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책-번역서 인간 본성의 특성 ‘공감하는 능력’
〈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 지음·이경남 옮김/민음사·3만3000원
“호모 엠파티쿠스,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다.” 미국의 문명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의 신작 <공감의 시대>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공감하는 인간’이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정서적 상태다. 공감능력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1차적 특성이라는 게 리프킨의 기본 생각이다. 문명의 진전은 공감의 확장 과정이었으니, 오늘 절멸의 위기에 처한 인류 문명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지켜나가자고 역설한다. 그는 1700년 기독교 문명과 홉스, 로크, 프로이트 등 18~20세기 ‘가부장적’ 사상가들을 차례로 논박하면서 오늘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5000년을 버텨온 가부장적 인성론의 아성을 허물어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허미경 기자
문학에 흐른 변혁 의지…루쉰의 모든 것
〈루쉰 전집 1, 2, 7권〉
루쉰전집번역위원회 옮김/그린비·각 권 2만~3만5000원 <루쉰 전집>은 루쉰의 모든 저작을 묶어서 펴낸다는 야심 찬 기획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루쉰 전집 번역출간이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루쉰은 <아큐정전> <광인일기>와 같은 소설뿐만 아니라 산문·시평(時評) 같은 잡문을 통해 당대 중국의 현실과 끝없이 투쟁해온 근대 아시아의 대표적 지식인이다. 그의 글은 때론 정공법으로, 때론 은유와 비유, 익살·풍자·해학으로 지배계급의 위선과 거짓을 까발리며 민중의 변혁 의지를 고취했다. 올해 작고한 리영희 선생은 “나의 글 쓰는 정신이랄까, 마음가짐이랄까 하는 것은 바로 루쉰의 그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체 20권으로 기획된 전집 가운데 올해 3권이 먼저 나왔다. 최원형 기자
수학적 대칭의 미가 ‘만물 이론’일 수도…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대칭의 역사〉
이언 스튜어트 지음·안재권 안기연 옮김/승산·2만원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가 쓴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는 수학적 대칭의 아름다움이 자연과 우주의 아름다움에 맞닿아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수학에서 왜 아름다움은 반드시 참인지, 수학적 공식의 아름다움은 왜 자연과 우주의 아름다움에 곧장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방정식도, 인간의 몸도 좌우로 대칭을 이루기에 아름답다. 지은이는 대칭이론이 자연과 우주, 그 물리적 세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만물 이론’, 곧 만물의 최종이론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 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대칭이론은 앞으로 산업구조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양자컴퓨터의 개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물리학을 넘어 산업 차원의 주목을 받고 있다. 허미경 기자
‘기자 정신’ 번뜩이는 오웰의 정치 팸플릿
〈위건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지음·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1만2000원 올해는 <동물농장> <1984>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의 60주기가 되는 해였다. 그의 르포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의 번역 출간은 오웰 60주기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지니는 셈이었다. 특히 국내 초역인 <위건부두로 가는 길>(1937)은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일 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던 조지 오웰의 ‘기자 정신’을 웅변하는 역작이자, 현실 사회주의에 비판적인 민주적 사회주의자로서 그의 사상의 좌표를 과감하게 제시한 정치 팸플릿으로도 읽힌다. “눈까지 시커메지고 목구멍에 석탄가루가 꽉 찬 상태에서 강철 같은 팔과 복근으로 삽질을 해대는 그들” 탄광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및 일상의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다. 최재봉 기자
10년 산고 끝 나온 ‘자본’ 첫 한글 완역본
〈자본 1~3〉
카를 마르크스 지음·강신준 옮김/길·전 5책 각각 3만~3만5000원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독일어판(MEW판) 원전의 한글 완역본. 2008년 5월에 1쇄를 찍은 제1권 2책, 그리고 이번에 나온 제2권, 제3권 2책 등 모두 5책이 강신준 동아대 교수의 약 10년에 걸친 번역 작업 끝에 완간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독일에선 <자본> 출판과 판매량이 크게 늘고 대학의 <자본> 수강생도 몇 배 늘었으나 먼저 나온 제1권 번역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기대엔 못 미쳤다. 왜 한국인들은 <자본>을 읽지 않을까? 이는 값도 분량도 만만찮은 이 책을 지금 이 시절에 왜 읽어야 하나?라는 물음과도 상통한다. “새로운 대안 건설이라는 (우리의) 실천적 목표를 찾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번역자의 대답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한국을 달군 질문…정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이창신 옮김/김영사·1만5000원 ‘공정사회’를 국정운영의 기치로 내건 정권이 보여준 온갖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모습들이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을 더욱 자극했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올해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는 책 자체로도 탄탄한 정치철학 입문서다. 존 롤스에 이어 영미권 정치철학계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현실 속에서 맞부딪히는 도덕적 딜레마들을 통해 정의의 개념을 탐구해나간다. 지은이의 여정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미덕’이라는 개념에 닿는다. 공동체가 함께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이며, 이것이 정치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20세기의 승자는 ‘탄력 있는’ 사민주의!
