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5

이창호 9단이 양손잡이 된 까닭

이창호의 부득탐승

"나는 왼손잡이다. 그러나 오른손으로 둔다."

국내외 타이틀 140개를 정복한 승부사 이창호(36) 9단은 양손잡이가 됐다. 11살에 입단해 죄다 선배들하고만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짓밟고 이겨 타이틀을 빼앗아오는 악역이었다. 왼손바둑은 예의가 아니라는 바둑계 풍토에 왼손으로 두고 싶은 욕망을 참았다. 흡연이 허용되던 시절, 담배연기 자욱한 대국실에서 말 한마디 안 하고 5~6시간 버틴 일은 어떤가. 그 때의 간접흡연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농담이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돌부처' 이창호는 그 또래들과 비교하면 별세계 사람이다.

그러나 감정이 없는 목석은 아니다. 상처도 받고, 패배의 아픔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다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이창호의 '두터운 실리 바둑'은 완력으로 상대를 겁박하지 않는다. 낙수물이 바위를 뚫듯 느림의 미학으로 상대를 두손 들게 만든다. "크게 이길 수 있어도 단 한번 역전당할 가능성이 있으면 안전한 길로 간다." 이게 이창호다.

방어는 공격보다 훨씬 어렵다. 전성기 때 이창호는 361개의 바둑 좌표가 다 찰 때까지 반집 우위를 지켜 나갔다. 스스로 "나는 천재가 아니다"라고 한다. 노력하고 배려하면 복이 온다고 한다. 최선의 한 수를 찾아 고독한 반상 여로를 마다하지 않는 이가 이창호다.

이창호가 쓴 은 40~50대 바둑팬들의 우상의 구도자 같은 세계를 보여준다. 승리가 어찌 좋지 않으리오만, 그 승리를 위해 자신을 버려야 했던 영웅의 이야기다. 프로기사 이창호는 동시대인한테는 큰 선물이다. /라이프맵·1만3000원.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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