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6

글쓰는 목적에 따라 말글도 가려 써야 해!

4. 상투어를 줄여라 ③ 관용어를 남발하지 마라

'apple'은 사과, 'polisher'는 '닦는 기구'란 뜻이다. 하지만 둘을 합쳐 'apple polisher'라고 쓰면 '아첨꾼'이란 전혀 다른 의미로 바뀐다. 이처럼 둘 이상의 단어가 어법과 논리를 뛰어넘어 결합해 새로운 뜻을 나타내는 어휘를 '숙어' 또는 '관용어'라 한다. 관용어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단어로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다. 'apple polisher' 역시 미국의 학교에서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선생님한테 야단맞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과를 닦아서 갖다놨던 풍습에서 비롯됐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생활양식도 다양해지면서 이를 표현하는 언어 또한 계속 발달하기 마련이다. 언중은 자신의 생각을 강조하거나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쓰는 말보다 더 적절하고 새로운 표현을 쓰길 원한다. 관용어는 이런 대중의 심리가 반영돼 생긴 말이다. 따라서 관용어를 적절하게 쓰면 말글에 변화와 재미를 줘 글맛이 살아난다. 풍요로운 언어생활을 위해 관용어를 다양하고 폭넓게 익혀야 하는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어떤 언어권에서나 관용어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널리 쓰인다. 물론 우리말에도 수많은 관용어가 존재한다. '새 발의 피'나 '손을 내밀다'가 그런 예다. '아주 조금'이라는 일상어보다는 '새 발의 피'가, '도움을 청하다'보다는 '손을 내밀다'가 신선해서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쉽다.

하지만 논술글이나 설명문, 보고서 등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써야 하는 글에는 관용어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의미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인 글에 모호한 표현을 써 오해를 불러일으키면 치명적이다. 논술글, 설명문, 보고서 등에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표현은 쓰지 않아야 한다. 상상이나 감상 따위는 빼고 건조하게 있는 그대로 서술해도 충분하다. 가끔 글에 변화를 줄 목적으로 관용어를 쓰기도 하지만,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면밀하게 계산한 뒤 주의해 써야 한다. 아직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글을 폼나게 쓰려고 관용어를 무분별하게 가져다 쓰곤 하는데, 글의 종류에 따라 가려 써야 한다. 다음은 누리집(ahahan.co.kr)에 학생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목적으로 쓴 글이다.

예시글 1

(가)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등록금 부담에 허리가 휜다. 한나라당은 2006년 대선 공약으로 반값 등록금을 약속했지만, 선거가 끝나자 "우리나라에는 대학교가 너무 많아 모든 대학생에게 반값 등록금 혜택을 주기는 어렵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러다가 2011년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을 추진하겠다고 나서자 등록금 문제는 정치권을 비롯해 대학생, 시민들에게 뜨거운 감자가 됐다.

(나) 우리나라는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종합성적 5위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평창 겨울 올림픽도 개최할 수 있게 됐다. 22회 러시아 소치, 23회 대한민국 평창 대회에 참가하는 우리나라 선수단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다)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비용은 서울시 예산에 비해선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런데 마치 무상급식이 시행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과장해 떠드는 바람에 시민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예문 (가)의 '허리가 휜다'는 '허리가 휠 정도로 열심히 일해야 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관용어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을 나타내는 재미있는 우리말 표현이다. '오리발을 내밀다'는 '거짓말을 하거나 이상한 행위를 저지른 뒤에 점잔 빼는 몸자세'를 일컫는 말이다. 남의 닭을 잡아먹고 오리를 잡아먹은 척하는 모습에서 따온 말로 우리의 옛 문화가 담긴 표현이다. '뜨거운 감자'는 먹고 싶으나 너무 뜨거워 섣불리 베어 물지 못하는 모습과 심정을 함축한 표현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미묘한 문제'를 일컫는 용어다. 글의 흐름으로 봤을 때 등록금 문제는 정치권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미묘한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대학생과 시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가장 큰 관심사' 정도로 바꿔 쓰는 것이 부드럽다.

예문 (나)에선 '어깨를 나란히 하다'와 '어깨가 무거워졌다'란 관용어가 쓰였다. '어깨가 나란하다'면 키가 비슷해지므로 '수준이 같다'는 뜻을 나타내고, '어깨가 무거워졌다'는 짐을 너무 많이 져 어깨에 부담이 많이 가는 모습을 함축한 표현으로 '부담이 크다'는 뜻을 나타낸다. 역시 논술글이란 점을 고려해 일상어로 바꿔 쓰는 것이 좋다.

예문 (다)에 쓴 '빙산의 일각'은 '엄청나게 큰 빙산의 일부분이 작은 뿔처럼 위로 솟아올라 있는 부분'을 나타낸 말로 '대부분이 숨겨져 있고 극히 일부분만 밖으로 나타난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갈피를 잡지 못한다'에서 '갈피'는 '겹치거나 포갠 물건의 사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책갈피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비유적으로 '일이나 사물의 갈래가 구별되는 경계점'을 이를 때 쓴다. 따라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일의 경계나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해 어찌할 줄 모르고 헤맨다'는 뜻과 같으므로 글의 흐름에 맞춰 '혼란에 빠뜨렸다'는 일상어로 바꿔 써도 무방하다.

