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마치 제가 유리벽 너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제 자신에 대해 스스로 적응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8일 만난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정치의 한가운데로 뛰어든 자신의 모습이 여전히 어색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왜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게 됐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말하는 대목에서 그는 거침이 없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만나고 결심을 전해들은 과정도 비교적 자세히 털어놨다. 인터뷰는 오전 10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서울 태평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지난 7일 안 원장의 불출마 선언 때 왜 면도를 안 하고 등장하셨나?
"깎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사람들을 만나느라 시간이 없었다. 당시엔 '이미지 메이킹'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사진 나간 뒤 전국에서 '제발 깎으라'는 요청이 어마어마하게 왔다.(웃음)"
-산에서 안 원장과 주고받은 이메일은 어떤 내용이었나?
"안 원장이 상당히 준비를 했고, 함께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상의는 해야겠다고 생각해, 마을로 내려와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썼다. '난 정말 몰랐다. 그런 생각이 있으면 사전에 조율할 수 있었을 텐데, 서로 경쟁하는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좀 걱정이 된다. 우리가 이야기 나눠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서로 신뢰와 존경의 관계는 무너지지 않도록 하자'고 적어 보냈다. 안 원장은 담백하고 간결한 사람이다. '동의한다. 어디서 뵐까'라고 답이 왔다. 그래서 장소 정하려고 몇 번 더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게 전부다."
-안 원장 만날 때 어떤 생각으로 나가셨나?
"사실, 안 원장 만날 때 (안 교수가 양보할) 가능성은 반반 정도라고 생각했다. 박경철씨가 배석을 했다. 함께 오래 고민한 사람과 나왔길래 개인적으로는 '아, 힘들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안 교수가 '정말 결심하셨습니까' 묻길래 내 생각을 쭉 설명드렸다. 그러고 몇 마디 더 오가다가 '제가 물러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더라.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끝났다. 정말 깜짝 놀랐다."
-시민운동 하시던 분이 왜 서울시장에 나서게 됐나?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와 시민사회의 균형과 협력관계, 감시 시스템이 완전히 깨졌다. 소통 부재와 독단 때문에 거버넌스의 목소리가 차단되고 굉장히 정치편향적이 됐다. 무상급식 문제만 해도 얼마든지 야당과 시민사회와 논의해가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이게 쓸데없이 정치쟁점화되면서 어마어마한 경비가 낭비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의회나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직한 자세로 경청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좀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계기는 없었나?
"제가 강연을 많이 하는데, 강연 때마다 사회변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왜 그걸 실천할 수 있는 공직으로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수천번 받았다. 또 '당신만 편하게 지내고 사람들의 절망에 대해 왜 몸을 던지지 않느냐'는 문제제기도 많았다. 이번에 백두대간 종주를 하며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제 인생의 변화가 불가피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번 선거가 맞물렸다."
-'시장이 되면 이런 일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는지?
"공약을 나열하기보다 시민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갖고 있는 아이디어들이 시정에 잘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과 채널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자치단체 사이트에 시민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올렸을까'라며 시장이 계속 사이트를 들여다보면, 공무원들도 천편일률적 답변을 안 한다."
-엔지오(NGO) 출신이 시정을 잘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있는데?
"엔지오는 늘 이상만 추구한다는 논리를 깨고 싶다. 희망제작소 활동 하면서 현실과 접목하려 노력해왔다. 반대로 행정은 현실적이기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행정도 이상과 꿈을 가져야 한다."
-시민후보를 지향하는가, 범야권 단일후보를 지향하는가?
"될 수만 있다면 범야권 단일후보 위상을 갖는 게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일반 정치인이었던 것도 아니고 정당인도 아니었다. 안 교수와 합의과정을 통해 많은 시민들이 기성 정치적 질서에 대한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시민후보로서 그런 시민들의 염원을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두 가지를 함께 가져가는 방안을 고민중이다."
-민주당 입당 요구도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민주당이라는 공당의 위치를 존중한다. 서울시정이 원만하려면 어쨌든 시의회의 80%를 차지하는 시의원과 관계를 만들지 않고 어떻게 가능하겠나. 또 제가 혼자 어떻게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조직과 싸우겠는가. 야권 통합 정당이 탄생하면 못 들어갈 이유가 없다. 설사 그런 정당이 못 만들어져도 저는 늘 차선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선거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생각인가?
"제가 돈이 없다. 출마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변에서 뭔가 돕고 싶다거나, 심지어 너무 좋은 공간의 상당 평수를 사무실로 내놓겠다는 제안도 왔다. 하지만 선거법을 보니 그게 안 되더라. 허용 범위 안에서 모금과 후원회를 할 것이고, 펀드도 모집할 것이다. 개인 한도를 정해서 펀드를 만들어 빌리면 필요한 경비는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은 어떻게 보시나?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현직 교육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보니 검찰의 정치적 편향이 우려된다."
성한용 선임기자,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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