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9

한겨레 올해의 책 2008 번역서- 삶의 밑불 지펴올릴 희망의 연대


삶의 밑불 지펴올릴 희망의 연대
올해의 책(번역서)
한겨레
» 〈죽음의 밥상〉
끔찍한 사육과 도살로 파괴되는 인간성
〈죽음의 밥상〉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산책자·1만5000원
육식 위주의 ‘전형적인 현대식 식단’은 물론이고 유기농 식품을 먹고 현지재배 채소도 즐겨 구입하는 ‘양심적인 잡식주의’도 답이 아니다. 답은 생선도 우유도, 심지어 달걀이나 벌꿀도 먹지 않고 오직 채소만 먹는 ‘완전 채식주의(베건)’. 왜 그런지를 실증하기 위해 글쓴이들은 모델이 된 가족들을 관찰하고 식품 생산·유통·소비 현장을 찾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좁은 철창에 쑤셔넣은 사육동물에게 합성호르몬과 항생제를 투입하고 산 채로 도살하는 처참한 현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초점은 육식의 비윤리성. 굳이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충분히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시대가 됐는데 왜 끔찍한 짓을 계속하며 인간성마저 스스로 파괴하느냐고 그들은 묻는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항공사진과 사유가 결합된 ‘지구 속의 한국’
〈하늘에서 본 한국〉
» 〈하늘에서 본 한국〉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사진, 이어령·존 프랭클 글, 조형준 옮김/새물결·9만7000원
이방인이 상공에서 바라본 한국. 이 특이하고 전례없는 작업을 프랑스의 저명한 사진가가 5년여에 걸쳐 수행했다. 지구인의 시선으로 찍은 2만여 장의 항공사진. 이 가운데 160여 장을 골라 대형 컬러판 책으로 엮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마라도까지, 서해에서 동해로 펼쳐진 자연, 그리고 서울 도심과 세계 최대의 조선소, 거기에 깃든 사람들 모습.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이 유네스코의 후원 아래 1994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하늘에서 본 지구-우리 지구의 초상: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하여’의 일환이다. 이어령씨 등이 쓴 글은 단순한 사진설명이 아니라 한국을 사유하는 풍성한 에세이로도 읽힌다. 한승동 선임기자

민주주의의 토대, 유럽좌파의 역사 총정리
〈더 레프트 1848-2000〉
» 〈더 레프트〉

제프 일리 지음·유강은 옮김/뿌리와이파리·5만원
1848년 혁명에서 러시아 혁명과 1968년 혁명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는 유럽 좌파의 역사를 정리했다.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19세기 생디칼리즘에서 20세기 후반 신사회운동에 이르는 급진주의의 다양한 흐름을 좌파라는 범주 안에 포괄했다. ‘좌파=사회주의’의 도식에서 벗어나 포괄적인 민주주의 운동의 틀 안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민주주의가 타협·합의·번영의 결실로 등장한 게 아니라, 투쟁·봉기·반란 같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통해 형성된 역사적 좌파의 성취물임을 긍정함으로써 사회주의 몰락으로 초래된 정치적 무력감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이슬람 역사와 정신, 문명의 세밀도
〈이슬람의 세계사 1·2〉
» 〈이슬람의 세계사 1·2〉

아이라 라피두스 지음·신연성 옮김/이산·각 권 3만3000원
2001년 9·11 사건 이후 이슬람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는 책들이 여러 종 출간돼 이 문명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는 교정자 노릇을 해주었다. <이슬람의 세계사>는 이 교정 과정을 아우르고 매듭짓는 작업의 완결판이라고 해도 좋을 책이다. 이슬람 역사에 관한 현존 최고의 권위자인 지은이는 이슬람 문명의 출생에서부터 21세기 벽두까지 1400년 역사를 통시성과 공시성의 축 위에 올려놓고 분석하고 종합했다. 복잡한 이슬람 역사의 줄기를 잡고 그 속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을 포착했다. 그 결과로 1600쪽에 가까운 이 책은 이슬람 문명에 관한 넓고도 세밀한 역사 지도가 됐다. 고명섭 기자

자연의 아들이 어쩌다 혁명가로 살았나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파블로 네루다 지음·박병규 옮김/민음사·2만5000원
네루다는 자연의 아들로 태어나 사랑의 시를 쓰고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은 칠레 남부의 개척 도시에서 태어난 네루다가 열정적인 연애시와 초현실주의적 실험시로 이름을 날리다가 스페인 내전을 거치면서 민중시를 쓰는 공산주의자로 변모하고, 1970년 대통령선거에서 좌파 인민연합 단일후보 살바도르 아옌데 지지 유세를 벌이며, 아옌데의 당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지만, 미국이 사주한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고 아옌데 자신은 대통령궁에서 피살된 1973년 9월11일의 상황까지를 시적인 문체로 풀어놓는다. 유려한 번역이 원작의 맛을 잘 살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카를 융의 내밀했던 시간까지 파고든 대작
〈융-분석심리학의 창시자〉
» 〈융-분석심리학의 창시자〉

