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략
바둑 용어 중에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덩치가 클수록 잘 죽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영화 흥행에도 마찬가지로 통하는 말이다. 언뜻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면 위험도도 커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다.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른바 블록버스터의 경우에 40-50억 원 정도를 쓴 중급 규모의 영화보다 경향적으로 흥행 타율이 높다. 일단 제작비를 많이 썼다 하면 언론의 관심도도 높아지고, 그 많은 돈을 회수하기 위해선 홍보에도 엄청난 열을 올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기대치도 올라간다. ‘대마불사’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일단 블록버스터라고 한다면, 최소 400~50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을 해야 본전을 뽑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영화적으로도, 그 많은 관객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흥행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블록버스터에 걸맞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한국 블록버스터의 단골 흥행 전략은, 역사적 비극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분단의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다. 분단만큼, 세대를 막론하고 대한민국 관객들에게 절실한 화두는 없기 때문이다. 일찍이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8)와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가 분단 소재 영화의 위력을 입증한 뒤, 많은 블록버스터들이 그 전철을 밟았다. <태극기 휘날리며>(2003)는 장동건과 원빈, 두 꽃미남을 민족상잔의 주인공으로 삼아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실미도>(2003)와 <웰컴 투 동막골>(2005)도 마찬가지 맥락의 영화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분단 소재의 블록버스터들이 다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곽경택 감독의 <태풍>(2005)은 장동건을 캐스팅해 놓고도 흥행 실패했다. 분단이 아닌, 이를테면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현대사의 아픔을 담은 작품 가운데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도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입해 놓고도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블록버스터 SF를 표방한 <예스터데이>(2002)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을까?
‘코미디‘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빼먹었기 때문이다. 한국 관객들은 지나치게 진지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공한 한국 블록버스터들은 비극을 근간으로 한 상태에서 희극적인 요소를 양념처럼 얹는 흥행 전략을 구사한다는 공통점을 보여 왔다. 그만큼 ’웃음‘은, 특히나 한국의 대중 관객들을 공략하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간주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웰컴 투 동막골>과 <해운대>(2009)다. 두 영화는 각자 전쟁 영화와 재난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에서는 다르되, 캐릭터들이 충돌하면서 파열되는 웃음을 선사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웃기는 데 그쳐서는 또 안된다는 것이다. 적절한 신파적인 요소를 가미해, 비극을 완성해야 한다. 종국엔 관객들을 울려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이라는 화두도 중요한 블록버스터 전략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 영화이지만 기본적으로 형제간의 이별에 대한 영화다. <괴물>(2006)도 마찬가지다. 한강 괴수에게 잡혀간 자신의 딸을 구해내기 위한 얼치기 아빠(송강호)의 눈물 겨운 사투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해운대>는 어떤가. “내가 네 아빠다!”라고 외치는 박중훈의 대사가 상징하듯,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인물들의 사연이 드라마의 아주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비주얼 전략이다.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다. 두말할 나위 없이 기존의 영화들에서 보지 못했던 신선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괴물>은 한강 괴수를, <디 워>는 용가리와 부라퀴를, <해운대>는 부산 앞바다를 강타한 쓰나미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굉장히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익히 봐왔던 볼거리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한국이라는 공간으로 옮겨 왔을 때 관객들에게 주는 정서적 효과는 또 다른 파장을 만들어낸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은,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2011.7 (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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