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9

서울 ‘도시홍수’ 급습했는데 ‘구시대 방재’만

서울 ‘도시홍수’ 급습했는데 ‘구시대 방재’만
집중호우 연 12회로 늘어
시 “100년만의 비” 타령
전문가들 기후변화 경고
“방재대책 새롭게 짜야”
한겨레  유선희 기자기자블로그 권혁철 기자기자블로그
» 지난 27일 집중호우로 인한 우면산 산사태 탓에 토사로 뒤덮인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부순환로가 28일 오후 이틀째 차량을 통제한 채 복구작업을 하는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13㎜. 27일 서울 관악구 일부 지역에 1시간 동안 쏟아진 비의 양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특정 지역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도심이 물에 잠기는 ‘도시홍수’가 일반화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 수해방지 시스템은 지천변이나 저지대 침수에 대응하는 과거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립방재연구소 분석을 보면, 2000년 이후 내린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1970년대보다 2.5배나 늘었다. 시간당 50㎜ 이상 내린 횟수가 1970년대 연평균 5.1회에서 2000년대엔 12.3회로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도시화에 의한 불투수면 증가, 도시의 물 저장능력 부족 등이 겹치면서 ‘도시홍수’가 빈발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지난해 9월 광화문이 물에 잠긴 것이나 올해 강남 한복판이 침수된 건 전형적인 ‘도시홍수’의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서울시는 집중호우가 내릴 때마다 ‘100년 빈도의 폭우’라는 식의 설명만 하면서, 기후 급변에 대응하는 도심 전역의 홍수 방지 체계를 갖추려는 노력은 외면하고 있다. 김현주 국립방재연구소 도시방재팀장은 “100년 만의 폭우라는 말을 하는데, 100년 빈도의 폭우가 매년 내린다면 빈도는 의미가 없으니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 전국 비 피해상황/서울 비 얼마나 왔나

이런 점에 비춰, 지난해 9월 광화문 침수 뒤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은 미봉적·근시안적인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당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침수 방지를 위해 396억원을 들여 종로구 사직동에서 청계천 장통교 상류를 곧바로 연결하는 빗물배수터널 공사를 시작했다. 올해 2월엔 광화문 일대 지하에 국내 최초의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을 설치하고, 빗물펌프장과 저류조 23개를 신설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염형철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서울시의 한계는 605.4㎢에 이르는 시 전역에 대규모 시설 몇개 설치하는 걸로 대책 마련을 할 수 있다는 기계적이고 토목적인 사고”라고 말했다. 기상이변으로 서울 전역에서 기록적인 폭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도, 집중호우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 국한한 제한적 대책만을 사후적으로 내놓고 있다는 뜻이다.

또 서울시가 지난해 9월 내놓은 수해 대책의 추진 속도도 더디다. 서울시가 정리한 이 대책의 ‘세부추진 현황’(2011년 6월 기준)을 보면, 하수관거 개선사업, 빗물펌프장 신설, 빗물저류조 설치공사 등 총 5개 분야 65개 사업에 6673억원의 예산으로 ‘수해예방종합대책’을 벌이고 있으나, 이 중 공사가 완료된 사업은 3건(4.6%)에 불과했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는 “시가 지금까지 해온 수방대책은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서울 지역에 따라 배수관로는 설계 빈도가 10년인 데 견줘, 빗물펌프장 설계 빈도는 30년으로 돼 있거나 반대로 돼 있는 등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는 곳이 많다. 전면적으로 패러다임을 재검토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빈도 개념으로 치수방재 대책을 세우는 건 이미 구시대적 개념”이라며 “기상 현상이 새로운 패턴을 보이는 데 따라,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모든 치수시설 규모를 새롭게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유선희 기자 youngmi@hani.co.kr



기사등록 : 2011-07-28 오후 08:36:24  기사수정 : 2011-07-28 오후 11: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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