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5

[백승종의 역설] 교회의 책무

우리 사회에서는 종교 권력을 향한 어떠한 비판도 불편한 일이 되었다. 비판의 칼끝이 특정 교단을 향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서, 다들 몸을 사린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에드워드 기번은 에서 중세 초기 교황권이 확립된 이유를 시원하게 밝혔다. 황제의 세속적인 지배권력과 달리 교황권은 민의와 관습의 토대 위에 성립된 부드러운 권력이었기 때문이란다. "독단 또는 금권을 휘둘러 황제를 선출하는 독일 궁정과 달리, 로마 교황은 로마의 추기경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뽑았다. 유럽 각국의 군주와 신민들은 이런 교황의 등장을 환영하였다. 저 유럽의 변방 스웨덴과 영국 사람들조차 교황의 권력에 복종했다. 교황이야말로 로마인들이 직접 선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교황권은 나중에 타락하고 말았는데, 그때에도 교회 내부에는 상당한 제어장치가 작동하였다고 기번은 주장한다. 바젤공의회(1431~1443년)에서 성직자들은 교회야말로 현세의 악과 싸우는 절대자의 대리인인 까닭에 교황을 포함한 모든 신도들을 영적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어서 공의회는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를 부패죄로 단죄하였고, 그러자 유럽 각국의 군주와 성직자 및 민중들은 문제의 교황을 권좌에서 축출했다.

오늘날 이 땅의 몇몇 대형교회들은 중세 교회보다 비민주적인 것 같다. 한데도 스스로를 반성하기는커녕 내년 총선을 겨냥해 보수정당을 결성하겠다고 야단들이다. 그들이 내건 기치는 시민사회의 지향점과 합치되지 못할 뿐 아니라, 종교 본연의 길에서도 벗어난 것이다. 왜냐면 종교란 약자의 권익을 지키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헌신하는 기관이지 기껏 기득권층의 이익이나 지키자고 정치놀음을 꾀할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돈으로 희망버스를 가로막고, 부부가 출산할 아이들 수까지 법으로 강제하기를 꾀하는 세력이 그 가운데 끼어 있는 한, 정당 활동은 천만부당하다. 종교인들이여, 교회부터 구하라!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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