 청문회를 통과할 자신이 있다면 정치를 하겠다'고 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역설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다는 것이 더 대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떳떳한 사람이야 '난 떳떳하니까'라는 생각으로 쉽게 할 수도 있지만, 떳떳하게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점 때문에 위험부담을 안고 한다는 것이 더 대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명계남씨 얘기는 좀 상징적인 거고, 예전에 나빴던 사람이 사죄의 의미에서라도 이제 좀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하는 것이 더 순수하게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도 들구요. 강 -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것은 깨끗한 도덕성 이런 것은 아니었구요. 그 문제를 떠나서 예를 들어 이 사람이 진보적인 주장도 하고, 글도 쓰고, 활동도 했는데,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분열이 일어나요.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 때문에 그 사람이 가는 곳에는 분열이 일어나고 불필요한 갈등만 일어나요. 그건 그 사람의 사적 영역이거든요. 그 사람을 가지고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잘되던 것도 그 사람만 나타나면 개판이 되요. 되느냐, 안되느냐 그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는 그런 것을 무시해왔단 말이예요. 그게 과연 우리가 무시를 해야될만한 주제냐 하는 겁니다. 일하고는 관계없는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문제가 아니고, 사적인 영역도 우리가 생각하는 공적인 업무하고도 연결되는 그런 것은 논의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거예요. 지 - 하긴 인터넷 게시판에서 봐도 그 사람의 주장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닌데,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갈등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거든요.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특별하게 잘못한 것이 없으니 쫓아낼 수도 없구요. 강 - 인터넷에서만 그런 게 아니고, 사실은 그게 좀 위험할 수가 있는게 '그게 왕따가 아니냐'라고 연결되는게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되거든요. 실제 생활에서도 보면 '저 사람만 가면...'이라고 해요. 근데 저는 그런 말들을 일방적으로 믿지는 않거든요. 그 사람이 어디가면 입바른 소리를 하기 때문에 왕따를 당할 수도 있어요. 입바른 소리를 하는데도 주변 사람들이 워낙 썩어서 그런 것을 싫어하는 수도 있고 그런데, 꽤 괜찮은 사람들인데, 그 사람만 가면 정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실제 생활에서요. 그럼 아무 일이 안되요. 과거에 시민운동하는 사람들 보면 그 사람 개인에 대해 물어보면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건 술자리에서만 '그 사람이 그랬구나'하고만 소비가 되지, 논의가 안되거든요. 그냥 신문 지상에서 보고 무슨 시민단체 잘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안에서 열심히 뛰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무슨 무슨 이유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이런 말이 나온다는 말이예요. 지 - 이번 광주의 95% 득표를 두고 이제 호남에서도 '공세적 지역주의'가 나온 것 아니냐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민주당 의원 중에서도 '이제 호남의 지역감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계시고, 민노당 쪽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 - 우려할 것 전혀 없다고 봐요. 오히려 한나라당의 의도적인 호남포기전략을 문제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 현상 자체를 아름답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러나 분명히 한나라당은 포기전략이었어요. 한번 생각해보자구요. 지난 5년간을. 수도권에 사는 영호남 출신 인구를 빼고, 영호남만 가지고 인구를 비교해보자구요.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이 지역갈등을 원하겠습니까? 호남표가 얼만데. 영남은 호남을 포기하면서 호남에서 포기했기 때문에 지역주의를 부추겨 영남에서 결집되고, 다른 지역을 결속시켜줘요. 그게 한나라당이 지난 5년간 보여준 모습이예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재보궐 선거 있을때마다 한나라당이 외친 구호들을 보라구요. 전부다 호남인들 속 뒤집어 놓으려고 작정한 거였다구요. '여기 개판인데, 호남은 흥청망청한다. 김대중 정권이 영남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이 따위 수작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가 보라구요. 지난 5년간 한나라당이 영호남인들을 멀어지게 만들었어요. 실제로 대선기간중에도 보자구요. 한나라당 고위층 집행부 한번 보십시오. 호남 출신 누가 있냐구요. 