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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세상읽기 ‘손학규 현상’의 10가지 이유 노무현에 대한 반발·대통령이 되겠다는 강렬한 욕망 등 ▣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이럴 수가! 원고를 다 쓰고 났더니 바로 다음날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사건’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이렇게 되면 내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손학규 현상’의 의미가 달라져버린다. 더 의미 있는 건 탈당 이전의 ‘손학규 현상’이며, 이게 앞으로의 대선 정국을 읽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믿기에, 일부러 원래 썼던 원고대로 가기로 했다. “손학규씨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면 범여권 대선 후보로 만들자는 얘기도 있는데, 코미디다. 그렇게 집권하면 한나라당 집권과 무슨 차이가 있나.”(김기식) “한나라당의 유력 후보인 손 전 지사가 진보 진영의 후보가 된다는 건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대통령 출마를 위한 코미디다.”(지금종) “(손학규를) 다른 지역도 아니고 광주가 범여권 후보로 지지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충격을 넘어 코미디다.”(손호철) ‘불경기’ 타파하려는 언론의 흥행 욕구 손학규가 범여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진보 인사들의 반응은 ‘코미디’라는 말로 압축된다. 그런데 코미디치곤 이상한 코미디다. 손학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후보 1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국회의원 보좌관·정치부 기자단·중소기업인 등 전문집단 대상 여론조사에선 이명박마저 누르는 경쟁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반된 모습을 가리켜 ‘손학규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손학규는 이번 대선 후보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정치적 현상을 생산한 인물이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어차피 ‘물증’은 없는 이상 상상력을 발휘해 그 이유를 하나씩 꼽아보았더니, 10가지 이슈가 나왔다. 현 단계 한국 정치의 주요 이슈들에 다 한 다리씩 걸치고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하나씩 음미해보면서 한국 정치의 묘기 대행진을 감상해보자. 핏대 올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닌 만큼 때론 정치를 ‘쿨’하게 관전해보는 것도 필요하리라. 첫째, 언론의 흥행 욕구다. 대선은 언론에 대목이다. 그런데 유사 이래로 이런 불경기가 없다. 대선 후보 1~3등이 모두 한나라당인데다, 이들의 누적 지지율이 70%를 넘는다. 반면 여권 주자는 한 자릿수, 그것도 일부 조사에선 3%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 자릿수다. 유사 이래 이런 일이 있었던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너무 재미없다. 반드시 그 어떤 파란이 일어나야만 한다. 그래서 나타난 게 ‘손학규 현상’이다. 물론 언론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한 건 아니지만, 여론조사에 ‘범여권 후보 손학규’라는 너무도 비상식적인 항목을 집요하게 끼워넣는 걸 가볍게 생각할 순 없다. 언론은 오직 당파성만으로 먹고사는 건 아니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열망하는 보수 신문들조차 대목 경기가 살아나는 걸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기묘한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이 점에서 손학규의 성패는 ‘언론 플레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될 것이다. 둘째, 노무현 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절대적 반감이다. 여권 후보조차 한나라당에서 모셔오겠다는 발상, 그리고 그런 황당한 시나리오가 나중에 파국을 맞을망정 점점 현실화되는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건, 이미 비틀거리는 노 정권에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는 셈이다. 노무현이 분개하는 건 당연하다. 그는 손학규 영입은 “정치적 상상력치고는 하책(下策)”이라며 “그런 말 하는 건 정치할 자격이 없는 것 아니냐. 집에 가서 애나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범여권의 다수결 원리로만 보더라도, 오히려 노무현의 ‘정치할 자격’을 의심하는 게 현실인 걸 어이하랴. 그럼에도 노무현이 “누굴 되게 할 순 없지만, 누굴 안 되게 할 순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손학규로선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손학규는 노무현에게 ‘송장’ 운운한데다, ‘바다이야기’ 사태 땐 “온 국민을 도탄에 빠뜨려놓고 그것도 모자라 도박을 제도화하고 국민을 도박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나쁜 놈들”이라는 독설까지 퍼부어댔으니 말이다. 