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8

[이대근 칼럼]피하라! 뛰어라! 돈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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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피하라! 뛰어라! 돈내라!

조지프 나이는, 안보는 산소와 같아 이것이 없어지게 될 때까지는 그 존재에 주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산소의 존재를 의식할 때는 산소가 부족할 때인 것과 같이 안보에 주목하는 것은 안보에 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산소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라듯이 안보 역시 의식하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안보 불감증이라고 할 정도로 안보 걱정 없이 살았다. 그래서 몰랐다. 그 섬마을 사람들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11월23일 오후 2시34분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정말 평화 속에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정부가 부산하게 대책을 내놓고 대통령·총리·장관이 많은 말을 하지만 결코 더 안전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포탄이 또 어딘가를 향해 날아갈 때 그곳에 있지 않기를 비는 것, 이것 말고는 할 게 없다는 걸 안다. 

대화 단절로 포성 부른 MB정부

물론 운이 좋다면 죽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운을 믿어야 한다. 포를 쏘는 북한을 믿을 수도 없고, 포를 쏠 때까지, 아니 포를 쐈는데도 대책 없는 정부를 믿을 수도 없다. 산소가 희박해질 때까지 잠자던 정부를 믿느니 차라리 북한이 포를 쏘지 않으리라는 선의를 믿는 게 낫다. 사실은 그동안 정부도 그렇게 했다. 천안함 침몰 전 북한 잠수정이 관측 범위에서 사라지고, 8월 대남 도발 징후를 포착했을 때 그게 군사적 공격의 신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정부 때 그런 징후는 공격의 신호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아니다. 3년간 남북대화도, 대북지원도 거부하고 그로 인해 북한으로부터 줄기차게 위협을 받고도 방치한 정부는 이명박 정부였다. 북한 인민군이 남북간 전면 대결태세 진입을 선언한 때가 지난해 1월이니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그 시간 동안 정부가 한 일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쁜 북한’이 스스로 착해지기를, 북한이 빈말로 그치고 도발은 하지 않는 행운이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안보든 관계 개선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운에 맡긴 대북정책, 북한과 대결했으면서도 북한의 선의에 기댄 대북정책이 얼마나 깊은 충격과 불행을 안겨 주었는지 우리 모두 목격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북한과 대화한다고 달라지겠느냐”고 한다. 맞다. 군사적 긴장 해소가 쉽지 않고 개혁·개방으로 변화시키기도 어렵다. 비핵화 또한 까다롭다. 그러나 대화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개선할 기회도 놓친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부의 남북관계를 저평가하지만, 그 정도를 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했다는 점은 인정해주면 좋겠다. 노무현 정부는 남북회담을 171차례 갖고 124건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6월까지 회담 15차례에 합의서는 0건이다. 이명박 정부가 보기에 지난 정부의 성적이 보잘것없겠지만 두 정부 간 숫자의 차이는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북한은 지난 정부 5년간 남한을 향해 단 한 발의 어뢰도, 포탄도, 총도 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3년간 정부 발표에 따르면 어뢰와 170여발의 포탄과 수발의 총을 쏘아 51명을 죽였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정부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 기대치가 높지 않았기에 서로 포를 쏘지 않는 소극적 평화 유지만으로도 족했다.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손을 놓았고, 결국 평화가 깨졌다. 

대책없는 강경책, 부담은 시민 몫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들고 나올 때 성공의 딜레마라고 한 적이 있다. 만일 지난 정부 때 남북관계가 나빴다면 그 살얼음판 위에서 구르고 뛸 엄두를 못 냈을 테지만 비교적 탄탄했기에 대북 강경책의 구사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다. 지난 정부가 포용정책의 계좌에 쌓아 놓은 신뢰와 화해의 자산들이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빠르게 소진되고, 얼음도 엷어져 갔고 그 결과, 곳간은 텅 비고 얼음도 꺼졌다. 

백조가 호수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낼 수 있는 것은 쉬지 않는 발놀림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힘들고 성가시다고 발놀림은 하지도 않으면서 백조의 겉모습을 흉내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정부는 몸통으로 떠 있기만 했고, 시민들은 발이 되어 그 몸통을 떠받치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피하라! 하면 달리고 또 달렸다. 이제는 미제 무기 살 돈을 내라고 할 것이다. 시민들은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피하라! 뛰어라! 돈내라! 

<이대근 논설위원 grt@kyunghyang.com>


입력 : 2010-12-08 21:27:36수정 : 2010-12-09 00: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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