잠깐 일했던 사람들은 있지만, 없어요. 씨가 말랐죠. 김덕룡은 잠시 각을 세웠었지만, 금방 포기했잖아요. 반면에 민주당쪽도 영남에서 살다시피하고, 호남은 안왔어요. 민주당은 영남을 어떻게든 공략하려고, YS 찾아가서 시계까지 보여주고, 그래서 역풍맞았지만, 그렇게 했잖아요. 그런데 한나라당이 뭐했느냐는 거예요. 그 짓을 했는데도 호남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표를 주면 바보지 바보. 한나라당이 지난 5년간 해온 것은 모른 척 하면서 말이예요. 길가는 사람 뒤통수 때려 놓고, 뒤통수 때리는 것은 안보여줘요. 그때 뒤통수 맞은 사람이 보이는 반응이 어떻겠어요. '누구야, 어떤 놈이야?'하고 성질낼 거 아닙니까? 그것만 보여주면서 '점잖지 못하다'면서 '문제가 있다. 우려할만한 일이다'고 하면 안되죠. 뒤통수를 누가 때렸는데요. 그런 것을 거슬러 올라가서 봐줘야죠. 지 - 강교수님께서는 호남인들의 보수성을 '공포에 의한 보수성'으로 규정하시면서 "지식인들조차 호남의 이러한 심리구조를 모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호남인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된다"고 하셨는데요. 강 - 제가 호남인들이 나서야한다고 말하면 자꾸 피해자 탓하기라고 말씀하세요. 이중적인 부담을 준다고 하는데, 제가 자꾸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당한 사람들이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 보자는 말이예요. 여성 문제만 하더라도 여성이 나서지 않는데, 왜 남성이 나서서 하겠어요? 장애인 권리만 해도 그래요.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이 들고 일어나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들고 일어나라'고 자극을 주기 위해 비판하는 것인데, '또 한번 비판하는 것이고, 피해자 탓하기다'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좋은 뜻으로 하는 얘긴데, 호남 보수성 비판하면 호남인들이 반발하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똑바로 봐달라는 거예요. 이게 지금까지 당해왔던 피해의식 같은거 주류 콤플렉스 이런 것 때문에 주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그런 말 하잖아요. 김대중 선생님 하면서 존경하는 사람들이 왜 조선일보 보냐구요? 조중동 의존도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호남이 더 높을거예요. 영남에서는 매일신문, 부산일보가 조중동하고 붙어서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쪽 지역 신문이 자기들의 권익을 지키는, 나쁜 의미든 좋은 의미든 지역이기주의로 자기 지역의 이익을 지키는 신문들이 다수 신문 아닙니까? 호남은 지역신문의 점유율이 10%도 안되는데, 조중동 같이 호남의 이익에 반하는 신문을 왜 봐주냐는 거예요. 물론 개인차원으로 들어가면 어려운 일이죠. 그러면 호남에도 시민단체도 있고, 지식인들도 있고, 명망가들도 있는데, 왜 가만히 있냐 그말이예요. 그것을 제가 호남인의 보수성이라고 한건데, 호남 사람들이 섭섭하게만 생각하면서 공격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 정말 우리가 신문 구독 하나만 봐도 그렇구나'하고 생각해주면 되는겁니다. 호남에서부터 안떨어지니까 다른 지역에서는 더 힘든거죠. 저는 사실 기대를 걸었었어요. 정권의 명운을 걸고 싸움을 벌였는데도,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이거 안되는 게임이구나' 하는 비관까지 하게 되고, 그래도 어떻게 해요? 비관을 한다음 한걸음씩 천천히 원위치로 돌아가야죠. 지 - "지식인들조차 호남의 이러한 심리구조를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진보적 지식인들 중에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분이 많이 계신 것 같은데요. 강 - 해당되는 진보 지식인들이 많구요. 전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호남차별을 외면하거나, 저지르면서 외치는 진보는 사기예요. 아주 몹쓸 사기예요. 그게 무슨 진보예요? 좌파도 마찬가지예요. 호남 차별에 대한 이해가 없이, 계급문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게 계급문제 아닌가요? 지난 수십년간 영남 인구는 두배 이상으로 늘었어요. 호남은 인구증가율 감안하면 반으로 줄었어요. 전라북도 인구가 60년대에 260만이었는데, 지금 190만대로 줄었단 말이예요. 이게 무슨 짓이냐구요. 이게 계급 문제가 아니고, 뭐가 계급 문제예요. 그런식으로 하는 것이 무슨 진보예요. 학벌주의 계급 문제 아닙니까? 파출부 나가서 애들 과외시키는 이유가 뭐냐구요? 한국사회 서민들에게 가장 위협을 주는 것이 자녀교육 아니예요? 왜 그렇게 초등학교때부터 과외를 시키겠어요. 학벌주의 아니예요? 지금 대학 미달되서 문제인데, 대학 가는게 문제예요? 아니죠. 명문대학을 가려고 하니까 전쟁이 일어나는거죠. 그게 계급문제인데, 학벌주의 외면하고, 호남차별 외면하면서 진보 좌파라구요? 그게 사기행위죠. 사기라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몰라요. 모르고 '아, 저 자식은 서울대 콤플렉스에 호남 컴플렉스가 있다'고 말해요. 좌파, 진보 내세우는 사람이 컴플렉스를 얘기하는 것도 가짜예요. 그렇게 따지면 '좌파, 진보'라는 것도 컴플렉스 아닙니까? 그럼 왜 약자, 아웃사이더, 소외자를 위해서 일한다고 말해요? 지 -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또 지역구도의 투표결과가 나왔는데요. 한나라당처럼 악용하지는 않기 때문에 더 나빠지진 않겠지만, 해소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요.