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7

MB 정부를 위한 ‘재벌 사용 설명서’- 시사인

  > 뉴스 > 커버ㆍ특집
MB 정부를 위한 '재벌 사용 설명서'
전경련과 정치권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치권에 맞서 전경련은 '시장주의 수호'를 내세운다. 그런데 과연 전경련 회원인 재벌들이 시장 원리에 충실하긴 한 걸까?
[201호] 2011년 07월 18일 (월) 11:17:04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재벌 대기업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시장주의 수호'의 '성전(聖戰)'에 나섰다. 정부·여당까지 포퓰리스트로 몰아세울 기세다. 지난 6월 말 허창수 전경련 회장(GS 회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감세 철회 반대'를 선언하며 이른바 포퓰리즘 정책에 맞서 재계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허창수 회장이 모르는(혹은 모른 체하는) 사실이 있다. 한국이 시장주의로 가는 길에서 최악의 난관은 재벌이라는 점.

그동안 재벌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총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저항해왔다. 혈육에게 그룹을 승계하려는 봉건(반시장)적 욕망을 채우려고 권력을 매수했다. 더욱이 자체로 충당해야 할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영비용을 국가에서 지원받으며, 그 성과를 독식했다. 이처럼 시장 원칙을 위배하는 세력이 시장주의를 부르짖는 것이 21세기 초 한국의 현실이다.


  
ⓒ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과 30대 그룹 회장단이 지난 1월24일 수출·투자·고용 확대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올해 들어 이명박 정부는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구걸해왔다. 2012년 권력 재편기가 눈앞에 닥친 마당에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재벌에게 구걸할 때가 아니다. 차라리 재벌이 그토록 좋아하는 시장 원칙을 재벌 자신들에게도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압박하는 것이 낫다. 이 경우, 최대 피해자는 재벌 가문이 될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은 만큼 잃을 것도 크다. 다음은 재벌에게 적용할 만한 '친시장 경제개혁' 중 다섯 가지를 추린 것이다. 이런 시장주의로 갈 것인지, 아니면 대다수 시민이 지향하는 경제 시스템 개혁에 협조할 것인지 재벌 가문에 질의할 수 있다.


❶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중단 혹은 환율세 신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재벌 대기업의 수출 실적을 위해 사실상 환율을 조작해왔다. 원화 가치가 낮을수록 수출품의 현지 가격도 떨어져 매출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정부는 원화 가치의 상승을 막으려고 수시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사들였다(원화를 팔아 달러를 사면 달러 가치는 오르고 원화 가치는 떨어진다). 이렇게 사들인 달러의 누계가 바로 외환보유액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액 증가 추이를 보면, 한국 정부가 재벌을 얼마나 배려해왔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1997년 말 고작 197 달러였다. 그런데 겨우 4년 뒤인 2001년 1000억 달러, 다시 4년 뒤인 2005년에는 2000억 달러를 돌파한다. 세계 5~6위 수준이다. 2007년 2600억 달러까지 늘어난 외환보유액은 세계 금융위기로 2008년 말에는 다시 2000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유례없는 속도로 다시 달러를 사들인다. 겨우 2년4개월여 동안 1000억 달러를 매입한 것이다. 지난 4월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원화는 2000년대 들어 거의 1100원대를 유지해왔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재벌 대기업에게 수출 촉진뿐 아니라 또 하나의 거대한 이익을 선사했다. '건전한 시장경제 질서'에 속한 외국의 수출 기업은 환율 변동을 관리하느라 엄청난 금융비용을 치르기 마련이다. 환율이 변동하면 수출입에 따라 받거나 지급해야 할 돈의 액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정부가 나서서 환율을 관리해주면, 수출 기업이 환율 변동을 관리할 필요가 없기에 엄청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 모든 혜택은 재벌이 그토록 싫어하는 '정부 개입' 덕분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재벌 대기업이 받는 혜택은 얼마나 될까.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은 "상장회사협의회가 2009년 1~9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환율 유지 노력으로 제조업 상장법인이 누리는 매출 확대 효과가 29조원에 달한다. 기업별로는 삼성 9조원, 현대차그룹 2조8000억원, LG 5조원 등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해 삼성전자의 연간 순이익 규모가 10조원쯤이다.

