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사실 세종시 수정, 개헌 빼고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는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오히려 미국 요구를 수용해 다시 고쳤다. 날치기로 예산안을 해결했고 그로 인한 국회 마비도 풀었다. 4대강 사업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종편은 예정대로 보수 언론에 넘겨주었다. 방송과 통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고 있다. 때로는 매 맞고 버티면서, 때로는 정면 돌파해서 이루어낸 것들이다. ‘이제는 좀 지치지 않았을까’ 하고 넘겨짚지 않기 바란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실망스러운 소식이 있다. 그는 “평지에서 뛴다.” 그리고 취임 3주년이 되는 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취임식 넥타이를 다시 맸다. 지쳐 나가떨어질 쪽은 그가 아니라 반대세력이다. 아직 그의 권력에 대한 의미 있는 도전도 없다. 한나라당이 정동기 문제로 기습했지만, 그가 돌아서 눈을 흘기자 바로 얼어붙었다. 검찰의 충성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권력의 의도를 벗어난 수사는 옷을 벗기는 한이 있더라도 차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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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살아 있는 권력은 동의를 이끌어내는 힘도 있다. 그에게 남다른 설득력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4대강·종편 사업이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사람들은 그럴 이유가 있겠지 하며 따른다. 이런 실험이 있다. 경찰관이 실험 참가자에게 컴퓨터로 몇 가지 작업하도록 지시한다. 다만 Alt 키를 누르면 컴퓨터가 망가지니 누르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실험 참가자 누구도 그 키를 누르지 않았다. 그러나 컴퓨터는 망가졌다. 경찰관은 Alt 키를 눌렀다고 책망하며 자백하라고 요구했다. 70%의 참가자가 사실이 아닌데도 잘못했다고 자백했다. 그 키를 누르는 것을 보았다는 거짓 목격자의 증언이 있을 경우 90% 이상의 참가자가 Alt 키를 눌렀다고 고백했다. 보통사람들은 이렇게 경찰관으로 상징되는 권력 혹은 권위를 존중하고 그에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 실험 때의 거짓 증언처럼 권력 주변 지식인과 언론이 맞장구치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권력의 ‘눈멀게 하는 효과’다.
기장 잘못 알고도 침묵한 부기장이명박의 권력을 뒷받침해 주는 힘은 또 있다. 권력집단의 동질성, 그들 사이의 높은 친밀도와 정서적 유대감이다. 박범훈·김도연같이 흠집난 이들이 이명박 아니었으면 어떻게 청와대 가고 주요 공직을 두 번씩이나 맡을 수 있었겠는가. 흠에도 불구하고 지연·학연, 그 외 온갖 인연으로 맺어진 이 집단은 일단 자리를 차지하면 내놓지 않는다. 분야를 바꿔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한이 있어도 결코 권력 주변을 떠날 줄 모른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그들은 이제 어느 자리로 이동하든 그들만의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만일 그들이 비전과 가치로 뭉쳤다면 친밀도가 높아도 그 가치가 훼손될 때 이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권과 자리의 분배로 결집한 세력이라면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한 침묵할 것이다. 사실 이명박 앞에서 그렇게 잘난 척할 인물이 없기도 하다.
여전히 공고한 권력, 권력집단 내 높은 동질성과 유대감, 이견 및 갈등의 부재. 모두 레임덕을 차단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들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은 소프트 랜딩에 성공할까. 케네디의 쿠바 피그만 침공 실패 사례를 보자.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대통령 특별보좌관 아서 슐레진저는 그 계획에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회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참석자 모두 친밀한 개인적 관계였다고 한다. 그는 “그때 단 한 명이라도 반대했다면 케네디가 그 계획을 취소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존슨의 보좌관 빌 모이어스 역시 베트남전 확전에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하면 정부 내에서 영향력을 잃을 것이라는 주변의 압력 때문에 침묵을 지켰다. 이명박이 소말리아 인질 구출작전을 결심할 때는 어땠을까. 인질 사망 위험이 있으니 구출작전은 안 된다는 반대의견이 나왔을까. 그랬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심각해질 필요가 있다. 1997년 8월6일 괌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801편의 부기장은 기장의 잘못을 알았지만 기장의 권위를 훼손할 수 없어 침묵했고, 여객기는 추락했다.
‘이견’ 없는 정권 결말 좋지않아한 명의 다른 목소리만 있어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이명박 정권에 그 한 명이 있을까. 없다면 견고해 보이는 권력이라도 어느 순간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 놀랄 일이 아니다. 사실 여객기가 지금 산허리를 향해 날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대근|논설위원
gr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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