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8

감동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김은남 편집국장- 시사인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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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171호] 2010년 12월 20일 (월) 10:49:39김은남 편집국장  ken@sisain.co.kr
<나 홀로 집에>의 귀여운 꼬마도 아닌 주제에,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아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눈에 온통 실핏줄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요 몇 주간 눈을 심하게 혹사하긴 했다. 연평도 사태 이후 내내 비상이었던 데다가, 다음 주 연말 부록으로 나갈 ‘2010 행복한 책꽂이’를 만드느라 봐야 할 원고량이 평소의 세 배는 되었다. 더 결정적인 건 인턴 기자 응모자들의 서류 심사였다. 

<시사IN>은 창간 이래 1년에 두 번씩 방학 시기에 맞춰 인턴 기자를 뽑는데, 그때마다 경쟁률이 치열하다. 이번에도 100대1이 넘었다. 젊은 인재가 찾아준다는 것은 한 조직으로서 행복한 일이다. 사람이 가진 것의 거의 전부인 작은 독립 언론사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깟 눈 좀 충혈되면 어떠랴. 이 자리를 빌려 그간 <시사IN>에 지원해준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떨어뜨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귀한 재능과 심성을 지닌 이가 많았다. 

  
그런데 인턴 기자 지망생들이 낸 지원서를 읽다가 문득문득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 <시사IN>의 경우 서류 심사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자기소개서이다. 아무리 화려한 학벌을 지녔어도 자기소개서가 뒤떨어지면 탈락이다. 요즘은 자기소개서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듯하다. 엄부자모(嚴父慈母)로 시작하는 구태의연함은 거의 사라졌다. 독창적인 형식과 표현으로 거의 ‘작품’ 수준에 이른 자기소개서도 눈에 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글이란 어느 대목에 이르러 읽는 사람의 마음을 두근, 흔들어놓는 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영화도, 음악도, 그림도 마찬가지다. 두근두근, 덜컹, 쿵…. 강도는 다를 수 있다. 모든 좋은 작품에는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지점이 있다(라고 나는 믿는다). 매끄럽게 잘빠졌는데,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데, 딱 거기까지인 글은 그래서 미안하지만 탈락이다. 반대로 글이 좀 서툴더라도 자신의 삶과 생각을 솔직하게 꾹꾹 담아 쓴 글은 힘이 있다. 아마도 그건 진실의 힘 또는 진심의 힘일 것이다. 

어디 인턴 서류에만 해당하는 일이랴. 날치기 정국을 주도한 자들이야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 뒤 벌어지는 일을 보며 왜 이토록 덤덤한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예산안 통과 시 야권 유력 의원도 앞다투어 건넸다는 ‘쪽지’가 없었다면 이 엄동설한에 펼쳐지는 민주당의 장외 투쟁이 조금은 감동적이었을까? 한나라당 소장파 22인의 비장한 성명이 나온 게 날치기 직후였다면, 조계종 스님들이 들고일어난 게 일찍이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한 직후였다면 내 가슴이 두근, 신호를 보냈을까? 그러고 보면 사랑에만 타이밍이 필요한 게 아닌 것 같다. 감동에도 진심이, 타이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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