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더 나은 세계는 다능하다
김현미|<동아일보> 미디어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기획회의가 만난 사람’ 코너를 연재하면서 소규모 출판사 대표들로부터 책 이야기, 사는 이야기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1년에 몇 차례씩 10만 부짜리 베스트셀러를 낼 만큼 규모 있는 출판사들과 비교하자면 ‘초판 소진’이 희망인 이들의 살림살이는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이다. 그래도 그 안에 출판 기획자의 고집이 있고, 경영 원칙이 있다. 또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만 하던 이들이 어느 날 퇴직금 몽땅 걸고 출판에 뛰어들 때는 남다른 비장함이 서려있는 법이다. 그것이 알고 싶었다. 필맥도 꼭 그에 해당하는 출판사였다. 그러나 처음 ‘필맥’을 추천받았을 때 내키지 않았던 것은 그 동안 무슨 책을 냈는지 언뜻 떠오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필맥이 어떤 성격의 출판사인지 윤곽이 잡히질 않았다. 이주명 대표(42)가 <한겨레> 기자 출신이라는 것, 그보다 앞서 한국은행에 약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는 것이 귀동냥으로 알아낸 전부였다. 인터넷 서점에서 목록을 뒤진 후에야 지난 여름 읽은 『맞벌이의 함정』(엘리자베스 워런 외)이 필맥 작품이란 걸 알았다. 하버드 법대 교수 모녀가 썼지만 어쩌면 이렇게 내 이야기, 우리 이웃 이야기, 한국의 중산층 이야기인가 탄복했던 바로 그 책이다. 지난해 겨울 회사 후배가 자신이 공동저자라며 건네준 『토요일에는 통일을 이야기합시다』(이일하, 신석호)도 필맥에서 출간됐다. 그러고 보니 출판등록을 하고 책을 내기 시작한지 1년 남짓한 신생출판사임에도 첫 책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세계화국제포럼 소속 19명)부터 최근작 『신경제 이후』(더그 헨우드)까지 필맥의 책들은 매번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데도 필맥을 기억하지 못한 내 어두운 눈과 귀를 탓하랴. 7월에 문을 연 필맥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다음과 같이 회사 소개가 적혀 있다.
필맥 출판사는 인문사회과학, 경제경영, 역사, 문학을 중심으로 좋은 책을 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필맥이 처음 펴낸 책의 제목인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는 바로 필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믿음입니다. 현실이 뜻과 같지 않거나 어렵더라도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한반도’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삶’ ‘더 나은 환경’을 희망하고 추구하는 분이라면 누구든 필맥의 독자, 필자, 온라인 회원으로 환영합니다. 작지만 꿈이 큰 출판사, 어느새 ‘붓 필筆’ ‘줄기 맥脈’ 필맥이란 이름에서 힘이 느껴졌다. 서울시교육청 맞은편에 위치한 송월빌딩의 희한하게 꺾인 계단과 복도를 오르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잠시 후 이주명 사장과 마주했다. 그는 제일 먼저 나의 MP3에 관심을 보였다. 기자 시절에 한 번도 이런 녹음기를 사용해 보지 못했다면서 “원래 녹음기는 상대를 긴장시키기 위해 꺼내놓는 거잖아요?”하는 품새가 여전히 기자다. 1988년 한겨레 공채 1기로 들어가 14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으니 갑자기 기자냄새를 털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뷰 중에도 이 사장은 시종 대답보다 질문에 강했다. 김현미(이하 김) 어차피 아는 게 별로 없네요. 처음부터 묻죠. 왜 출판업에 뛰어들었나요? 이주명(이하 이) 한겨레에서 나올 때 자의반 타의반이었거든요. 주간 <이코노미21> 편집장 겸 이사로 있었는데 아무래도 경영진 쪽에 가까이 있다 보니까 회사 사정도 뻔히 알고, 그후 경영진이 개편되고 약간의 구조조정을 할 때 그만뒀죠. 2002년 겨울이에요. 어느 날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 갔다 돌아오는 길에 출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돌아오자마자 출판사 등록부터 했습니다. 마음에 두고 있는 책 리스트가 있었느냐고요? 전혀요. 제가 그리 계획성 있는 편이 아니거든요. 교보문고, 영풍문고, 예스24, 알라딘이 제가 아는 출판의 전부였어요. 도매상이 도대체 뭔지, 그거 익히는 데 시간 많이 걸렸죠. 다만 기자여서 좋은 점이 모르는 것은 취재해 가면서 배우면 되거든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취재에 크로스체킹을 하면서 출판에 눈을 떴죠. 그의 이력을 보면 치밀하게 인생을 설계하는 타입과는 거리가 먼 것을 알 수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첫 직장은 한국은행. 2년 정도 다녀 일이 손에 익을 무렵 <한겨레> 창간 소식을 듣고 ‘그냥’ 공채에 응시해 ‘덜컥’ 합격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그 전까지 단 한 번도 기자할 생각이 없었단다. 