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무소속 출마설로 뉴스의 중심에 섰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6일 박원순 변호사로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내년 총선·대선과 관련해 더욱더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5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는 등 새로운 정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존 정당이 제구실을 못하는 현재의 한국 정치가 불러온 필연적 결과라는 분석과 함께 자칫 정당정치의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두 정치학자의 의견을 들어본다. 안철수 바람에서 읽어야 할 것 무능한 정치권과 지나친 정치화,
비뚤어진 사회에 절망한 대중이
직접 찾아가는 '소통'의 이미지와
신실성에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안철수 교수 이야기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안철수 교수의 압도적 지지로 나타나는 것은 심상치가 않다. 서울시장 선거를 넘어서 내년 총선과 대선 판도까지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란 전망도 속출하고 있다. 언론에서 이름 붙인 것처럼 가히 '안철수 쓰나미'라 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도 정치권은 자기 당의 표를 갉아먹는 안철수만 볼 뿐, 안철수의 등장 뒤에 숨겨진 민심의 흐름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정치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안철수의 등장을 비판하는 제1 논거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적실성을 가지려면, 그간 '혼자 하는 게 아니었던'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한 달 8·24 주민투표를 치른 한나라당은 '오세훈 당'과 다르지 않았다. 서울시 정책투표에 원내 173석의 거대 정당이 중심을 잃고 떠밀려갔다. 당내에서 '주민투표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란 식으로 당도 함께 주민투표 판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당 대표의 표현대로 '사실상 승리한 투표'(?)라고 하면서도, 곧 이은 서울시장 보선에선 '무상급식에 반대하지 않는', 적어도 '무상급식 투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 및 야권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오세훈 시장 사퇴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서울시장 후보 출마 선언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당내 주류와 비주류 간에 세력다툼이 시작되었다. 서울시장 보선의 큰 전략은 세워놓았다. 야권 대통합. 그런데, 이 메뉴는 작년 지방선거 때도 들었고, 4·27 재보선에서도 들었던, 아니 야권이 정권을 뺏긴 이후 4년 동안 고장난 확성기처럼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던 레퍼토리다. 왜 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통합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의 등장과 부상은 기존 정치권의 무능과, 정책 하나하나에도 물든 지나친 정치화의 반작용에 기인한다고 본다. 대중의 눈에 비친 안철수의 이미지에는 기존 정치권이 결여한 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먼저 청장년층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고민을 듣고, 그들의 시각에서 생각을 나누는 '소통'의 이미지이다. 지난 4년간의 청춘콘서트를 통해서 안철수·박경철은 청년들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철수가 '국민 멘토'라고 불리며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청년들이 듣고자 하는, 필요로 하는, 위로받고자 하는 말들을 통해 '벗'으로서 다가가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둘째, 대중은 안철수의 이미지에서 신실(integrity)을 찾고 있다. 현 정권은 '실용'에서 '친서민'으로, '공정한 사회'에서 '공생'으로 일년 단위로 언어공해를 남발했지만, 실질적으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도, 그 효과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빈부 격차는 더욱더 커지고, 가지지 못한 이들의 경제적·사회적 기회 또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가 넘게 팔리지만, 알면 알수록 정의롭지 못한 비뚤어진 사회구조에 대한 절망과 자괴감만 늘어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지로서의 안철수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담보해 낼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신뢰를 시민들에게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거라는 논평에 대한 답이다. 때묻지 않은 정치신인이 변화와 신실함, 자기 성공신화를 걸고 중앙정계에 태풍으로 등장한 사례는 우리만 경험하는 건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3대째 중앙정치에서 잔뼈가 굵은 부시와 체니, 럼스펠드 등 공직 경력만 30년이 넘는 이들이 벌여놓은 금융위기, 이라크 전쟁을 청소하기 위해 미국인이 선택한 사람은 중앙정치 경력 갓 3년이 넘지 않는 40대 중반의 흑인 변호사였다.