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구조, 제도, 관행을 그대로 두고 의식개혁만으로는 안된다. '너 버려라, 버려라' 하는 방식으로 지역감정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강 - 저도 생각은 해봤는데, 방법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지방분권 밖에는 카드가 없지 않나 싶어요. 지방분권이 있는데, 사실은 딜레마가 하나 있어요. 균형발전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영호남 격차가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 상황에서 분권을 했을 경우에 그게 고착되어 버려요. 그래서 저는 그렇다고 해서 시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터인즉슨 일의 우선 순위를 차례대로 짚어가면서 하자는거죠. 저는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지방대 육성이라고 봐요. 지방대 육성 같은 경우에는 그런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영호남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키는 않는 작업부터 과감하게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 - 언론사의 대선 후보지지 표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시민씨 같은 경우 '넘고가야 한다'고 한 반면 원로 언론인들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조중동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고 반대했는데요. 그게 앞으로도 논란이 될 것 같고, 언론인의 특정 정당 가입에 대한 얘기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강 - 근데 이번에 논쟁하는거 봤더니 언론개혁을 바라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걸 반대하는 분이 여러 명 있더라구요. 저는 그 뜻은 이해하는데, 더 나빠질게 뭐가 있냐고 보는 쪽이거든요. 언론개혁을 바라면서도 언론의 대선후보 지지표명을 반대하는 분들의 우려를 100% 이해하는데, 제 주장은 더 나빠질게 없다는 거예요. 전 찬성하는 쪽이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저 신문은 무슨 당 신문, 무슨 색깔을 가진 신문'하고 알리는게, 어차피 당파성을 갖고 있으니까, 그리고 강요는 아니잖아요. 선택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하자는 거예요. 문제는 그게 강제도 아니고, 할 수 있다는 거니까 조중동이 안해버리면 별 실효성도 없는 논쟁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거죠. 선거법 바꿔서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럴 수도 있고, 오마이뉴스도 이번에 고민하다가 안한 거 아닙니까?
2%밖에 안 진 이회창도 정계은퇴했다. 그런데 조중동은 아직 건재하다. 이제부터는 조중동에 대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
강 - 김대중 대통령의 제일 큰 업적은 정권교체죠. 그건 감히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건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정권교체 덕분에 한국 사회가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모르는 것 같아요. 그거 이상 뭐가 있습니까? 권력에 맞짱뜰 수도 있고,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해도 되는 세상이고, 국정원 정보가 야당에게도 흘러가고, 얼마나 좋아졌어요? 김대중의 그 어떤 과오도 그 업적을 못 쫓아가죠. 근데 자꾸 김대중 개인에만 국한시켜서 공과를 따지려는 근시안적이고, 미시적인 접근, 뭐 그것도 의미는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런 것도 다 같이 보자는 거죠. 사실 제가 생각했던 기대 수준에는 못 미쳤어요. 가령 아들들, 친인척, 실세 비리 등은 김대중이 그런 바보짓은 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제가 잘못 봤죠. 이 정권에 얼마나 큰 마이너스예요. 일반 대중이 역사적 의미 따져서 평가하고 그래요? 성질내는 거는 '세상에 바로 앞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 또 벌어지나?'하고 뒤집어지는 거죠. 얼마나 모자란 짓이예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했다는게.
지 - 장신기는 그것도 민주화 투사의 삶의 역정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줘야 한다고 하는데요.
강 - 김영삼, 김대중만 해도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거죠. 민주화 투쟁하느라고 진짜 패가망신한 사람들 많아요. 그 사람들을 생각해야죠. 그렇게 물러빠진 사람이라면 대통령을 하지 말았어야죠.(웃음) 김대중 정권이 아무런 일을 못하게 된 것이 김대중을 지지했던 사람 뿐만이 아니고, 이 나라에 미친 악영향, 정권을 넘겨줄 뻔 했던 이 엄청난 역사적 과오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야죠. 다행히 정권은 안넘어갔지만.
지 - "이회창이 집권하더라도 언론개혁에 관해서는 협조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이회창이 집권해서 언론개혁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신 겁니까?
