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7월 22일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날치기 처리한 날이다. 여당 의원들의 대리투표, 재투표에 야당 의원들은 권한쟁의심판 청구로 응수했다. 하지만 헌재는 야당 의원들의 법안 심의권과 표결권이 침해됐음을 인정하면서도 국회의 자율권을 인정한다는 명분으로 해당 법안의 효력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않았다. 국민들 사이엔 ‘커닝은 했지만 점수는 인정한다’는 류의 헌재 결정을 비난하는 패러디가 넘쳐났다. 헌재의 권한침해 인정에도 국회의장이 이를 바로잡는 과정을 거치지 않자 야당 의원들은 다시 권한쟁의심판(부작위소송)을 청구했다. 헌재 재판관 4명은 야당 의원의 청구를 인용했지만, 4명은 각하했다. 인용과 각하 의견 모두 권한쟁의의 정족수인 5명을 채우지 못하자, 1명이 낸 기각 의견이 채택됐다. 각하와 기각 가운데 청구인에게 유리한 결론을 채택한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지만, 국민들은 이같은 시스템을 납득하지 못했다. 두 차례의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 국민들이 주목한 것은 조대현 재판관이었다. 조 재판관은 송두환 재판관과 함께 1차에서 표결 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해당 법안의 효력도 무효라는 의견을, 2차에서는 국회가 헌재 결정 이후에도 위법성을 해소하지 않았다며 인용 의견을 냈다. 지난 8일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헌재를 떠난 조 전 재판관을 26일 서울 일원동 자택에서 만났다.
| | | 지난 2009년 7월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방송법 개정안이 재투표 결과 통과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 7월22일이 국회에서 미디어법이 처리된 지 2년 되는 날이었다. 당시 뉴스에 보도됐던 국회의 미디어법 처리 장면을 보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 “한 마디로 나라 망신이었다. 헌재가 (가결된 미디어법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어야 국회에서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생기는데, 아쉽다.”
- 야당 의원들이 1차로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냈을 때 어떤 생각이었나. “국회의 날치기 역사는 오래 됐다. 의결 절차가 위법하다고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한 적도 있었다.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 청구가 들어왔을 때 이번에야 말로 정말 헌재가 할 일을 해야 한다,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걸 시정시킬 찬스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안 됐다. 표결 절차의 위법성을 인정했지만 그렇게 통과된 법안이 무효는 아니라는 결정이었고, 국회가 스스로 위법성을 시정하라고 했는데 하지 않았다.” - 당시 미디어법 권한쟁의 사건은 입법기능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낸 사건이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돼 있었다. 부담은 없었나. “내용이 위헌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거였다면 아주 복잡하고 어려웠을 텐데, 국회의 의결 절차가 제대로 됐는지, 심의권과 표결권의 침해가 있었는지 등 절차적인 문제만 보는 거라서 부담은 크지 않았다. 민감한 사건이긴 했지만, 외부의 시선은 크게 신경 안 썼다.” - 신문법 표결 과정에서 벌어진 국회의원들의 대리투표에 대해 다른 국회의원의 헌법상 권한인 법률안 표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전자투표를 했는데, 각 의원석에 설치된 단말기를 해당 의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된 게 아니라 다른 의원이 사용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었다. 의원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다른 좌석에서 표결 버튼을 누르는 게 나타났는데, 그렇다면 표결이 정상적이고 정당하게 이뤄졌다고 볼 수 없고, 국회 의결의 기본 조건을 갖추지 못한 거라고 판단했다.” - 방송법 표결 과정에서 이뤄진 재투표는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국회 표결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되는데,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지 않고 표결을 실시했다가 나중에 다시 2차 투표를 했다. 하지만 표결까지 해서 의사 표시를 한 이상 해당 법안은 재적의원 수 부족으로 부결된 것이며, 당연히 법안은 무효라고 봐야 한다.” - 표결 과정에서 법안 심의 절차가 생략된 점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사실 나는 재투표보다 심의 절차를 생략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질의와 토론 절차는 국회 대의 제도의 본질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안건에 관해 국회의원이 서로 질의하고, 토론하고, 그래서 지혜를 모으고 국민의 뜻을 모으는 과정이 합의제 의회 제도의 본질이다. 이걸 생략한 것은 헌법이 요구하는 의회의 기능을 침해하고,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봤다. 질의·토론 절차는 대의제의 실질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요체다. 신문법도 그렇고, 방송법에서도 이 부분이 생략돼 심의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됐다. 따라서 법안이 표결됐다 하더라도 무효로 볼 수 있는 사유가 충분하다.”
