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8

[아침 햇발] 종북주의·종복주의·사대주의 / 한승동

일본 노다 요시히코 정권이 탈관료주의·정치중시 방략의 하나로 민주당이 없애버렸던 사무차관회의를 부활시켰다. 아울러 탈자민 노선의 상징으로 내걸었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도 사실상 폐기처분했다. 'A급 전범'이 전쟁범죄자가 아니라며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문제될 게 없다고 했고,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난징대학살은 허구라는 노다로선 당연한 수순일지 모르겠다. 민주당의 퇴화, 자민당화가 완료단계에 들어갔다.

왜 일본 정치는 결국 거기로 되돌아가고 마는가? 화려한 성공 체험과 끈질긴 기억, 말하자면 청산하지 못한 과거 때문이다. 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 출현 이후 일본 지배세력은 근대의 패자들인 영국·미국 등 서방 강자들 편에 붙어 그들의 대행자·공모자로 아시아 침탈에 편승해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국가전략으로 삼았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근대 주역들은 초지일관 그 노선으로 매진했고, 나름 엄청나게 성공했다. 그 성공은 이웃 아시아 나라들에는 악몽이었지만, 그들은 패전 뒤에도 다시 미국이라는 최강자에게 붙었고 또 성공했다.

자민당의 몰락은 자민당 보수합동체제를 만든 미국 주도 전후체제 틀 자체가 냉전 붕괴로 흔들리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탈서방·아시아 중시를 내세운 세력이 한때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으나, 얼마 가지 못했다. 미국의 몰락은 그들의 예상보다 속도가 느렸고, 경쟁자 중국의 등장은 너무 빨랐다. 거기에다 장기불황과 전망 불투명한 초고령사회, 지진과 원전사고 재난 등이 일본의 친미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을 외치는 우파 주류는 지금 '제3의 개국'을 얘기하며 다시 한번 과거와 같은 성공을 안겨줄 마술램프의 지니를 불러내려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다. 그나마 경제적 성공을 거둔 건 미-일 동맹체제에 포섭된 남쪽 반쪽뿐이다. 그 성공이 지속적인 분단과 소모적인 동족대결의 비극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대단한 성공일까?

사실상의 일-미-한 삼각 동맹체제하의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은 한 세기 전부터 지속돼온 일본=성공, 한반도=실패 구도를 고착시킨 서방-일본 대행·공모체제를 21세기에도 지속·강화하려는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지적을, 중국 무서워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사대주의 발상이라 비난하는 세력들이 기세등등하다. 누가 사대주의자들인가? 일본을 최대 수혜자로, 한반도를 그 희생자로 만든 그 구도의 파기를 거부하면서, 그것의 유지·강화를 주도해온 미국에 모든 걸 맡기자는 자들이야말로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에만 집착해 민족 대다수를 불행에 빠뜨리는 사대주의 속물들이 아닌가.

영화 이 그리는 서인 세력의 인조반정과 그 비극적 귀결인 정묘·병자호란의 참화는 맹종적 사대주의가 나라와 백성을 어떻게 결딴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망해가는 명을 떠받들면서 새로 일어나는 청(후금)을 오랑캐라 멸시한 조선 소중화주의자들의 존명사대·향명배청의 사대주의는 결국 두 번의 전란을 불러 임진왜란으로 기운 조선의 몰락을 재촉했다. 명·청 교체기의 균형외교론자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와 반정 세력의 존명사대주의, 명 멸망 뒤에도 만동묘까지 만들어 명을 떠받든, 당시 급변하던 국제정세에 까막눈이면서 자신들 계급이익 보존에만 충실했던 송시열 등 서인-노론 지배세력의 시대착오적 북벌·사대주의. 영화 주인공 남이의 분노는 청의 야만적 침탈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가 아들을 통해 개성의 친구에게 전한 말이 암시하는 반정 세력의 무능과 탐욕과 존명사대주의까지 겨냥한 게 아닐까? 지금도 문제는 미국에 모든 걸 거는 종복적 사대주의 아닌가. 존미사대는 사대가 아닌가?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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