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7

한국 권력집단, 미 관리들에 ‘권력치부’ 다 보여줘

"모든 팀들은, 전반적인 정책조정 역할을 하며 이 후보와 아주 친밀한 곽승준 고려대 교수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그가 김(우상)과 현(인택) 교수에게 전화해, 세미나나 회의가 있다고 말하면 김과 현은 특정한 정책주제를 토론하기 위해 자신들의 팀을 소집한다."(박진 한나라당 의원)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가시화된 2007년 12월14일,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담당 관리들은 박진 의원을 만난 뒤 "그의 식견은 차기 대통령의 핵심 대외정책 참모들에 대한 좋은 관점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이 후보 캠프에서 외교팀을 이끌고 있던 박 의원은 이 후보 캠프 내 역학과 알력 관계 및 대통령직 인수위 구성 등 향후 인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밝혔다. 그 어떤 국내 언론도 상세히 보도하지 못했던 내용이 생생하게 '브리핑'된 셈이다.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지난 2일 한꺼번에 공개한 주한 미국대사관발 전문들은 한국 사회의 지도층과 여론주도층의 모습을 날것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미국 외교관들 앞에서 현 정부의 내부 상황뿐 아니라 난맥상, 그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까지 솔직하게 토로했다.

전 외교부 장관으로 이명박 선대위의 외교안보위원장을 했던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이 대통령의 첫 방미를 앞둔 2008년 4월11일 이 대통령의 외교팀, 특히 김병국 당시 외교안보수석의 무경험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자신을 많이 좋아하지 않는데 이는 대통령이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자신은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유 총재는 그해 9월18일 만남에서는 이 대통령이 자신에게 여러 자리를 제안했지만, 현재 72살인 자신이 해외골프접대 금지 등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윤리규정에 발목 잡히기 싫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대외비밀성 정보를 먼저 귀띔하기도 했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2009년 12월30일 미국대사관 쪽에 한국의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과정을 설명하며 경제·군사협력을 하기로 했고 한국의 예비역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군인들을 훈련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항은 비밀이지만, 국회 비준은 받을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특전사 파병 약속은 그해 11월 뒤늦게 드러나 격렬한 논란의 대상이 됐다.

함성득 고려대 교수와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2009년 1월6일 미국대사관 관계자들에게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임명은 그가 주미대사관 공사로 재직하던 1998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미국 워싱턴으로 왔던 이명박 대통령을 보살펴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또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핵심 외교참모이자 고려대 교수였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정부 출범 초기 등용되지 못한 것은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의원의 환심을 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미국대사관은 이런 정보들을 본국에 상세히 보고하되, 냉정한 평가 또한 남겼다. 대사관 쪽은 박진 의원에 대해 "그의 자질에도 불구하고 그의 적나라한 야망은 그를 이명박 캠프 내의 최고직들에 오르는 것을 막을 것이고, 차기 행정부에서 뒷전에 있게 할 수도 있다"고 적었다. 또 함 교수 등에 대해 "그들 자신이 정치권 진입 희망을 갖고 정치인들과 기자들의 환심을 적극적으로 사는, 식견 있고 발 넓은 '폴리페서'다"라고 규정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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