물론 훗날 돈 안 되는 출판사를 하리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14년 동안 신문사에서 경제부, 정치부, 사회부, 여론매체부, 외신부 등 편집부만 빼고 두루 거쳤다. 2001년 자회사인 ‘한겨레커뮤니케이션’으로 옮겨 닷컴 거품이 빠지면서 위기에 빠진 IT전문지 <닷컴21>을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로 바꾸고 안착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듬해 바라지도 않던 이사가 됐다. 그 후론 기자생활이 싱거워졌다. 이 마흔 무렵 현업에서 빠지고 후방에서 남이 쓴 기사 읽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까 일이 재미가 없어요. 기사 발굴하고 현장에서 취재하는 재미로 살았거든요. 먹고 사는 걱정만 없으면 기자만큼 신나는 일이 있나요. 취미생활로 기자하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그러기에는 <한겨레> 사정이 좀 열악했죠. 김 그렇다면 출판이 ‘호구지책’이었다는 건가요? 이 그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에요. 제가 번역하면서 처음 출판을 접한 때가 IMF 전후로 정말 어려울 때였어요. 기업마다 보너스, 월급 깎고 구조조정 한다고 살벌했는데 <한겨레>도 예외없이 보너스를 절반으로 깎았죠. 그동안 월급은 생활비로 내놓고 저는 몇 푼 안 되는 보너스로 버텼는데 그조차 술 한 잔 마음 놓고 마시기에 빠듯했어요. 그런데 그 보너스를 절반으로 깎아버리니까 어쩔 수 없이 용돈벌이 삼아 번역을 했죠. 더그 헨우드의 『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사계절)를 번역했고 그 무렵 책 두 권을 썼어요. 1998년 서해문집에서 낸 『아시아 보고서』와 2000년 사계절에서 낸 『손바닥 경제용어』인데, 앞의 책은 거의 안 팔렸지만 두 번째 책은 꽤 나간 걸로 기억해요. 책을 써서 통장이 마이너스 안 될 만큼은 벌었죠. 김 그렇다면 출판사를 직접 할 게 아니라 저자나 번역자로 남아있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후회한 적은 없나요?. 이 저는 출판사란 결국 출판을 지원하는 일이지 출판의 중심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심은 어디까지나 저자죠. 메시지의 내용을 선택해서 수용자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출판사의 역할은 기자일과 비슷하잖아요? 번역이나 저술작업은 순전히 ‘호구지책’이었다고 말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범상한 필자가 아니었다. 기자 시절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독립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더그 헨우드의 『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를 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 당장 번역에 착수했을 뿐 아니라 대책 없이 저작권 계약까지 했다. 이 출판의 ‘출’자도 모르는 제가 덜컥 계약을 했어요. 에이전시를 통해 출판계약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으니까 선인세 형태로 직접 저작권료까지 지불했죠. 번역이 거의 끝나갈 무렵 출판할 곳을 찾았는데 다행히 사계절에 아는 분이 계셔서 검토한 후 내자고 했어요. 그 후 제가 갖고 있는 계약서까지 사계절에 넘겼죠. 김 필맥 이름으로 나온 첫 책이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세계화, 비판을 넘어 대안으로』인 점이나 최근 더그 헨우드의 또 다른 책 『신경제 이후』를 펴낸 것을 보면 결국 출간을 결정짓는 요인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이군요. 한겨레 기자 시절 취재하던 영역과도 상당 부분 겹치는 것 같고요. 이 덧붙이면 너무 괜찮은 책인데 왜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을까 하는 책을 내죠. 책을 통해 출판을 통해 세상을 바꿔보자 뭐 그런 거창한 뜻을 품은 적은 없어요. 좋은 책, 읽을 만한 책을 내야 하지 않나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이죠. 참, 출판을 하면서 좋은 점은 한 달에 한 권 이상 정독할 수 있는 거예요. 기자들은 제대로 책 읽을 시간이 없잖아요. 읽더라도 요한 부분만 뽑아서 몇 페이지 보고 맨 뒤 결론 읽은 뒤 덮어버리는데 출판을 하려면 꼼꼼하게 끝까지 다 읽어야 하죠. 이렇게 책을 읽은 일이 학창시절 외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김 직접 책을 고르고 편집 마무리까지 하면서 지금까지 몇 종이나 냈죠? 이 18권. 한 달에 두 권씩 내자고 목표를 세웠는데 제가 출판을 몰랐으니까 그런 계획을 세웠지 알고는 못하죠. 어쨌든 1년 남짓해서 18권이면 신생출판사 치고 많이 낸 편이에요. 그 동안 문나영 편집팀장과 둘이 일하다 두 달 전 이성원 기획팀장이 합류해서 제법 출판사의 모양새가 잡혔죠. 김 필맥 이름으로 나온 책들을 보면 파생금융 상품의 문제점을 지적한 『전염성 탐욕』(프랭크 파트노이)이나 금값 폭등 등 세계 경제의 미래를 예견한 『내일의 금맥』(마크 파버), 중산층 붕괴 원인을 분석한 『맞벌이의 함정』처럼 경제 관련 책들이 중심에 있어요. 물론 『논증의 기술』(앤서니 웨스턴)이나 『프렌드 시프트』(잔 야거)와 같이 전혀 다른 영역도 눈에 띄지만요. 경제학을 전공했고 경제부 기자 출신이니까 당연한 관심인가요? 필맥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이 굳이 색깔을 말하자면 어두침침한 색깔이 아닐까요. 