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시장 흔든 ‘하루키’의 감성〈1Q84 1·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윤옥 옮김/문학동네·각 권 1만4800원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이 세밑까지 계속된다. 오웰이 쓴 <1984>의 ‘빅브러더’가 현대사회 시스템의 통렬한 현실에 바탕한 반면, <1984>에 대한 오마주처럼 씌어진 <1Q84>에서 ‘리틀피플’의 의미는 모호하달 수 있다.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고, 이야기의 안과 밖이 이어진다. 하나의 달이 떠 있는 1984년과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1Q84년이 뒤엉키고, 소설 속 주인공이 쓴 소설이 주인공의 삶으로 틈입한다. 바흐의 음악과 체호프의 글쓰기에 대한 ‘고급스런’ 감성에서 주인공들이 소비하는 명품 브랜드를 노출시키는 ‘대중적’ 감성까지. 하루키가 촘촘히 깔아논 흥행장치들이 그토록 강력한 걸까.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라 정상 아래로 내려올 줄을 모른다.
■ ‘신자유주의 헛소리’에 면박 주는 법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지음·홍기빈 옮김/길·3만8000원 경제학 분야의 고전인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알리는 미국 금융위기 이후에 새로 번역돼 나와 올해 가장 주목받은 인문·사회서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주장을 낱낱이 전복한다. 폴라니는 역사의 사료들을 꼼꼼히 추적해 ‘자유 시장’이라는 것이 근대의 발명품이자 국가의 발명품임을 밝힌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그리고 그 이후로 내내 국가의 능동적 개입을 통해 완성되고 작동했다. 따라서 ‘국가 개입이냐 시장 자율이냐’ 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물음은 가짜 물음이다. 질문은 ‘사회를 보호하는 국가냐, 사회 파괴를 거드는 국가냐’로 바뀌어야 한다. 사회를 보호하려면 시장의 악마적 파괴성을 제어하고 제압해야 한다고 폴라니는 말한다.
■ 예쁜 척하는 미술 ‘콩깍지’를 벗겨라
〈고뇌의 원근법〉
서경식 지음·박소현 옮김/돌베개·1만6000원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에 이어 세 번째로 출간된 서경식 도쿄 경제대 교수의 미술 에세이집이다. 2006년 봄부터 2년 남짓 한국에서 체류하며 벼려온 문제의식에서 책은 출발한다. “왜 내가 본 모든 한국 근대미술 작품은 그렇게도 예쁘게 마감되어 있는가.” 서 교수가 볼 때 미의식이란 ‘무엇을 미라 하고 무엇을 추라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이런 미의식은 역사적·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까닭에 “추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하다.” 이 책이 다루는 딕스, 놀데, 키르히너, 고흐는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철저하게 그 현실을 직시해 그려”냄으로써 ‘추’를 ‘미’로 승화시킨 거장들이다. 준열한 사회의식이 예리한 미의식과 만나 그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세운다.
■ ‘고민하는 삶’ 청춘을 위한 화두
〈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이경덕 옮김/사계절·9500원 미귀화 재일동포로서는 처음으로 도쿄대 정교수가 됐고, 지금 일본에서 가장 인기 좋고 영향력 있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강상중 교수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요령만 남은 탈색된 청춘들에게 보내는 인생강의. 나는 누구인가, 돈이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건 무엇인가, 청춘은 아름다운가, 믿으면 구원받을까, 무엇을 위해 일하나,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왜 죽어선 안 되는 걸까, 늙어서 최강이 돼라. 이 아홉 가지 주제를 100여년 전 근대의 ‘세기말’을 살며 실존적 공허를 뼈저리게 앓았던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와 일본 근대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고민을 매개로 닮은 상황에 처한 1세기 뒤의 지금 청춘들에게 설파한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타자와 마주하는 것이 곧 살아가는 힘이요 돌파구가 된다.”
■ ‘역사 청산’ 사이비 평화주의 비판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
윤건차 지음·박진우 외 옮김/창비·3만원고등학교 때 출석부에 자신의 이름이 본명으로 적혀 있는 걸 발견하고 기겁을 해 “일본식 이름으로 고쳐 달라고 필사적으로 애원했던” 한 자이니치(재일동포)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자아 찾기. 교토대를 나와 도쿄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가나가와대학 교단에 서 온 자이니치 2세 윤건차 교수의 도발적인 자아 찾기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천황제와 조선문제’, ‘남북통일국가 수립’이라는 한-일의 탈식민지화 과제 해결을 위한 실천문제와 직결돼 있다. 윤 교수는 천황제야말로 서구숭배와 아시아 멸시를 축으로 한 ‘일본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완강하게 비판한다. <화해를 위해서>라는 책으로 일본 보수세력의 찬사를 받은 박유하씨를 ‘사이비 우파 심정주의’라 비판한 그의 탈식민 해법이 담겼다.