강 - 그건 제가 92년 대선때 김대중을 찍었지만, 언론개혁에 관해서는 김영삼 정권에 협조를 했거든요. 월간조선이 김영삼 물어뜯기 시작할 때, 그걸 비판했구요. 그런데 이회창이 집권하더라도 김영삼때와 비슷했을 거라는 말입니다. 왜그러냐 하면 걔네들이 원하는 노선으로 볼 때 이회창은 오락가락하고, 뭔가 어정쩡하다는 말이예요. 그래서 확실하게 걔네들의 노선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계속 시도를 했을 거라는 거죠. 이회창 정권이 언론개혁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의 편향성에 휩쓸리지 않게끔 저는 비판하고, 이쪽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조선일보 입맛에 맞는 식으로 국가경영하면 안됩니다. 걔들이 얼마나 힘이 세고, 어쩌고 저쩌고 해도 그런 식으로 가겠습니까?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데, 걔네들이 얼마나 폐쇄적인 애들이예요. 요즘 보면 조선일보가 잔머리 굴리는 것 보고, 열려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덜떨어진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웃음)
지 - 노무현 후보 당선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강 -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지금 생각으로는 한국인의 보수성 신화를 다시 한번 보자는 기회를 제공해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들은 보수적이다'라고 믿고 있었잖아요. 요즘 조선일보건 월간조선이건 거기 실리는 지식인이나 기자들의 글을 보면 재미있는게 많이 나와요. 뭐가 재미있냐하면 자기들의 확신이 흔들리니까, 그 중에서 송복 교수 인터뷰가 히트예요. 제 욕도 해놨던데, '대통령이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예산이 15% 밖에 안된다'면서 '조선일보가 강하냐, 노무현이 강하냐고 할 때 조선일보가 강하다'는 것이고, '노무현이 삼성을 이길 수 있냐, 어림도 없다. 삼성이 더 강하다'는 거예요. 근데 그런 말을 뭐 할라고 해요? 얼마나 핀치에 몰려서 절박한 지를 보여주는 거잖아요. '삼성, 조선일보 니들은 강할거야, 강할거야'하고 핀치에 몰려서 주문을 외우는 안쓰러운 모습을 보여요. 그쵸? 그런데 그 사람들이 계속 여태까지 주장해온게 송복 교수 마지막으로 주장한게 그거예요. '보수, 우파가 겉으로는 약한 것 같아 보일지 몰라도 만만치 않다. 깔봤다간 노무현 혼난다' 이런 이야기요. 그러니까 너무 안쓰러운 모습이죠. 어떻게 보면 무술 영화에서 피흘리는 모습, 야인시대에서도 어퍼컷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하면서 마지막 한마디 하는 것이 연상은 되는데, 사실은 여태까지 조선일보 진영이 계속 퍼뜨려왔던 주장이 그거예요. '한국인들은 보수적이다. 보수적이다. 얼마나 보수적인지 아느냐?' 그러니까 사람들이 지레 겁먹고, 보수적으로 행동한다는 말이예요. 지레 겁먹어 버리고, 그걸 다원적 무지라고 하지만, 제가 볼때는 과잉 눈치였다고 보는거죠. 실제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서구적인 보수 진보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워요. 부정부패에 대한 생각 얘기하고, 지역주의에 관한 생각 조금 얘기한다고 해서 이게 무슨 진봅니까? 국가보안법 철폐가 진보예요? 그게 무슨 보수, 진보를 구분하는 잣대예요? 국가보안법 철폐하는게 자유민주주의에 투철한 거지, 이제 그런 정도는 한국 사람들이 원한다는 거예요. 흥청망청하게 사는 5%∼10% 되는 사람들 과감하게 부유세 좀 걷어서 좋은 일에 써보자는데, 사람들이 왜 반대를 하겠어요? 하도 보수적이다, 보수적이다 하고 세뇌를 하고, 겁을 주니까 남의 눈치 보느라고, 얘기를 못하는거죠. 그런 얘기하면 진보, 과격, 삐딱 딱지 붙여가지고, 편협하다고 욕하잖아요. 사회불만세력이라고 욕먹고. 노점상을 하더라도 열려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해야 해요, 보수적으로 행세를 해야 '저 사람 된 사람이구나, 열려 있는 사람이구나. 인간성이 됐다' 하는 얘기를 듣거든요. 근데 뭐라고 사회에 대해 비판을 하면 내심 동조하면서도 '저 사람 불평불만에 가득차 있다'고 비판을 하거든요. 노무현 당선의 의미가 보수성 신화에 확실한 구멍을 낸거죠. 앞으로 구멍을 더 내야죠.
지 - 이회창은 2% 밖에 안졌습니다. 그런데도 은퇴했는데요.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했던 조중동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언론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을까요?
