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제정에 착수한 지 10개월 만에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마련해 어제 공개했다. 이미 제정한 경기도, 입법예고 상태인 광주·전북, 제정을 추진중인 강원도교육청의 안과 비교해 더 나간 부분도 뒤로 물러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우열을 따질 일이 아니다. 교육자치의 틀 안에서 지역별 특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교육청에 필요한 것은 시민의 의견을 더 넓고 깊게 들어 모범적인 조례를 예정대로 제정하는 일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초안에서 주목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학생과 학교를 권리자와 침해자가 아니라 인권 보호의 공동협력자로 전제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학교 구성원의 합의에 의한 자율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모든 학생의 인권은 보호받아야 하고 동시에 타인의 인권이나 교사의 수업권도 보호해야 한다. 인권은 타자를 존중·배려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질 때 보장되고 증진된다. 대립이 아닌 협력적 관계를 제도화하고 내면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복장·두발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학생의 기본권을 학교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제한하도록 한 내용은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민주적 절차다. 때론 획일적 규정보다 각 학교 공동체의 자치기구가 합의해서 그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상황이다. 곽노현 교육감의 사법처리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조례 제정까지 흔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규제와 단속, 타율과 획일성 등 군대문화에 젖어 있는 수구언론과 보수집단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이번 발표를 두고서도, 정해진 일정에 따른 것인데도 '미리 대못 박기'라고 헐뜯는다. 조례 제정은 무상급식과 함께 곽 교육감의 양대 공약이다. 서울시민의 뜻은 선거에서 확인됐다. 곽 교육감의 거취와 무관하게 제정돼야 하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을 민주시민으로 기르는 곳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학생을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교권이나 다른 학생 학습권 침해가 우려된다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학교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건 별도 장치로 해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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