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7일 이른바 '엠비노믹스'를 상징하는 이명박 정부 대표적 경제 정책인 감세 기조를 접었다. 청와대는 "여당의 거센 요구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배경을 밝혀, 임기말 정책 주도권이 정부·청와대에서 국회로 넘어갔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이날 오후 춘추관을 찾아 "복지와 일자리 등 새로운 수요가 생기고 있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앞으로 경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감세 철회 배경을 밝혔다. 그는 "국회의 새로운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정치 현실을 감안해 절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그동안 추가 감세 철회를 요구하는 한나라당에 타협안을 제시하면서도 감세 기조만은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추가 감세의 적용 시점을 내년에서 다시 한두 해 정도 늦추거나, 일부만 감세하고 나머지는 뒤로 미루자는 게 청와대와 정부의 타협안이었다. 임 실장은 지난달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감세는 국민과 약속한 것이고 외국인 투자를 위해 법인세를 낮게 유지해야 한다"며 감세 정책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이 대통령도 "감세 기조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임 실장은 전했다. 그만큼 감세의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당정청 협의를 통해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 과표구간의 추가 감세를 완전히 철회하자는 데 합의하면서 '경제대통령'을 자임해온 이 대통령의 핵심 경제정책 기조가 완전히 꺾였다. 그나마 법인세에 과표구간을 중간에 하나 더 만들어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감세 혜택은 일부 유지한다는 '성과물'을 챙겼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임태희 실장은 "감세 기조를 유지하는 대신 감세의 속도가 지금보다 줄어든 것이다. 감세 혜택이 중소기업에 집중되도록 조정한 것"이라며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했다.
이날 결정은 임기를 1년 반 남겨둔 청와대의 '정책적 레임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나라당 소장파를 중심으로 '부자감세' 철회를 강하게 요구하자 청와대는 이를 제어하지 못했다. '부자 정당'이란 이미지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를 수 없다며 여당이 완강히 버티고 나서자 청와대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정무적 측면에서도 청와대는 많이 위축돼 있다. 이 대통령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하는 등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우회적으로 지원했지만 패배한 상황이다. 청와대 내부에선 일종의 체념 분위기도 느껴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기말에 선거를 앞둔 여당의 요구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느냐"며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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