강 - 처음에는 저도 헛된 기대를 걸었었어요. 지식인들은 좀 달라야 하지 않나 하구요. 저도 일반 독자들의 신문 구독 행태를 몰랐던 것은 아니거든요. 알고 있었어요.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사회적 의미 부여하면서 경품도 주고, 신문도 두껍고 이런 걸 보지 말라고 하는게 어렵다구요. 하지만 지식인들은 사회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주 극우파라면 몰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조선일보 좀 다시 생각해보자'는 거고, 조선일보 하나만이라도 응징이 가해지면 파급효과가 있다는 말이예요. 왜 '조선일보만이냐'라고 시비를 거는 것도 그게 마음에 안드니까 엉뚱한 시비를 거는거지, 그것 가지고 시비를 걸 일이 아니었고, 그 사람들로 해서 변화된 것으로 갈 수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그 분들이 말을 듣습니까? 제가 조선일보에 글을 쓴다고 조금 심하게 굴었었죠. 그때 심하다고 비판했던 사람들, 그럼 그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안티조선에 기여하나 해서 봤더니 기여하긴 뭘 기여해요. 그게 뭐예요? '뜻은 좋은 것 같은데,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은 잘해요. 내 방식이 문제가 있으면 자기는 자기 방식대로 좀 안티조선을 해줘야 될 거 아니예요. 아무 것도 안하더라구요. 지식인에게 기대를 못거는 사회에서 어디에 희망을 걸어야 되냐구요? 네티즌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제가 서프라이즈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웃음) 욕심내면요. 빨리 지치고, 오래 못살아요. 그러려니 하고 또 다시 재충전하고, 끈질기게 계속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 인터넷에서도 강준만의 글을 볼 수 있다. 기대하시라. |
지 - 촛불 시위에 대해 노 당선자도 자제를 당부한 바 있고, 일부 종교단체에서는 촛불 시위 반대 시위까지 벌이고 있는데요. 조중동은 국익을 생각해서 자제해야한다고 쭉 얘기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촛불 시위를 계속해야한다고 보십니까?
강 - 노무현의 발언은 전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촛불시위는 백번 옳고, 정당하지만 그것을 조선일보 같은 애들이 악용을 한다는 말이예요. 그것을 왜곡시켜서 미국에 일러바치는 행태를 보이고 있잖아요. '쟤네들 장난 못치게 빌미라도 주지 말아 버리자'라는 뜻으로 해석했어요. 너무 좋게 해석했나요?(웃음) 제 생각으로는 촛불시위의 역량을 돌려서 조선일보쪽으로도 갔으면 하는 생각도 했는데, 조선일보 반대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힘이 부족한 것 같아요.(웃음) 그게 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 - 살생부 파문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민주당 일부 의원은 철공소 직원이 그런 문건을 작성했을 리가 없다고 믿고 있는 것 같은데요.
강 - 저는 인터넷 안들어가도 그렇게까지 무식하지는 않은데요.(웃음) 넌센스 아닙니까? 그러니까 선의로 해석하자면 문화충격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인터넷이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데.(웃음) 살생부 가지고도 100인 토론을 합디다. 그게 은유적 표현이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지 - 인터넷은 왜 안하십니까? 앞으로도 안하실 예정입니까?
강 - 아니 지금 흔들리죠. 저는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좋아요. 제가 글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인터넷은 시간 잡아먹는 괴물이예요. 시간 무지하게 깨진다구요. 클릭해서 뜨는 그 시간도 아까워요.(웃음) 필요한 것만 골라서 읽고, 프린트 해서 보관하다가 다시 쓸 때 찾아서 보는게 편리해요. 그런데 인터넷이 지금 대세 아닙니까? 그래서 인터넷의 바다에 다이빙해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지 - 인터넷 글쓰기를 하시겠다는 건가요?
강 - 그쪽 글쓰기로 나갈 생각도 있습니다. 종이매체 시장은 자본에 의해서 잠식되어 가고, 죽어가고 있으니까.
지 - 프린트해주는 것만 읽다보면, 걸러주는 사람의 프레임에 맞는 글만 보게 될 것도 같은데요. 대통령에게도 누가 걸러서 보고하면 대통령의 시각이 한정되는 것처럼 그런 위험은 없습니까?
강 - 얘기도 많이 해줘요. 저하고 거의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예요. 그리고 요즘은 교수 사회에서도 인터넷에서 논쟁이 되는 글은 '신문에 나왔더라'가 아니고 '인터넷에 이런 글이 실렸더라'는 식으로 듣게 되거든요. 그걸 보면서 이미 힘이 그쪽으로 갔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근데 일반 시민들의 경우는 다르죠. 사회개혁이다, 언론개혁이다 했을 때 인터넷 만으로는 커버가 안되는 영역에도 관심을 쏟아야 된다는 말인데, 아직 그쪽에도 미련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로컬 미디어는 인터넷으로만은 안되요. 그럼 로컬을 포기해야되는건지 고민은 하고 있는데 답이 안나오네요. 매번 강의때 학생들에게 지방지를 구독하게끔 얘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요.