손학규의 최대 경쟁자는 기억력이 비상한데다 보복력이 탁월한 노무현일지도 모를 일이다. 노무현식 이분법에 대한 반작용 셋째, 노무현식 ‘정신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다. 노무현은 대선 국면에서 눈물까지 선보이는 ‘이미지 정치’로 큰 재미를 보았으면서도, 집권 뒤엔 정신에 모든 걸 거는 지식인 행세를 하는 데 주력했다. 늘 사사건건 따지면서 논쟁·설교·훈계하는 대신 민생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눈물까진 아니더라도 가슴 아파하고 고통을 분담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진력했더라면, 노 정권의 지지율이 지금처럼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그런 민생 탐방은 ‘쇼’ 같아서 싫다고 한사코 거부하곤 했다는 게 참모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반면 지식인 출신인 손학규는 ‘100일 민심대장정’을 통해 노무현의 그런 정신주의와는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교과서적으론 노무현이 옳았는지 몰라도, 현실정치에선 손학규식 방법이 훨씬 더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넷째, 노무현식 이분법에 대한 염증이다. 제대로 된 개혁을 해보겠다는 좋은 뜻이었겠지만, 노무현 시대에 ‘편 가르기’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고조돼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건 분명하다. 이에 대한 반감 또는 성찰이 ‘손학규 카드’를 용인할 수 있는 무드를 조성했으리라는 가설이 가능하다. 역설이지만, 사실 이 가설의 설득력을 높이는 데 일조한 건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이었다.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대연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한나라당 사람을 데려다 써먹는 건 대연정에 비해 훨씬 더 현실적·도덕적인 방안이며, 대연정을 제안했던 노무현의 ‘정치적 상상력’보다 상책이라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사실상 손학규를 응원하는 황석영의 논지도 이쪽에 가깝다. 황석영은 3월7일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비빔밥은 좋은 음식입니다. 여러 가지 나물과 반찬이 섞여 있어서 ‘편식’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섞인 먹을거리들은 제각기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요. 선진민주 사회는 그래야 되는 게 아닌지. 선거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이른바 ‘누가 더 진보냐’ 하는 우리끼리의 선명성 경쟁보다는 분단된 우리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논의해서 마땅한 후보가 들어올 프레임(틀)을 짜는 게 시급하다고 봅니다.” 다섯째, 노무현식 ‘아웃사이더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다. 늘 변방에 머물렀던 노무현의 아웃사이더 위치와 기질은 대선 국면에선 기존의 잘못된 모든 걸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장점으로 여겨졌지만, 집권 뒤 ‘내지르기’보다는 ‘수렴’이 필요한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그 장점을 단점으로 바꾸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노무현과는 정반대되는 손학규의 ‘엘리트 이미지’는 그동안 손학규에겐 부담이자 마이너스로 작용했지만, 바로 그런 노무현 효과 덕분에 이젠 플러스 효과를 갖게 된 게 아닌가 하는 가설이 가능하다. 일부 논객들도 조심스럽게 그 점을 역설하고 있다. 예컨대 논설실장 한석동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소하지만 그는 또 글로벌 시대의 기본인 말(영어)이 된다. 요즘은 공부 잘한 것도 때로 짐이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좋은 학교 다닌 것까지 흠 잡힐 일은 아니다. 1947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손 전 지사는 경기중·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정도면 정상적인 교육, 나아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재원이다. …세계를 보는 안목, 한국 경제의 가능성 재인식, 낡은 보수, 낡은 진보를 뛰어넘는 ‘21세기의 길’ 터득 등은 유학 시절의 소득이다.” 기회주의에 너그러운 한국 국민들 여섯째, 대통령이 되겠다는 강렬한 욕망이다. 대통령 해보겠다는 사람치고 강렬한 욕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게 결코 그렇지 않다. 고건의 경우를 보라. 정운찬도 바로 이 욕망이 약해 오락가락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야 드러난 사실이지만, 노무현의 대통령 욕망은 김영삼·김대중 이상이었다. 김영삼·김대중의 대통령 욕망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럴 만하다고 인정받은 것이었지만, 노무현의 경우는 그런 세월조차 건너뛴 채 발동된 것이었다. 