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8

[세상 읽기] 손낙구의 선택 / 박상훈- 한겨레 2011.6.27일자.

[세상 읽기] 손낙구의 선택 / 박상훈
진보 안에서 개인 삶의 문제가 
좀더 나은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겨레
»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손낙구, 진보 안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이다. 1986년부터 19년 동안 노동운동을 했다. 민주노총의 전성기 시절 대변인을 지낸 걸 끝으로 노동운동 경력을 접고 2004년부터는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책도 여러 권 냈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가난한 서민의 관점에서 다뤘는데, 적어도 이 분야에서 그보다 더 잘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그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정책보좌관으로 발탁했다. 최근 민주당의 결정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양극화·비정규직·민생을 백번 말하는 것보다 훨씬 신뢰를 준다. 물론 다른 면도 있다.

‘수동혁명’(passive revolution)이라는 말이 있다. 간단히 말해 체제 밖 도전세력들의 요구와 인물을 체제 내 세력이 수용함으로써 기존 질서가 유지되는 현상을 말한다. ‘위로부터의 개혁’도 수동혁명의 하위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을 대표적인 사례로 하는 수동혁명적 변화와 개혁은, 해방 이후 한국 현대 정치를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1987년 민주화가 되고 2004년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입하면서 필자는 한국 정치의 수동혁명적 패턴이 단절되길 바랐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중대 이익과 열정들이 기성 정당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만든 정당에 의해 대표되고 나아가서는 서유럽 나라들처럼 정부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로 발전하길 바랐다. 꼭 내가 진보적이어서 그런 바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이 경쟁력을 갖고 노동의 이익이 폭넓게 대표되는 나라들일수록 빈곤의 정도가 덜하고 불평등과 양극화 정도도 덜하기 때문이다. 강력범죄율과 재소자 비율, 저체중아 출산율도 낮고 투표율과 여성 장관의 비율은 높다. 인권 및 자유화 지표도 좋고 소수자나 이주민에 대한 권리 부여 정도도 높다. 우리도 이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진보가 체제 밖에서 압력집단이나 사회운동으로만 존재하고 그들이 제기하는 의제나 요구는 기성 정치세력들에 의해 선별적으로 수용되는 그런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난주 내내 자신의 거취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다니던 손낙구, 그리고 그의 처지를 잘 아는 그의 오랜 동료·선후배들의 반응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누구도 왜 그래야 했는지 따져 묻진 않았지만 안타까운 분위기는 피할 수 없었다. 분명 그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고 의지도 굳고 전문성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진보의 세계 안에서 삶을 유지할 방법을 찾긴 쉽지 않았다. 그를 향해 변절이니 권력에 눈이 먼 선택이니 하면서 비난을 하는 일부 진보파의 반응을 보게 된다. 그 심사야 이해할 수 있으나, 정작 중요한 건 진보가 활동가들을 지키고 먹여 살리는 문제에 있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실력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느냐에 있지 않나 싶다. 생활의 압박과 고통 속에서도 진보정치의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여전히 경의를 표하게 되지만, 그런 희생이 계속 방치된다면 유사 사례는 또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보의 세계 안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포함한 개인 삶의 문제가 좀더 나은 전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진보정당이 잘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기여할 뿐만 아니라, 손낙구와 같은 인재들이 진보 안에서 삶의 활력을 잃지 않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획연재 : [사외] 세상읽기
기사등록 : 2011-06-26 오후 07:01:24  기사수정 : 2011-06-27 오전 09: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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