| | | 조대현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 | - 1차 결정에서 헌재는 법안 무효확인청구 부분에 대해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헌재는 권한 침해만 확인하고, 위헌·위법상태의 시정은 국회의장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기각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본 결정이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헌재에 ‘의결 절차가 위법하지만 헌재가 법안의 무효를 선언하는 건 적절하지 않고, 국회가 자율적으로 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선례가 있었다. 다른 재판관들은 이 선례를 변경하기는 자신이 없다고 해서 따라간 것이고, 나와 송두환 재판관만 ‘의결절차가 잘못됐고, 특히 심의를 완전히 생략했으므로 다시 심의해서 표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위법하지만 괜찮다’는 게 말이 되나. 옛날 선례도 그렇고 이번에도 정치권 눈치 보느라 그런 것 아닌가 싶다. 나처럼 의결 절차가 잘못됐다고 표결을 다시 하라고 하면 국회의원들이 권위를 침해한다고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국회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것이다.” - 헌재 결정 이후 ‘커닝은 했지만 점수는 인정한다’, ‘회삿돈은 훔쳤지만 돈의 소유권은 인정한다’ 같은 패러디가 봇물을 이뤘다. ‘과정은 잘못됐지만 결과는 인정한다’는 헌재 결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했는데, 당시 심정이 어땠나. “국민들이 납득 못 하는 건 당연하다. 다수 의견을 봐도 이게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고, 도저히 납득이 안 되더라. 미디어법 사건 때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 무효라고 했다. 그런데 다수 의견을 낸 사람들은 지금도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헌재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힘으로 안됐다.” - 2차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는 당시 조 전 재판관을 포함해 네 명이 위법성을 바로잡지 않고 있다며 심판청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용 의견을 냈다. “당시 결정문 초안을 내가 썼는데, 솔직히 쓰기가 조금 어려웠다. 네 명이 1차에서 모두 나와 같은 의견이었다면 2차 때 결정문을 쓰기가 쉬웠을 텐데, 그렇지 못해 의견을 절충해서 쓰다 보니…. 법안 처리 과정에서의 위법을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 국회가 시정을 안 했다.” - 당시 각하, 기각, 인용의견이 4대 1대 4로 나왔는데, 헌재는 “어느 의견도 독자적으로 권한쟁의심판의 심판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고, 각하의견과 기각의견을 합하면 권한쟁의심판정족수를 충족한다”며 심판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국민들은 물론 당시 현장 기자들도 이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는 분위기였는데. “인용 의견이 과반수 미달이니 인용도 못하고 각하도 마찬가지 이유로 못 하고, 결국 기각할 수밖에 없다는 결정이었는데, 이 시스템에 대해서는 나도 불만이다. 각하 의견이 넷이면 결국 본안에 가서 판단하자는 의견이 다섯인 셈인데, 이런 경우 각하 의견을 낸 사람도 본안에 들어가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 9명의 재판관 가운데 단 한 명의 의견으로 헌재 결정이 나가는 게 말이 안 된다. 위헌심판사건에선 더 심하다. 5명이 위헌 의견을 내고 1명이 합헌, 3명이 각하 의견을 내면 정족수(6명)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다.” - 판사와 헌재 재판관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이 있다면.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 결정이다. 제일 답답한 게 이 사건이었다. 국회 의결 절차가 엉터리인데, 엉터리라고 인정하면서도 법안 무효는 선언하지 못한 게 참 답답하다. 하지만 국민들이 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만큼, 헌재 결정이 앞으로는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 앞으로 계획은 뭔가. “아직 구체적인 건 없다. 그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어 가을까지는 그동안 읽지 못하고 쌓아놓은 책도 좀 보면서 자유를 즐기고 싶다. 로펌에 갈 지, 사무실을 하나 얻을지 등 구체적인 것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국선대리인도 하고 싶은데, 국민이 직접 국선대리인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 쏠림 현상 때문에 다른 변호사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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