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일 내놓은 세제개편안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재벌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방안이다. 참여연대 등이 2005년부터 근절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해온 사안이어서 진일보한 대책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정부의 과세 방안은 재벌 일가의 부의 이전 규모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어서 편법 상속증여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과세안은 일감 몰아주기를 증여 행위로 규정하고 수혜를 본 기업의 주주들한테 증여세를 물리는 게 핵심이다. 정상가격(시가)으로 거래했더라도 오너 일가의 특수관계자가 지배주주로 있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이를 '증여'로 보겠다는 것이다. 다만 주가상승분이 아닌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을 택했다. 재계는 이번 과세안이 선진국에서조차 없는 선례를 만든 것이라고 반발하지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 상속증여 또한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톡한 기업문화여서 재계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우리나라 조세 역사상 하나의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의 과세 방안은 부의 편법 이전을 근절하기에는 크게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 6월 발표한 '회사기회 유용과 지원성 거래를 통한 지배주주 일가의 부의 증식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29개 기업집단 지배주주 일가 192명의 회사기회 유용과 지원성 거래를 통해 얻은 부의 증식 규모는 9조9580억원에 이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조1837억원,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이 2조4390억원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열사와의 거래물량 가운데 30%가 넘는 물량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3%를 초과하는 지분율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이에 따른 과세 규모는 연간 1000억원 정도다.
일감 몰아주기를 증여 행위로 규정하고도 결국 1%가량의 세금만 걷겠다는 얘기다. 정책의 실효성을 의심받는 대목이다.
이송희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팀장은 "정부안대로라면 세금을 조금 내면서 일감 몰아주기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며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것이어서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별도의 과세 법안을 제출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도 "몰아주기 비율에 특별한 근거 없이 30%를 공제해주고 있어 부의 증가액과 비교하면 과세액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정부 과세안은 내년 거래분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다만 위헌 소지를 우려해 소급적용은 않기로 했다.
이번 과세안에 따르면 내년 이후 가장 많은 증여세를 내야 할 사람은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다. 이정희 의원은 정 회장 부자가 지배주주로 있는 글로비스 등의 지난해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할 때 정 회장이 237억원, 정 부회장이 191억원을 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에스케이씨앤씨(SKC&C)의 대주주인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86억여원, 에버랜드·삼성에스디에스(SDS)·서울통신기술 등의 지분 8~46%를 갖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약 15억원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재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보도자료를 내어 "일감 몰아주기는 증여로 보기 어려운데다, 정상가 거래로 인한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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