여론정치는 위험하다 변덕스럽고 뜬구름같은 여론에
의제 설정 의존한다면 '중우정치'
정당 등 중간 집단들에 걸러지는
과정이 민주정치의 필수 요소다 '안철수 현상'은 여론의 쓰나미를 연상케 했고 그 바탕 위에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마 변수가 또 떠올랐다. 여론이 정국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여론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민심이다. 민심은 바닷물과 같다고 했다. 배를 띄우기도 하고 전복시키기도 한다. 태풍이나 지진의 자극을 받으면 쓰나미를 일으킨다. 쓰나미는 엄청난 에너지이지만 일시적이다. 지속적이지 않고 실용화할 수 없다. 밀물과 썰물처럼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조력발전으로 써먹을 수가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후보 공천을 좌우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더구나 그 여론조사를 지금처럼 돌발적인 의제나 인물을 대상으로 하니 문제다. 사람의 혈압 측정도 평상심리 상태에서 하는 것이지 열 받았을 때 하면 진단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 변덕스럽고 뜬구름과도 같이 무상한 여론으로 주요 의제를 진단하려 해선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려한 중우정치를 실행하는 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성찰적으로 실천되지 못하고 일시적 인기나 마녀사냥식 쑥덕공론에 휩쓸려 간다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흔히 '국민은 위대하다'고 한다. 그러나 유신체제를 결정한 것도, 나치 정권의 등장을 지지한 것도 그 국민이다. 그래서 국민의 손에 맡길 선택안이 중간 집단에 의해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으면 민주주의에 위기가 온다. 중간 집단들에 의해 걸러지는 절차적 과정이 민주정치의 필수 요소다. 정당, 시민단체, 대학, 언론, 노조 등이 중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민주당은 아무리 바깥에 쓰나미가 폭발해도 최소한 정당의 역할과 사명을 다해야 한다. 제도화된 전문적 정치집단으로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서울시장 후보를 내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는 일이 그것이다. 정당이 무게 있게 제 역할을 해 나갈 때 쓰나미도 더 이상 재앙을 부르지 않고 가라앉을 것이다. 손학규 대표가 "한나라당과 1 대 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 것은 상식이지만 앞으로 전개되는 상황에 필수적인 방향제시다.
안철수 원장은 현 집권세력이 확장성을 갖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행보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대로 시장 출마를 접고 대신 박 변호사를 밀었다. 범야권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두 사람 모두 손 대표의 '한 배를 타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 거나 다름없다. 기존 정치권의 '중심 정당' 바깥에서 새 후보로 떠오르는 제3의 인물은 선거사로 보면 대개 실패했다. 물론 두 사람이 우리 선거사에서 제3후보에 해당하는 정주영·박찬종·문국현과 여러 가지로 다르고 상황도 변했다. 그러나 본질면에서 본다면 정당정치에 불신은 늘 있었던 것이고 3파전은 대개 집권세력에 어부지리를 안겨준다.
박원순 변호사가 민주당에 입당해서 경선할 생각이 없다 해도 야권후보 단일화에 응해야 한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김영삼·김대중 후보 때와 같은 결과를 그대로 반복해서는 안된다. 설령 무소속으로 당선된다 해도 서울시장으로서 성공하기 어렵다. 그것은 자신뿐 아니라 서울시민의 불행이다.
안철수-박원순 연대가 어떤 복안을 합의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기성 정당체계를 뒤흔들 수도 있다. 그것은 많은 변수와 함께 전개되기 때문에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지금 중요한 것은 서울시장 후보를 제대로 선택하는 일이다.
'오세훈 사건'에서 유일하게 얻은 것이 있다면 이제 시장의 자격 조건을 성찰적으로 따져 보아야 한다는 시민들의 인식일 것이다. 첫째는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원칙과 대의를 지켜나가는 지도자여야 한다. 그러나 정치를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은 것보다는 오랜 동안 정치권에 몸담았으면서도 때가 묻지 않은 인물이 진짜배기다. 둘째, 대중적 인기보다는 내실 있는 경세가여야 한다. 셋째, 기업경영인 출신이나 자기 분야에서만 성공한 전문가보다는 갈등 해결과 조정의 정치역량이 필수적이다. 서울은 동질적이고 단일한 조직에서 성공한 경험을 적용할 수 없는 이해상충적이고 복합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넷째, 정의·복지·평화라는 가치를 수호하고 실천해 나가는 사명에 투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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