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정치권 인사들은 "정치판 자체를 뒤흔드는 초대형 지진이 시작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여론조사에서 39.5%(-한국갤럽), 36.7%(-GH코리아) 등으로 압도적인 1위의 지지도를 보인 데 대한 반응이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이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문제가 아니다. 판이 흔들리고 있고, '박근혜 대세론'까지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격변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돌풍'이 내년 4월 총선 지형은 물론, 12월 대선 구도까지 예측 불허의 안갯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안 원장에 대한 대중의 폭발적 반응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기성 정당과 기존 정치인이 이미 무력화되기 시작했다는 진단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안 원장과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지지도까지 합치면 과반 이상이 '다 바꾸자'라는 것"이라며 "정계 개편에 대한 요구와 기반이 있음이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남경필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철수 신드롬'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포함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라며 "당장 서울시장 선거의 유불리를 따져서는 안 된다. 이 흐름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야 정당을 비판하며 특히 '반한나라'를 분명히 한 안 원장이 10월 서울시장 보선에 나서든,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양보하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제3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안 원장을 통해 한나라당은 사형, 민주당은 무기징역 선고를 받은 것과 같다"며 "총선을 앞두고 제3의 영역을 차지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장기적으로 새 정치 세력과 함께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안철수 신드롬'이 내년 총선에서 제3의 정치세력 탄생으로까지 이어질 경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독주 체제에도 경고등이 들어올 수 있다. 안 원장의 등장으로 대선 후보에 대해서도 '새로운 대안'에 대한 요구가 분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한 수도권 의원은 "강력한 대중적 지지와 실력을 갖춘 경쟁자가 등장함으로써 박 전 대표는 그동안 피해왔던 질문들에 마주하게 됐다"며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쪽도 이런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친박계 일부 의원들은 지난 4일 모여 '안철수 돌풍'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박 의원은 "지각 변동이 올 수 있다.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이명박계 의원들은 "박근혜 대세론에 변화가 생길 여지가 생겼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민주당에서는 대선 주자인 손학규 대표가 이미 태풍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었다. 당장 10월 서울시장 보선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이는 대선 가도에도 악재가 된다. '기성 정치 거부'의 흐름까지 계속될 경우, 문재인 변호사나 김두관 경남지사 등 특정 정당에 몸담지 않고 있는 인물들이 급부상하면서 야권의 대선 구도도 출렁일 수 있다.
그러나 안 원장 바람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현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자기 분야에 있을 때 '안철수'가 의미가 있지, '정치인 안철수'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며 "'제2의 박찬종'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안철수 신드롬이 이제 막 시작됐으므로 찻잔 속 태풍이 될지, 계속 돌풍이 될지는 정치권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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