그러나 수출 대기업이 이런 혜택을 누리는 대신 소비자는 물가 상승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원화 가치가 낮아질수록 수입 원자재 및 소비재의 가격은 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리에서 재벌과 소비자를 모두 해방시키는 시장주의 대안은 무엇일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수출 촉진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불법화하는 것이다. 외환시장에서 정부 개입을 축출하는 친시장 방안이다. 혹은 소비자 대표 등이 참여하는 외환시장 감시기구를 법제화해서 외환정책 주무 부서인 기획재정부를 통제하도록 한다. 

조금 복잡하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대안은 환율세를 신설하는 것이다. 낮은 원화 가치의 혜택을 받는 재벌 대기업으로부터 환율세를 받아 소비자의 피해를 보상하면 된다. 이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따른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조처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나라엔 환율세 따위는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세계에는 한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이토록 노골적으로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나라도 없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한국 같은 개방경제에서 환율정책은 사실상 통화정책을 압도할 정도로 경제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환율 유지에 따른 수익이 재벌에게만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국내 소비자가 이를 용인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❷각종 재벌 보조금 철폐


시장주의 학설에 따르면, 각종 보조금만큼 경제에 해로운 것도 없다. 문제는 친시장이라는 한국 재벌이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을 음으로 양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먼저 세금 중 일부를 돌려주는 각종 조세 감면 제도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투자세액공제. 기업의 투자액 중 일부를 세금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다. 그 규모는 2009년 2조원, 2010년 1조7000억원, 2011년엔 1조4000억원으로 예상된다. 이 중 80~90%가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에 돌아가고 있다. 이에 따른 비난 때문에 정부는 투자세액공제 폐지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전경련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쳤다.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도 있다. 규모는 2009년 1조5000억원, 2010년 1조8500억원, 2011년 2조8160억원 등이다. 정창수 부소장에 따르면 이런 조세 감면 규모가 올해 32조원에 이르는데 그중 5조원 정도가 대기업에 돌아간다. 

더욱이 재벌은 조세 감면 외에 국가의 직접 자금 지원도 받는다. 첨단기술 연구개발, 에너지산업 등에서 국가 재정을 지원받는 것이다. 규모가 엄청나다. 정창수 부소장에 따르면, 올해 대기업의 연구개발 부문에 13조원, 에너지 산업에 4조원 정도의 국가 재정이 투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기술료를 받거나 중소기업이 활용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술 개발에 실패하는 경우, 지원금을 돌려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 부소장은 "대기업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셈이다. 정부가 압박하면 대기업이 해외로 나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데 말도 안 된다. 어느 나라에 가서 이 정도의 파격 지원을 받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경련의 시장 논리를 적용하면, 국가 보조금은 한국 대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자신의 역량만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를 통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보조금 없는 건전한 시장 질서를 재벌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조세 감면, 직접 지원 외에도 지역특구 투자, 노동자 평생교육, 자동차 구입 보조금 등 상당한 특혜가 있는데, 국가가 세계적 대기업을 지원할 정당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미 FTA가 수출 대기업에 유리한 반면 국내 소생산자에게는 불리하다는 점을 감안해 'FTA세'를 신설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❸재벌 가문의 경영권 안정화 방안 폐기

재벌 총수의 경영권 관련 법안들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중 '포이즌필' 법안은, 외국 자본이 한국 대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할 경우 재벌 총수가 자신의 지분을 저렴한 비용으로 늘려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전경련은 지난달 자료를 통해 "외국 자본의 파괴적 M&A(인수합병)를 피하기 위해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등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차등의결권 제도에서는, 재벌 총수가 보유한 주식 한 장의 의결권이 예컨대 다른 주주의 주식 10장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시장을 좋아하는 전경련이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포이즌필 법안을 당장 폐기하라고 주장해야 옳다. 포이즌필 법안은 '경영권 시장'의 정상 작동을 막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경영권 시장은 문자 그대로 경영권이 사고 팔리는 시장이다. 경영을 잘하면 주가가 오르므로 다른 기업이 감히 인수합병을 시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경영 실패로 주가가 떨어진 기업은 인수합병 대상이 된다. 이런 메커니즘이 잘 작동해야 경영 잘하는 기업이 발전하고 저효율 기업은 퇴출되는, 시장원칙이 관철되지 않겠는가. 이 논리에 따르면, 포이즌필 따위 제도로 경영권이 방어되면 기존 대주주(재벌 총수)는 굳이 경영 혁신을 시도할 이유가 없고 경제는 장기적으로 침체될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경련은 시장 원칙 대신 회원(재벌 총수)의 사적 이익을 좇아 포이즌필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라고 국회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또 하나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제조업체 중심의 일반지주회사에 금융 자회사를 허용하는 제도다. 보험·증권 업체 중심의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거느리는 것은 이미 2009년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으로 실현되어 있다. 지금 계류 중인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에는 굴지의 금융업체와 제조업체가 '한 지붕 밑에서 뒹구는' 초대형 금융-산업 복합체가 등장할 전망이다.