그런데 손학규의 욕망은 노무현의 욕망 이상이다. 이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손학규는 노무현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노무현은 김영삼의 3당 통합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키웠지만, 손학규는 1993년 진보적 대학교수에서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의원으로 변신함으로써 정계에 입문했다. 손학규는 당시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세상의 상식으로 보아 권력 욕망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손학규는 대학마저도 그런 용도로 이용했다. 그는 민주화 바람을 타고 진보적 교수 영입 케이스로 인하대에 들어간 뒤 1년도 안 돼 서강대로 옮겼으며, 서강대 교수가 된 지 2년도 안 돼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교수 윤리로 보자면 큰 문제가 있었지만, 정치판에서 크려면 그런 윤리가 없을수록 유리한 게 현실인 걸 어찌하랴. 손학규는 최근 이명박과 각을 세우면서 민주화 세력의 옹호자인 양 큰소리쳤지만, 자신이 민자당 대변인 시절 어떤 논평들을 내놓았는지 한 번쯤 살펴보고 발언하는 게 좋겠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윤리 문제가 아니라,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 다 그러했듯이, 성공하려면 후안무치(厚顔無恥)할수록 유리하다는 점이고, 이걸 손학규가 갖췄다는 사실이다. 이건 비아냥이 아니라, 강력한 권력 욕망에 따라붙기 마련인 후안무치는 정치 지도자의 필수 요건이라는 현실론에 근거한 것이다. 일곱째, 한국인의 기회주의 친화성이다. 기회주의는 유연성과 역동성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기회주의를 부정적 의미로만 쓰지만, 이 지구상에서 한국인만큼 기회주의에 너그럽고 그걸 사랑하기까지 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파란만장한 역사와 더불어 사람에 빠지는 문화 때문이다. 2007년 2월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탈당해 독자 출마하더라도 지지자의 약 70%가 “계속 지지하겠다”고 답한 결과가 나왔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민주당은 물론 동교동계까지 포용하는 걸 사실상 맹세했다가 집권 뒤 ‘민주당 죽이기’로 나간 게 ‘정치개혁’의 이름으로 박수를 받았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 인물 중심으로 보는 한국인의 이런 기회주의 친화성은 기자 최재봉이 황석영과의 인터뷰에서 제기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손학규의 절대 장벽은 아니라는 걸 시사해준다. “선생님은 현재 드러난 대선 후보 중에서 손학규 후보를 염두에 두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손 후보에 대해서는 재야에서 한나라당 쪽으로 간 ‘1차 배신’이 문제인데다, 다시 한나라당을 뛰쳐나온다면 그것을 또 다른 ‘배신’이라 비판하는 소리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지역적 기반 부재, 약점인 동시에 강점 여덟째, 이념을 뛰어넘는 연고·정실 문화의 파워다. 한국의 엘리트 운동권 문화는 이념 못지않게 연고·정실 문화의 지배를 받는다. 이는 손학규가 민자당으로 들어간 ‘변절’ 이후에도 여전히 서울대 중심의 진보 지식인·운동권 집단의 지지를 받은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이제 때를 만나 그 지지가 물밑에서 수면 위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아홉째, 강력한 지역적 기반의 부재다. 손학규에게 강력한 지역적 기반이 없다는 건 그의 약점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동시에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약점을 상쇄할 수 있는 크기의 장점은 아니지만, 손학규만의 독자적 영역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기존 영-호남 대결 구도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손학규의 지역 기반 부재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열째, 비교적 낮은 인지도의 역설이다. 손학규는 정치권에 14년간 몸을 담았으면서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치명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그건 ‘신선감’으로 포장될 수 있는 잠재력이기도 하다. 손학규 지지를 시사한 김진명의 소설 도 손학규의 신선감을 역설하고 있다. 앞으로 손학규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손학규는 너무도 재미없을 대선에 예측 불허의 역동성을 선사하기 위한 불쏘시개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한국 유권자들이 그 답을 쥐고 있다. http://h21.hani.co.kr/section-021128000/2007/03/021128000200703280653051.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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