디어드리 베어 지음·정영목 옮김/열린책들·4만8000원
올해는 카를 융 관련서 가운데 중요한 책들을 어느 해보다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해였다. <융 기본 저작집>(전 9권·솔)이 완간됐고, 융이 말년에 쓴 자서전 <카를 융, 기억 꿈 사상>(김영사)이 지난해 말에 출간돼 독자와 만났다. <융-분석심리학의 창시자>는 융 관련서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책이다. 1166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융 전기는 분석심리학 창시자의 생애와 사상을 정밀하게 파고든 저작이다. 스위스 취리히에 보관된 융 관련 문서를 꼼꼼하게 파헤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내밀한 삶을 드러냈으며, 프로이트의 가장 아끼는 제자에서 학문적 적대자로 바뀌는 과정도 세밀하게 기술했다. 매혹적이고 압도적이고 모순적인 그의 삶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대작이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떼 지성’이 제국의 그물을 찢으리라
〈다중-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 〈다중-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서창현·정남영·조정환 옮김/세종서적·2만5000원
하트와 네그리를 일약 세계적 이론가로 세운 <제국>의 내용을 보충하고 확장하는 책이 <다중>이다. 21세기 지구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제국 그물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제국>의 진단이라면, <다중>은 그 제국 안에서 제국의 실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중이라는 개념으로 잡아낸다. 다중은 제국의 소산이지만 동시에 제국의 그물을 찢고 지구적 차원의 변혁을 일으킬 주체이기도 하다고 지은이들은 말한다. 다중의 특성인 ‘집단지성’ 혹은 ‘떼지성’이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돼 새로운 차원의 집합적 지성을 창출한다는 이들의 이론은 올해 국내 최대사건인 ‘촛불저항’을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고명섭 기자

지구멸망과 인류의 구원 다룬 묵시록적 걸작
〈로드〉
»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정영목 옮김/문학동네·1만1000원
코맥 매카시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개봉되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진 미국 작가다. <로드>는 매카시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2006년 출간돼 대단한 찬사와 열광을 이끌어냈으며, 지난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얼마전 영화로 개봉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만드는 지옥도를 그린다면, <로드>는 그 지옥보다 더한 지구 멸망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암회색 풍경을 통과해 남쪽으로 가는 여정을 축으로 삼은 이 소설은 암흑과 절망의 마지막 지점까지 독자를 끌고간다. 인간성의 물기가 최후의 한 방울까지 말라버린 야수의 시대에 인류의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묻는 묵시록적 소설이다. 고명섭 기자

자본주의 경제 해부학서 ‘재번역 숙원’ 이뤄
〈자본 I-1·2〉
» 〈자본 Ⅰ-1·2〉

카를 마르크스 지음·강신준 옮김/길·3만5000원
19세기 중반 사회주의 운동의 유력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던 마르크스를, 인류사에 가장 심대한 영향력을 미친 사상가 반열에 올려 놓은 ‘자본주의 경제의 해부학서’. 1980~90년대 이론과실천과 비봉출판사에서 간행된 바 있는 <자본>을, 독일어판을 모본 삼아 재번역했다. 번역자는 이론과실천판의 번역에 참여하고, 해설서를 집필하는 등 20년 넘게 <자본> 연구에 매진해 온 마르크스 경제학의 권위자다. 비봉판이 영문판을 번역한 것이라면, 이론과실천판은 독일어본에 기초했으나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간된 것이란 점에서, 재번역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세영 기자

카잔차키스, 그 투쟁과 조화의 기록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안정효 이윤기 외 옮김/열린책들·전 30권 각 권 1만800원
<그리스인 조르바>를 비롯한 카잔차키스의 주요 작품들은 일찍부터 국내에 번역되었다. 정신과 사유보다는 몸과 행동을 중시하는 조르바의 ‘생철학’은 숱한 아류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아랍계 아버지와 그리스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의 세계는 단일하다기보다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것이었다. 남성성과 여성성, 투쟁성과 온후함, 외향성과 내향성이 카잔차키스라는 한 몸 안에 깃들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인류의 대표선수라 할 만했다. 그는 평생을 영혼과 육체의 갈등을 통한 조화를 추구했으며, 30권의 전집으로 갈무리된 그의 문학은 바로 그 투쟁과 화해의 기록과도 같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기사등록 : 2008-12-19 오후 08:54:08  기사수정 : 2008-12-19 오후 0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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