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7

한중 정리해고에 치명적 결격 있다-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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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정리해고에 치명적 결격 있다
조남호 회장이 한진중공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지주회사 전환이 결정적이었다. 지주회사 전환 후 경영전략 차원에서 필리핀 조선소에 물량을 몰아준 것이라면 한중의 정리해고는 이유가 없다.
[197호] 2011년 06월 20일 (월) 10:35:55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한진중공업(한중)이 ‘정리’하면 주가는 상승한다? 통상적으로 정리해고란 그 회사의 경영위기를 연상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15일, 한중 측의 정리해고 방침이 나오면서 이 회사 주가는 열흘 동안 3000원 넘게 올랐다. 더욱이 지난 1월12일, 회사 측이 해고 방침을 굳히자 일주일 동안 5000원 정도의 상승세를 시현했다. 

진보 성향 언론이나 정당들은, 한중이 정리해고 방침 통보 다음 날(지난해 12월16일) 170억원 규모의 주주 배당을 실시했다며 회사 측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중이 자회사로 묶여 있는 지주회사 체계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런 흐름 속에서 ‘노동자가 우니 투자자가 웃더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큰 투자자는, 한중 회장과 모회사 한국중공업홀딩스(홀딩스) 회장을 겸하는 조남호씨다.


  
ⓒ뉴스와이어 제공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오른쪽)이 2008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왼쪽)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다. 수빅조선소 건설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한중은 홀딩스의 자회사다. 홀딩스는 한중 등 여러 기업의 지분(주식)을 소유하고, 이 기업들을 ‘지배, 경영지도, 정리, 육성하는’ 이른바 지주회사이다. 지주회사는 일종의 금융 투자자다. 전망 있는 기업에는 투자하지만 전망 없는 기업에서는 돈을 뺀다. 이런 점에서 지주회사 체제는 예전의 ‘재벌 시스템’과도 다르다. 한국의 전통적 재벌 그룹에서 산하 계열사들은 상호간의 지분 보유와 채권-채무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특정 계열사에서 돈을 빼내 퇴출시키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벽돌 하나 빼냈다가 집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각각의 계열사가 지주회사하고만 금융 관계를 맺는다. 계열사 간 지분 보유나 채권-채무 관계는 엄격히 규제된다. 한중 조남호 회장에게 2000년대의 첫 10년은, 한진그룹에서 독립해 지주회사 체제를 완비한 시기다. 한중에 대한 자신의 소유지배권을 확고히 한 시기이기도 하다.

2000년 당시 조남호씨의 직함은 한중 부회장이었지만 지분은 3% 정도에 불과했다. 맏형인 조양호 현 한진그룹 회장에게 낙점된 대한항공이 최대 주주(20%)였다. 그러나 2002년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이후 ‘왕자의 난’을 거쳐 ‘형제간 계열사 배분’이 본격화한다. 2003년 중반에 들어서야 조남호씨는 한중의 최대 주주(13%)로 떠오른 뒤 회장으로 취임한다(대한항공의 지분은 9%).

그런데 조 회장이 한중에 대한 형식적 지배력을 갖추게 된 2000~2003년은, 노사 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은 때다. 당시 한중은 노동자 600여 명을 희망퇴직·정리해고 등으로 퇴출시키고, 이에 저항하는 노조 간부들에게 18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을 냈다. 이 중 한 명인 고 김주익 한중 노조위원장이 결국 85호 크레인에 올라 129일의 농성을 벌이고, 초등생 딸로부터 “아빠! 그런데 내가 일자리 구해줄 테니까 그 일 그만하면 안 돼요?”라는 편지를 받고, 끝내 크레인에 목을 맸다. 10여 일 뒤에는 맞은편 도크 위에서 선배 노동자 곽재규씨가 숨을 끊었던, 바로 그 시기다. 회사 측은 두 노동자의 합동장례식을 치르던 11월, 정리해고 계획을 백지화한다. 그러나 정리해고 시도와 노동자들의 저항은 이후에도 지겨울 만큼 되풀이된다.


  
ⓒ김홍지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에 도착한 6월12일 새벽 용역 직원과 노조원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져 부상자가 나왔다.



2003년 7월, 한중 회장에 오르긴 했으나 이후에도 조남호 회장의 지분은 13~15%에 불과했다. ‘한중은 내 것’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불안한 몫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고 ‘경영효율화’까지 성취할 방법이 등장했다. 바로 2007년 8월의 지주회사 전환이었다.

지주회사 전환으로 한중에 대한 지배권 확립

그 방법은 기존 한진중공업을 사업회사(신설 한중)와 지주회사(홀딩스)로 쪼개는 것이었다. 신설된 한중은 기존 한중이 해오던 조선·건설 등을 그대로 운영한다. 홀딩스는 한중을 지배한다. 조남호 회장 일가는 기존 한중에 15%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이 경우, 신설 한중과 홀딩스에도 각각 15%의 지분을 인정받게 된다(이른바 ‘인적 분할’이라는 방법이다). 그 다음에는 LG, SK 등 재벌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때면 언제나 나타나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진다. 지주회사(홀딩스)의 주가는 떨어지고, 주력 회사(신설 한중)의 주가는 상승하는 것이다. ‘하늘의 조화’로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비싼 주력 회사(신설 한중) 주식을 팔아 저렴한 지주회사(홀딩스) 주식을 대량 매집하면 된다.