경고조의 글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색깔 같은 것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어차피 베스트셀러 내겠다는 욕심도 없었으니까요.『내일의 금맥』이나 『신경제 이후』를 본 사람은 필맥이 경제 전문 출판사라고 생각할 테고, 영남대 박홍규 교수의 저술과 번역서를 포함해 세 권(『우리는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랑』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에리히 케스트너 평전』 『에코토피아 뉴스』)을 펴냈는데 이 책들을 본 사람은 ‘박홍규 팬클럽이냐’고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된 게 아니라 우연이에요. 박 교수과 인연을 맺어준 책은 『우리시대의 아나키즘』인데 이 책의 번역자가 전문가 평을 넣으면 좋겠다고 해요. 박 교수와 연결이 됐죠. 박 교수와 이야기하는 중에 윌리엄 모리스의 책 중 번역이 안 된 것이 있는데 국내에 꼭 소개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좋은 번역자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얘기가 나온 김에 직접 하겠다고 해서 『에코토피아 뉴스』가 출간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꾸 연결이 됐을 뿐 필맥은 이런저런 책만 내겠다고 표방한 바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출판사가 마케팅용으로 특정 색깔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면 몰라도 색깔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색깔을 분명히 하려면 자본력이 충분해서 내고 싶은 책만 골라 내던가, 돈은 완전히 포기하고 좋은 책만 내겠다는 목표가 확실하던가 해야죠. 하지만 필맥은 좋은 책도 내고 싶고 사업체로서 출판사를 유지해야 하는 보통의 출판사일 뿐이에요. 김 지금까지 낸 책 중에 2만부를 넘은 책이 있나요? 이 아이고 없어요, 없어. 부수 얘기는 하지 맙시다.『내일의 금맥』을 6쇄까지 찍었는데 그게 최고의 성적이죠. 몇 부냐고 묻지 말고요. 저희 출판사에서 ‘잘 나간다’는 기준이 보통보다 낮거든요. 저는 제작비 회수하면 잘 나갔다고 말해요.『맞벌이의 함정』도 초기 반응이 괜찮았죠. 이 책을 읽은 친구가 국내에 꼭 소개해야 할 좋은 책이라며 사명감을 갖고 내보자고 했죠. 대부분의 언론이 다뤄줬고 최단 시일 내 2쇄까지 찍었는데 좀더 지켜봐야겠어요. 사실 제가 가장 기대했던 책은 『복권의 역사』(데이비드 니버트)였어요. 김 팔리길 기대했다면 『복권의 역사』가 아니라 ‘로또 1등 당첨법’을 냈어야죠. 이제는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팔리는 책’을 내고 싶지 않으세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더 나은 세계’가 아니라 ‘10억 만들기’ ‘땅부자 되기’ 이런 구체적인 메시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이 그렇다면 ‘맞벌이의 함정 대신 ‘맞벌이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법’이라고 제목을 달 걸 그랬나요? 출판으로 돈 벌 생각 하면 안 되죠. 그건 운 좋은 사람들 이야기고. 한 마디로 저는 돈 되는 책을 낼 능력이 없어요. 그리고 그런 책은 재미가 없잖아요. 출판인들끼리 술 마시면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어요. 출판의 목적이 돈 버는 거냐, 책 내는 거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죠. 그렇다고 어느 쪽이 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냥 각자 취향의 문제죠. 저는 그냥 좋은 책 쪽에 걸었죠. 저는 청어람미디어의 정종호 사장에게서 처음 출판을 배웠어요. 2002년 겨울 출판사를 하겠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배워야겠더라고요. 마침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처음으로 출판창업강좌를 열었는데 강사가 정 사장이었죠. 한마디 한마디가 세상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굉장히 신선했어요. 당시 강의내용은 매우 구체적이어서 1년에 6권정도 책을 낸다고 하면 2달에 1권 꼴인데 이때 들어가는 비용과 기대 매출을 계산해서 보여줬죠. 앞서 낸 책이 어느 정도 팔려서 매출이 떨어지는 지점에 다음 책이 나오고 그런 식으로 표를 그렸던 것 같아요. 마이너스 상태가 플러스가 되는 데 1년 반쯤 걸린다고 예상했죠. 판매는 줄여 잡고 비용은 넉넉하게 잡은 매우 보수적인 계산법이었지만 한 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더군요. 정 사장에게 강의 듣고 출판사 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더니 ‘강의 목적이 출판사 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보여줘 못 하게 말리려는 거였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고 웃더군요. 그런데 직접 출판사를 하면서 강의에서 빠진 부분이 있음을 알았어요. 1년에 6권을 내고 다음해 또 6권을 내려면 ‘선투자’라는 개념으로 준비자금이 필요한데 정 사장은 그것을 포함시키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출판사 하려면 비용과 매출을 더 보수적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출판사 해서 돈 벌 생각 말아야죠.
