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7일 대선에 나설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가당치도 않죠"라고 답했다. 출근길에 만난 기자들이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보다 지지율이 높게 나왔다"고 하자 "일시적인 거겠죠"라고 잘라 말했다. 대선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선긋기인 셈이다.
안 원장 본인은 이렇듯 현실 정치에서 발을 빼고 있지만, 그의 존재는 이미 현실 정치 깊숙이 들어와 있다. 초기 여론조사이긴 하지만, 안 원장이 박근혜 전 대표와 대선에서 일대일로 맞붙을 경우 앞선다는 조사가 잇달았다. 6일 뉴시스-모노리서치 여론조사에선, 안 원장이 야권 단일후보로 나설 경우 42.4%로 40.5%를 얻은 박 전 대표를 오차범위 안에서 앞질렀다. 같은 날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양자 구도에서 안 원장은 43.2%, 박 전 대표는 40.6%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대인배 안철수' 효과가 강력한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원장은 여론조사 1위의 위치에서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한 그 사실 때문에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대중들은 더 열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박 전 대표를 앞선 후보가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전 대표를 중심에 놓고 여야 주자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던 대선 구도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기존의 정치 행태와는 전혀 다른 이른바 '탈정치의 정치'를 보여준 안 원장의 '돌풍'이 계속될 경우 총선·대선 판도는 근저에서부터 흔들릴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은 무엇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변화의 욕구를 대변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지역, 이념, 계파 등에 기대는 리더십이 아니라 이를 초월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국민들은 요구하고 있다"며 "안철수 현상이 관통하는 것은 여야, 보수·진보를 넘어서는 통합의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김민전 경희대 학부대학 교수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반칙도 불사하는 사람들이란 실체를 드러냈다"며 "안 원장은 그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 변수의 돌출로 대선 구도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안 원장의 부각으로 사람들이 박근혜 대세론을 되돌아보게 됐다"며 "막연히 박 전 대표를 지지하고 경사됐던 사람들에게 뭔가 다른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는 자각을 주게 됐다"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는 "이른바 '안철수 쓰나미'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박 전 대표"라며 "일시적으로 한번 졌다는 것은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 원장이 서울시장 불출마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다소 미숙함을 보인 점 등을 들어 여야의 협공을 받으면서 정치적 열기가 식을 것이란 분석도 만만찮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안 원장이 대선에 나올지도 불확실하고, 지금의 지지가 곧바로 득표율로 연결될지도 알 수 없다"며 "정당 내부에서 검증되지 않은 안 원장은 신선하긴 하나 뿌리없는 부평초 같다"고 평했다. 이철희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미국에서도 클린턴-부시가 맞붙었던 1992년에 로스 페로가 '제3지대'를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며 "미국에서도 민주-공화의 양당제 구도의 빈자리를 노리는 이런 제3의 후보는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제3의 후보들이 안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민주-공화 양당이 제3의 후보들이 제기한 내용들을 끊임없이 흡수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안철수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의 한 전략담당 당직자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이 필요한 것은 그 당의 정책과 정치가 실패하면 투표라는 제도를 통해 책임을 묻고 응징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안 원장처럼 '개인의 정치'를 하게 되면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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