지 - 어느 강연회에서 "조선일보 절독, 별거 아니지 않냐? 그 쉬운걸 왜 못 하나? 하지만 조선일보 영향력을 줄인 그 이후 어떤 신문을 보느냐 하는 그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고 하셨는데요.
강 - 조선일보 끊어도 중앙, 동아로 바꿔치기 하더라구요. 동아일보는 지난 대선에서 너무 했었잖아요. 확 바꿔버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지 -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킹 메이커'란 표현을 썼던데요.
강 - 사실은 그런 말 하는 자체가 노무현에게 표를 안던진 사람들을 성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 분들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그런 얘기는 안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선일보에 어떤 분이 '1,300만명의 절대적 박탈감'이라는 표현을 했더라구요. 그래서 절대적 박탈감까지 갈까 하는 그 말이 생각나서.
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노-정 단일화가 안될 것으로 봤고, 실제로 안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정몽준의 거품이 가면 갈수록 빠지고 굳이 두 사람이 만나지 않더라도 민심에 의해 노무현 쪽으로 자연스럽게 '실질적인 단일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봤거든요"라고 하셨는데요. 조기숙 교수 같은 경우 '단일화 이외에는 실질적으로 노무현을 다시 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 동의를 하고 있고, 황태연 교수도 여론조사결과를 들어 '단일화가 노무현 당선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했는데요. 지금도 단일화를 일관되게 반대했던 입장이 옳았다고 보십니까?
강 - 지금 상황하고, 그때 상황하고 비교해보면요. 지금 시간 지나고 나니까 엉뚱한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때 단일화라는 것은 '정몽준 만들기'였습니다. 그건 분명히 음모였어요. 결국은 노후보가 받아들여서 되긴 했는데, 그건 도박이었어요. 노무현을 승부사라고 하고, 결과적으로 노무현이 됐지만, 지지철회 선언했을 때 노무현 얼굴 빛 봤어요? 사색이 다 됐던 거 아니냐구요. 결과론에 의해 그때를 다시 해석하는 것은 웃긴다는 거죠. 그때 후보단일화는 확실히 '정몽준 만들기' 였고, 그 이후에 노무현으로 단일화가 됐단 말이예요. 얼마나 좋아요. 안도의 숨을 내쉬었죠. 반대했으니까 끝까지 반대를 했어야 하는거 아니냐는 분들도 계신데, 그렇게 할 사람은 그렇게 하라는거죠. 전 지식인의 한계론, 지식인이 그런 점에선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정몽준에 대한 지지, 정말 한심하죠. 그런데 수백만명이 그렇게 간다면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실체라는 거죠. 전부는 아니지만, 영남 사람들이 갖고 있는 호남 사람들에 대한 생각, 그게 혐오할만한 것이지만,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면 어떻게 하냐는 겁니다. 그걸 비판할 때 비판하더라도 그 현실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지 -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의 소송이 기억이 납니다. '스승의 등에 칼을 꽂은 살인청부업자'라는 말로 소송을 제기당하셨는데요. 명예훼손 소송을 많이 당하실 것 같은데, 몇건 정도 소송을 당하셨습니까?
강 - 두건 있었어요. 이한우 기자한테는 패소당했구요.
지 - 유시민씨에 비해 사회적인 발언을 하기에 불리한 조건이라는 얘기도 하셨는데요.
강 - 제가요?
지 - 자조적으로 '감옥에도 한번 안 갔다온 놈이 너무 설쳤다'는 말씀도 사석에서 농담삼아 하신 적도 있으시구요.
강 - 아, 그런 점에서.
지 - 운동권 출신 중에 지금도 제 역할을 하고 계신 분도 계시지만,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존경을 잃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강 - 저는 과거에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더 발언권을 갖고,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요. 당연히 그런 보상문화가 있어야죠. 그런 사람들이 무게를 갖고, 도덕적 권위를 갖는 그런건 받아들여야한다고 봅니다. 근데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게 자기를 망친다는 말이예요. 지금 운동권 출신들 중에 일부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 것은 바로 그런 점이 자기를 망쳤다고 보는 거예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고, 자기가 그렇게 해야지, 자기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은 똑같은 이야기같지만, 다른 것 같아요. 복잡하게 보면 그런 것 같아요. 과거에 양심씨 비난할 때 동원되었던 논리인데, 민주화 투쟁은 반대만하면 되는 거 였잖아요. 저항에 이론을 세우고, 힘겹게 자기 희생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때 보였던 역량과 자리가 높은 자리에 오를 때 보일 수 있는 역량에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라도 공부를 해야 되는데, 워낙 수구기득권 세력이 그게 없다고 하니까 저 같은 사람도 '그게 뭐가 중요해?'라는 식으로 얘기하긴 했지만, 그런 점에서 약간 배우는 그런 건 있었죠.