김 번역서 중심인데 책을 고르는 기준이 뭐죠? 좋은 아이템을 골라도 큰 출판사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을 텐데…. 이 경쟁할 힘이 없다고 하면 너무 서글프죠. 차라리 우리는 경쟁하지 않습니다. 경쟁이 붙으면 그냥 줘버려요. 몇 만 달러씩 선인세를 내야 하는 책들은 기꺼이 그 돈을 낼 수 있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봐요. 시간 없고 돈 없어서 못 하지 내고 싶은 좋은 책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저는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책을 찾아요. 기분 내키는 대로 어느 지점에서 출발해 하염없이 서핑을 하다 보면 눈에 띄는 책이 있죠. 에이전시를 통해 소개받은 책은 두 권밖에 없어요. 물론 선정 기준은 내용이죠. 이 내용이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은 거. 『내일의 금맥』은 내용이 아주 좋았고, 『전염성 탐욕』 같은 책은 분량도 많은 데다 경제 금융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읽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파생상품의 시장 메커니즘을 이만큼 이해하고 쓴 책도 없다 싶어서 선택했죠. 처음에는 언론의 반응도, 판매도 신통치 않았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시간이 갈수록 찾는 사람이 늘어요. 누군가 읽고 입소문을 내고 있는 것이죠. 주요 독자층은 금융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짐작되는데 그런 책이 나온 지도 모르고 있다가 한두 명이 읽고 이런 책이 있는데 괜찮다고 소문을 내면서 주문이 조금씩 늘고 있죠. 저는 책 내용이 좋으면 팔린다고 믿어요. 저희처럼 작은 신생 출판사는 오로지 제목, 표지, 내용으로 독자의 눈길을 끄는 방법밖에 더 있겠어요. 필맥 이름 보고 사줄 독자는 전혀 없다고 봐야죠. 그렇게 되려면 책의 종수도 더 많고 인지도도 높여야 하는데 저희는 아직 멀었어요. 이주명 사장은 털털한 외모와 달리 꼼꼼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다. 책을 고르는 자세만 보아도 그렇다. 자신이 직접 읽어보고 낼 만한 책이다 싶어야 움직인다. 그러니 기획하고 번역하고 편집해서 책이 나오기까지가 더디다. 한 달에 두 권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그는 여전히 직접 번역을 한다. 필맥의 색깔이 어두침침하다는 그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필맥의 책들은 ‘더 나은 세계’를 향한 고민을 잔뜩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울하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이런 음울한 경고가 아니라 부자의 신화라고, 당신의 책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고 몰아세워 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좋은 책’의 신념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필맥은 많은 독자를 거느리진 못했지만, 대신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 밝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 필맥의 책들을 쭉 훑어보니 대부분 내용 평가에서 별 다섯 개(최고 등급)를 달고 있다. 독자 리뷰는 한두 개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책에 보내는 찬사는 요란한 광고문구와는 확실히 구분된다.
근 1년간 읽은 책 중에 당당히 최고를 차지한 책이다. 이 책은 거시 경제와 역사학 관점에서 투자를 다룬 책 이다. 놀라운 건, 저자가 이미 금값의 폭등과 최근의 원자재 대란 등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 인도의 급부상과 북한, 쿠바, 몽고가 그 다음 신흥시장이 될 거라 예상하는 등 저자의 미래 예측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생략)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 정말 우린 기회이자 위기의 한 가운데에 서있구나, 이전과 같이 단순하게 우리나라의 부동산이나 증시에서 보는 시각이 아니라 국제적, 역사적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생긴 것 같다. 투자에, 경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무조건 필독을 권하는 책이다. ─ 『내일의 금맥』 Yes24 독자서평(chirico75, 2004.8.5) ‘좋은 책은 팔린다’는 믿음을 누가 비웃을 수 있으랴.
기사게재 : <기획회의> 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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