(가-1)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등록금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2006년 대선 공약으로 반값 등록금을 약속했지만, 선거가 끝나자 "우리나라에는 대학교가 너무 많아 모든 대학생에게 반값 등록금 혜택을 주기는 어렵다"며 모른 체했다. 그러다가 2011년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을 추진하겠다고 나서자 등록금 문제는 정치권을 비롯해 대학생, 시민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가 됐다.

(나-1) 우리나라는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종합성적 5위로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이 결과를 토대로 평창 겨울 올림픽도 개최할 수 있게 됐다. 22회 러시아 소치, 23회 대한민국 평창 대회에 참가하는 우리나라 선수단의 부담이 커졌다.

(다-1)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비용은 서울시 예산에 비해선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마치 무상급식이 시행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과장해 떠드는 바람에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문학 장르의 글에도 관용어는 주의해 써야 한다.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너도나도 쓰기 시작하면 말글의 신선도가 떨어져 처음만큼 흥미를 끌지 못한다. 나중에는 오히려 안 쓰는 것만 못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문학 작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을 발굴해내려 한다. 하지만 글쓰기 초보에겐 아직 그럴 힘이 없기 때문에 기존의 표현들을 무분별하게 가져다 쓴다. 익숙한 표현은 쓰기 좋지만, 너무 많이 쓰면 식상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밖에 관용어와 달리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도 조심해야 한다. 논술글에서 서론을 쓴 뒤 본론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알아보기로 하자', '살펴보기로 하자'라고 많이 쓰는데, 정형화된 느낌이 들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또 결론을 시작할 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와 같은 표현도 너무 딱딱하고 지루하다. 결론 마지막 문장에 '~하지 않을까?'처럼 의문형으로 끝내는 경우도 많은데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독자에게 판단을 넘기는 상투적 수법으로 글쓰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절대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

예시글 2

(라) 군가산점제도는 1999년에 위헌판결이 나면서 폐지됐다. 군가산점이 왜 문제가 되었는지 알아보자.

(마)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진정한 다문화주의로 가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예문 (라)는 서론의 끝부분에 '~지 알아보자'란 상투어가 쓰였다. 어차피 본론에서 군가산점이 문제가 된 까닭을 설명할 것이므로 굳이 이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된다. 빼는 것이 간결하다. 예문 (마)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도 불필요한 표현이므로 역시 빼는 것이 낫다.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의문형으로 끝내 판단을 독자의 몫으로 남긴 부분은 평서형으로 바꿔 써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개인과 정부가 노력해야 할 구체적 방법도 구체적으로 풀어 쓰면 공감을 얻기 쉽다.

(라-1) 군가산점제도는 1999년에 위헌판결이 나면서 폐지됐다.

(마-1) 진정한 다문화주의로 가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개개인의 의식 개혁과 함께 정부의 정책이 뒤따라준다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연습 문제

다음 문장에서 상투어를 찾아 일상어나 참신한 표현으로 바꿔 보세요.

1. 결승전에서 아깝게 1점 차이로 진 한국대표팀은 땅을 치고 통곡했다.

2. 요즘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이 걸린 사회문제에는 나 몰라라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면 눈에 불을 켜고 나선다.

3.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생각했던 과목에서 큰 실수를 하는 바람에 낙방의 쓴잔을 마셨다.

※ 예시답안은 누리집(ahahan.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돋보기

① 김새다(김빠지다): 흥이 깨지거나 맥이 빠져 싱겁게 되다. 밥을 지을 때 김이 새면 뜸이 제대로 들지 않아 밥이 설익는다. 이처럼 어떤 일이 틀어져 실망스러울 때 쓰는 말이다.

예) 그가 화를 내고 가니 모두들 김새서 모임을 파하자고 했다.

② 비행기(를) 태우다: 남을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높이 추어올려 주다.

예)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니 공연히 비행기 태우지 마라.

③ 발이 넓다: 사귀어 아는 사람이 많아 활동하는 범위가 넓다. 발의 뜻이 확장된 경우로 '손이 크다'(씀씀이가 후하고 크다)도 비슷한 예다.

예) 그 사람은 그쪽 방면으로 발이 넓어 네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④ 칠흑 같은 밤: 칠흑이 '옻칠처럼 검고 광택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그 정도로 어두운 밤이란 뜻이다. 칠흑이란 단어 뜻을 모르거나 가구나 나무 그릇 따위에 윤을 내기 위해 옻을 발랐을 때 나오는 검은색을 알지 못한다면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예) 달빛도 별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⑤ 바가지 쓰다: 손해 보다. 피해를 당하다. 개화기 이후에 중국에서 들어온 노름에서 유래했다.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엎어 놓은 뒤 수를 맞히지 못할 때에는 돈을 잃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을 '바가지 썼다'라고 표현했다.

예) 피서지에 가면 으레 바가지를 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