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역주의는 과연 언제, 어떻게 나타났을까? 저자인 박상훈이 책을 시작하면서 던지는, 누구나 알 것 같은 쉽고도 통속적인 물음이다. 그러나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틀로 지역주의 문제에 접근하는 그의 답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과는 다르다. 즉 지역주의 문제라고 이야기되는 것의 상당 부분이 실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창조되고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박상훈은 여덟 개 장으로 이루어진 긴 본문을 통해 지역주의 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 해석, 곧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론’과 그 전제들이 왜 잘못인지를 따지고, 따라서 문제를 달리 보아야 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즉 지역을 둘러싼 편견과 지역주의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전통사회에서부터 존재해왔다는 주장, 지역주의의 중심 내용은 영남과 호남 사이의 지역 갈등이라는 주장, 지역주의 때문에 정치 발전이 안 되고 있다는 주장, 지역주의는 망국적인 고질병으로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이나 선거제도 변화같이 게임의 규칙을 바꾸거나,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 같은 강한 외재적 힘의 개입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저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권위 구조 ‘건재’
나아가 그는 한국의 지역정당 체제는 지역주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석하면서, 한국에서 왜 선거만 하면 지역 간 차이가 다른 차이를 압도하는지 그 이유를 한국의 민주화 그리고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갖는 구조와 특성을 통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그 이유는 선거 경쟁만 민주화되었을 뿐, 권위주의 아래에서 주형된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권위 구조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데 있다. ‘지역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의 민주화는 왜 지역정당 체제를 가져왔나’ 따위의 물음을 통해 그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 몇 가지다.
| | | 우리가 문제 삼는 지역주의는 박정희(위) 정권 시대의 권위주의적 산업화 과정에서 생겼다. | 첫째, 사회적으로 유해하고 민주적 가치에 상응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 모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야 할 지역주의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반호남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는 호남 출신에 대한 차별이 그 핵심이다. 둘째, 우리가 문제로 삼는 지역주의는 전통사회에서가 아니라 근대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현상으로 박정희 정권 시대의 권위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생겼다. 셋째, 반호남주의가 자원 분배를 인위적으로 차별적이게 만들고 지배의 한 수단으로 기능한 것은 지역민의 생활 세계가 아닌 정치체제의 성격 때문이었다. 넷째, 지난 참여정부 5년 동안 고개를 들고 있었던 것은 시민이나 유권자들 속에 있는 지역주의가 아니라,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로 설명하면서 상황의 어려움을 지역주의 때문으로 합리화하려는 집권 세력의 욕구였다. 다섯째, 선거 결과로 나타난 표의 지역적 편차는 지역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기능 이익에 기반을 둔 갈등의 사회화가 억압되는 정도를 말해주는 것이며, 지리적으로 표의 큰 편차가 생기는 것은 정당체제의 이념적 범위가 협소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부수 현상일 뿐이다. 결국 지역주의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국가·정당체제·시민사회로 확대되고 생활 세계로 넘쳐흐르는 효과를 통해 해소되는, 다소 긴 시간의 변화를 거쳐 자연스럽게 사라지도록 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왕년의 ‘선수’들이 펴낸 속편 ‘눈에 띄네’
때때로 인문학과 사회과학·경제학의 경계를 짓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올해가 특히 그랬다. <시사IN> 사회과학 분야 추천위원이 다수 추천한 책은 박상훈의 <만들어진 현실>이다. 그 다음 순위로 추천된 책은 폴 크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과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홍기빈 옮김)이었다. 두 도서는 각각 경제학 분야와 인문과학 분야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후보에 오른 책 가운데 왕년의 ‘선수’들이 속편 격으로 낸 사례가 많았다. 최장집 교수의 <민중에서 시민으로-한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돌베개)은 2002년 그가 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부터 시작된 ‘민주주의 시리즈’ 연작 네 번째다. 2007년 <88만원 세대>를 펴낸 우석훈 박사는 올해 후속작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88만원 세대 새판짜기>(레디앙)를 내놓았다. <88만원 세대>의 표지에는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외친다. 반면 오른쪽에 놓인 신간 표지에는 빨간 하이힐을 신은 늘씬한 여성의 다리 일러스트 아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라고 속삭인다. 전작이 20대가 처한 비참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폭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후작은 대안 제시에 방점이 찍혀 있다. 김연철의 <냉전의 추억-선을 넘어 길을 만들다>는 한반도 문제를 다뤘다.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남과 북의 이야기를 24개에 달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재미있게 말하고 있는 이 책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쟁점과 주제 거의 대부분을 포괄한다”라고 평했다.
신호철 기자
추천위원:조현연(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부소장·정치학) 김양희(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장석준(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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