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학적으로 모든 악조건이 겹친 홍수였다. 장마는 지난 17일 끝났지만, 이번에는 오묘한 기압 배치 때문에 서울이 물벼락을 맞았다.
이번 폭우의 가장 큰 원인은 중부지방 상공의 대기 불안정이다. 김승배 기상청 대변인은 27일 “북태평양고기압이 비의 원료가 되는 아열대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를 한반도로 퍼올려 줬고, 이것이 중국대륙에서 유입된 건조한 공기와 만나 비가 많이 내렸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대기 상층엔 따뜻하고 가벼운 공기가, 하층에는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머문다. 하지만 이번엔 대기 중·하층으로 북태평양고기압의 따뜻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대기 불안정이 심해졌다. 이런 경우 국지적으로 짧은 시간에 강한 비가 내린다. 이 때문에 △경기 양평 85㎜ △경기 문산과 강원 인제 66㎜ 등 여러 곳에서 시간당 최고 강수량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상청 공식 집계에 포함되진 않지만 27일 오전 서울 관악구의 자동관측장비(AWS)에서는 시간당 110㎜가 넘는 강수량이 측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강한 비구름대는 몇 시간 뒤 빠져나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엔 러시아 사할린 부근에서 버티고 있는 차가운 성질의 고기압이 갈 길을 막았다. 이런 기압 배치가 지속되면서 강한 비가 계속 내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장마 뒤 땡볕 무더위’라는 공식은 점차 깨지고 있다. 장마전선이 소멸한 뒤에도 이번처럼 대기 불안정에 따른 국지성 집중호우가 9월까지 계속되곤 한다. 장마가 언제 시작해 언제 끝난다는 장마 장기예보도 사라졌다. 정관영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특히 2000년대 들어 장마 뒤 이런 집중호우가 빈발하고 있다”며 “강수량의 지역별, 시기별 격차가 커지는 현상도 큰 틀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같은 수도권이라도 강수량은 달랐다. 26일 서울에 171㎜가 내린 반면, 불과 30㎞ 떨어진 인천의 강수량은 16.5㎜였다. 26일부터 27일 오후 5시까지 누적 강수량을 봐도 서울은 인천의 갑절을 훌쩍 넘는다.
특정 시기에 몰아 내리는 강수량 편중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서울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26일 오후 4시부터 이튿날 오후 4시까지 24시간 동안 내린 비의 양은 433.5㎜로, 장마기간 26일 동안 내린 802㎜의 절반을 넘는다. 장마 시작일부터 한달 남짓 내린 비는 27일 오후 4시 현재 1235.5㎜로, 서울의 1년치 강수량 1450.5㎜의 85%에 이른다.
이번 비는 중부지방에서 계속되다가 29일 오후에야 갤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경기, 강원 영서지방에선 곳에 따라 최고 250㎜가 더 내리겠고, 26일부터의 누적 강수량이 600㎜를 넘어서는 곳도 나오겠다고 기상청은 내다봤다. 기상청은 “특히 28일 오전까지 시간당 60㎜ 이상의 매우 강한 비가 예상되니, 산사태와 축대 붕괴 등 비 피해에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29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서울·경기·강원·충청북부 50~150㎜ △충청·경북북부·지리산 20~60㎜ △그밖의 지방 5~40㎜ 등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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