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7

박근혜 다시 찾아온 ‘추석의 악몽’

꼭 5년 전이다. 2006년 북한은 추석 사흘 뒤인 10월9일 핵실험을 강행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와 어금버금한 형세로 열세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급격히 떨어졌다. 핵실험 직후인 14~15일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19.5%를 얻어 32.1%를 얻은 이 후보와 처음으로 두자릿수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 한달 전 같은 조사에서 두 사람의 격차는 6.2%였다. 당시 박 전 대표는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정부 차원의 모든 대북지원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표시했지만 한번 벌어진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친박 진영 안에선 아직도 5년 전 추석의 쓰린 추억이 회자된다.

그리고 5년, 다시 대선을 한해 앞둔 2011년 추석. 다시 여론조사가 박 전 대표에게 충격을 던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박 전 대표는 비록 오차 범위 안이긴 하지만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박 전 대표는 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에게 2.6%포인트 뒤졌고, -모노리서치 조사에서도 1.9%포인트 뒤졌다. 박 전 대표가 2위로 밀려난 여론조사는 3년6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한나라당 안에선 이미 박 전 대표 대세론에 굵은 금이 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당직자는 "야당의 유력 후보가 나온다면 박 전 대표가 밀릴 것이란 것은 예견됐다"며 "이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바라는) 민심의 문제고 기성 정치권의 문제다. 제2, 제3의 안철수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친이계 초선 의원은 "여론조사에 거품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의 마음엔 대세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나타난 것 아니냐"며 "독주 체제가 오래되면 국민들은 싫증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친박 진영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일단 박 전 대표는 7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하며 기자들과 만나 '안철수 돌풍'에 관해 "이번 상황을 우리 정치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친박 의원은 "새상품이 시장에 나오면 사람들이 쳐다보긴 하지만 구매를 결정할 시점에선 따져보게 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할 게 없다. 우린 국민을 보고 뚜벅뚜벅 갈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진영에서도 그가 좀더 유연하고 적극적인 행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한구 의원은 "박 전 대표도 국민들과 소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친박 의원도 "안철수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 뒤의 민심이 무서운 거다. 박 전 대표로선 최대의 위기다"라며 "좀더 현장으로 가 자연스레 소통하고, 주변 측근들과도 새로운 소통방식을 찾는 등 많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안철수 돌풍으로 사실상 조기 대선 경쟁이 불붙은데다 박 전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지원유세에 나선다면 야권의 거센 공격에 마주치게 돼 사실상 조기에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 전 대표도 현장을 찾는 행보를 부쩍 늘려가는 모양새다. 그는 이날 국정감사 질의 준비차 인천 중부고용노동청 인천교육센터를 찾았다. 지난 4일에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 대구 스타디움을 찾았고, 지난달 30일 인사동을 찾아 찻집에서 시민들과 차를 마시기도 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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