〈정치가 우선한다-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셰리 버먼 지음·김유진 옮김/후마니타스·1만7000원 <정치가 우선한다>에서 셰리 버먼은 20세기에 승리한 이념이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였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그동안 사민주의는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의 어정쩡한 타협으로 이해돼 왔으나, 이 책은 그런 인식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사민주의가 왜 우리 시대에 마땅히 추구해야 할 보편이념인지를 논리적이고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지은이는 사민주의가 경제결정론에서 벗어나 ‘정치의 우선성’을 앞세우고, 계급 적대를 넘어 공동체적 연대를 실현하고, 또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탄력 있는 정치이념으로 자립했다고 말한다. 고명섭 기자
비대칭의 아름다움과 불완전한 우주론
〈최종 이론은 없다-거꾸로 보는 현대 물리학〉
마르셀로 글레이서 지음·조현욱 옮김/까치·1만8000원 <최종 이론은 없다>는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의 대척지점에 놓인 책이다. 만물의 이론은 우주와 자연, 모든 만물의 단일한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최종 이론’을 가리킨다. 브라질계 미국 물리학자 마르셀로 글레이서가 쓴 이 책은 ‘최종 이론은 없다’고 주장한다. 대칭의 아름다움과 완전한 우주론을 설파해온 기존의 서구 주류 물리학계를 향해 ‘비대칭의 아름다움과 불완전한 우주론’을 피력한다.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은 대칭성이라기보다는 비대칭성이며, 물질과 우주는 비대칭이다. 따라서 시간도, 생명도 비대칭이다. 물질의 근원은 대칭성의 미세한 균열(깨짐)에 있으며 이 비대칭성에 우주와 생명 탄생의 비밀이 있다고 말한다. 허미경 기자
칠레 작가 볼라뇨와의 짜릿한 첫 만남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우석균 옮김/열린책들·9800원 한국의 문학 독자들에게 올해는 로베르토 볼라뇨(1953~2003)라는 칠레 작가를 ‘발견’한 해로 기억될 법하다. 볼라뇨는 지난해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이 번역 출간되면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지만, 올 들어 외국문학 전문 출판사 열린책들이 그의 짧은 소설 <칠레의 밤>을 펴내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소설은 보수적인 사제이자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세바스티안 우르티아 라크루아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비겁하고 무책임한 삶을 돌이켜보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시적인 문체에 담긴 일그러진 지식인의 초상이 서늘한 독후감을 남긴다. 열린책들은 볼라뇨의 대표작 <2666>을 비롯한 그의 다른 작품들 역시 준비중이다. 최재봉 기자
금욕주의, 시민계급의 직업정신을 낳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지음·김덕영 옮김/길·4만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현대 사회학을 창시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주저다. 번역자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는 상세한 옮긴이 해제와 방대한 역주를 달아 분량을 원서의 두 배로 키웠다. 우리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꼼꼼한 주해 작업의 모범으로 꼽힐 만한 작업이다. 이 책의 목표는 근대 자본주의의 발흥을 가져온 시민계급의 엄격한 직업정신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밝히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 윤리가 시민계급의 직업정신을 낳았다고 베버는 말한다. 수도원 담장을 넘어 세속으로 나온 금욕주의가 바로 자본주의를 밀고나간 정신적 힘이었던 것이다.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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