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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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윤리를 앞세운 권력의 문제 / 박상훈
권력 논리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겉으론 한없이 착한 표정과 말…
이 숨막히는 모순을 어떻게 할까
한겨레
»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민주노동당 이정미 전 최고위원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주로 진보정치 내부의 갈등과 분열, 상처에 대해서였다. 나는 진보정치도 정치인 한 일차적으로는 권력 현상의 측면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그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우선 그는 진보정치 내부를 지배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할 정도로 강한 권력의 논리, 정파와 같은 소그룹 중심의 권력 독점의 욕구라고 보았다. 권력 논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과도해서 문제라는 것인데, 내 흥미를 끈 것은 그다음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러한 권력 논리는 절대 외형적으로 표현되지 않으며 겉으로는 한없이 착한 표정, 말, 태도로 나타난단다. 그리고 그게 자신을 더 숨막히게 한단다. 그렇다면 일견 모순되는 그런 행동은 어떻게 가능할까? 의도적 위장 내지 위선의 결과일까? 여러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여서 서로의 생각을 더 나누지는 못했지만, 두고두고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사람에 따라서는 분명 의도적으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위선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더 많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해 내면적 권력 욕구와 외면적 선함이 긴장 없이 잘 공존하거나, 아니면 정말 선한 마음을 갖고 권력 확대를 열심히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목표나 지향에 의한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세력들을 배제 혹은 소외시키게 되더라도 그로 인한 윤리적 고민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반사심리는 자신의 선함을 더 강하고 더 진심으로 표출하고 싶게 만들 수 있다. 그럴 때만이 누군가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그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제기자의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말하려는 바는 간단하다. 왜 진보정치 안에서 공존과 협력이 어려울까? 왜 진보 안에서 생각과 세력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지나칠 정도로 약한 것일까?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과도한 자기확신 때문에 서로가 권력을 두고 경쟁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생각과 다른 세력의 존재 자체가 불편하게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와는 다른 생각이나 주장을 참을 수 없는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자꾸 자신의 도덕성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윤리적 외양을 앞세우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재난적 분열과 상처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종교와 달리 정치에서 윤리성은 독점될 수 없으며, 적어도 이 문제에서는 다원적 공존의 원리가 거의 무조건적인 규범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도 보았다. 우리의 진보도 해결할 수 없는 윤리적 접근으로 누가 더 옳은지를 내세우기보다, 갈등을 만들어내는 실제 원인인 권력의 할당과 분배의 규칙을 어떻게 합리화할 수 있는지를 더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당의 응집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리더십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갈 수 있을지, 이견의 자유로운 표출이 서로를 파괴하기보다 조직 내 활력으로 작용하게 할 방법은 또 무엇인지에 대해 현실적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그래야 권력을 나누고 공존하면서도 권력을 키울 수 있는 진보정치 나름의 방정식을 조금씩 완성해 갈 수 있지 않을까?




기사등록 : 2011-08-28 오후 07: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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