이 법안의 목적은, 재벌 가문이 현재 지배하는 제조업체와 금융업체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업체와 제조업체가 한 지붕 밑에서 특정인(재벌 총수)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다보면 경제 전반의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객관적 대출 심사가 아니라 총수의 욕심에 따라, 금융업체 고객의 돈을 회생 불가능한 계열사나 그룹 지배를 강화할 목적으로 사용하다가 대형 금융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금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금융시장의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시사IN 조남진
서울 삼양시장 상인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3월29일 롯데마트 입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건전한 시장 질서를 파괴할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금산분리 원칙을 재확인하고, 현재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물론 현행 금융지주회사법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특정 개인의 욕심을 채워주려고 금융과 산업의 틀을 주물럭거리는 것은 지극히 반시장적 행태다.


❹'회사 기회 유용'엔 고율 과세를

재벌 총수(가문)의 개인 이익과 산하 계열사의 이익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37쪽 상자 기사 참조).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바로 '글로비스 사건'이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은 2001년 물류회사인 글로비스를 창업했다. 현대차 계열사라기보다 두 사람이 100% 출자한 사실상의 가족 기업이었다. 정 회장은 현대차를 움직여 유통 물량을 글로비스에 몰아줬다. 이에 따라 글로비스는 고수익 기업이 되었고, 2005년 말 상장되었을 때의 주식 가치도 매우 높게 평가되어 정몽구 회장 부자는 1조원여의 상장 차익을 거뒀다. 글로비스의 자본금이 50억원에 불과하니 원금의 200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둔 셈이다.

그런데 현대차가 글로비스를 자회사로 뒀다면 이 1조원은 현대차의 수익이 되고, 주주는 배당금 증액, 주가 상승 등으로 이익을 거뒀을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총수라는 개인적 지위를 이용해서 현대차의 잠재적 이익을 가로챈 것이다. 이를 법률 용어로 '회사 기회 유용'이라 부른다. 문제는 현대차 외의 상당수 재벌들도 혈육에게 돈을 주거나 상속할 목적으로 관행처럼 '회사 기회를 유용해왔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6월 자료를 통해, 기업집단의 지배주주 일가 190명이 회사 기회 유용 등을 통해 9조9588억원 상당의 부를 증식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 3월, 회사 기회 유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회사 기회 유용의 불법성이 법률로 확인된 만큼 이로 인한 부당 이익을 높은 세율의 과세로 거두어들일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이에 증여세나 상속세를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회사 기회 유용은, 재벌 총수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정보'나 '할 수 있는 일'을 이용해서 혈육에게 막대한 재산을 무상 증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반시장적이다. 이미 관련 법률이 제정된 만큼 불법 행위를 강력히 단속하고 높은 세금을 물려 시장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❺기업집단법으로 재벌 가문에 책임을


재벌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총수가 잘못된 경영을 해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개별 기업만 법률적 실체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별 기업인 삼성전자는 법률적 실체를 가지지만, 삼성그룹이라는 기업집단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삼성그룹 전체를 사실상 지배하는 전략기획실과 이건희 회장도 법적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회장의 그룹 경영 실패로 특정 기업의 채권자와 주주가 손해를 입어도 회장은 책임질 필요가 없다.

이에 대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가칭 '기업집단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한다. 기업 집단을 법률 실체로 인정하고 권리뿐 아니라 책임도 물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재벌 문제와 관련해 김상조 소장과 대립해온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도 이를 지지한다. 기업집단이 법률 실체가 되면, 총수의 무분별한 경영이나 계열사에 대한 부당 개입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 재벌 승계가 이루진다고 해도 후계자가 무능력하다면 경영 일선에서 빨리 퇴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장주의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행위에 걸맞은 권리와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그룹 경영의 권리와 책임을 제도화하겠다는 기업집단법의 정신은 매우 친시장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시사in(http://www.sisainliv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