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6

“지금 대학엔 자유로이 말할 공간이 너무 부족해요”

"억울했어요. 32강과 16강전까지는 '승부에 집착하지 말자', '토론 자체를 즐기자'고 다짐했는데, 16강전에서는 출전 팀 가운데 총점 1위를 차지했는데도 실제 방송에선 딱 5초 나오더라고요."

"그때부터 '그래 8강전, 4강전 계속 올라가면 방송에서도 재미없다는 이유로 편집하기 어려울 테니 끝까지 가보자' 하는 생각에서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출발한 겁 없는 도전이었다. 연세대 재학생 토론 동아리 '토론헌터'(사진)가 논리적 입담과 세련된 토론 매너를 선보이며 케이블 채널 (tvN)의 우승을 차지했다.

황귀빈(24·의류환경학), 이지혜(22·교육학), 권오혁(26·정치외교학), 김새날(24·신문방송학), 송지은(23·정치외교학), 이혜린(19·경영학), 윤혜수(19·사학)씨로 구성된 토론헌터는 3일 낮 12시 방송된 대학토론배틀 결승전에서 고려대 토론팀 '월화수목금토론'을 총점 68 대 32로 꺾고 최종 승자가 됐다.

토론헌터는 '대한민국,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입니까' 주제의 결승전 토론에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가 아니다'라는 입장에 서서 교육 기회의 불평등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설득력 있게 지적하며 우승컵을 안았다. 전국 32개 대학 토론팀이 지난 7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벌인 대학토론배틀도 이날 결승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32강전부터 결승전까지 두 달간 펼쳐진 5차례의 토론, 우승은 좋다지만 대학생의 유일한 특권 가운데 하나인 방학을 통째로 토론에 쏟아부어야 했다. 이들에게 '토론이 뭐길래'를 물었다. 이번 토론배틀을 통해 '토론여신'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새날씨가 대답했다.

"예전에는 대학생이 정치 이슈나 사회 문제에 대해 일상적으로 발언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대학 사회에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부족해요. 우리는 우리 주장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반대 의견에도 충분히 귀 기울여 '토론'할 준비가 됐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권오혁씨는 토론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것조차 질 좋은 '스펙'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현실에 답답함을 털어놨다. "누구나 학점과 영어 점수에 목말라하다 보니 사회 문제를 놓고 토론하자고 하면 고리타분하거나 한가한 아이로 취급받아요. 토론배틀 우승 뒤 주변에서 '취업에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에게 토론은 결코 '취업용'이 아니었습니다. 토론은 토론인 거죠."

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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