지 - 현대사 산책 70년대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를 읽어 보면 팩트 중심으로 나열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주장을 강하게 하는 것보다 박정희 시대의 암울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강 - 그런 평도 있어요?
지 - 고문 상황을 얘기할 때, 울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정희 시대가 우리에게 끼친 가장 큰 악영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강 - 박정희가 세운 功을 능가할 수 있는 過가 지금 나타나고 있잖아요. 지역주의, 이거 절벽 같잖아요. 앞으로도 나아질거라고 생각하고, 애를 쓰겠지만, 주범이 누구냐는 거예요? 박정희잖아요. 그리고 또 사회참여 안하고, 주류컴플렉스, 안전불감증 다 그 시절의 산물 아니예요? 제가 쓴 말이 문화의 복수라는 말인데, 우리의 의식과 행태 속에 남아 있던 것이 우리를 규제해오는 거죠. 그러니까 박정희의 공과를 제대로 보자고 하면, 좋다 이거예요. 엄청난 고도성장, 산업화 이루었어요. 하지만 인권 문제 빼놓고서도 한국인들을 한마디로 얘기해서 경제동물화 시켰던 것 아닙니까? 경제동물화 되어 있는 한국인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과연 흔히하는 말로 선진국으로 가는데, 얼마나 걸림돌이 되고 있냐구요? 엄청난 비용과 희생을 치뤄야하는 거죠. 그것 다 보자 이 말이예요. 그런데 어떻게 박정희 신드롬이 있을 수 있냐구요. 그걸 다 봐줘야 바꿔야할게 뭐가 있겠고, 그걸 또 고민하면서 개혁을 제대로 할 거 아닙니까? 일방적인 박정희 찬양 분위기에서 그런게 있을 리 없고, 수구기득권 세력은 자기들의 이권을 위해 모든 책임을 김대중한테 떠넘기고 싶은 거고, 김영삼한테 떠넘기고 싶은 거고, 그거 아닙니까? 수구기득권 세력이 주로 해왔던 것이 그거예요. 김대중, 김영삼 체제에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예요. 물론 어느 정도 책임은 있죠. 하지만, 그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그런 것들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게 아닌데 정략적인 대응을 해버리니까. 자기들의 밥그릇 싸움용 담론을 한국 사회의 진실인양 위장을 하는 그런게 바로 나라 망치게 하는 일이잖아요. 진정한 보수신문이 한국에 있다면, 박정희 시대에 남긴 유산이 재앙이 되어 가지고, 김영삼·김대중 정권도 거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건데, 그걸 짚어주면서 얘기를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대중 정권도 제대로 대응을 못했던 것이 사실이구요.
이번 인터뷰 성사의 당사자인 인사모의 황정씨. 강교수는 늦은 밤에 황정씨를 무사히 바래다 줄 것을 명하며, 이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
지 - 여성계의 박근혜 지지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 - 저는 박근혜 지지론에 대해서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이 과잉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근혜 지지론에서 우리가 캐치해야 될 것이 뭐냐하면 '아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주면 되는거죠.
지 -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예전처럼 존경을 받는다든지 사회적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강 - 대접, 대우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보는데요. 무슨 말이냐 하면 지식인이 과거에 비해서, 우선 대학이 달라졌버렸습니다. 대학의 성격 자체가 많이. 대학이 엄청나게 다양화되면서, 우선 교수의 수가 얼마나 많아졌습니까? 우선 양적 증가가 과거의 희소성을 감소시켰구요. 지식인이 자신의 신변의 안전을 개의치 않고 내던질 수 있는 시대가 사라져 버렸고, 민주화 투쟁 이런 거할 시대가 아니잖아요. 또 그런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지식인의 성격도 변하는 거죠. 훨씬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다구요. 과거에 비해서. 한국의 정치가 지체된 탓이겠지만, 정·관계 진출에서부터 각종 사회의 엘리트직에서 교수들, 지식인들 얼마나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까? 앞으로 당분간 더 활용되어야 하구요. 그런데 그런 변화는 외면하면서 지식인이 과거와 달라졌으니까, 지식인이 할 일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건 문제라고 봅니다. 실질적으로 사회의 한부분의 큰 역할을 맡고 있는데, '기능중심적인 테크노크라트적인 생각으로 움직여버리겠다?' 이건 말이 안되는 거죠.
