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8

[안경환 칼럼] 인권위, 부끄러운 전직의 고언- 한겨레 20110729일자.

[안경환 칼럼] 인권위, 부끄러운 전직의 고언
한겨레
»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공직을 떠난 사람이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기관에 누가 되는 이야기는 자제해야 한다. 일종의 ‘전관 예의’라고 생각한다. 기관의 수장이었던 사람은 더욱더 그러하다. 독임제이든 합의제이든 장은 장이다. 모든 영광은 함께 나누고 책임은 홀로 지는 자세, 그게 장의 미덕이 아니겠는가?

인권위, 전직 위원장으로서 부끄럽다. 오늘의 이 사태에 어찌 내 책임이 없겠는가? 통감한다. 떠난 자의 예의를 내칠 만큼 아픈 책임감에서 몇 마디 고언을 드린다.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니고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 역사의 발전에 발맞추어 인권도 진전한다. 나아가는 속도야 시대와 정치적 기류에 따라 완급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역사의 추를 되돌릴 수 없듯이 인권의 행보를 가로막을 수 없다. 인권위도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정권의 이념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주제별로 걸음걸이를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인권위 본연의 역할을 방기할 수는 없다. 인권위는 타 국가기관에 대해 건설적인 ‘쓴소리’를 하는 기관이다. 그래서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권위는 대통령의 인권참모도, 종복도 아니다. 독립기관의 존립 근거는 구성원의 자부심과 사명감이다. 정부 내에서 독립의 대가는 고립이다. 그 외로운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것이 인권위의 생명수다.

그런 기관이어야 할 인권위가 다수 직원의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한 계약직 공무원의 해고(내지는 계약 해지)에 항의하여 동료 직원들이 벌인 일련의 행위를 문제 삼은 것이다. 국가공무원법의 ‘집단행위 금지’ 규정을 위반하고 ‘품위 유지’ 의무를 어겼다는 이유다. 진정서를 제출하고,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리고, 언론에 기고하고, 한 사람씩 번갈아 피켓을 들었다. 기관으로서는 몹시 곤혹스런 일이다. 그들의 행위가 바람직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헌법이 보장하는 행위다. 인권위가 다른 기관에 대고 권고하던 바로 그 내용들이다. 당사자들도 오죽하면 그랬을까. 달리 ‘위’와 소통할 방법이 없었던 모양이다. 단 반걸음이라도 앞서 세상을 이끌어야 할 인권위가 스스로 뒷걸음을 치겠다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까. 도대체 왜 인권위가 필요한가라고 묻지나 않을까?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직원들 사이의 불신과 반목의 골이 깊어질 위험이 크다. 10년 전, 신생 기관으로 출범하면서 인권위에는 다양한 배경의 일꾼들이 모여들었다. 그 다양성은 국제적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상당한 경력을 가진 직업공무원에다 연구소·시민단체 출신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인권’이라는 새로운 기치 아래 화합의 장을 만들어왔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장기인 사람과 문제를 푸는 데 훈련된 인력이 조화를 이루었다. 사람의 일이라 목전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은 반목과 갈등이 없을 수 없었지만 그런대로 큰 무리 없이 연착륙했다. 기관장의 지도력은 모두를 포용하는 힘과 여유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바깥에서 수혈된 ‘외인부대’에게 ‘좌파’라는 명찰이 달렸고, 전력을 문제 삼아 노골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새 정부의 주문인지, 자발적인 비굴인지, 장의 소신인지, 아니면 측근 직원의 농단에 홀린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이른바 정무직은 잠시 관리하다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남은 직원들은 평생의 동료다. 이들 중 전력을 기준으로 일부를 탄압해서는 기관의 장래가 밝을 수 없다. 거느린 부하 직원들을 패를 갈라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기다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걱정스런 일이다. 실망스런 일이다. 통탄할 일이다. 분노할 일이다.

징계란 잘못을 바로잡는 행위다. 다른 의견을 참지 못해 내리는 징계는 상급자가 하급자를 다스리는 가장 비열한 짓이다. 그게 어디 ‘민주국가’의 ‘인권위’가 할 짓인가? 이번 징계처분은 응당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것이다. 상식적인 예측은 인권위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그보다도 후세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 안경환 칼럼
기사등록 : 2011-07-28 오후 07: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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