■ 인간 다윈의 ‘인생 진화’
〈다윈 평전〉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제임스 무어 지음·김명주 옮김/뿌리와이파리·5만원 극기복례(克己復禮). 한 마음을 버려야 보편에 닿는다. 찰스 다윈도 그랬다. <다윈 평전>은 다복한 영국 신사였던 다윈이 진화론을 진리로 확신하게 되는 과정, 신을 부정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오만하고 타락한 신학자들에 대한 경멸, 인간중심주의를 뿌리치고 객관적 사실에 안긴 까닭, 구토와 불안장애로 무너지는 몸을 일으키려는 의지 등이 담긴 책이다. ‘1인칭의 세계’로 기우는 마음의 구심력에 맞서, 과학적 진실이라는 보편의 원심력을 믿고 실천했던 사람의 초상이 1100여쪽 대하를 이룬다. 다윈 출생 200돌에 맞춰 번역·출간된 책들 가운데 가장 무겁고 제일 섬세하다. ‘고뇌하는 진화론자’의 삶에서, 진실은 선언이 아니라 진실화 과정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 자수성가? ‘맨땅에 헤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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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노정태 옮김/김영사·1만3000원<블링크> <티핑 포인트>의 지은이 말콤 글래드웰이 다양한 ‘아웃라이어’(예외적 존재)들의 성공법칙을 소개한다. “글래드웰은 우리를 근본적인 곳으로 이끌어간다. 우리가 성공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원석들이 발굴되고 세공되지 않은 채 사장된 것일까?”라는 경제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레온하르트의 평가대로 지은이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따라붙는 ‘신파적 반전 드라마’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성공한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 이점과 특별한 기회요소, 그리고 문화적 유산과 역사적 공동체의 혜택을 누려왔다고 말한다. 재능과 지능만으로 놀라운 성공을 이룬 경우는 거의 없음을 아프게 지적한다. 올해 초 출간돼 20만부 넘게 팔린 이 분야 베스트셀러다.
■ 들여다볼수록 오싹한 ‘지구 밖 문명’
〈우주 생명 오디세이〉
크리스 임피 지음·전대호 옮김/까치·2만원오늘날 관찰되는 은하의 수는 대략 600억개다. 그 은하들에 들어 있는 별의 수는 10²²개다. 그 별들 주위를 도는 숱한 행성 가운데 오직 태양 별의 일개 행성 지구에만 생명이 있고 문명이 있을까? 지은이는 생명이 살 수 있는 지구형 행성들에서 거의 늘 생명이 발생한다고 보고, 그 영속성의 값을 ‘비관적으로’ 잡는다면, 우리 은하에는 대략 1000개의 문명이 있을 수 있다고 추론한다. 대중과학서라지만 흥미진진 읽다 보면 문득 우주물리학의 심연 속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책이다. 우주 속의 생명을 연구하는 우주생물학의 현재를 조망하는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 다중우주론, 평행우주론의 지평을 함께 열어두며, 우리가 초지능 문명의 시뮬레이션 속에서 살고 있을 수 있다는 가설에도 문을 열어두고 있다.
■ ‘보편적 해방’을 위한 지젝의 도발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슬라보예 지젝 지음·박정수 옮김/그린비·3만5000원슬라보예 지젝 열풍은 올해에도 계속됐다. 그의 책 가운데 스스로 ‘대작’이라고 칭한 <시차적 관점>(마티 펴냄)이 나온 데 이어 가을에는 그의 최근작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지젝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는’ 자신의 급진적 견해를 다른 어떤 책에서보다 과격하고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 책은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보편적 해방을 위한 투쟁이라는 메시아적 관점에 선다.” <시차적 관점>이 다소 원칙적인 철학적 저술이라면 이 책은 현실적 정치 현상을 사례로 삼아 보편적 해방의 비전을 찾는다. 그는 특히 스탈린주의와 나치즘을 모두 적극적 검토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위험한 도전을 감행한다. 인화성 강한 그의 주장을 둘러싸고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국가의 인권침해’ 국민에게 죄를 묻다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스탠리 코언 지음·조효제 옮김/창비·3만5000원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침해의 메커니즘과 이를 방관한 대중심리를 파헤치고 있는 저작. 스탠리 코언이 인권침해와 이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분석하는 틀은 ‘부인’이라는 개념이다. 인정하기 힘든 불편한 사실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아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올 초 용산참사에서도 이런 부인논리가 동원됐다. “과잉진압은 없었다.”(문자적 부인) “정당한 공무집행중 일어난 것으로 인권침해라 할 수 없다.”(해석적 부인) “반정부세력의 체제전복 시도다.”(함축적 부인) 가해 권력의 인권침해 부인은 이를 방관하는 일반 대중의 태도와 무관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정치적 연대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권의 깊은 의미라고 코언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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