그래서 2011년 5월 현재 조남호 일가가 보유한 홀딩스 지분은 무려 49.3%에 달한다. 절대적 지배력이다. 그러나 한중 지분은 1%에 불과하다. 다만 홀딩스가 한중을 36.54%의 엄청난 지분으로 지배한다. 즉, 조남호 일가는 홀딩스를 통해 한중에 대한 지배권을 엄청나게 강화한 것이다. 재벌들은 큰돈 들이지 않아도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다.

지주회사 전환과 함께 조 회장이 주력한 것이 바로 해외 투자다. 2006년부터 1조1000억원 규모의 해외 투자를 감행했다. 이는 지금 한중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기도 하다. 지주회사 전환 당시 한중 그룹은, 지주회사인 홀딩스가 한중 등 4개 국내 자회사를 거느리는 구조였다. 그러나 2011년 5월 나온 분기 보고서를 보면 5년여 만에 해외 계열회사가 크게 늘었다. 한중의 해외 계열회사만 7개인데, 이 중 하나가 바로 한중의 필리핀 현지 공장인 수빅조선소(HHIC -Phil)다. 또한 투자업으로 분류된 자회사가 홍콩·덴마크·사이프러스 세 곳에 있는데, 이 중 사이프러스는 이른바 세금 피난처다. 전문가들은 한중 회사 측이 이런 투자회사들을 거쳐 수빅조선소를 설립한 것으로 본다. 2007년 12월에 완공되어 다음 해 7월부터 선박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2월 필리핀 민다나오에도 계열 조선회사 법인이 하나 더 설립되어 있다.

조선산업 전문가인 허민영 박사에 따르면, 수빅조선소는 국내의 한중 영도조선소를 완전하게 대체 가능할 정도이다. 수빅조선소는 300만㎡(90만 평) 면적에 대형 드라이도크 2개를 갖추고 있는데, 지난 3년 동안 엄청난 수주 물량을 소화했다. 모두 18척이다. 2011~2012년에도 35척이 인도될 예정이다. 2009~2010년에 수주 실적이 한 건도 없었던 한중과는 대조적이다. 더욱이 수빅조선소의 노동자는 2011년 현재 정규·비정규·간접 고용 등을 모두 합쳐 1만9000여 명에 이른다. 이 조선소의 임금 수준은 국내의 10% 정도라고 한다.


  
ⓒ시사IN 조남진
용역 직원들이 공장 정문을 막고 출입을 차단하고 있다. 그 너머로 수빅조선소 광고가 보인다.



이에 비해 한중 영도공장의 노동자 수는 보잘것없는 데다 급감하고 있다. 한중 노조 최우영 사무장에 따르면, 회사 측의 정리해고 시도가 거듭되면서 2010년 초 2800여 명 규모였던 정규직(생산직+사무직)이 현재 1400명 규모로 줄었다. 하청 등 간접 고용 형태의 노동자도 3500여 명에서 1000명 규모로 감소했다. 더욱이 울산과 인천의 한진 공장은 최근 문을 닫았다. 이런 상황에서 수백명 규모의 정리해고를 계속 강행하니, 국내 생산기지를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중 상황 나빠져도 조 회장 손실은 미미

허민영 박사는 한중의 수주 물량 급감에 대해 “신규 수주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신규 수주한 선박 전량을 수빅조선소로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한중은 3개 조직을 신설한다. 수주위원회, 관리총괄부서, 수빅(SUBIC) 기획실이다. 김동운 부산 동의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수빅 기획실과 관련, “필리핀의 수빅조선소를 본사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챙기겠다는 의도로 생긴 것으로 보인다”라고 썼다. 

그동안 조남호 회장이 한 일은, 자금 투자와 회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지주회사 체제를 완비하고, 이에 더해 해외에 자회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물량이 집중되고 있다. “(한중은) 고기술·고부가가치 선(박)과 특수목적 선(박)을 전문 건조하는 특화된 조선소로 거듭나겠다”라는 회사 측의 논리가 매우 군색해 보이는 상황이다.

한중 그룹의 소유 지배구조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 홀딩스 지배주주인 조남호 회장 처지에서는 어떤 자회사이든 많은 배당금이 들어오면 된다. 수주 물량을 한중이 아니라 수빅에 줘도 괜찮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중 회장까지 맡고 있다. 한중의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조 회장 이외의 주주들과 노동자들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조 회장의 예상 손실은 크지 않다. 그의 한중 지분은 고작 1%이다. 이런 조 회장이 한중을 직접 경영해도 되는 것일까. 다분히 ‘이해 상충’ 문제가 존재한다.

더욱이 경영전략 차원에서 수빅조선소에 물량을 몰아준 것이라면 한중의 정리해고에는 치명적 결격 요인이 생긴다.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송덕용 회계사는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야 4당 토론회에서 “생산 배분 같은 경영전략의 변화조차 정리해고의 요건으로 인정된다면, 정리해고의 요건은 사실상 대폭 완화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지주회사가 특정 자회사에서 정리해고를 실시하려면 동종의 다른 자회사를 만들어 그곳에 물량을 몰아주기만 하면 ‘목표 자회사’의 ‘긴박한 경영위기’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세계 최강 조선국가의 ‘투명한’ 지주회사 체제에서 노동자들의 입지는 계속 비참한 상태로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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