지 - 인물 파일은 현재 얼마나 됩니까? 책에 보니까 만개라고 되있던데요.
강 - 모르겠어요. 세보지 않아서. 대충 계산해보니까 그 정도 였나보죠.
지 - 어떻게 보존하고 계십니까? 귀중한 자료일텐데요.
강 - 자꾸 장소가 좁아져서 어디다 갖다 놔야할지 모르겠어요. 가치는 없는거죠. 다만 글쓰기 작업을 할 때 편리한 점은 있어요. 근데 가치같은 건 없죠. 제가 사실은 과거에는 한트럭 이상 내버리기도 하고, 아프죠. 그만 둘까 하다가도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까워서 계속 가야하는 그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지 - 그렇게 많은 글을 쓰면서 어떻게 꼬박꼬박 마감을 지킬 수 있었습니까?
강 - 다작하고 관련이 된건데요. 제가 김대중 죽이기 쓰고 나서도 그랬고, 출판계에서도 몇분이 그랬어요. '너 이제 그만써라. 그러고 몇 년 후에 짠 나타나라'고 했는데, 제가 그 말을 안따른 이유가, 제가 왜 그런 글을 써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와 안 맞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이거 하나를 크게 한번 히트시켜봐야겠다는 생각자체가 검열기제가 된다는 거예요. 일단 구어체 식으로 말하듯이 쓰다보니까 실제로 쓸 때 입술을 중얼거리기도 해요. 말할 때 스타일 갖춰가면서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있긴 있지만, 그런 사람은 약간 밥맛이지만.(웃음) 스타일 부릴 필요도 없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거죠. 마감은 제가 미리미리 그때 그때 글을 써두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쓰는데로 먼저 출판사나 잡지사에 보내버립니다. 그런 점에서 어느 잡지사에서든지 좋아할 스타일이죠. 독자들 입장에서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강교수의 인터뷰를 계기로 인터뷰 횟수를 대폭 줄이기로 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렇게 못하지만, 인터뷰 이외의 다른 방식을 찾아 나가기로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나의 창작물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 솔직히 질렸습니다. 제 스스로도 그런 시각이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하구요. 아마 지쳤다면 이게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노력하면 바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꼈습니다. 이 정도 인터뷰들을 한 달에 몇 개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 이 인터뷰에 얼마의 비용이 들어갔을 것 같습니까? 그동안 수년간 해왔던 여러 가지 노력, 노하우, 당장 이 인터뷰에 들어간 정신적인, 시간적인 노력을 빼고서도, 이틀간의 경비만 해도 식대, 교통비, 숙박비용 등 최소한 오십만원 이상이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비용은 강 교수님과 저를 둘 다 좋아하는 어떤 분이 대부분 부담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분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대가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이런 부담을 줘가면서 이 작업을 해야하는가?'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작업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하는 것이 근본적인 의문입니다. 의미가 없으니까 인정도 안해주는 것이겠죠. 시장 논리가 앞서는 사회에서 값어치가 없다는 얘기일 겁니다. 그런 곳에서 값어치를 인정해달라고 떼를 쓰는 게 정말 우스운 행동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인터뷰를 해서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제가 3년을 작업해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제가 조영남이나 전여옥 정도의 네임밸류가 있으면 허접한 인터뷰를 해도 어느 정도의 수입이 되겠지만, 전혀 그렇지도 못하고, 진보진영에서 한 매체만 끼고 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그것 역시 먹고 살기 힘든데다가 영혼까지 파는 짓이 될 것 같아요. 그러면 글쓰는 것조차 싫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인터뷰든, 칼럼이든 이런 행위는 지식인의 인정투쟁 행위일 것입니다. 그런데 전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절대로 인터뷰를 창작물로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건 그저 받아적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안되는데 하고 있는게, 가상하다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는 구나 정도로만 생각을 합니다. 유명인과 유명인간의 만남만이 화제가 되고, 가치가 있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겠죠. 유명인들과 저같은 무명이 만나는 건 제가 강의를 듣고 와서 노트에 받아적어 보여주는 정도의 취급밖에 안해주는 것 같아요. 전 그게 화가 납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하는 작업이 가치가 없으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렇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그래서 제 자신에게 더 화가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체들이 사진작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사진가도 커트당 얼마, 일당 얼마 하는 식으로 정해져 있듯이, 진보진영 안에서는 제 원고료도 이미 정해졌고, 그걸 바꾸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이 인터뷰가 성사되기 위해 노력해주신 인사모의 새밀님과 황정님께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자주 뵙지 못할 것 같네요. 그동안 제 작업을 지원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아울러 죄송하다는 말씀 역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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