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9

공부냐 학습이냐- 로쟈

http://blog.aladin.co.kr/mramor/799694

정말 좋은 글이다.

일부분만 발췌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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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궁극적으로 우리의 즐거움 또한 끝이 없다그런 즐거움을 배우고 익히는 것즉 다시 가르치고 베푸는 것이 나는 교육의 몫이라고 생각한다(해서 우리가 배우는 지식은 언제나 즐거운 지식이며새로운 계몽주의란 즐거운 계몽주의이다). 그것이 시민의식의 함양이고 시민교양의 양생(養生)이다시민의 학습이고 합창이다끊임없이 읽고 쓰고 떠들어대라그것이 한편으론 시인 이성복의 말을 빌자면(그는 한동안 경전 공부를 했었다), 세상과의 연애이다

세상과의 연애를 통해서 제가 깨우친 바가 있다면 삶의 의미는 끊임없는 배움에 있으며그 배움은 공경하는 마음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보다 더 자세하게 살피자면 배움은 다름 아닌 공경하는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앞도 뒤도 알 수 없는 막막한 세월 속에서 구원도 해탈도 아닌 막막한 걸음걸이우리는 모두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그 막막함을 함부로 제 멋대로 제 편한 것으로 바꾸어 버리지 않고 그 길을 끝까지 가는 것모든 공부는 입을 틀어막고 우는 울음 같은 것입니다. (이성복, '세상과의 연애')  

물론 매일같이 읽고 쓰는 우리의 공부혹은 학습이 당장에 좋은 세상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백범의 표현을 빌면인의와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은 데리다의 민주주의만큼이나혹은 메시아만큼이나 더디게 (하지만 언젠가는 예기치 않게올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울음 또한 당장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니“詩를 쓰고 쓰고 쓰고서도 남는 작부들물수건속쓰림…”(이성복, '아들에게')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세상의 모든 작부들과 물수건과 속쓰림은 또 그 나름대로 자동사이다울음이 그러하듯이“한 여인이 웬 서류 봉투를 손에 쥐고 흐느끼며흐느껴 울며 갔다 콸콸대는 물소리 같은 울음을 거푸 울며 여러 번 길을 건너갔다 아무한테도 그 울음에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세상 끝까지 울음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듯이 울며 갔다 비교도비유도 허락되지 않는 울음꽃핀 벚나무의 검은 가지처럼 검은 길을 그 울음으로 적시며”(이성복, '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27')  

우리는 그렇듯 비교도비유도 허락되지 않는 울음에 대해 읽고 또 읽고쓰고 또 쓰면서 다만 기다려볼 따름이다배우고 가르치고 베풀면서 고대해볼 따름이다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날을하지만 그때의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가장 큰 나라와 마찬가지로 경계와 구별이 없는 나라일 것이니세계 자체와 등가일 것이다(우리나라=세계). 우리 나라도 너네 나라도 없는 세상 말이다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진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초월론적 가상'이다)하지만우리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매일같이 변기에 물을 갖다 부으면서세상을 밥 먹듯이 구원하면서읽고 쓰고 떠들면서속쓰림을 참아가면서사랑하면서 실연하면서가끔은 못살겠다고 도망치면서저항하면서 이를 갈면서이빨을 갈면서즐겁게 아주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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